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4.
배추 모종 심기
깊숙한 고랑과 반듯한 이랑이 만들어졌다. 분해되는 검은색 비닐로 멀칭하고 보니 더욱 예쁘다. 길이 33m, 폭 1m, 높이 35cm. 감자, 옥수수, 고구마 이랑보다 더 길고 넓다. 바람에 약하게 떨리는 검은 비닐 위를 가득하게 채울 배추와 무를 생각하니 흐뭇하다.
공무원들의 분주한 움직임 보인다. 김장배추 모종 28포기를 받았다. 싱싱하다. 무 씨앗 5g과 갓 씨앗 반 봉지를 나누어 준다. 푸른빛으로 농약 처리된 무 씨앗은 좁쌀보다 조금 더 크고 갓은 좁쌀 크기의 반쯤 되어 보인다.
배추부터 시작이다. 카시오페아 별자리처럼 배추 모종을 심는다. 이랑 10m에 적절한 간격으로 나누어 멀칭한 비닐에 구멍을 뚫었다. 이랑 흙을 한 줌 들어낸 자리에 모종을 놓고 흙을 덮는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쌈채소와 땅콩, 호박, 참외, 서리태 콩 등을 모종으로 심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무는 씨앗 3~5개씩 나누어 심는다. 두 줄로 나란하게 심었더니 서른 개나 된다.
날이 어두워진다. 무씨를 뿌릴 때만 해도 형태가 보여서 개수를 세어가며 작업을 했으나 갓 씨는 만만하지 않다. 보이기는 보이나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다. 소리와 빛 그리고 촉감. 망설임 없이 초보 농민의 감으로 뿌리고 흙 덮는 작업을 반복한다. 손을 탁탁 부딪쳐 털고는 허리를 펴며 일어선다. 무씨앗의 두 배가 넘는 아니, 그 많은 갓 씨앗을 열네 곳에 모두 쏟아부었다. 한 곳에 20개 이상을 뿌린 결과이다. 어두워 한 치 앞도 구분이 어렵다.
사방은 어둠이 짙어 고요하다. 장화 뒤축이 끌리는 소리는 무책임하다. 자꾸만 갓 씨앗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건 아니죠. 너무 비좁잖아요.” 저네들이야 뭐라든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빠이빠이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트면 내가 한 짓들이 또렷이 보이리라.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쉬어야겠다.
내심 불안하다. 내가 한 일은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내의 낯빛은 환하게 밝다. 그럴 수밖에 없질 않은가. 그 많은 일들을 단숨에 해치웠으니 얼마나 장해 보이겠는가. 가장이 가장다워 보이는 순간이다. 이 아름다운 행복을 굳이 깰 필요가 있을까. 며칠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었다. 아내가 알기 전에 말끔히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지식이다. 유튜브에도 없을 지식이다. 이 어둠이 밝기 전에 쏟은 물을 온전히 쓸어 담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
꿈이다. 꿈에서 큰아버지를 만나야겠다. 묘안을 주실 게 분명하다. 무더기로 버리듯이 뿌린 갓 씨앗에서 멀쩡한 새순을 얻을 방법이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는다.
첫댓글 올해 김장에 갓이 많이 들어가겠군
그냥 생제비 갓김치을 할수도 있겠군 그것도 성공해야 말이지 ㅋ
미지수.
모든 게 미지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