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외모 때문에, 누군가는 학력 때문에, 누군가는 가정환경 때문에, 누군가는 첫사랑의 가슴 아픈 기억 때문에........... 정말 수많은 이유로 인한 상처가 우리 가슴에 특별한 공격성을 심어주곤 하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경계하고, 그러한 콤플렉스와 부딪혀서 타파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근데, 저에게도 잘 고쳐지지 않는 콤플렉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야구에 대한 콤플렉스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정말 열정적인 야구팬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부산 분이시고, 광적인 야구팬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저 역시 자연스럽게 야구를 보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장 처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았던 스포츠 용품은 농구공도 축구공도 아닌 야구 글러브와 야구 배트였어요. 정말 매일같이 동네 친구들이랑 아파트 앞 공터에서 야구를 했었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버지께서는 저를 어린이 야구 회원에 들어 주셨어요. 제 또래 분들이라면 아마도 많이 경험하셨을 겁니다. 저는 서울 사람이기에 자연스레 MBC 청룡의 팬이 되었어요. 그 때가 8살 때였는데, 아마 매 주 두 차례 정도씩 잠실야구장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어린 기억에도 몇 가지 각인되어 있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우선 텅 빈 스탠드가 많이 기억납니다. MBC 청룡이 정말 못 나가던 시절이었거든요. 1루 쪽에 주루 코치로 계시던 새까만 김인식 코치가 생각납니다. 10연패 하던 날 어린 나이에 다른 아저씨 팬들과 함께 선수단 버스 앞을 막아서고 항의를 하던 기억도 나고, 김건우 선수의 입단에 가슴이 콩닥콩닥하던 기억도 납니다. 저녁에 라디오 중계로 박흥식 선수의 연속 안타 기록을 가슴 조리며 기다리던 기억도 있구요.
어느새 구단의 명칭은 LG 트윈스로 바뀌었고, 저는 계속해서 꾸준히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성적은 눈부시게 상승했고, 서서히 야구장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어요. 정말 매번 경기장을 찾을 때마다 관중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울리는 북소리와 승리의 행진......... 흥분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LG 트윈스는 우승까지 거두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우승의 순간을 티비로 지켜보며 얼마나 좋았던지 집안을 펄쩍펄쩍 뛰어 다녔답니다.
저에 이어서 제 동생 역시 야구팬이 되었습니다. 제 동생은 꼴찌 팀 전문 응원 팬이었습니다. 제 동생이 6년 동안 어린이 회원을 든 팀은 모두 꼴찌를 기록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었죠. 물론 저는 지속적인 LG의 팬이었구요. 항상 주말이 되면 아버지, 저, 동생. 셋이서 냉장고에 얼려 놓은 음료수를 꺼내들고, 손에는 글러브를 하나씩 끼고 잠실야구장에 갔습니다. 가끔씩 롯데 자이언츠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버지는 슬쩍 3루 측에 저와 제 동생을 데리고 가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2회를 넘기지 못하고, 1루 쪽으로 가자고 졸랐지요.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잖아요. 아버지는 힘 있는 응원소리를 내지 못하시고 항상 조용히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셨답니다. 뭐, 원래 그렇게 소리 질러 응원하시는 분도 아니었구요. 사실 저희 아버지는 야구 관람을 하실 때 항상 저에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저 타자를 기용한 이유는 이러한 이유다. 지금 던진 공은 변화구다, 체인지업이다, 직구다. 몸 풀고 있는 투수를 보면 저 친구 오늘 공 끝이 좋다, 안 좋다. 저는 그런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면서 야구를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야구라는 스포츠는 알면 알수록 참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5회가 끝나면 사 주시는 아이스크림도 야구만큼이나 좋았고, 항상 올라오시는 LG 할아버지의 응원도 기다려졌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잠실야구장에 찾아 갔습니다. 주말이었는데, 사람이 그렇게 많은 날이 아니었어요.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였구요. 저희는 언제나 처럼 1루 측 스탠드 중간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뒷자리에는 지금의 제 나이보다도 조금 어린 청년들이 앉아 있었어요. 아마 20대 중반의 대학생으로 생각됩니다. 그 분들은 경기 내내 담배를 태우시더군요. 옆쪽에 여자 분들이 앉아 계셨는데 담배를 피우면서 경기장에 입장할 때 나누어준 책받침으로 연기를 그 쪽으로 보내고 있었어요. 야구를 보러 온 건 지 시비를 걸러 온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습니다. 게임을 보면서는 응원도 굉장히 시끄럽게 했고, 열성적(?)으로 욕을 하시던 것도 기억납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아버지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었기에 롯데의 안타나 좋은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곤했습니다. 물론 저희 아버지 스타일 상 바로 앞, 뒤에 앉은 사람이 아니면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소리였지요. 근데, 그 소리를 뒤에 앉아있던 그 청년들이 들은 것 같았어요. 그 때가 3회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저의 악몽 같은 2시간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 ㅆㅂ 새끼 롯데 편이야?’
‘근데, 저 새끼 왜 여기 앉았어?’
‘애새끼들은 LG 편인가 보네?’
‘애새끼들은 착한데 어른이 ㅆㅂ놈이네.’
‘저 새끼 밥 쳐 먹는다.’
‘저 새끼 이제 아이스크림 쳐 먹네.’
‘저 ㅆㅂ새끼 웃는 거 봐라.’
저는 그 때부터 게임을 보지 못했어요. 전혀 집중이 안 되고 그 놈들 얘기 소리만 귀에 맴돌더군요. 7회가 끝날 때가 되니까 아버지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자리를 잘못 잡은 것 같다.”
저는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솔직히 그런 소리를 뻔히 들으면서 가만히 계신 아버지가 너무나 챙피했습니다. 남자답지 못하게 시비 거는 놈들한테 아무 말도 못하시다니....... 너무 화가 났어요. 그 사람들한테 화가 난 게 아니라 아버지한테 화가 났습니다. 그딴 놈들한테 한 방 먹이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 어린 마음에 그런 모습이 얼마나 이해가 안 되었는지........
아마 경기가 끝날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계속되는 뒷사람들의 시비에 저는 결국 화를 참지 못했습니다. 뒤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얘기했어요.
“ㅆㅂ 새끼들아 조용히 좀 해.”
12살짜리 소년의 글썽이는 눈물과 독기어린 표정에 그 아저씨들 굉장히 당황한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야구장에서 나왔어요. 그 날 이후 저는 한 번도 아버지와 야구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몇 번 정도 저에게 야구장에 가지 않을 거냐고 물어보시던 아버지도 계속되는 저의 거절에 더 이상 야구장에 가자고 권하지 않으셨죠.
이상이 저의 야구에 대한 첫 번째 콤플렉스가 생긴 이유입니다. 그 날 이후 야구가 정말 정말 싫어졌거든요.
사실 그 이후에 한 번 야구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저의 대학교 1학년 광복절 날, 당시 여자 친구와 함께 야구장에 간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야구가 재미있지 않더군요. 하기야 10년이나 야구를 안 보고 살았는데, 그게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저의 착각이었죠.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의 당시 행동이 얼마나 현명하고, 훌륭한 결정이었는지 깨닫기 시작했지만 야구에 대한 저의 콤플렉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제가 축구팬이기 때문일거에요.
아시다시피 저는 심각한 축구팬입니다. 아마도 축구라는 놈에 젖어있는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거에요. 제 주변에도 저랑 비슷한 놈들, 비슷한 분들이 많이 있지요.
제가 축구를 보게 된 계기는 친구 놈 때문이었는데요. 제 친구가 포항 축구에 대해서 입에 침을 튀기면서 얘기를 했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라데, 황선홍, 홍명보 얘기를 하는데 듣고 있는 제가 입이 다 벌어지더군요. 그리고 조금씩 프로 축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요. 물론 대표급 경기는 그 당시까지도 거의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원의 경기를 보러 다니면서 축구에 급속도로 빠져 들었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축구장을 찾아다니면서 요령도 생겼습니다. 이 경기장에 가면 어디서 뭘 먹어야 맛있고, 이 경기장에 가면 어떻게 나오는 게 제일 빠르고, 이 경기장에 가면 어느 자리가 제일 잘 보이고, 비를 안 맞는지..........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그 당시에 축구를 보기 시작했던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축구계의 현실에 대한 섭섭함이었습니다.
공 찰만한 잔디구장이 몇 개 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전용구장이 단 하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클럽 축구의 활성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형적인 시스템의 대표팀 중심 엘리트 스포츠 권에 축구가 들어가 있다는 점 등에 대한 섭섭함이었지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축구팬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대표팀에게는 최선의 성적만을 요구하는 몰지각한 스포츠팬들이었습니다.
축구팬들은 알고 있었어요. 게임 자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풀뿌리 축구, 바로 클럽 축구의 터를 닦는 것이 진짜 축구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말이죠. 그리고 축구팬들은 항상 그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써포터의 증가와 응원 문화, 연고 문화의 정착. 여러 가지 축구 문화의 발달 요소에는 협회와 연맹, 그리고 구단 모기업들의 지원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심에는 팬들의 사랑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서 소리쳤던 축구팬들의 가슴 속에는 수많은 응어리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프로축구에 대한 팬들의 짝사랑이 지금에 와서야 조금씩 성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외롭던 그 시절. 우리들이 만들어 놓지 못한 축구문화의 가치. 그 참담한 현실에 대한 신세 한탄과 핑계가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던 야구에게로 향했던 것은 정말 비논리적인 공격이었습니다. 항상 언론의 조명을 받고,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이 되는 야구. 축구팬들은 마치 야구가 자신들의 문화를 구축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 마냥 그들을 원망했습니다. 그저 그 자리를 먼저 선점하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가 그 위치로 가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무차별적인 적대감으로 야구를 폄하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라운드에서 소리 지르던 시절. 그 외로움과 공허함의 공격 대상이 야구가 된 것. 그것은 저에게 주어진 야구에 대한 두 번째 콤플렉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저와 비슷한 또래로, 비슷한 시기에 축구를 보기 시작한 수많은 팬들의 공통점이자 유대 의식일 지도 모릅니다.
마치 90년대 대학에 입학한 저에게 선배들이 “요즘 애들은 사상 도서 한 권 읽지 않고, 최루탄도 한 번 맞아보지 않은 놈들이니 모를거야.”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제 또래 축구팬들은 “텅 빈 그라운드에서 눈물 흘리면서 축구를 느낀 적 있냐?”고 얘기합니다. 야구팬들은 마치 상종조차 할 수 없는 종족처럼 바라보며 배타적으로 적대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러한 극단적인 모습을 과시하기까지 합니다.
독야청청 축구사랑, 자나 깨나 축구사랑, 미친 듯이 축구사랑. 그러한 축구 사랑이 어느새 우리에게 다른 종목, 특히 아직까지 대한민국 제 1의 프로 스포츠로 버티고 있는 야구에 대한 배타적인 자세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우리 세대 축구팬들의 수많은 피해 의식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어쩌면 그러한 피해를 준 것은 기형적인 축구 문화를 만들어 놓은 우리 전의 기성세대일 거구요. 하지만 우리 축구팬들은 항상 비논리적인 공식. '야구=기성세대=구시대의 유물' 이라는 잘못된 계산으로 야구를 비판하는 우를 범해 왔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써포터스를 조직하고, 인터넷 세상에서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 왔으며, 나아가서는 그들의 연대로 붉은 악마라는 조직까지 형성했습니다. 이제는 대표팀, 프로팀, 여자 축구, 유소년 축구에 이르기까지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힘들던 시절이 아련한 노스텔지어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러한 기억의 흔적이 남겨놓은 상처는 이미 확정지어진 공격 대상. 야구를 향해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세대 축구팬들은 콤플렉스 덩어리일지 몰라요.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겠지요. 아직까지도 축구와 야구를 지나칠 정도로 비교하면서 흥분하는 것은 우리 세대 축구팬들의 콤플렉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에 김재박 감독의 발언을 보면서 참 씁쓸하더군요. 물론, 김재박이라는 한 사람의 발언보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축구팬과 야구팬의 폭발적인 논쟁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번 사건은 그동안 축구팬들이 가지고 있었던 콤플렉스가 야구팬들에게로 어느 정도 옮겨간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 같으면 취급조차 하지 않았을 프로축구팬들에게 그들도 너무나 비논리적인 반박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야구에 대한 콤플렉스 덩어리인 우리 세대 축구팬들 만큼이나 말이지요. 그리고 '한정된 스포츠 인프라의 균등한 분배란 가능한 것일까'라는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말 비이성적인 논리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프로 축구가 대한민국 제 1의 스포츠가 되는 날,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 시리즈에 진출해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잠실야구장을 찾게 되는 날이 되어서야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저는 제가 야구를 싫어하는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들에게 핑계대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콤플렉스에 불과하니까요.
자신과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타성, 흑백논리와 편 가르기, 자기가 올라서고 싶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격성은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에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굳이 야구와 축구가 아니더라도 말이지요. 서로에 대한 인정과 순응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정말로 건전하고 합리적인 사안이 아니라면 그러한 편 가르기를 굳이 공론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쓸데없는 상처와 서로에 대한 분노, 적개심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요즘 신세대 축구팬 중 한 명이 저에게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거 보면 되잖아.”
너무나 간단한 해답을 얻기 위해 저는 너무나 멀리 돌아왔습니다. 그 지독한 콤플렉스 때문에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