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장가. 주머니 속 동전소리마냥 차진 신혼재미가 티가 좀 나는가 보다. 학교 선생님들도 교회 집사님들도 나를 볼때면 깨 볶는 냄새가 난다며 너스레다. 좋긴하다. 사실 결혼 덕에 주일 아침 풍경도 변했다. 족히 십년은 주일아침마다 예배당 향하기 전, 반지하방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 부으며 소일했는데, 요샌 샤프란 냄새 은은한 침구에 파묻혀 잠을 깰 때면 찌게 보글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예배 늦겠어요’라는 힐난에 ‘십분만 더 잘랭’이라며 굳이 ㅇ 받침을 달아주는 좀 징글맞은 실랑이. 그저 우리 교회가 몹시나 멀어진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신혼집을 파주에 잡다보니 남양주에 자리한 교회까지는 꼬박 한시간 반 동안 외곽순환도로 레이싱을 벌여야 한다.
예배 늦을까 조마조마한 아침이지만, 우리 부부가 쉬어가는 셈 치고 고속도로 길목에서 꼭 정차하고 둘러보는 곳이 하나 있다. 얼마전 주일 아침에는 비가 추적거리는데도 굳이 30분을 빗 속에 거닐기도. 파주시 필리핀군 참전기념공원. 6.25때 참전했다는 필리핀 군인을 기념하는 곳이라는데, 꽤 허름하다. 한국전쟁을 서양에서는 잊혀진 전쟁(forbidden war)이라 부른다던데, 왠지 그런거 같다. 낡음과 쓸쓸함 가득한 위령탑의 비문들. 낯설고 애잔하다. 더군다나 한반도의 ‘필리핀군’이라니. 참 기이하다. 통념들이 당황스런 실체에 맞닥뜨릴 때 경험하는, 일종의 정서적 멀미랄까. 각설이들이 미군 청년들에게 ‘기브미 쪼꼬랫’하는 얘기야 익히 알지만, 한국소년들이 구리빛 필리핀 군인들 구두 닦는 풍경은 좀체 상상이 안간다.
보라카이 백사장에서 선탠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망고주스 팔고, 한국 중년들을 코끼리에 태워주고 50페소 팁 받아 근근히 살아가는, 빈자와 서민들의 나라. 이 후덥지근한 동남아의 빈국 젊은이들이 우릴 구하겠다며 만명 가까운 청춘들을 보냈다니. 비 오는 주일 아침, 뜽금없는 물음표가 뇌리에 밀려든다. 교회에 와서 궁금함을 못참고 결국 인터넷 자료 몇 편을 뒤졌다. 영화대사였던가. ‘숫자는 거짓말을 안한다’는. 곧 통계 몇가지를 접하곤 의아함은 해갈되었다.
우리네 1인 GDP가 100불 조금 안되던 그 시절, 필리핀은 이미 1000불을 넘었었다. 아시아 2위의 부국이었다는 이 나라는, 장충동 체육관을 지어주었고, 우리 고신교인들이 잘 아는 장기려 박사같은 청년들에게 막사이사이상을 시상하고 후원하기도 했다. 역사란 때로 참 싱거웁고 텁텁한 농담 같다. 6.25 이후 필리핀인보다 12배 못살던 남한사람들은 2015년 그들보다 9배 잘 살게 되었다. 인터넷을 끄며 이제 질문이 바뀐다. ‘대체 이 나라 할아버지들은 무슨 마술을 부린거지.’
정답은 간단했다. 지난 50년간 필리핀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60년대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망고를 까서 팔았던 필리핀인의 아들들은 2015년 한국인과 중국인 여행자들에게 여전히 망고를 까 팔고 있다. 아. 오해는 없으시길. 개도국의 가난을 힐난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나는 그저 속칭 '신세를 편' 우리나라가 한없이 특이할 따름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독립한 신흥국들 중에 중화학공업 같은 대규모 설비산업을 성공시키고, 연 국민소득이 만불을 넘는 나라는 지구상에 이 나라 밖에 없다. 필리핀 노인들이 이상한게 아니라, 우리의 노인들이 이상한거다.
저널리스트 팀 브로코는 1920년대 출생한 미국인들을 가리켜 '위대한 세대(great generation)’라고 추앙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미국의 이들은 우리네 5~70년대의 청년들, 그러니까 지금 파고다 공원에서 내기장기로 소일하시거나, 종로3가 후미진 자리에 3000원 선짓국으로 끼니를 때우는, 백발의 은자들에 비하면, 좀 시시하다. 이 말없는 은퇴자들은,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공사판에 뛰어들어, 모래먼지 뿌연 리비아 돌밭에 신작로를 내었고, 거대한 주물판에서 밤새 포니 자동차용 강판을 뽑아내었다. 생각만해도 섬짓한 석면 판넬을 손수 건물 천장에 박았고, 청계천변 열다섯 소녀는 재봉틀 앞에서 청춘의 날들을 다 보내었다. 아르헨티나 농장에서, 대서양의 라스팔마르 참치잡이배까지, 당대의 청춘들은 닥치는대로 일을 했고 돈을 벌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도 그런 끔찍이 없었을 열다섯 시간 명절의 귀향버스. 고향의 부모님께 일년에 한번 돈봉투 건넬 생각에 버스 통로에 웅크려 쪽잠을 청하던 청춘들의 어떤 귀경 풍경.
왜 그렇게까지 살았을까 하는, 나같은 후세대의 먹먹한 질문을 애두르듯, 위령탑은 오늘도 차분하다. 열월(熱月)을 버티어 우리 세대에 바톤터치하고, 이제는 조용히 쇠락해가는 어떤 세대의 늙음. 먹먹하다. ‘하나님. 이런게 진정 삶인거고, 숙명이란건가요.’ 한 세대는 가고 다른 세대가 오는 반복, 모든 만물이 피곤한, 해 아래 수고하는 이 안쓰러운 인생의 풍경을 노래하던 전도서의 글을, 나는 다시 꺼내어 읽는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르신.
요즘 티타임 때 동료 선생님들의 이야깃거리는 청춘 가수들의 연애담 아니면, ‘아빠 어디가’의 삼둥이들 재롱담 뿐이다. 인생을 이제 막 시작한 어린 것들, 이보다 더 뽀얗고 예쁠 수는 없는 청춘 연예인들의 모습. 사람들의 관심은 늘상 그렇다. 전쟁 위령탑처럼 '낡아가는' 어떤 백발노인들의 이야기는 적막하고 좀 불편하다.
그나마 살림이 편 요즘에 들어서야 우리네 앞세대 노인들이 일정한 발언을 할 수 있는거다. 인류학자들의 연구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본래 어느 사회든 노인들 처우는 야박한 편이다. 먹을거리가 일정치 않은 전통사회에서 ‘개체수 조절’의 주기적인 희생양은 대개 노인이었다. ‘고려장’, 요즘 말로 하면 '한국식 장례’라는게 뭔가. 노인들 외딴 산에 버리는 참담한 유기다. 애기들처럼 뽀얗지도, 청년들처럼 노동력도 없는 ‘흘러간 세대’를 경의로 대하는 세상은 어디나 드물다.
본래 노인은 지성의 상징이었다. '늙음'이라는 단어 속에는 암묵적 지식, 표기될 수 없는 통찰력의 보고가 담겨있다. 이제 수염 희끗한 훈장님 대신, 젊은 여교사들이 활약하고, 백발의 판관 대신, 삼십대 젊은 판사가 죄를 판결하는 시대. 수시로 여론을 들끓게하는 연금 문제는 매번 흘러간 세대에 대한 경멸과 원망을 촉발시킨다. 어르신들은 존재만으로 상처받고 가슴 아프다.
삶은 변한다. 사람들의 살림과 신세도 폈다가 쇠락하기를 반복한다. 요즘 국가부도를 맞닥뜨린 그리스의 대학교수들은 핀란드 공립초등학교의 청소부로 재취업한다더라.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다시금 경이에 찬 황혼의 우리 시대 은자들을 생각하게 된다. ‘위대한 세대’라는 찬사를 붙이고픈 우리네 부모님, 또 장로님, 권사님들은 여전히 특별히 말이 없다. 어쩌면 말이 없었기에 그리 버티어낼 수 있었던지도. 우리네 청춘들은 이제라도 이 은자들, 좁고 쇠락한 순대국집에 웅크린 어떤 슈퍼맨들을 기억해주시길. 어르신들을 구휼의 측은스런 대상으로 바라보는건 꽤 좋지 않다. 경의가 우선이다. 그러고보면, 방송국들이 ‘아빠 어디가’ 대신 ‘어르신 어디로 가시나요’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기획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다. PD들께서 이 글 한번 읽어주셨으면! /
철강 기술이 없던 60년대.. 철을 만들어 내겠노라 모인 기술자 중에 용강로를 실제로 본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는데.. 기술자들이 모여 철을 못 만들면 이 동해 바다에 다 빠져 죽자하고 결의하고 지금의 철강대국을 만들어 냈다는 공익광고를 봤어요.. 젊음의 패기... 열정... 전쟁 후에 지독한 가난에서 가족과 이웃을 살려내려던 결의와 끈기... 그런게 저희 아버지 세대에는 있으셨던것 같아요. 정치인들을 비롯해 자기 이익들만 챙기는 사람들에게 피해의식이 많아서 자기꺼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개인주의가 더욱 공동체를 와해 시킨것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 저희들 세대보다 회의주의가 더 심각한 것 같아서.. 생각이 많네요..
첫댓글 어르신들도 갈 길 모르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훗날 갈 길을 생각한다면,
'지금'이 미래를 결정하는 때임을 아는 지혜가 필요하겠죠?
글 감사해요^^
철강 기술이 없던 60년대..
철을 만들어 내겠노라 모인 기술자 중에 용강로를 실제로 본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는데..
기술자들이 모여 철을 못 만들면 이 동해 바다에 다 빠져 죽자하고 결의하고 지금의 철강대국을 만들어 냈다는 공익광고를 봤어요..
젊음의 패기... 열정...
전쟁 후에 지독한 가난에서 가족과 이웃을 살려내려던 결의와 끈기...
그런게 저희 아버지 세대에는 있으셨던것 같아요.
정치인들을 비롯해 자기 이익들만 챙기는 사람들에게 피해의식이 많아서 자기꺼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개인주의가 더욱 공동체를 와해 시킨것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 저희들 세대보다 회의주의가 더 심각한 것 같아서..
생각이 많네요..
마감에 맞춰 글쓰는게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글을 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퇴 후에도 열심히 새 일을 찾아 일하시는 부모님 보면서 요즘 느끼는게 참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