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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 베트남 나트랑, 달랏 여행기 ● 셋째날 2024년 5월 30일(목)
일 시 : 2024년 5월 28일(화) ~ 6월 1일(토)
장 소 : 베트남 나트랑, 달랏
사 진 : 서애경, 김성인, 자료사진
● 셋째날 2024년 5월 30일(목)
오늘은 8시 30분에 관광을 나섭니다.
그래도 조식시간이 6시부터이기에 5시경에 일어나 모든 준비를 하였습니다.
객실 베란다 바깥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넓은 들판은 모두 비닐하우스로 가득합니다.
레스토랑은 G층에 있었습니다.
레스토랑이 아주 넓습니다.
뷔페로 음식이 여러 종류로 구비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되자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왔는데 이곳도 다양한 국가의 관광객이 투숙하였나 봅니다.
특히 한국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5월에만 한국 관광객 23만명이 베트남으로 들어왔다고 하니 곳곳에 한글 안내판과 간단한 한국어로 말하는 베트남 종업원들을 만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호텔 로비를 중심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보았습니다.
시간이 되어 테이블에 1달러를 팁으로 놓아두고 로비로 내려갑니다.
한 두사람씩 모이기 시작합니다.
하루 더 숙박하기에 큰 짐은 없습니다.
버스에 탑승을 하고 잠시 출발 기도회를 가집니다.
찬송과 권경호 목사의 메시지, 그리고 순서를 맡은 분의 기도로 이어집니다.
다딴라 폭포(Thác Datanla)
오늘의 첫 관광코스는 베트남에서 유명한 다딴라 폭포입니다.
달랏 곳곳에는 많은 폭포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다딴라 폭포입니다.
다딴라 폭포는 죽림서원 인근에 위치한 폭포로 베트남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리는 연인들의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달랏 시내에서 10㎞ 떨어져 있는 프렌고개 구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딴라 폭포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30여분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루지를 타고 신나게 폭포로 가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레일바이크 루지로 폭포까지 시원한 바람과 짜릿한 속도를 느끼면서 손대지 않은 자연을 가로지르는 즐거움을 맛보며 갔습니다.
루지 운전은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조정하게 되는데, 곡선지역을 돌 때는 속도를 줄이며 가는 응용력도 요구됩니다.
레일을 따라 신나게 다딴라 폭포에 도착하면, 웅장한 폭포의 모습과 소리에 힐링이 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제일 먼저 폭포 전경이 보이는 장소에서 기념사진을 한번 촬영하고, 이어 옆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폭포 바로 앞으로 이동해 봅니다.
그리고 폭포 옆에 만들어놓은 원숭이 조형물도 보게 됩니다.
다딴라 폭포는 현지 소수민족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나뭇잎 아래의 물’을 의미하는 ‘다탐냐(Dah-Tam-N'ha)’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고대설화에 따르면 선녀들이 목욕을 하러 자주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올라올 때는 루지를 타면 위쪽에서 케이블을 당겨서 올라가기에 운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올라갑니다.
죽림서원
이제는 달랏에서 가장 큰 사찰인 죽림서원을 향합니다.
죽림서원은 1994년에 건축가인 응오 비엣 투의 설계로 지어진 것으로 4개의 사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불교 사찰을 본떠 지어졌다고도 합디다.
이곳을 돌아본 후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갑니다.
보통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죽림서원을 관람하는데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본 것입니다.
점심식사는 베트남 가정식입니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푸짐한 양과 친절한 직원의 환대에 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간 가이드의 설명에 의한 베트남 글자에 대해 소개합니다.
베트남은 원래 중국의 한자 국가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이두처럼 한자어를 빌려 베트남어로 표현하였는데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가 되면서 포르투갈과 프랑스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에서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위해 베트남 말의 문자화에 전념했고, 그 결과로 17세기에 라틴어로 된 베트남어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베트남어의 창제는 포르투갈 예수회(Jesuit) 선교부 소속으로 1624년에서 1645년까지 오랫동안 베트남의 남북에서 복음사역을 담당했던 프랑스인 알렉산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 신부에 의해서였다고 합니다.
과거 베트남 선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여러 신부들의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1651년 로마에서 베트남어・포르투갈어・라틴어의 대역사전과 라틴어・베트남어의 대역교리문답이 나오면서부터였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어는 베트남인들의 한문 숭배 사상에 밀려 오랫동안 경시되어 오다가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 완성 이후 프랑스 식민당국이 지배의 효율화를 위하여 그때까지 사용하던 한자를 자신들의 선조들이 만들었던 베트남어로 대체하였고, 근대적 교육제도를 도입하며 과거의 제도를 폐지하는 등의 형태로 베트남 교육을 개혁하면서 국민 속에 널리 뿌리를 내리게 되었답니다.
베트남의 국가명도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월나라의 남쪽이라는 뜻의 남월이라는데서 유래되어 지금의 베트남을 남월 또는 월남이라 칭했는데 우리가 ‘월남’이라고 칭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입니다.
국호의 베트남도 한자표기가 되는데 베트남의 베트남어 발음은 비엣 남(Việt Nam)입니다.
‘비엣’과 ‘남’은 한자로 ‘월(越)’과 ‘남(南)’으로 표기하는데 베트남어의 한자 표기는 월남어(越南語)가 됩니다.
여기서 ‘비엣 남’은 한자 ‘越南’의 베트남어 독음으로 이를 한월어(漢越語)라 합니다.
크레이지 하우스,
점심식사 후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 작품을 모방해서 만든 ‘크레이지 하우스’를 찾았습니다.
달랏에 오면 한 번쯤을 방문하는 장소가 스페인 가우디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달랏의 동화의 집 ‘크레이지 하우스’(Crazy House)라고 합니다.
곡선을 활용한 기괴한 모습으로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이 집은 베트남 건축가 당 비엣냐(Dang Viet Nga)의 작품으로, <중국일보>가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건물 10곳 중 하나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일명 동화의 집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이곳은 동물, 버섯, 거미줄, 동굴 등의 자연형태를 나타내는 조각된 디자인 요소가 담긴 건축물로 거대한 미로처럼 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나무둥치의 외관에 구불구불한 터널식 계단, 외길 공중 다리를 거닐다 보면 놀이공원에 온 듯합니다.
크레이지 하우스는 호텔로도 사용되는데, 호랑이, 캥거루, 개미 등의 테마로 꾸민 외관만큼 기괴한 10개의 객실은 투숙객이 없는 경우 일반 방문객에게 내부가 공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크레이지 하우스 메인 건물은 천국의 정원, 에덴의 정원, 아쿠아리움의 정원까지 3개의 테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또 메인 건물 건너편에 2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나무 그루터기인 나무 그루터기 호텔과 스파이더 웹 캐슬도 있다고 하네요.
이곳의 탐험을 시작하기 위해 정문 가까운 곳에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왼쪽에는 메인 건물이 있고 오른쪽에는 높은 탑모양의 건물로 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메인 건물로 들어서는 계단을 오르면 둥굴처럼 만들어진 통로와 통로 너머에 있는 각각의 테마를 가지고 있는 메인 블록의 건물 내부로 들어서게 됩니다.
또 계단을 오르면 건물의 지붕으로 오르게 되고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를 지나면서 만화에서 보았던 장면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달랏기차역
이후 아담하고 아름다운 기차역인 달랏기차역으로 향합니다.
1943년 건축된 아르데코 양식의 달랏 기차역은 프랑스의 건축가와 기술자의 공동 작품으로 계획부터 완공까지 총 6년의 세월이 걸린 달랏의 대표 랜드마크입니다.
당시 달랏부터 탑참(Thap Cham)까지 총 84km의 선로가 놓였고 약 17km까지는 높은 산악지대와 증기기관차에 걸맞게 톱니바퀴식 선로가 놓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폭격을 받아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1975년 복원 사업을 거쳐 1991년부터는 달랏과 짜이맛(Trai Mat)의 7km 구간에 선로를 깔고 관광용 증기기관차를 배치해 하루 5대씩 운행하고 있답니다.
달랏과 짜이맛을 오가는 기차는 07:25, 09:30, 11:55, 15:00에 달랏 기차역을 출발하는데 열차 시각은 예고 없이 변동되므로 현지 재확인 필수라고 하네요.
단, 탑승자가 20인 이하일 경우 운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금은 왕복 9만동이며, 짜이맛에서 1시간가량 정차 후 달랏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랍니다.
옛 증기기관차를 타는 즐거움에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주변 경치까지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달랏기차역사가 조금은 이채롭네요.
역 전면 지붕의 뽀족한 3개는 달랏에 있는 3개의 산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며, 오방색을 연상케 하는 색상은 달랏에 거주하는 여러 원주민 부족들의 색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에 들어가니 철로 양쪽에 열차가 놓여져 있고, 한쪽에는 정원이 잘 꾸며져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정원 중앙에는 수도꼭지가 있어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는데 물은 어디서 공급받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조형물이 있네요.
가만히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써니팜카페(일명 천국의 계단 카페 : Thung Lungden)
이어 써니팜카페 일명 천국의 계단 카페로 불리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전망이 탁트인 아름다운 카페인데 ‘천국의계단’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듯한 계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일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각자 주위를 둘러보면서 사진 찍기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두 군데의 쇼핑센타를 중간중간 시간에 둘러보았습니다.
먼저는 베트남 침향을 소개하며 판매하는 곳과 베트남 특산물인 커피와 노니, 그리고 말린 망고, 사탕수수과자 등을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많이들 구입하네요.
‘달랏 어메이징쇼’
오늘 일정의 원래 계획은 저녁식사 후 달랏 야시장을 돌아보는 것인데 시간의 여유가 많아 가이드가 예정에 없었던 ‘달랏 어메이징 쇼’ 관람을 추천하여 추가 경비를 지불하고 찾았습니다.
오후 5시부터 1시간 5분가량 공연된다고 합니다.
기대감으로 공연장에 들어갑니다.
어메이징 쇼는 감성적인 보컬과 화려한 색채의 의상이 베트남 역사와 문화 속에서 시대적으로 변화하는 내용으로 구성한 뮤지컬이었는데 한국사람을 위한 기획과 연출이라고 하였습니다.
내용은 베트남의 역사를 구성한 것으로 시대와 산업의 발전에 맞춘 의상의 변천과 배우들의 맑은 음색으로 부르는 노래와 춤으로 1시간 가량 진행된 환상적인 공연이었습니다.
소수민족의 민속춤은 관객들의 참여도 요청하여 대나무춤과 전통놀이 춤으로 함께 어울리는 시간도 두차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무대 공연의 내용이 바뀔 때마다 베트남의 역사와 배경 설명을 한글자막으로 보여주어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습니다.
마지막 무대는 태극기가 있는 아오자이를 입고 아리랑으로 마무리하는 공연이 관람객 모두를 감동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오늘 일정은 저녁식사와 달랏 야시장 탐방이 남았습니다.
저녁식사는 식객이라는 한국 식당에서의 차돌된장찌게입니다.
여기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네요.
그러고보니 이때까지 아침식사는 호텔에서의 뷔페, 점심식사는 베트남식으로 먹었고, 저녁식사는 모두 한식으로 먹었네요.
달랏 야시장
달랏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즐길 거리 중 하나인 야시장을 찾았습니다.
쑤언흐엉 호수 롯데리아 앞 큰길을 따라 북쪽의 달랏 시장까지 오후 5시 30분부터 11시까지 장이 섭니다
어둠이 내리면 달랏 시장 앞 광장으로 노점상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습니다.
라이스페이퍼 위에 계란과 야채, 치즈를 올려 구운 달랏식 피자인 반짱느엉(Bánh Tráng Nướng)이나 군고구마, 어묵, 꼬치, 해산물 구이 등 먹거리들을 판매합니다.
그 외 각종 기념품이나 옷, 액세서리류 등을 판매합니다.
야시장 들어가는 입구 주위에는 사람들과 차량, 그리고 오토바이 등이 매우 혼잡하게 뒤섞여 있는데 사고 없이 흐름을 따라 잘도 통행하는 것을 봅니다.
이젠 하루 일정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숙소로 돌아갑니다.
사고를 당한 일행의 식사는 도시락으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함께 관광을 나서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숙소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회의 시간을 가집니다.
오늘 관광도 무사히 지낼 수 있음과 부상을 당한 분의 마음을 주님이 위로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달랏호텔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내일 일정은 9시에 출발하여 달랏의 유명지역을 돌아보고 다시 나트랑으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모두 편안하고 기분좋은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셋째날이 저물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