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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창은 현실적인 이유로 이 제안을 거절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받을 스톡옵션의 조건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훗날 자신은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경제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취지로 이야기한다.
몇 년 뒤 주식옵션을 행사하고 평생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 기반이 생기자 생각이 달라진다.
물론 이때 모리스 창의 손에는, 그의 이름으로 발행된 대만정부 보증 백지수표가 쥐어져 있었다.
리궈딩이 이런 모험을 벌인 이유가 있다. 그는 미국이 작은 섬 대만을 지키는 데엔 큰 관심이 없어도 미국의 국가산업인 첨단 반도체 공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할 것이란 점을 꿰뚫어 보았다. 아마도 TSMC가 오늘날처럼 성공하는 데는 리궈딩의 이런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꿰뚫어 보았다. 이 판단은 너무나 정확하다. (만일 남북 사이에 전쟁이 또 나면 미국은 한국을 구하기 위해 참전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지키기 위해 참전할 것이라는 예측과 같은 것이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없이는 미국의 반도체 패권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TSMC와 삼성전자, 하이닉스를 미국 본토로 끌어가려 하는 것이다)
사실 백지수표는 그의 조국이 보여주는 믿음일뿐, 그는 연봉이 크게 줄어드는데도 대만행 비행기를 탄다.
그가 훗날 이 선택을 회고하며 한 표현도 재미있다.
“돈을 좇지 않았더니 나중에 돈이 따라왔다.”
1985년, 54세의 모리스 창이 대만 ITRI 원장으로 부임한다. 부임한 지 몇 주 지나지도 않아 리궈딩이 그를 부른다.
“대만에 반도체 회사를 하나 만들고 싶다. 당신이 해봐라. 얼마가 필요한지 사업계획을 가져와라.”
말하자면 국영기업을 설계하여 직접 운영하라는 것이다. 리궈딩이 재정 책임자인만큼 돈은 대만정부가 대겠다는 뜻이다.
자본금 2억 2,000만달러는 대만정부와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절반씩 대기로 했다. 대만 정부가 반이나 댄 것이다(나중에 민영화하면서(국민주로 하면서) 정부 지분이 6%로 낮춰진다. 덕분에 국민주가 되었다)
모리스 창은 처음에는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 연락이 온다.
“4일 뒤에 발표해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회사 가운데 하나가 될 TSMC의 기본 사업모델이 사실상 이 며칠 동안 정리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TSMC는 타이완반도체제조회사(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영어 머리글자에서 온 이름이다. 어디까지나 대만정부를 가리키는 Taiwan이 머리글자로 들어갔다.
모리스 창은 당시 대만의 현실을 냉정하게 회고한다.
반도체 연구능력? 거의 없다.
칩 설계능력? 없다.
영업과 마케팅? 약하다. 특허? 거의 없다.
그가 보기에 대만이 가진 유일한 가능성은 딱 하나였다
“제조”
그래서 이런 회사를 생각한다.
“우리는 칩을 설계하지 않는다. 우리 제품도 만들지 않는다. 남들이 설계한 칩만 대신 만들어준다”
0735는 자신을 과장하지 않으며 불가능한 꿈을 꾸지 않는다. 다만 열심히, 매우 열심히 걷고 달리다 보면 그 길이 멀리, 높이 갈 뿐이다.
오늘날 너무나 많이 당연히 알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반도체업계에는 “Real men have fabs”, 진짜 반도체회사는 자기 공장을 가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모리스 창은 정반대로 생각했다.
“우리는 설계하지 않고 남의 칩만 만들어준다.”
대만 행정원 국가발전기금, ITRI, 필립스, 대만민간기업들이 공동으로 자본을 댔다. 따라서 대만정부 순수 지분은 지금도 단일 최대주주인 6%나 된다(삼성전자의 경우 이재용과 이재용측의 지분은 약 17.32%다, 2026년 현재. 따라서 모리스창의 기업이 아니라 대만 정부 기업이다)
업계 반응은 처참했다.
모리스 창 자신의 회고가 재미있다.
“사람들은 ‘대만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모리스 창은 대체 뭐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었다. 고객이 없었다.
당시는 팹리스 반도체산업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즉 모리스 창은 아직 고객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위해 회사를 만들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파운드리 모델을 훗날 농담처럼 “least evil choice”, 즉 가장 덜 나쁜 선택이었다고 표현했다. 대만이 다른 것은 잘할 수 없으니 제조라도 전문적으로 하자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1997년 1월에서야 시스템LSI 사업부를 두고 팹리스를 시작했다. 2017년이 되어서야 여기서 파운드리(위탁생산)을 떼내어 제조와 설계를 완전히 분리했다. 모리스 창이 얼마나 이른 시기에 이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투자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모리스 창의 회고에 따르면 제대로 돈을 넣겠다고 한 대형 해외투자자는 사실상 필립스 정도였다.
심지어 인텔에도 투자를 제안했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투자를 거절했던 인텔이 얼마 지나지 않아 TSMC의 중요한 고객이 된다.
여기서 대만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
“시장도 없고 투자자도 없으니 한번 더 연구해보시오”라고 하지 않았다. 정부가 직접 대규모 지분을 부담하고, 필립스와 대만 민간기업들을 끌어들여 실제 회사를 만들어줬다. 55~56세 엔지니어에게 돈과 조직과 공장을 줬다.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TSMC다. 미국 기업에서는 풀이나 뜯어먹으며 노후를 보내라고 ‘목장에 내보내진(경주마 같은)’ 50대 임원,. 그것도 CEO에서 막 낙마한 그를 대만정부에서는 국가 산업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대만 정부가 모리스 창이 천재라는 것을 알아보고 상을 준 것이 아니다.
“당신 생각대로 한번 해보시오.”
그리고 실제 권한을 줬다. 심지어 대만 첨단 IT·반도체 산업의 중심지인 신주과학단지(Hsinchu Science Park)를 국가가 지어주기로 했다.
인재에 대한 최고의 대우는 찬사가 아니라 결국 권한이다.
그는 TSMC에 지분이 없었다. 은퇴 후에 대만정부는 그 보상으로 주식과 배당금을 넉넉히 주어졌다.
지금 TSMC의 CEO는 웨이저자(1953년생)이며, 경영권은 특정 오너 일가가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라, 전문 경영진과 이사회가 맡아 운영하는 독립된 민간 기업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대만 정부 기관인 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나, 일상적인 경영과 의사결정은 전문 경영진인 웨이저자 체제 하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대만 정부는 16억 5370만 주 즉 6%를 가진 최대 주주로서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배당금을 받고 있으며, 당연히 TSMC는 대만 정부에 더 어마어마한 법인세를 낸다.
이재명이 AI 분야 100조 투자를 말하면서, 언급한 '국민기업' 구상은 대만 정부가 TSMC에 초기 자본을 대고 대주주로 참여해 거둔 막대한 배당금과 법인세를 국가 재정과 국민을 위해 활용한 구조와 맥락이 닿아 있다. 하지만 이재명(0450 또는 0360)은 리궈딩(0905, 李國鼎)처럼 엄청난 정부자금을 쏟아넣고 오로지 응원하고 지원하기만 할 깜냥은 안되는 사람이다. 이 모델이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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