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5 08:11:54
11월 25일(금)
새벽2시에 SEBU에 도착하여, 잠깐 눈붙히고 70명 타는 프로펠러 타고 민다나오섬 수리가오 시티로 날아간다.
존만한 비행기가 왱왱거리며 비바람을 뚫고 2번만에 착륙하는데, 옛날에는 필리핀 조종사가 기술이 좋다더만, 좀 불안하게 착지한다.
대기중인 4x4 SUV 3대에 필리피노 일행들과 나누어 타고 3시간을 남쪽으로 달려 목적지로 가는 동안 이미 일본 스미토모, 중국회사들이 십수년 전부터 퍼가고 있는 Nickel 광산과 부두를 열씨미 눈팅한다.
사실 이번 여행은 이넘들이 선점한 “막켄나의 니켈”을 한국에게도 나눠 준다고 하여 회사 임원들과 SURVEY 하러 가는 것이라 기대반, 재미반 출발 했는데 가는 길이 앞으로의 여정이 쉽지 않을것 같은 불길한 예감(항상 불길한 예감은 잘 맞는다) 이 확 든다.
여기는 사방에 노천으로 니켈광석이 깔려 있어요. 퍼 담기만 하면 됩니다.
내일 아침에 일찍 SITE를 가기로 하고 X텔에 여장을 푸는데….
방문을 여니 닝기리 도마뱀이 화다닥 도망을 치고, 19세기 스페인 넘들이 점령하고 있을 때 쓰던 나무 침대가 깔끔(?)하게 흰 광목으로 싸여 있다. 덮는 이불은 당연 없다.
샤워는 바께스 물통에 바가지로, 변기는 힘주면 넘어질거 같다.(사람이 희안한게 이틀 지내니 이마저도 익숙해 지더만)
밤새 양철지붕을 신나게 두드리던 스콜은 아침이면 말짱한게, 맑은 공기와 창문 아래서 부서지는 파도소리는 끝내준다.
11월 26일(토)
민다나오식 아침을 우울하게 먹고, 약속된 가이드와 친밀한 척 인사를 나누며 강제로 나누어 주는 생수 1.5리터 한병을 들고 다시 4X4로 이동.
우리와 함께 가는 가이드는 여기 광산마을(‘바랑가이’라고 함) 땅주인들 대표와, 족장의 아들 2명(21살,18살)인데 이 아그들이 정부가 싫어지면 바로 ‘NPA(필리핀반군)’에 합류한단다.
한시간여를 달려 몇몇 평지 마을을 지나가니 더 이상 차는 못간다고 내리란다.
우리를 본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서 통행료를 내라고 하며, 이제부터는 정글이 시작되니 셀파 같은 가이드(거의 산적 수준)를 2명 붙여준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 하루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짐작이 안된다.
오늘 청계산 만한 높이의 정글을 올라가야 한단다.
그리고 필리핀 파트너회사 직원이 준비해온 ‘고무장화’ 하나씩 신으라고 하는데 국민학교때 신어본 바로 그 고무장화다.
그냥 운동화로 가면 안되냐고 하니 알아서 하란다. 다시한번 주변을 보고는 아무말 없이 열씨미 장화에다가 발을 맞춘다.
(한국이면 아마 고기능 등산화, 두터운 양말, 스틱, 모자, 고어텍스 자켓, 특수장갑…등 몇백만원 어치 사야 하는 순간,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리곤, 출발하자 마자 길도 없고 도랑과 논을 질러가야 하는데 이미 도랑을 건너다 빠지고 만다.
장화가 물로 가득찬다, 닝기리 우야노……
빨래하던 원주민 아낙이 옷을 입었는지 안입었는지 헷갈린다.
한 500M 질퍽한 논둑을 가로지르니 거대한 정글이 떡 버티고 길을 막는다. 입구도 없다
정글속은 우선 해가 안들어오니 덥지는 않은데, 습도가 쥑인다, 99% 정도…
이런곳을 간다고 조금이라도 알려 주었더라면,…한 3~4KM 산길을 간다더만 왕복 17km, 끝이 없다. 놀러가는기 아니고 ‘막켄나의 니켈’을 쫓는 무리들이라 그냥 따라간다.
두세시간 걸린다는 건 원주민 걸음걸이고, 우리는 택도 없다.
하물며 같은 일행 중 필리핀 도시 넘들은 인품이 모두 배로 집중되어 배둘레햄이 장난이 아니다.
현재 온도는 섭씨 31도,
파란 하늘을 가린 짙은 정글.
질퍽 거리는 땅바닥.
장화 안쪽도 질퍽거리다 못해 발과 엉켜 야릇한 소리를 낸다.
(길죽한 나무는 우리의 대나무 인데, 희안하게 한뿌리 같이 보인다)
하늘은 안보여도 열대 정글의 신비한 나무들과 전혀 못보던 풍광이 그나마 인생의 경험이라 생각하니 좀 위안인데, 혹 불쑥 나무 뒤에서 총든 넘이 나올까 그게 걱정이다.
하지만 여기 원주민이 출발 전에 전화로 NPA(무장반군) 한테 연락하는 것을 들은지라 억지로 안심한다.
3시간을 걷고 지쳐가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무도 점심 얘기를 안한다.
출발하기 전에 누가 챙기다고 듣기는 했는데, 살펴보니 추장 아들이 비니루 봉다리를 하나 들고 가는데 거기에 열댓명이 먹을 식빵 두줄이 전부란다. 기가 막힌다, ㅠㅠ.
야생코코넛 보관하는, 원주민이 만든 조그만 그늘막 주변에서 다들 모여 휴식하는 동안 가이드가 원숭이보다 빨리 나무에 오르더니 코코넛을 십여 개 떨어뜨리고 쪼로록 내려온다.
그리고 정글칼로 몇번 찍으니 구멍이 나고, 하얀 속살이 보이는데 이게 바로 코코낫 생주스!
미지근 하지만 끝내준다. 그리고 반으로 쪼갠후 껍질로 만든 쪼가리로 긁으니 바로 점심이 해결된다.
작년에 30골프 대표선수 전지 훈련때 필리핀 골프장 숲속에서 한개 5불에 사서 먹었던 그 코코넛이 여기는 공짜다.(골프장 보따리 장사 이넘들 완존 …ㅎㅎ)
5시간을 올라가서 ‘막켄나의 니켈’ site 확인하고 우회해서 다른길로 오는데, 이제 더 이상 글로 표현이 어렵다. 빠른 길이라는데 또 5시간이 걸린다.
지들도 안다녀 보았기에 나무가 자빠지고 이전 길이 유실된 거 알수가 없단다.
해는 져가고, 어둠이 깔리니 여지껏 조용하던 정글속 짐승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소리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옛날에 들어본 적이 있는 그 사운드하고 닮았다.
누군가 영화 ‘아바타’와 꼭 배경이 같다고도 한다.
낙오자 3명을 원주민 가이드에게 맡기고 먼저 마을에 도착하여 높은 SUV 시트에 다리를 손으로 들어 싣는다.
그동안 허리가 아파서 서울에서는 1년 넘게 친구들 등산 모임에도 안갔는데 여기오니 허리 아픈건 생각도 안나더만.
다만 벌레 물리고 집채만한 야생란의 톱 같은 이파리에 긁힌 팔만 눈에 들어온다.
빨리 도마뱀 기다리는 숙소로 가고 싶은 생각 뿐. 그리고 바가지 샤워, “산 미구엘” 맥주 한잔 ㅋ
11월 27일(일)
오늘은 이곳 필리핀회사 운영 니켈 광산을 4X4 로 둘러 본다.
근데 새로 나타난 이곳 마을 족장은 45구경 권총을 허리춤에 차고 왔다.
(배를 들어낸 넘, 족장인데 허리춤에 보이는 45구경)
쌔까만 얼굴에 깡마른 넘이 1톤짜리 트럭에 졸개 2명을 뒤에 싣고 안내를 하는데, 아마 지난 9월에 납치된 한국인 3명은 우리처럼 NPA와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한국사람 특유의 무대뽀로 다니다가 잡힌거란다.
이사람들이 자기들 거주지역의 광산을 조건부로 우리에게 권리를 주기 때문에 거래차원의 방문이라 무사하지만, 그냥 돌아다니다간 필리피노들도 잡혀 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M16, 샷건 등 총을 매고 다니는 넘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 일행 중 수년전 인근 다바오지역 시장이었던 친구는 일부러 무장 경호원과 자기 권총을 두고 왔단다.(총격전이 생길까봐)
오늘 저녁도 어김없이 그 도마뱀이 반겨주고, 밤새 두번이나 양철지붕 난타가 이어진다.
11월 28/29일
오늘은 수리가오(민다나오 2번째 큰 광역시, 그래봐야 인구 3만명의 우리 읍만한 도시)로 돌아와서 장비업체와 미팅,
장비업체 사장이 우리를 초대하여 프라이빗 비치 야외 오두막에서 회의를 하고 맛있는 현지 음식,(커다란 다금바리 구이, 갑오징어 구이, 코코넛 떡, 캬~ 고생 끝에 낙도 있다)을 차려준다.
바다가 너무 깨끗해서 입고간 빤스채로 물장구도 쳐본다.(알탕이라고나 할까)
아마 필리핀 이민온 은퇴한 장년들이 이 재미로 사는거 같다.
11월 30일(수)
일주일을 지내니 해외 출장의 한계를 느낀다.
항상 그렇지만 딱 4박5일이 좋다.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라 잠이 일찍 깨어 창너머 도마뱀 녀석 끼르륵(도마뱀이 소리낸다는거 첨 알았다) 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누가(?) 침대를 흔드는거 같다. 잠시 침묵……, 또 흔든다. 2번더…. 애고, 지진인갑다. 지진이라고 느끼는데 한참 걸린다. 아마 아닐수도…
한 30분 그상태로 있는데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더 세게 흔든다. 벌떡 일어나 바지를 입고 일층으로 내려가니(그래 봤자 4층짜리 건물) 몇몇 일행이 벌써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길래 물어보니 한명은 못느꼈다 하고 한명은 알았는데 자주 있는 일이라 덤덤해 한다. 환장하것네….
허둥지둥 공항 도착하여 마지막으로 프로펠러 비행기에 오르니 시간에 상관없이 바로 이륙한다.
정시출발 이런거 없다. 머리 수 맞으면 바로 뜨니 이런때는 좋다.
창밖에 보이는 옥색 바다,하얀 백사장, 세부섬 경관이 바로 밑에 펼쳐지고, 바로 덜커덩 내려 앉는다.
돌아오는 서울행 비행기에 가득찬 우리 젊은 신혼들, 니들이 부럽다.
다음주 갱남이 딸도 시집 갈끼고 혹 세부로 간다면 좋은 정보를 줄수 있는데.
다음달 또 민다나오 출장가는데, 혹 도전해 보고 싶은 우리 30 산우회, 아니 전체 동기들, 조용히 손들면 기꺼이 모셔다 드립니다. 인생에 5일, 별거 아닙니다.
너무 많이 알면 인생이 재미가 없자나요.
연말 건강들 챙기시고, 내년에 또 다른 5학년으로 만납시다.
길고 지루한 정글 탐험기(산행기) 읽어 주느라 수고 하셨어요.
(내년에 2탄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추신 : 다녀온지 3일 후 오늘, 그곳 원주민과 광산개발 MOU 사인을 하였답니다.
민다나오_산행기.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