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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불교 - 기도도량 LA원명사 명은 스님 세번째 천일기도 중
LA한인타운 한복판 올림픽블루바드와 샌 마리오길의 호바트 초등학교 바로 옆 언덕진 터에 위치한 4세대 입주용아파트 2층 건물이< 원명사 대한 불교 조계종> 이라는 간판을 높이 달고 한적하게 서 있다. 원명사 주소는 3386 San Marino St. Los Angeles,CA 90006이다. 조용한 천일기도도량을 찾아 이곳을 방문하였다.
지난 주 이 일대에 많은 비가 내린 뒤라 공기도 깨끗하고 햇살은 더욱 밝았다. 사시(巳時) 기도시간. 닫힌듯 열려있는 철문을 밀고 경내에 들어서니 이곳이 절이다싶게 목탁소리가 들린다. 고른 음조로 울리는 목탁소리가 마치 목탁채로 청명한 허공을 때리는듯 맑디맑다. 사시 기도후1시경에 방문하기로 주지스님인 명은스님께 사전허락을 받았으나 조금 일찍왔으므로 조심스러워 조심조심 법당으로 가니 문이 열려 있고 주지스님은 화엄경 약찬게를 마치고 화엄성중 정근중. 지극정성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스님의 조분조분한 음성은 천일 기도 동참자 축원을 하는데 , "…동안거 기도 제자 청신남 청신녀 신남신녀 각각등 보체…" 하면서 무진생 누구 , 병인생 아무게 보체 , …그 다양한 60갑자를 각각의 해당 이름과 함께 불보살님전에 사뢰고 어떤 이름은 삼세번을 거명하며 쉬임없이 축원하는데 가만히 보니 축원카드를 읽어 내려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축원카드는 한장도 손에 안들고 줄줄 외우고 외워 필자가 따라 정(正)자를그려봤더니 한참을 따라 적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축원자가 60여명이다. 하루 삼정근을 천일 이천일씩 하면 저렇듯 저절로 다 숙달되어서 일까? 문득 '대비심다라니' 지송으로 삼매에 들어 방광 한 후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슬기, 불망념지(不妄念智) 힘을 얻고 축원문내용을 한번 들으면 그대로 명단 안보고 술술 축원하셨다는 수월 음관(水月音觀) 스님이 생각났다.
명부전으로 자리를 옮긴 명은스님은 대방광불화엄경 정행원품을 잔잔하게 독송하였다.꼼꼼하게 바느질을 하듯 기도의 내용을 차근차근 불보살님께 주달한 후 명은스님이 '대불정능엄신주'를 단숨에 초고속으로 달달(達達) 염송하였다. 능엄신주의 엄청난 공덕을 다 회향하고 광명진언도 정성을 들여 오래도록 하고는 다 회향하여 마치고 점심공양을 들었다.
작년에 세수로 환갑을 넘기신 스님은 어린나이인 9살에 서울 탑골승방으로 동진출가하였고 미국포교는 17년째이다. 육식은 물론이고 오신채를 철저히 삼가하는 명은스님은 모습이 안온할 뿐아니라 소위 말하는 상을 내기를 정말로 꺼려 사회봉사 활동으로 강청소 바다청소 무숙자 구호등의 일을 신도들과 하지만은 어디 내세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교사원연합회에 조차 회비등은 꼭 내지만 출석하지 않는다. 올곧은 수행자 모습은 한글을 반듯반듯 정성들여 쓴 아름다운 필체에서도 스승의 귀감이 엿보인다. 무거운 수레처럼 조용히 처신하며 묵묵히 도울 일은 가리지 않고 돕는 따뜻한 손길과 자비의 눈길을 평등하게 항상 불법의 정도를 고수하는 스님이 그간 기독교인 천주교인 구별없이 신행상담,인생상담을 많이 하였다. 언제나 인생문제로 어려울 때는 다른 것 말고 기도 열심히 하라고 조언한다. 필자가 주지 스님에게 "스님께서 이런이런 봉사를 하셨죠?" 이렇게 묻자, "뭐, 그깐게 일이라고 봉사라 말할 게 있어?" 한다. 그렇다. 기도치재(祈禱致齋)의 꽉찬 일과에 비하면 무슨 일이겠는가 라고 말할 만하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 바쁜중에도 시간을 내어 주지 스님과 원명사신도들이 참여하여 복전을 일구는 사회봉사 활동이야말로 참진 일이 아닐까
법당 한쪽에 '2차 천일기도회향' 기념글씨가 새겨진 방석들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개산이래 천일 관음 기도를 2 번 회향하였고 이번 3차 천일 지장기도는 지난 음력 8월 20일에 입재하여 오는 2010년 음력 5월 16일에 회향할 예정이며 백일씩 나누어 자비도량참법등 기도 레파토리를 바꿔가며 하고 누구라도 언제나 동참할 수 있게 문이 열려 있으며 기도동참비는 하루에 1불이다.
스님은 기도 입재가 이미 시작되었는데도 언제라도 기도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기도 날짜를 채우는 것보다 기도동참에 의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동참자수를 묻는 질문에는 "동참자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라고 답했다.
스님의 이번 천일기도 대발원은 "더 넓은 도량으로 이전하고저 불보살남께 넓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도량을 구해 주십시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하게 사는 것은 거짓없이 현실 그대로를 받아드리고 사는 것이다. 참 불법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그 힘은 기도에서 얻어진다." 하며 "교리 행하기는 힘드니 마음 다스리면서 공부하려면 기도가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10년 넘어 원명사를 다니는 모보살에게 알아보니 원명사에는 특히 환자가 많이 와서 기도하여 쾌차도 많이 하고 근자에는갑자기 중병이 들어 어쩔 줄 모르게 된 한 처녀가 입소문 듣고 찾아와서 기도덕 보고 결혼하는 경사가 있었다고 즐거워 하였다.
이번에는 주지스님에게 기도 영험을 물었다. 1990년도에 명은스님이 여기 와서 보니 한국과 달리 불자들이 스님네를 함부로 대해서, 속으로 안되겠다 이건 아닌데 큰일 났구나 싶어서 첫 100일 기도를 시작하면서 "기도 발원하기를 개종하는 분이 오게 해주세요" 했다. 그때 절 사정이 어려워 가게장사하느라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왔는데 문앞에 새 화분이 하나 놓여 있으나 사람은 못만나고 한 1년간을 그랬는데 그사람은 타종교인이라 사업하다 실패해서 그로 인해 교통사고나서 급기야 우울증이 와 운전도 못하는 그런 처지라 스님은 100일동안 천수경108참회를 권했다.300일 혼자 기도하더니 사람이 좋아졌다.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사람이 개종하면 기도는 잘하니 절법도를 배워 주면 그대로 하겠구나하는 확신이 섰다. 귀신이 붙은듯 시달리는 사람도 무조건 절을 시키면 사람들이 좋아졌다. 아픈사람도 좋아졌다. 연줄연줄해서 계속 왔으며 요즘은 온가족이 다 오는 절이 됐으면하고 발원중이라고 주지스님은 말했다.
또한 이절의 신도인 반야심보살님(본명;김승자,1943년생)은1980년도에 당시 12살난 외아들을 데리고 단신으로 도미하여 식당주방에서 일하며 모사찰에 다녔는데 1991년도에 교통사고를 당했다.좌측전면 머리를 다치고 얼굴이 찌그러졌고 오른손도 다쳤다. 혼절한 상태에서 병원에 실려가 병원에서 5일 만에 깨어났다 퇴원했는데 아파트세와 생활비를 벌려면 일을 안할 수가 없어서 일하던 식당에 출근해서 다친 손은 저리 쳐들고 고개는 이리 치켜들고 한손으로 비빔국수를 무쳐냈다고 한다. 그때 가닥 긴 국수를 비벼낸 공덕으로 명줄을 이었다고 사람들이 말했다고 하나 그 딱한 처지가 어떠했으랴 ! 더러워진 머리를 앞으로 숙일 수가 없어 머리를 감기 위해 미장원에 갔다가 한 노보살님을 만났다.
그래저래 그 노보살님 소개로 원명사를 처음 찾아갔다. "스님께 저는 돈도 없어요" 하니 스님이 돈은 상관없다. 기도하자해서 상처에서 진물이 질질 나는데 무조건 시키는대로 기도했다. 기도가피가 있었다.가피가 철철 넘쳐나 반야심보살님은 물론이고 오늘날 자식과 며느리와 손녀에게 까지 이르니 이제 41살인 아들은 학업을 원만히 성취한 후 좋은 직장 에서 신임받는 활기찬 사회인이고 다시 없는 효자이며 며느리도 효부다. 세상에 행복한 일 재미있는 일도 많겠지만 반야심보살님은 월급받으면 보시하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나는 옷도 안 사입고 신도 안사신고 배운게 없어 계속 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가끔 내다리를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어,”하고 바지를 걷어 올려 다리를 보여주는데 우틀두틀 다리핏줄이 부풀어져 튀어 나온 종아리가 마치 도깨비 방망이 형국이었다.
뼛골에 사무치는 은혜를 생각하여 아낌없이 보시하고자 오랜시간 서서 일을 하여 받은 월급, 그 행복하게 보시한 정재가 어디서 나왔는가. 가슴이 찡했다.스님이 개울에서 푸성귀를 씻다가 자칫 놓친 시주물 한 잎사귀를 건지기 위해 십리를 뛰어갔다는 옛이야기가 가슴을 때린다. 원명사에서 우연히 만난 반야심보살님의 신심도 감동적이고 명은스님도 존경스럽다. 작별인사를 여쭙고 문을 나와 다시한번 돌아보니 희고 높은 원명사 건물이 더욱 높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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