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6.금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행 3:1~10
*제목; 사도행전강해(6)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의 변화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행 3:1~10)
1. 설교 하나로 사람과 역사 바뀔 수 있다.
저는 목회자이지만, 궁극적인 부르심은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입니다.
그러나 이 설교에 대한 스스로의 많은 고민과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설교로도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신을 다해 설교하지만, 설교의 능력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 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궁극적으로 설교자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의 능력과 결과에 회의를 가지기에,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저 또한 어리석고 연약한 인간인지라 삶으로 보여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절망 가운데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어찌해야 합니까?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매우 달랐습니다.
“설교 한 편으로 사람과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스데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스데반은 베드로와는 달리 훌륭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훌륭한 설교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설교한 후에 돌에 맞자 죽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실패한 설교자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고 한 영혼이 꿈틀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사울”입니다. 그의 마음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고, 그가 나중에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바울’이 되었으며, 기독교의 틀을 잡은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한 설교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그를 통해서 한 시대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는 역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는 실패한 것 같지만, 주님은 이와 같이 이 한 설교를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밤에 이 말씀과 설교를 통해서 여러분이 영혼이 송두리째 바뀌는 역사가 나타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이, 교회가, 이 울산이 온전히 뒤집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길 기도합니다. 아멘.
2.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
오늘 본문에 보면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나옵니다.
“미문”은 영어로 “Beautiful Gate” 혹은 “Golden Gate”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성전 문이 금으로 장식되어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이는 헤롯왕에 의해서 지어진 것입니다. 그는 로마를 등에 없고, 유대의 분봉왕이 됩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혈통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통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으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들여 ‘헤롯성전’을 건축하고, 그 입구의 문을 금으로 장식한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이 문을 드나들면서 자신의 영적 허영심과 교만한 마음을 충만히 채워갔습니다.
그 문 옆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는 그 허영심과 교만을 이용해서 밥을 먹고 산 것입니다.
3. 성령의 임재는 모든 것의 변화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늘 유대인의 관례대로 하루에 세 번 성전에 기도하러 왔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의 기도는 다른 날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로 성령이 임하신 다음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나니, 비로서 성전 미문에 앉은 않은뱅이가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자가 보였고,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신 새로운 변화였습니다.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행 3:4~6)
성령의 임재는 놀라운 역사가 핵심이 아닙니다. 모든 것의 변화가 바로 핵심입니다. 성령이 임하신 사람과 장소는 이처럼 완전히 이전 것과는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이 한해 여러분의 믿음이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통해서 완전히 변화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한해 여러분의 삶이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통해서 완전히 변화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한해 우리 교회의 모습과 사역이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통해서 완전히 변화되기를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변화가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런 완전한 변화가 있습니까?
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시골의 한 교회에서 자라나고 청년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예배시간만 되면 한 자폐증을 앓는 청년이 와서 소리지르고 예배를 방해하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가 난 목사님이 몰래 그 청년을 때리고 다시는 교회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목사님은 서울에 와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사모님을 만나 결혼을 하고 첫째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얼마나 준수하고 공부도 잘 하는 지 나중에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딸은 낳았는데, 정말 이뻤다고 합니다. 그러다 점점 자라면서 딸의 행동이 이상해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자폐증’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후 딸은 예배 때마다 소리를 질러 예배를 방해하기가 일쑤였고, 성도들도 수군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저런 일이 생기나?...’
결국 목사님은 이 딸을 외국으로 입장보내기로 했다고 합니다. 모든 수속을 다 마치고, 마지막 ‘친자포기각서’를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며 회개가 나오더라고 합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려고 딸을 해외로 보내려 하는가?’
그러면서 정말 하루 종일 평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 까맣게 잊고 있던 생각이 났습니다. 이 전에 시골 고향교회에서 자신이 때려서 쫓아내었던 자폐증 청년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렇게 뼈 속 깊이 통회 자복한 목사님은 교회를 사임하고 강원도에서 작은 자폐증센터를 운영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인생의 짐이 성령님을 통하면 인생의 날개가 됩니다.” 아멘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눈과 삶을 살게 되니,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보였으며,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능력)”을 소개하였습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도 평생을 구걸하던 그 자리가 구원의 자리가 되고, “하나님의 찬양하는” 참 예배자가 된 것입니다.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행 3:7~8)
성령을 통해서 모든 것이 바뀐 것입니다.
‘겔 37:1~10’을 봅시다.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이곳에 보면 모든 마른 뼈들이 말씀의 대언을 통해서 “생기”(성령)가 새롭게 부어져,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이렇게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교회가 이런 “큰 군대”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는 귀한 교회되길 소원합니다. 아멘.
그 중심에는 바로 “성령의 임재”를 통한 변화가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가 부어지는 시간이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예수를 믿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이 둘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어제의 공기가 아니고, 어제의 기도도 아니고, 어제의 삶도 아닙니다. 완전히 성령을 통해서 새로워진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지 않다면 우리의 믿음에 큰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