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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정치와 제도 (보도) [분석] 푸미폰 국왕 사후의 태국 : 최악의 시나리오와 최선의 시나리오
울트라-노마드 추천 0 조회 887 16.10.21 07:50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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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6.10.21 08:15

    첫댓글 이 글 역시 농민과 노동자들을
    정치적 역할 면에서 일정 부분 무시하거나 간과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썩 잘 쓴 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여러 가지 좋은 정보들을 잘 정리하고 있어서..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어쨋든 "일이 잘못 될 경우 태국은 지옥이 된다"고 한 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한국도 만만찮게 개판이라서
    태국보다 우리나라가 발등의 불이긴 합니다만.. ㅠㅠ

  • 작성자 16.10.21 09:29

    추가로 사진을 첨가했습니다만...

    새삼스레 저 모녀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최순실과 정유라 생각이 나네요..

    의사들 모습을 보면
    백남기 농민 사건이 생각나고 말이죠..

    한국사회가 그만큼 태국사회에 가까와진건가요.,. ㅎㅎ

  • 16.10.21 11:49

    그러게요 ㅎㅎ 내년 대선도 승리한다면 새누리당 50년 이상 통치가 가능하다는 소리를 여권에서 한다던데, 남의 일만은 아닌거 같습니다. 그래도 이화여대 사태를 보며 젊은 학생들이 나서서 개혁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 사회는 태국에 비해 훨씬 희망적인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6.10.21 18:13

    @Who am I 한국 민주주의 역시 그 힘이 만만치가 않으니
    섣부른 망상이 새누리당 놈들에겐 무덤이 될 겁니다.. :-)

  • 16.10.21 12:31

    번역 수고하셨습니다.

  • 작성자 16.10.21 18:13

    감사합니다 ~~

  • 16.10.21 13:35

    결말부분이 조금 모호한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그리고 한가지 의문사항은 푸미폰 전국왕의 형인 아난다 마히돈 라마 8세의 재위기간이 1935년~1946년(11년)이 맞는건지요?

  • 작성자 16.10.21 18:02

    맞습니다..
    하지만 귀국은 1938년에야 하죠

    쁘라차티뽁 국왕(라마 7세)이 1932년 혁명 이후에 신병치료 차 해외에 머물면서..
    새로 들어선 혁명 군사정부에 상당히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요구를 했었는데요..
    그게 수용이 안 되자 1935년에 자진 퇴위해버립니다.

    라마 7세는 원래 영국 이튼스쿨과 사관학교를 나온 사람이라 상당히 서구형 지식인 같은 인물이었나봅나다
    그의 퇴위 성명서 내용이 태국 민주주의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1932년 혁명이 일어나자,
    자신이 절대군주에서 입헌군주로 변하는 것도 즉각 수용했고요..

  • 작성자 16.10.21 17:59

    그는 원래 성군의 재목이었습니다..

    태국 역사상 최초로 모든 공문서와 백성들의 탄원서, 학자들의 연구물까지 쉬지 않고 읽었고..
    심지어는 태국 최초로 평민들을 위한 의회를 설치하려고 개혁 노력을 했던 인물입니다.

    겸허하게 자신의 실수를 공식으로 인정하기도 했고,
    여러 모로 세종대왕과 유사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은데..

    즉위 초부터 기존의 국가재정 적자와 경기 후퇴에 발목이 잡혔고
    특히 방콕의 엘리트들이 성장하는 걸 간과했다가
    결국 1932년 혁명을 맞이하죠..

    아마 그대로 절대군주 국왕을 했어도
    굉장한 성군으로 기록됐을 법한 문무겸비형 인재였죠..

    태국 역사에서 안타까운 인물 중 하나죠..

  • 16.10.21 18:04

    @울트라-노마드 라마7세시대에 입헌군주제로 변경이 되었군요. 아무튼 격동기를 겪은 왕임에는 틀림이 없네요.
    마히돈 왕은 즉위하고 대관식도 못한채 암살되었다고 알고 있어 실제 재위기간이 그렇게 길었는지는 몰랐네요.
    즉위후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낸 것으로 되어 있네요....

  • 작성자 16.10.21 18:22

    "즉위"는 이전 국왕의 궐위 직후 왕위계승권자로 지명됨과 동시에 한 셈인데요..
    대관식은 바로 사망하던 해에 하려고 했던가, 아마도 그럴 겁니다..

    나이도 어렸고,
    해외에서 공부도 계속해야만 했죠.

    그리고 중요한 점은 라마 8세(아난다)가 암살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살 아니면 사고사였을텐데..
    사고사 쪽에 무게가 실려 있고..
    그 경우 총기를 발사한 사람이 푸미폰 국왕일 것이란 유력한 추정이 존재하죠

    푸미폰은 평생 2번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하나가 형의 죽음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가 아내 시리낏 왕후로부터 소외당한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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