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번개산행기
2009-02-15 09:38:42
[231.2 번개] 남한산성 북능 ‘ㄷ’종주
2009. 2. 15. / 밉상 강요이
산행일 : 2009. 2. 14. (토), 맑지만 짙은 안개.
산행길 : 객산-벌봉-동장대터-북문-연주봉옹성-골프장갈림길-금암산-춘궁동동물이동통로
참석자 : 광용, 상국, 덕영, 승한. (총 4명)
정기산행으로 한라산으로 떠나고 나니 남아있는 산우들의 아우성이 메아리 친다. 막상 어디로 갈까 하다 생각해낸 곳이 하남시 고골 주변 능선을 종주해 보자는 생각을 한다. 남한산성에 올라 연주봉옹성에서 바라만 보던 그 고골 주변 능선을 쭉~~ 돌아보기로 한다. 아직 측정해본 적이 없었는지 어느 산행기에도 거리가 표시돼 있는 것은 보지 못했는데 아마도 15Km는 되리라 여긴다.
번개산행공지를 블로그에 올렸지만 정작 전화로 약속한 당사자는 블로그를 보지도 못하고 산행에 나선다. 약속이 8시 수서역이건만, 7시 반에 우리 집 앞에 나타난 만사와 조선족, 죽전에서 올라올 지기와 연락하며 엉뚱하게도 모란역에서 픽업한다. 최근 마음이 많이 어지러운 조선족을 오랜만에 만나니 더욱 반갑기만 하다. 올해는 좀더 자주 산에 나올 수 있다며 산에서 보기를 자청한다.
들머리를 어디로 할까 생각해보았지만 뭐 뚜렷한 아이디어가 없다. 지도 한 장 보고 찾아낸 길, 만사가 운전하면서 애 먹었다. 찾아간 곳은 하남시 춘궁동을 지나서 감북동인가? 족구장이 최근 설치된 것 같고 그 앞 비교적 널따란 공터에 차를 세운다. 들머리를 찾아 비빔밥식당 뒤로 빙~ 돌아 올라보지만 산행로가 뚜렷하질 않다. 애~라 모르겠다. 그냥 치고 오르자. 이때 머뭇거리다가는 뒤에서 들리는 아우성을 감당할 수가 없다.
약 20분 동안 급한 경사의 지능선을 잔가지 치면서 오르면 정상적인 등로와 만난다. 제일 후미로 올라온 지기선사, 배낭 옆 주머니에 매어둔 컵라면이 잔가지에 걸려 굴러 내려가는 바람에 그것 주우러 다녀온다며 늦었단다. 투덜거리는 불만도 웃음으로 바꿔졌기에 이제 안심이다. 숨 고르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사과 한 입 베어 물고, 지팡이 조정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객산일 텐데, 어제 내린 비로 인한 아침 안개 때문에 앞이 분명치 않다.
객산 직전의 안부에 내리니, 오른편에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 오르는 산객이 눈에 띈다. 대장 잘 만났으면 잔가지에 찔리고 컵라면 굴러가는 고생은 피할 수 있었을 터, 아쉽지만 어쩌랴! 내 복이 여기까지인 걸…… 또다시 뒤에서 들리는 불만들,,,, 모두 무시하고 그냥 객산을 향한 오름길을 계속한다.
* 객산에서
* 봉암에서
여기가 벌봉인가? 지도에는 벌봉과 봉암(蜂岩)을 구분해 놓고 있다. 그 뜻은 같은데 왜 그런 구분이 필요한 걸까? 봉암인 듯한 바위봉우리에 올라보지만 침엽수에 가린 조망은 아니올씨다다. 이정표에 쓰인 거리 표지가 정확한 건지 의심을 할 때쯤 전에 와본 적 있는 벌봉인가 보다. 오래 전 산행에서 눈 덮인 벌봉에서 도시락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남한산성의 외성으로 봉암성과 한봉성까지 소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 고쳐둔 걸 보면 그 외성도 중요하기는 한가 보다.
* 벌봉에서
이제 본성 안으로 들어가자. 암문을 두 개 지나면 막걸리 아저씨가 우릴 반긴다. 스스로 한 병 준비한 게 있으니 그냥 지나치며 왼편(동)으로 동장대가 있었던 곳으로 이동하여 점심상을 차린다. 도시락이며 먹거리를 밥상에 펼쳐놓고 젓가락을 챙기는데, 산지기 왈
“그 참 희한하네, 내가 젓가락을 이리 툭 던졌는데 어느새 종이껍질이 벗겨져있네.”
잠시 어리둥절한 순간이 지나고, 만사가
“그거 내껀데?”
이제냐 종이껍질이 그대로인 자기 것을 찾아낸 산지기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ㅎㅎㅎㅎ 내가 요새 도술을 좀 공부했는데 잘 안되네…… ㅋㅋㅋ”
좀 있으면 모든 까마귀들이 도술로 백로가 돼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ㅋㅋㅋㅋ
*점심을 마치고 성곽을 따라 북문을 지나고 연주봉옹성에서 성밖으로 나간다. 연주봉옹성에서 바라보는 고골과 지나온 능선길을 조망하지만 시계가 뚜렷하질 않아 하루 종일 불만이다. 이제는 내리막길인데 중간에 솟아있는 금암산이 어디쯤인지? 마천동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골프장 가는 갈림길도 지난다. 올라오는 산객에게 금암산을 물으니 아무도 제대로 대답하는 이가 없다.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요즘 고관절이 마뜩찮다는 산지기 내림길이 수월치 않은가 보다. 제일 후미로 작은 바위 하나 오르는데도 불만이다. 그래도 지나온 흔적을 돌아보고는 흐뭇해 한다. 고골 건너편 희미한 하늘금을 따라 저 멀리서 빙~돌아 여기까지 온 것이니, 엄청 걷기는 걸었다. 그래도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고 편안한 흙길이니 그나마 다행이었을 거다.
잠시 쉬며 터져 나온 얘기는, 어느 친구가 요즘 집에서 한 이불 덮을 일이 별로 없는데, 어쩌다 마음이 동해 마나님이 좋아하는 집안일에 80만원을 보태주기로 하고 한 이불을 덮은 적이 있단다. 그 얘기 들은 다른 누구는 집에 가서 마나님께 죄다 읊어준 모양이다. 어느 날 그도 한 이불을 덮고 싶어 분위기 잡아가며 이불 속으로 들었건만, 마나님께서
“누구는 80만원 받았다는데……”
하며 발길질(?)이었단다. 침대에서 떨어진 그는 ‘밖에서 들은 얘기 집에서 절대로 옮기지 말자’며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나?
이제 금암산을 내려가는데 좌우에서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다. 순환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광암터널 위를 지나고 있나 보다. 그러면 거의 다 왔을 텐데 하며 길을 간다. 마을 사람들이 산책을 다니지만 ‘이성산성’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길 잃을 염려는 없는 길이니 앞으로만 나아간다. 이제 자동차 소리가 뒤에서 들리니 터널 위를 지나친 모양이다. 동물이동통로가 보이고 건너편 이성산이 우뚝하건만 오늘은 여기까지 운행하기로 한다.
홀로 춘천의 오봉산을 다녀온 항선달과 연락하여 수서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하남으로 넘어가는 춘궁동고개(동물이동통로)에서 길을 내린다. 길을 건너 택시 타고 아침에 주차해둔 곳에서 7시간에 걸친 산행을 마친다. 수서역 막회집에서 항선달을 만나고 항선달이 찍어온 오봉산 사진도 감상하고, 당구 한 판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긴 산행 한번 했다. 비록 완만하긴 하지만 그래도 7시간을 걸으니 다리가 뻐근하다. 내 산행계획에 올라있는 산행 하나 완수했다. 비록 이성산을 남겨두었고, 시계불량으로 종주의 느낌을 반감하긴 했지만 마음 한 켠에 뿌듯함을 남겨둔다. 전화로 얘기한 약속, 블로그 확인도 않고 30분 일찍 나타난 만사와 조선족, 다리가 어줍잖은 산지기, 모두 고맙다. 보잘것없는 야트막한 종주길이 기억에 남는 산행이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