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 시력을 잃어가는 김 씨 아저씨를 만났다. 대부분의 중도 시각장애인들은 자신감 상실로 일상생활을 버거워 하는데, 아저씨는 그렇지 않았다. 홀로 병과 경제적 빈곤을 감내하면서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2003년부터 당뇨를 앓아 몸이 망가졌어요. 그 후 시각장애, 뇌 병변 장애를 판정받고 신장 기능까지 저하됐죠. 그때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아내와 이혼했어요.”
아저씨가 녹록지 않은 당신의 삶을 풀어냈다. 그 이야기에서 삶의 묵직한 무게와 가장의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상황을 가족에게 알리고 함께 해결해나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택은 아저씨의 몫,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아저씨의 소망대로 가족을 지켜주고, 홀로서기를 돕고, 새 동네에 적응하게 이끌고, 시각장애에 잘 대처하도록 거들기로 했다.
처음 복지관에 오던 날, 아저씨는 길바닥의 높낮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휘청거렸다. 즉시 흰 지팡이로 보행훈련을 하게 하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늙지도 않았는데 지팡이를 짚네요.”
그 순간, 한 단어가 떠올랐다. ‘아모르파티’. 자신에게 일어나는 고통, 상실 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는 삶의 태도.
아저씨는 그 말뜻처럼 슬픈 운명에 체념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고 있었다.
이후 우리의 목표는 구체화됐다. 아저씨의 진행성 시각장애에 대비해 흰 지팡이 보행훈련과 점자교육을 이수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집을 정돈하고 싶어요. 가구에 물건을 수납하면 약도 쉽게 찾을 수 있겠죠? 겨울에 매일 보일러를 틀 수 없으니 매트리스가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나는 복지관 기획팀장, 지역사회지원팀장, 자원봉사 담당자, 사례관리 담당자와 함께 여러 방안을 모색했다. 우리의 열성에 구청 사례관리팀에서 중고 냉장고를, 서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주민들이 아나바다 운동으로 모은 가정용품을 지원했다. 그중에는 아저씨가 원하던 매트리스와 주방용품, 새 물건들과 의류도 있었다. 우리는 이웃 사랑의 손길이 담뿍 담긴 선물을 차에 싣고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우와, 이제 사람답게 살겠네요. 나 같은 사람을 돕는 분들이 이렇게 많군요.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무척 기뻐했다. 그 모습에 나와 자원봉사자, 복지관 직원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집을 청소하고 물건을 정리했다. 우리의 손길이 닿자, 어느새 아저씨의 집은 ‘사람 사는 집다운 집’으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니 이삿날 같네요. 이런 날은 자장면을 먹어야죠. 제가 쏘겠습니다.”
아저씨가 유쾌하게 외쳤다. 부담이 될 듯해 우리가 거절하자, 아저씨는 꼭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서일까. 자장면 맛이 아주 기막혔다!
얼마 뒤, 아저씨의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시력감퇴에 맞는 보행훈련을 하고, 당뇨로 인해 손끝이 무뎌져 글자를 촉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꾸준히 점자를 공부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러면서 1대1 점자읽기 선생님을 매칭해 주었다. 힘껏 이끌어주는 선생님들 덕분에 아저씨는 습득의 어려움을 딛고 점자를 익혀 나갔다.
그즈음 아저씨는 신장 투석을 시작했다. 신장 기능이 25% 남아있어 유사시를 대비해 관 삽입술을 한 상태였으므로, 담당 의사는 투석을 권장하진 않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당당한 삶을 살겠다며 과감히 투석을 결정했다.
“복지사님, 내 계획 좀 들어볼래요? 첫째, 안마사협회에서 2년간 안마교육 받기. 둘째, 국가공인 안마사 자격증 취득하기. 셋째, 안마업에 종사하고 미래를 위한 자금 마련하기. 멋지죠?”
사실 나는 아저씨의 결정이 자못 걱정됐다. 복지관 교육과 훈련에 지장을 줄 듯해서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기우였다. 나는 교육 출석에 연연하지 않고, 아저씨의 힘찬 출발을 응원했다.
어느덧 아저씨와의 동행이 2년을 넘었다. 그동안 아저씨는 나와 같은 사회복지사에 매력을 느꼈다며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투석으로 인해 미뤘던 안마교육도 다시 시작했다. 아저씨와의 사례관리과정은 당면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아저씨의 삶을 그의 삶답게 가꾸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삶에 적극적이고, 나와의 약속을 귀중히 여기며, 스스로의 미래를 계획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갔다. 그 당찬 모습, 그 굳은 마음가짐을 지켜보며 나 또한 아저씨한테 배우고 사회복지사로서 가치관을 정립하는 시간이었다. 참 고마웠다. 그리고 아저씨의 꿈을 위해 기꺼이 도와준 여러 기관과 선생님들도 감사했다. 아, 김 씨 아저씨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아모르파티, 오늘은 하루 종일 콧노래를 흥얼거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