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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창작수필문인회 원문보기 글쓴이: 엄지바우(이봉길)
좋은 수필을 쓰려면
- 좋은 수필과 좋지 않은 수필 -
1. 좋은 수필
(1) 좋은 수필이란?
* 주제가 선명하고 그 주제와 내용이 잘 맞는다.
* 누구나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
* 문장이 대체로 간결하면서 짧다.
* 수필로서의 멋과 위트가 넘치며 재미가 있다.
* 강렬한 인상을 풍기거나 잔잔한 충격이나 감동을 안겨준다.
* 솔직함과 진실성이 넘친다.
* 착상이나 표현이 기발하거나 뛰어나다.
* 자만이나 자기과시가 배제되어 있다.
① 읽기 쉬워야
문장을 읽어 가는 가운데 리듬이 있고, 깊은 뜻이 있고, 군더더기 없이 산뜻하게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가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런 것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우선 표현을 쉽게 하여야 하고 내용은 진지하고 구수하게 엮어야 할 것이다.
예)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속담이 있다. 옳은 말이다. 애지중기 키우던 피붙 이도 때가 되어 하나 둘 떠나고 나면, 남은 둥지는 뭔가의 정붙이로 살아야 한 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짝을 찾아 훌훌 날아들 갔으니 이 대신 잇몸으로 사는 신세가 됐다.
(오창익 / 정붙이)
②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짧아야
한 문장이 50자를 넘으면 지루하게 느껴진다. 문장이 너무 길면 호흡처리가 곤란하고 산만하여 글의 뜻을 파악조차 힘들게 된다. 처칠도 ‘나는 짧은 말과 쉬운 문구를 즐긴다.’고 했다. 간결하면서도 짧은 문장이야 말로 수필에 있어서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예) 대추나무는 결코 아름다운 나무가 아니다. 볼품이 없는 나무요, 계절 밖에 사는 나무다. 그러나 겉치레를 모르는 나무요, 겸허한 나무이며, 서두르는 일이 없는 점잖은 나무다. 그리고 오래오래 참고 견디는 인고의 나무다. 그런 인고 끝에 맺 히는 열매 때문일까? 한약에서 감초는 빠져도 대추는 빠지는 법이 없다. 대추를 먹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잠이 잘 온다. 그러니 이만한 덕을 가진 나무도 그리 많지 못하리라.
(손광성 / 대추나무)
③ 강한 인상을 주어야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거나 다른 사람이 이미 써 버린 글을 다시 쓰면 진부하여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자기만의 독특한 소재나 단어를 발굴하여 생기가 넘치게 써야 한다. 그래야만 강한 인상을 주는 살아 있는 글이 될 수 있다.
예) 나비라고 불러 보면 어쩐지 그 느낌이 안타깝다. 아래 위의 입술이 순간적으로 살짝 붙었다 떨어지며 가볍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잡듯 말듯 달아나는 모습이 금세 눈에 어린다. 조금 세게 잡으면 꽃잎 같은 날개가 으스러질세라, 너무 살짝 잡으면 어느새 팔랑 날아가 버릴세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중략)
나비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발돋움하는 일이다. 꿈을 꾸는 일이다. 누가 이 나비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슬프고 가련하고 아름다운 내 누이 같은 나비여.
(강숙련 / 나비)
④ 즐거움을 주는 글
수필을 읽는 이유는 은은한 즐거움이나 감동적인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런 재미가 없으면 이 바쁜 세상에 무엇 때문에 남의 수필을 읽어 주겠는가. 재미있는 수필이 되려면 시(詩)적인 정서가 감돌고, 소설처럼 이야기가 구수하게 잘 짜져야 한다. 웃음 속에 날카롭게 번득이는 재치도 보여야 하고, 감동을 주는 진리도 들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첫째 진실성이 요구된다. 그래야 감동과 연결될 수 있다. 억지로 꾸민 이야기는 감동을 불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예술성이 있어야 한다. 수필은 실용문학이 아니고 예술문학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문학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야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그냥 이야기가 아니고 문학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여 새롭게 탄생된 글이기를 바란다. 쌀과 누룩을 버물려서 익히면 술이 되듯이, 잘 여과된 사색과 감정은 즐거움을 주게 된다.
예) 그렇다고 멸치를 멸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니, 오히려 존경한다. 은린옥척 (銀鱗玉尺)은 못 되지만 은린옥촌(銀鱗玉寸)은 된다. 비록 척이 못 되고 촌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지만 그 은빛 몸뚱이가 발산하는 빛이 자못 눈부시다. 죽어서 도 저 광대무변한 대양을 누비던 왕년의 자유와 영광의 광휘만은 조금도 훼손시 키지 않고 있다. 은성무공훈장을 자랑스럽게 번쩍이며 전사한 장군들을 보는 것 같다.
(손광성 / 나의 멸치 존경법)
⑤ 품격이 넘치는 글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글에는 문격(文格)이 있다. 유치한 감정이나 야비한 표현 등 저속한 내용은 품격을 상실하게 된다. 복잡한 세상사의 일을 글로 쓰되 그대로 쓰지 않고 맑은 마음의 눈으로 여과시켜 품위 있게 써야 한다. 이것을 심안(心眼)이라 하는데, 심안을 거치면 격이 달라진다.
난(蘭)에 대해서 글을 쓰면 여기에 향(香)이 머물러야 하고 인생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면 사랑이 깃들어야 한다. 바다를 노래하면 물새들이 머물러야 하고 황야를 그리면 역사 속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야 한다. 연인끼리 애정을 그리되 일정한 간격이 있어야 하고, 지나간 추억 속에서는 절실한 그리움이 머물러야 한다. 그것이 글의 품격, 즉 문격이라 할 수 있다.
예) 이제는 텅 빈 뜰, 어디서 퉁소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머지않아 이 빈 뜰에 가 랑잎이 내릴 것이다. 여름철 무수히 피어난 그 꽃들의 넋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숲을 지나는 밤바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면 그 애들의 안부가 궁 금하다. 이런 일로 해서 가을은 한 걸음 한 걸음씩 내 속 뜰에까지 다가서고 있 다.
(법정 / 빈 뜰)
⑥ 진솔한 글
수필은 무조건 진솔해야 된다. 그것이 최대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솔직하면서도 구수하게, 담담하면서도 거짓 없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지성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수필은 주제에 관련된 상상까지는 허용할 수 있으나 허구까지를 허용한다면 진솔하다는 매력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예) 갑자기 산이 달리 보였다. 하, 이것 봐라 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 이번에 는 가랑이 사이로 산을 내다보았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 동무들과 어울려 놀이 를 하던 그런 모습으로. 그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하늘은 호수가 되고, 산은 호 수에 잠긴 그림자가 되었다. 바로 보면 굴곡이 심한 산의 능선이 거꾸로 보니 훨씬 유장하게 보였다. 그리고 숲의 빛깔은 원색이 낱낱이 분해되어 멀고 가까 움이 선명하게 드러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일어서서 바로 보다가 다시 거꾸로 보기를 되풀이 했었다.
(법정 / 거꾸로 보기)
2. 좋지 않는 수필
(1) 표현이 졸렬한 글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라도 졸렬한 표현이 나타나면 문학적으로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쉽게 표현할 수 있고, 간단하게 기록할 수 있는 것도 어렵고 장황하게 늘어놓는다거나 별 의미도 없는 것을 횡설수설하는 것도 졸렬한 축에 든다. 또한 다 읽고 나서 마음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고, 무엇 때문에 이 글을 썼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으면 수필의 범주에 들 자격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2) 교훈적이거나 자기를 내세운 글
남에게 설명조로 가르치려 들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나타내려는 것도 수필에서는 금기(禁忌)사항이다. 또 남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상식을 자기 혼자 아는 체하는 것과 설익은 설교조의 어설픈 철학을 펴는 것도 독자에게 정감을 주지 못한다.
(3) 개성이 없는 평범한 글
남들이 아직 표현하지 못한 말이나 주제를 선택해야 신선한 맛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남들이 이미 표현했거나, 수없이 반복한 단조로운 문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싱겁고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글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여 문학의 체로 걸러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개성 없는 평범한 글이 되어 독자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4) 잘 다듬어지지 않는 글
옛날 집 짓는 목수가 기둥을 깎을 때, 먹줄로 줄을 긋고 불필요한 부분을 도끼로 깎아내 듯 글을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군더더기는 글을 쓴 사람에게는 잘 발견되지 않는 법이다. 같은 또래의 글벗이 있어 서로 바꾸어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군더더기가 없으면 글을 이해하기 쉽고 읽어가는 데 리듬감도 있어 부드러운 인상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3. 수필을 죽이는 독소와 살리는 요소
(1) 수필을 죽이는 독소
① 도덕성의 흠결
전술한 바와 같이 수필은 인격과 글쓰기가 함께 가는 문학이다. 때문에 도덕성의 흠결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친일을 했던 수필가가 애국심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하자. 누가 공감을 하겠는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사람이 아무리 유려한 필치로 사회정의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해도 공감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필은 글 따로 사람 따로의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② 자기 자랑과 과시
자기 자랑과 과시는 결정적으로 수필을 죽이는 독소이다. 수필을 쓰는 사람치고 이 정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글들이 적지 않음은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자랑과 과시는 대개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노골적으로 터놓고 거침없이 하는 경우와 안 그런 척 내숭을 떨면서 은근슬쩍 곁들이는 경우가 그것이다. 집안자랑을 포함해 자기와 가족자랑을 말함인데, 병폐가 아닐 수 없다. 왜 실수담, 실패담이 성공을 거두는 작품이 많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③ 성의 없이 쓴 글 빈약한 체험과 깊이 없는 사색, 그리고 농필로 쓰여 진 글이 문학성이 확보될 리 만무하다. 이런 글은 자기 기망을 넘어 독자를 우롱하는 것이다.
(2) 수필을 살리는 요소
① 개성이 넘치는 글
다른 이가 미쳐 생각하지 않는 기발한 발상과, 독특한 소재를 택하여 자기화한 문장으로 글을 쓸 때, 생명 있는 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특장 하나쯤은 개발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떤 전문가가 아니라 어느 방면에 남다른 소양을 지님을 말한다. 여기서 참고로 한 가지를 언급하자면 평소 신변 이야기를 많이 쓴 작가로 알려진 박연구 선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수필 속에 꼭 한 두 가지 나만의 장치를 해 둔다.' 두말할 것도 없이 개성 있는 글쓰기를 말함인데 음미할 대목이다.
예) 다관을 치켜 올려 본다. 금련화 꽃송이가 수면 아래로 꽃잎을 열고 웃는 다. 다관을 흔들어 보면 출렁이는 노란색에 취해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벌써 봄 멀미가 나는가. 향기도 잊고 맛도 잊고 바라만 본다. 현기증 같은 묵은 그리움이 꽃잎처럼 피어오른다. 장사익이 하얀 찔레꽃을 보고 그 향기가 너무 슬퍼 울었 다고 목을 꺾는데 죽었다가 살아나는 꽃잎이 대견해서 속이 아리다. 손이 닿으 면 바스러질 것 같은 마른 꽃송이를 차칙으로 퍼내 다관에 넣을 때 내 손은 미 세하게 떨렸다. 어떤 주검 앞에 있는 것 같은, 거기다가 섭씨 백도의 물을 부우 며 스스로 잔인하다 생각했다. 두 번 죽는 참담함... 그러나 꽃은 미움도 원망도 없이 환하게 새로 피어 웃으니 바로 보살이다. 정말 우리 삶의 여정밖에도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걸까.
(반숙자 / 꽃차를 우리며)
② 주제와 소재의 일체화
긴밀화 수필을 쓸 때는 주제가 잘 살아나도록 소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작품의 형상화와 의미화는 결국 그 정황에 들어맞는 소재와 문장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제와 소재는 마치 지휘관과 병사와의 관계로서, 일사불란하게 서로 조응되어야 하며 문장은 그 얼개가 아교칠과 같이 밀착되어야 한다.
(A: 얼마 전에 장안평에서 오래된 돌절구를 하나 사왔다. 몇 달 전부터 눈여겨 두었던 것이라 싣고 오는 동안 트럭의 조수석에 앉아서도 뒷눈으로 자꾸만 눈이 갔다. 예쁜 색시 가마 태워 오는 신랑의 마음이 이러지 싶었다./도입)
(B: 배는 너무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훌쭉한 것도 아니다. 잉태한 지 네댓 달은 좋이 되어서, 눈에 거슬리게시리는 아니고 보기 좋게만 알맞게 부른 그런 여인의 배 같다./뒷받침 )
(C: 이 돌절구를 보고 있으면 가끔 갓 시집온 셋째 형수님이 생각날 때가 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방안이 훤하다던 중매장이 할머니 말씀처럼 달덩이 같던 형수님은 늘 절구통 옆에서 뭔가를 찧고 계신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어머니를 일찍 여윈 어린 나를 귀여워해 주셨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6‧25때 헤어져야 했다./뒷받침)
(D: 나는 이 돌절구를 현관입구에 모셔 놓았다. 굳이 그렇게 한 것은 드나들면서 자주 눈맞춤이라도 하는 동안에 내 마음도 그처럼 오붓하고 단아해지리라는 믿음에서이다. 그리고 거기에 늘 맑은 물을 담아 둔다.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할까./결말, 주제)
(E: 저승 갈 때는 누구나 빈손. 나도 언젠가 이 돌절구를 누구에겐가 주고 가기는 가야겠지마는 다 주어 버리기는 싫고, 그 아름다움만이라도 내 눈 속에 고이 간직해 두려고 한다. 저승 가서도 심심하면 우리 집에서 늘 하던 버릇대로 가끔씩 꺼내 볼 생각이다. / 마지막 문장 ->결말,작가의 사유)
③ 꾸준한 자기 관리
인격 수련을 위해서 자기와 주변관리는 필수이다. 그리고 사색의 샘물이 마르지 않도록 작가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와 여행과 사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고전 수필>
의로운 거위 이야기
주 세 붕
경인년 2월에 큰 누님께서 가락리 집에서 돌아가셨다. 누님 댁에는 한 쌍의 거위를 기르고 있었는데, 누님이 돌아가시자 그 거위들이 안마당으로 들어와서는 안방을 바라보고 슬피 울었다. 이처럼 애처롭게 울기를 몇 달을 계속하니 온 집안 식구들이 그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파했다.
나는 그때 감사의 부관이 되어 멀리 있었으므로 그런 소문만 들었을 뿐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듬해 봄에 무릉촌 집이 완성되었기에 그 한 쌍의 거위를 데려다 놓았다. 그런데 두 마리가 다 수컷이었다. 나는 그 당시 쓸쓸하고 심심하게 지내고 있던 참이라 그놈들을 데려오게 한 것이다.
눈처럼 깨끗한 깃털은 티끌 하나 묻지 않았고, 이놈이 울면 저놈이 따라서 우는 것이 마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고, 물을 마셔도 함께 마시고 모이를 쪼아 먹어도 함께 먹었다. 또 그놈들이 마당을 빙빙 돌며 춤추듯 뛰어다니는 모양이 마치 서로를 위로해주는 듯했다. 나는 정성으로 모이도 주고 물도 떨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썼다. 날마다 그놈들과 노는 것이 하나의 재미가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 해 시월 나흗날 밤에 그 중 한 마리가 죽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거위 우리를 살펴보니 살아 있는 놈이 죽은 놈을 품고서 날개를 치며 슬피 울어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울음소리가 하늘까지 사무치니 보는 사람마다 불쌍하고 안타까워 한숨을 지었다. 동네 아이들이 와서 죽은 놈을 가져가자, 산 놈은 바로 일어나 이리저리 배회하기 시작했다. 원망 어린 소리로 울어대며 지난날 저희들이 놀고 모이를 쪼아 먹던 곳을 따라 사방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이 마치 죽은 놈을 찾는 것 같았다. 울음소리는 더욱 간절해지고 고통스러워지더니 열흘쯤 지나자 목이 쉬어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이 거위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 거위는 하찮은 미물인데도 주인을 사모하는 정이 그처럼 충성스럽고, 친구를 불쌍히 여기는 모습이 이처럼 외로우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보기에 세상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팔기도 하고 자신까지도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열에 다섯도 더 되는데, 하물며 나라에 충성하는 이는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천지 사이의 많은 무리 가운데 오직 인간이 가장 귀한 존재이다. 그런데 저 꽉 막힌 미물인 거위는 군자의 지조를 지녔고, 신령스럽다는 인간은 도리어 미물만도 못하니, 그렇다면 사람의 옷을 입고도 말이나 소처럼 행동하는 그런 놈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반대로 깃털로 몸을 감쌌지만 어질고 의로운 마음을 가진 짐승을 그냥 미물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거위야, 거위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사람들의 나쁜 마음을 돌려서 너와 같은 성실한 마음을 지니도록 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되지를 않는구나. 그러니 앞으로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답답한 노릇이로구나.
이런 까닭으로 의로운 거위의 이야기를 적어서 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 원제 : 의아기(義鵝記)
주세붕(周世鵬, 1495~1554) : 중종 1년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감사를 지냈다. 풍기군수로 있을 때 백운동서원을 세웠는데 나중에 왕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현판을 받았다. 효성이 지 극했으며 인삼 재배를 백성들에게
가르쳐 풍기가 인삼 재배로 유명하게 된 시초를 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