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여러분 이용벽입니다.
지난해 가을 9월 17일에
대전에서 동기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당시 KAIST 팀이
재난로봇경진대회(DRC)에서 우승하면서 시각 기능을 맡았던 권인소가 매스컴에 소개되었습니다. 그래서 동기들이 모여서 그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모였었죠. 사실
진작에 그 이야기를 전달해야 했는데 바쁜 와중에 4개월 가까운 시간만 보내고 말았습니다. 늦었지만 그래도 알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양해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모임의 계기가 된 것은 세계 재난 로봇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KAIST의
휴보의 제작에 KAIST의 교수로 있는 권인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임을 갖게 됐는데 지리적인 이유로 대전에 있는 동기 4명만
모이게 됐습니다. 주진원이와 우삼용이는 갑자기 생긴 일 때문에 부득이 함께하지 못하고 권인소, 송락경, 전경락 그리고 저 그렇게
4명이 모였습니다.
모임은 권인소의 교수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깨끗하고
쾌적하더군요. 거기에 더해서 천장이 상당히 높은 방이었습니다. 천장이
높을수록 생각이 더 열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적합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더군요. 단지 연구량을
생각하면 방이 조금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습니다.
방 한쪽에는 작은 오디오 시스템이 있었는데 제대로 된 시스템은 권인소의 집에 있다고 하더군요. 요즘 오디오에 세계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어졌다고 하는데 그 음악 세계를 들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에서 구입했다는 진품 보이차를 소개했는데 도자기로 된 포장이 아주 멋지더군요. 가격이 상상이상으로 높은 차였는데 건강에 여러 가지로 좋다고 합니다. 쾌적한
연구실에서 오랜 학우들인 동기들이 모여 향과 맛이 좋은 보이차를 들면서 정담을 나누는 그런 분위기가 실제로 만들어 지고 있었죠. 다들 한번 상상해보시죠.
모임이 있기 며칠 전에는 독일 기자의 방문을 받고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그
독일 기자는 한국의 눈부신 산업발전에 평소 관심이 많았었는데 어떤 기회에 그 원동력중의 하나에 카이스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 대상을 물색하다가
권인소를 선택했다고 하네요. 인터뷰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 분위기가 어땠을 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듯합니다.
독일이야기가 나오면서 화제는 프랑스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함께 했던
전경락이가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았던 것이 계기가 되었죠. 프랑스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로 했는데, 프랑스의 특징이라면 이공계 출신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야기하는 전경락이는 예전 공부하던 때의 열정이 되살아나서 그런지 상기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야기 하는 중에 동기인 윤금중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오래 일하다가 지금은 보쉬에서 일하고 있죠. 권인소가 보쉬의 어느 중역을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 하던
중 윤금중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대학 동기임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역이 자신은 현대자동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더랍니다. 왜냐하면 윤금중이 같은 좋은 인재를 내보내주고
결과적으로 보쉬에서 함께 일할 수 있게 해주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우리 동기들은 어디에 가도 인정을
받는 구나 하는 생각을 모두 함께 나누었습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권인소 집이 있는 반석역 근처의
횟집이었습니다. 작은 횟집이었는데 권인소를 아주 귀빈 대접하더군요. 로봇대회
우승에 대한 것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도 모두 귀빈대우를 받으면서 식사를 하고 가볍게 술도
한잔 할 수 있었죠.
재난로봇 대회에 대한 배경 설명부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재난 로봇
대회라는 것은 기본적으로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건 때문에 생긴 대회라고 합니다. 사고가 나서 사람이 들어
갈 수 없는 원전 내부에 로봇을 보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대회인 것이죠. 지난해에도
로봇 대회가 있었는데 당시 카이스트의 휴보팀이 10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9위 팀까지만 연구보조금이 지급되었죠.
결국 휴보팀은 쓰디쓴 실패의 경험만을 안고 빈손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대회가 끝나고 얼마 후에 휴보팀을 이끌고 있던 카이스트의 오준호 교수가 권인소를 찾아왔습니다. 대회 소식을 알고 있던 권인소는 어느 정도 예상도 했던 모양입니다. 거기에서
휴보가 실패했던 이야기를 들은 바, 대회장의 구역을 나누기 위해서 바닥에 검은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는데
휴보가 그 테이프를 잘못 인식하는 바람에 가다가 넘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디쓴 실패를 맛본
오교수가 시각정보처리의 중요성을 절감해서 권인소를 찾아오게 된 것이죠.
대학원에서 소성역학을 전공했던 권인소는 어떻게 해서 시각정보처리를 전공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져 나왔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창원에 있는 KIMM(기계연구소)에 근무하던 권인소에게 어느 날 로봇 에뮬레이터를 제작하는 일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소성역학보다는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한 권인소가 부서를 옮겨서 로봇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어용 에뮬레이터를 제작하고 로봇을 제어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유학을 가게 된 것이죠.
유학을 간 학교의 분위기는 국내와 전혀 달라서 소성역학이란 분야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정보처리에 관련된
분야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도 기계연구소에서 익힌 경력을 바탕으로 로봇연구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연구용으로 제작한 로봇이 구동 중에 화재가 나서 망가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담당 교수가 주도하여 원인을 파악한 결과 하필 권인소가 제작한 에뮬레이터가 주요인으로 지적이 되었습니다. 교수는 당연히 불같이 화를 냈고 연구실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한 권인소는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는데
결국 담당 교수가 권인소를 보낸 분야가 바로 시각정보처리 연구실이었다고 합니다.
생소한
시각정보처리를 공부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막막한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Fourier Transform에
관한 강의를 예로 들었는데 수학적 전개 자체가 기계공학 쪽에서 공부한 형태와는 사뭇 달라서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는 군요.
그런 과정을 하나하나 극복해가면서 연구를 해서 오늘날의 위치까지 온 것이죠. 인간승리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권인소는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자기가 몇 년은 더 늙은 듯 하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시각정보처리는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요즘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무인카가 대표적이죠. 시각정보를 3차원으로 구성해서
그것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그 외에도 시각정보 처리가 필요한 곳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은 너무 당연하죠. 권인소의 활약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여기에 다 표현하기가 어렵고, 다만
연구실에서부터 시작된 분위기는 계속 변함없이 유지되었다는 이야기만 해야겠네요.
그렇게 모처럼 대전에서 열린 동기들의 모임이 끝나고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날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주로 들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특별한 모임이었습니다. 동기들을
만나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 옛날 어린 청년이었던 우리 동기들이 어느덧 우리 사회를 이끄는 중진 내지는 리더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기들간에 오가는 마음은 그 옛날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죠.
다른 분야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기설 35 동기들만이
품고 있는 특별한 정이 있는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많이 늦었지만 동기들에게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씁니다. 서두에도
이야기 했지만 시간이 흘러서 기억이 지워진 것도 있고 해서 내용에 약간의 오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널리
양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