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차
희언, 말로 장난을 치자
3. 최승호의 말놀이 동시
최승호(1954~ )는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인간의 부정적 상황을 괴기하게 보여준 시인입니다. 그는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안에 공장 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자궁 속에 고무인형 키워온 듯/ 무뇌아를 낳고 산모는 머릿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정수리털들을 하루 종일 뽑아댄다”(「공장지대」 전문)라는 시를 통해 문명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비극을 간명하고도 괴기하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최승호는 “말놀이를 통해서 우리말의 낱말을 익히고 소리와 뜻의 이모저모를 엿보고 맛보게 하는 재미난 동시들”을 담은 『말놀이 동시집』(2005)을 펴냈습니다. 말놀이와 낱말 익히기를 언어희롱을 통하여 창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창작방법은 전래 동요에서 그 연원을 찾아야 합니다.
가갸 가다가
거겨 거렁에 * 거렁: 도랑
고교 고기잡아
구규 국 끓여서
나냐 나하고
너녀 너하고
노뇨 노나먹자
위 동요는 한글을 배울 때 사용하는 ‘가갸 거겨’라는 전래 말놀이 동요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 민요인 「나무타령」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므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베어 피나무
네편 내편 양편나무
입맞추어 쪽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이러한 전통적 동요 방법을 계승한 최승호는 말놀이 동시를 다음과 같이 창작한 것입니다.
티티새야, 보이니?
티끌만한 저 꽃이
티티새야, 보이니?
티끌같은 저 개미들이?
- 최승호, 「티티새」 전문
티티새는 지빠귀라고 하는 작은 새입니다. 티티새의 작은 심상과 티끌, 그리고 개미의 작은 심상을 연결시켜 ‘티’를 두운으로 하여 말의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저어저어 저어새야
고개를 저어라
이리저리 저어라
저녁까지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저어새야
배고프면 잠이 안온단다
- 최승호, 「저어새」 전문
저어새의 이름과 저어새가 고개를 젓는 행위를 가지고 재미있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저어새’와 ‘저어라’는 뜻이 틀리나 유사음을 가지고 있어 말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소나기 지나가고
소가 젖었네
소나무도 젖었네
소리 없이 앞산에 걸린
무지개
쌍무지개
소야, 눈썹 젖은 소야
무지개 봐라
아름답다
-최승호, 「소나기 전문
위시는 ‘소’와 ‘소나기’, ‘소나무’의 첫 글자인 ‘소’를 가지고 조합을 하고 있습니다. 낱말 머리의 동일음을 가지고 반복을 통해 음악성과 청각성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낱말 꼬리의 동일음을 가지고 음악성을 실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라미 라미
맨드라미
라미 라미
쓰르라미
맨드라미 지고
귀뚜라미 우네
가을이라고
가을이 왔다고 우네
라미 라미
동그라미
동그란
보름달
-최승호, 「귀뚜라미 전문
맨드라미, 쓰르라미, 귀뚜라미, 동그라미 등 어말에 ‘라미’가 들어가는 낱말을 가지고 “라미”를 반복하여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시는 다음과 같은 음성놀이 동요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앉은 고리는 먹고리
뛰는 고리는 개고리
나는 고리는 꾀꼬리
달린 고리는 문고리
-「성희요」 전문¹²⁶⁾
낱말꼬리에 ‘고리’를 달고 있는 말을 등장시켜 반복하고 있습니다. 새의 이름과 새 소리가 유사한 소쩍새를 제재로 한 시를 보겠습니다.
슬프게
소쩍새 우네
배고프다고솥
이 적다고
솥적다. 솥적다, 소쩍, 소쩍
최승호, 「슬프게」 전문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4. 4. 5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