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인뉴스와 통영길문화연대 공동주관으로 실시할 통영 쉬엄쉬엄 걷기 첫번째 날입니다. 9월 들어 화창한 날이 계속 되고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어 마음이 날아갈듯 가볍기만 합니다. 마침 오늘은 통영장날. 추석을 앞두고 대목장은 아니지만 풍성한 한가위를 미리 준비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통영의 싱싱한 생선도 가득하지만, 원양에서 잡아온 생선도 잘 팔리는 곳. 민어조기라는 생선인데 민어보다 저렴하면서 민어 맛이 나는 조기라는^^ 담백한 생선이라 주로 말려서 쪄 먹습니다.
어제 마트에서 다섯 마리 만 원 주고 샀는데, 시장에선 저 한 대야에 만 원이랍니다. 대충 세어 봐도 열 마리 정도 됩니다. 이런... 이따 들어가는 길에 한 대야 더 사서 게장 담아 먹어야겠습니다. 중국산 꽃게가 아니라 안흥산 활꽃게랍니다. 이러나 저러나 어제 산 게는 저 것 보다 훨씬 작았는데 말입니다.
가을 과일인 사과가 쌓여 있네요. 비가 계속되었던 여름 날씨때문에 요즘 과일 값 비싼데, 요 며칠 사과는 그나마 살 만합니다. 제법 맛도 들었더군요. 그 옆에 마늘도 예쁘네요.
배 갈라 말린 생선. 등푸른 생선은 주로 구워 먹거나 조려서 먹는데, 이렇게 흰살 생선은 꾸덕꾸덕 말려서 쪄 먹거나 물 자작하게 붓고 땡초 몇 개 썰어 넣어 자금자금 끓여 먹으면 참 맛나지요. 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하는 저는 길 가면서 이렇게 널려 있는 생선을 보면 군침이 절로 돕니다^^;;
데파트 옆 골목이 전문 상인들 차지라면 시장 앞 큰길가 자리는 통영 할매들 차지입니다. 농사지은 것들, 배 타고 나가 잡아 온 것들을 갖고 나와 팔지요. 전문 상인들은 더러 수입도 갖다 파는데, 이 할머니들은 전부 갓 잡은, 갓 딴 것들이라 훨씬 싱싱하고 맛있습니다.
문화마당 거북선 앞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무심코 지나던 통영의 길을 함께 걸으며 그 길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의 안내를 받는 것은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일이 될 것입니다. 문화마당에서는 이정남 거북선 함장님의 안내를 받아 통영에 대한 전반적 설명과 거북선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될 것입니다.
거북선 앞 관광안내소를 지키는 통영문화관광 해설사 여러분,.외지 관광객들을 처음 맞게 되는 분들의 환한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관광안내도 앞에서 함장님의 설명을 귀기울여 듣습니다. 통영엔 섬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섬을 중심으로 해서 세 개면으로 나눠진답니다.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한산면, 욕지도를 중심으로 한 욕지면, 사량도를 중심으로 한 사량면. 사량도는 통영의 섬이지만 위치상 사천쪽과 가까워 주로 삼천포에서 가는 것이 빠르고 배도 많다고. 상도와 하도로 나눠져 있고, 최영장군 사당이 있다네요. 설운장군 설화도 언급하셨는데, 설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수우도에 살던 부부가 아이가 안 생겨 치성을 드려 아들 하나를 낳습니다. 그 아들은 다른 아이와 달리 겨드랑이에 아가미가 있고 온 몸에 비늘이 있었다지요. 부부는 주민들에게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아이를 키웁니다.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조선 초 왜구의 노략질이 잦아지자 성인이 된 그 아이는 도술을 부리고 바다를 자유자재로 다니며 왜구를 물리칩니다. 이에 감읍한 주민들이 설운장군이란 칭호를 붙이게 됩니다.
설운장군에게 호되게 당하기만 하는 왜구는 헛소문을 퍼트려 조선조정으로 하여금 설운장군을 괴물로 인식하게 만들고 조정에선 설운장군을 잡으라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을 백의종군하게 만든 조선조정의 한심함은 조선초부터 시작된 모양입니다. 이에 관군과 싸우게 된 설운장군은 오히려 판관의 부인을 납치하여 섬에 숨어 살게 되었고, 아이까지 낳아 기릅니다. 요 대목은 참 마음에 안 듭니다만..몇 년을 같이 살 부비며 살게 된 여인을 믿은 설운장군은 그만 그 판관 부인의 배신?으로 결국 관군에게 잡혀 죽고 왜구의 노략질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지요. 왜구의 노략질에 절치부심한 섬 주민들이 설운장군의 사당을 짓고 원혼을 달래며 왜구로부터 지켜주기를 빌게 되었답니다. 설화는 어디까지나 설화지만, 혹여 설운장군이 이순신장군으로 환생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전라좌수사로 임명받고 거북선을 만들어 시험운항한 다음날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노량해전으로 돌아가시면서 7년이나 끌었던 전쟁이 끝이 나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만고 제 생각입니다. 통영의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거북선으로 이동합니다.
거북선 철갑의 뾰족뾰족한 가시입니다. 거북선은 돌격대였습니다. 저 철갑이 있었기에 불화살도 막아내고 왜구가 배에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요. 한산대첩 때는 세 척의 거북선이 활약을 했는데, 50미터에 불과한 조총 사정거리보다 훨씬 긴 800미터의 사정거리를 지닌 총통이 있었기에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말씀도 해주십니다. 한산대첩이 음력 7월 8일(양력 8월 14일)에 있었고 그 다음해인 8월에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됩니다. 잠시 소강상태였던 전쟁중에도 통제사의 직에 계시다가 1597년 2월 엉터리 출격명령을 거부한 죄명으로 압송되어 가면서 2대 통제사는 원균이 차지하게 되지요. 5개월 후인 1597년 7월 칠천량전투에서 대패함으로써 원균은 왜적에게 살해당하고,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에게 제3대 통제사의 직이 내려집니다.
한산해전의 전술에 대해 설명하시는 함장님. 세계 4대 해전의 하나인 한산대첩은 이순신 장군을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키는 한 왜구들은 조선을 함부로 침략할 수 없었지요. 이미 뭍에 상륙해 있던 왜구들을 지원할 수 없었던 일본 수군으로써는 더 이상 전쟁을 이어나갈 수 없었기도 했고요.
예전 통제영 시절 통영의 지도입니다. 지도 가운데 기와지붕이 통제영 관아이고, 노란 지붕의 것들이 통영 백성들이 살던 초가집입니다. 왼쪽의 성 밖 충렬사의 모습도 보입니다. 저 통영성을 둘러둘러 한 번 걸어 봐야 할건데요. 지금은 없어진 동포루의 모습과 북문 서문 동문, 수책의 위치까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오른쪽 만은 매립되면서 지금의 정량동이 되었고, 항남동쪽과 북신만 일대도 매립으로 모양이 바뀌었습니다. 함장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동피랑으로 이동합니다.
통영 발발이 강원종군이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나왔습니다. 저렇게 안장이 높은 자전거가 허리 부담이 없답니다. 호랑이 자세처럼 앞을 숙이게 되니까 자연히 허리로 가는 충격을 줄일 수 있겠지요. 옆에 계신 분이 자전거를 타려고 한 대 샀는데, 안장이 불편해서 못 타겠더라고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조언을 구합니다.
50년째 톱을 만드시는 할아버지. 표정도 밝으시고 말씀도 재미있게 해주시고..
할아버지 앞에 놓인 틀은 할아버지 톱 인생과 함께 한 보물입니다. 공구를 놓은 자리마다 그 세월의 깊이만큼 닿아 있습니다. 작은 망치로 톱을 계속 두드리며 모양을 잡으십니다. 우리와 말씀하시면서도 손에서 공구를 놓지 않으시는 할아버지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중앙시장 앞 도로에는 상가에서 내 놓는 쓰레기봉투를 놓는 자리입니다. 청소차가 오지 않는 주말이면 쓰레기 봉투가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합니다. 시각적인 불쾌함은 물론 썩은 냄새가 진동하여 여름철엔 더욱 더 곤혹스럽지요. 오늘은 청소를 하는 모양입니다. 이 아저씨가 솔로 박박 문지르면 저 뒤에 있는 살수차가 물로 씻어 내리겠지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엔 그 사람들이 버리는 오물과 쓰레기도 많이 쌓이는 법이긴 합니다. 저마다 버리는 쓰레기의 양을 줄여야 하는데, 조금 편하자고 마구 버려지는 것들 때문에 우리 지구가 아프기도 합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작은 실천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