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5회 국민행동 아카데미 월례강좌(국민행동본부 주최)에서 李長春 前오스트리아 대사가 발표한 ‘홍색 반역의 물결'의 전문이다.
홍색反逆의 물결 - 平等의 阿片으로 權力게임을 일삼는 電波독재-
序頭
‘韓나라'--韓族국가--의 역사에서 대한민국만큼 성공한 적이 없다. 奇蹟같이 기아와 절대빈곤을 추방했다. 한국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에서 傳統국가로는 가장 높이 뜬 나라가 됐다. 그러니까 한반도의 정치역정 중에서 韓國의 建國보다 더 위대한 사건은 없었다
1. 이 자리에 招請해 주시고 紹介해 주신 데 감사합니다.
2. 오늘 한국 基督敎의 최고 殿堂에서 이 많은 저의 同時代人들과 자리를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깁니다. 감개가 무량합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태극기를 달고 다니면서 한국을 대표한 저의 職業外交官 배경은 사실 이런 모임과는 거리가 멉니다. 늘 韓國을 擁護해야만 했고 절대로 한국을 批判할 수는 없었습니다.
3. 그러나 國家에서의 봉직을 끝내고 社會로 복귀한 마당에 평생 애써 봉사한 奇蹟의 대한민국이 가당찮은 反逆의 물결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는 것을 좌시할 수가 없습니다. 직업군인과 직업외교관은 국가에 奉仕한 후에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예사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참석하신 분들을 포함한 수많은 往年의 愛國戰士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 度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反逆의 물결에 언젠가는 우리 大韓民國이 삼켜질 수 있음을 傍觀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합법적으로 국가의 권력을 장악한 政治勢力이 奇異하게도 그 국가를 상대로 황당한 권력의 反逆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땀으로 일궈낸 기적의 대한민국을 잘못된 나라로 치부하여 그 正體性을 冒瀆하며 變造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 反逆의 일부로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裁判’에 우리가 바친 一生이 汚辱을 당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渾身을 다해 성공시킨 나라의 將來가 抵當히는 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4. 사실상의 國庫强奪로 2000년의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買收한 金大中의 ‘햇볕政權’이 감행하기 시작한 권력의 反逆은 盧武鉉의 ‘촛불政權’에 의해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 그 典型은 ‘퍼주기‘로 북한의 공산왕조를 살리고 聯邦制로 한국의 國家正體性을 변조하는 利敵반역입니다. - 그 다음은 利敵반역의 연장으로서 국가안보와 통일을 볼모로 잡는 反美반역입니다. - 그 중에서 가장 집요하고 소모적인 것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농락하는 反民반역입니다.
5. 빨리 그런 邪惡한 권력의 反逆을 꺾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끝장날 수 있습니다. 다행히 각계 각층의 愛國市民들로 구성된 국민행동본부가 한국이 처한 國難의 危機를 물리치는 데 선봉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국민행동본부의 大義에 뜨거운 支持와 성원을 보내며 그 指導部의 勞苦에 경의를 표합니다.
진짜세계(the real world)로부터 逃避하는 低質 리더십
6. 盧武鉉을 필두로 하는 집권세력 중에는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全敎組의 일원이 ‘아! X할 대한민국!’이라는 욕지거리를 내뱉은 것은 정치권력이 발급한 反逆의 特許狀을 손에 쥐지 않고는 연출할 수 없는 亂舞의 典型입니다.
그 욕지거리는-북한의 공산왕조와 내통하고 있는 자들이 대한민국을 咀呪하기 위한 합창의 歌詞로서-'우리 민족끼리'라는 新派조 구호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소위 “民族的 大團結”로 南北이 여하 간에 속히 합쳐져야 한다는 허튼 소리는 이미 오래 전에 김이 빠진 것을 괘념치 않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解體를 주장할 수 없으니깐 얼토당토않은 소위 '聯邦制'의 탈을 쓰고 赤化統一을 위한 酬酌을 부립니다. 그런 수작은 '紅色反逆'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7. 홍색反逆을 주도하는 자들은 북한의 공산왕조가 崩壞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南韓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데 반대합니다. 그러니깐 그들은 反民主主義 分斷論者들입니다. 그들은 진짜세계(the real world)와 동떨어져 살아 왔기 때문에 暴政의 從僕으로서 민족의 우상과 集團神話를 신봉합니다. 기적의 대한민국이 지구상의 가장 실패한 북한의 공산왕조를 흡수하는 방식 이외에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잘 나가는 '삼성전자'가 不渡난 어떤 전자회사를 引受했으면 했지 그런 회사에 합병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진짜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스포츠와 연예는 '진짜 세계'가 아니다
8. 대한민국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역사상 가장 성공한 나라입니다. 진짜세계의 경쟁에 참여하여 饑餓와 絶對貧困을 한 世代만에 추방했기 때문에 기적의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한국이 추구해야 할 국가목표는 진짜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아 참(眞)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의 통일을 달성하면서 先進世界(advanced democracies)로 진입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처한 狀況(상황)은 그런 국가목표를 무난히 성취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얄궂고 怪奇합니다.
9. 진짜세계에서는 한마디로 처절한 經濟大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향해 소위 開發獨裁시대에 추진한 輸出立國의 기치 하에 세계 12大 무역국가로 부상했습니다. 꿈같은 사실입니다. 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도 세계 40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나라의 표면상 인프라는 일견 대견스러워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는 매우 貧弱한 편입니다. 우리 경제가 명실 공히 선진세계의 벽을 허물고 그 속으로 파고들어가 단단해지자면 갈 길이 아직도 아주 멉니다. 앞으로 100년 동안 진짜세계에서 낙오되지 말아야 선진세계의 멤버십을 확실하게 딸 수 있습니다.
10. 예를 들어 스포츠(sports)나 演藝·娛樂은 진짜세계가 아닙니다. 其實은 그것들이 진짜세계로부터 逃避하거나 진짜세계를 隱蔽하는 데 단단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월드컵이 금년에 獨逸에서 개최되어 참 다행입니다. 만약 2007년에 개최된다면 2002년처럼 ‘붉은 악마의 政治’ 같은 것이 재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조류독감(avian influenza)으로 금년도의 월드컵이 연기될지 모른다는 소리가 없지 않습니다만, 天機에 속하는 것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11. 선진세계에서는 스포츠가 정치화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스포츠는 스포츠 이상으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한 것 자체부터 ‘2002 월드컵’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정치화되어 오고 있는 것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정치권력은 스포츠에 깊숙이 관여해왔습니다. 그렇게 된 근본원인은 물론 한국의 民度와 풍토에 있다는 것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12. 과거 蘇聯은 東西冷戰이 한창이던 1956년 멜번올림픽(Melbourne Olympics) 이래 거의 1위를 유지하면서 東獨과 함께 1972년 뮌헨ㆍ1976년 몬트리올ㆍ1980년 모스크ㆍ1988년 서울에서 각각 1위와 2위가 될 만큼 金메달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국가 자체가 消滅되고 말았습니다. 15년 전에 무너진 共産圈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演藝 娛樂을 全體主義 체제유지의 도구로 악용했습니다. 기묘하게도 東西冷戰의 主戰場이던 한국에서 냉전의 주역이던 蘇聯과 그 속국인 東獨이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참여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한편, 브라질은 다섯 번이나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선진세계의 문턱에 올라서기는 아직 요원합니다. 월드컵 우승은 선진세계의 德目과는 무관합니다. 진짜세계에서 優勝해야만 선진세계에의 入門資格이 생깁니다.
현재와 미래에 자신이 없으니 과거를 戰場으로 선택
13. 過去는 진짜세계가 아닙니다. 소위 ‘過去史’라는 말은 歷史라는 말을 억지로 代用한 엉터리 造語입니다. 역사는 정치권력의 恣意대로 ‘바로 잡아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역사의 捏造입니다. 역사의 사실을 규명하는 것은 權力作用으로부터 유리된 역사학자들의 몫으로 두어야 합니다.
진짜세계는 대한민국이라는 國家共同體 전체가 참(眞)현실에서 우승하고 또한 未來(미래)의 우승을 보장받기 위해 刻苦의 努力을 경주해야 하는 세계입니다. 과거에 매달려 국가의 轉向的 進路를 무시하면서 진짜세계를 외면하는 逆走行을 일삼는다면 그것 또한 반역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盧武鉉의 사람들은 진짜세계를 등지고 소위 ‘過去史 청산’을 무기로 권력 플레이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과거는 감당하기 쉽고 현재와 미래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占領에 급급한 나머지 현재와 미래를 팽개치며 과거를 恨풀이 정치의 好材로 삼고 있습니다.
평등이란 아편: 平鈍化, 平貧化, 平亡化 초래
14. 진짜세계에서는 平等(평등)의 阿片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權力의 生計’를 姑息的으로 꾸려갈 수 있다손 치더라도 국가공동체를 持續的으로 구제할 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사망함에 따라 ‘歷史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이 선고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로 낙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貧富격차의 解消에는 特效藥이 없다는 것이 再確認되었습니다. 오직 競爭의 原理에 따라 漸次的으로 貧富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뿐입니다.
빈부에는 萬能藥이 없습니다. 盧武鉉의 권력 배후에는 죽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거나 平等의 阿片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平準化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平準化로는 無限競爭이 펼쳐지고 있는 진짜세계에서 勝者가 될 수 없습니다. 平準化의 副作用을 경계해야 합니다. 평준화의 後果는 지독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鈍才로 만드는 ‘平鈍化’와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平貧化’를 초래하여 결국 모두를 망치는 ‘平亡化’로 落伍사태를 빚어낼 수 있습니다.
인간의 不平等은 개인의 타고난 육체적, 知能的, 정서적 差異는 물론 그가 속한 국가의 條件 및 時代與件의 差異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是認해야만 진짜세계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 李承晩, 기적의 어머니 朴正熙
15. 물론 한 국가가 진짜세계에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國家指導者의 리더십 資質입니다. 企業의 勝敗가 최고경영자(CEO)의 力量에 달려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의 성공은 한 마디로 建國(건국)의 아버지 李承晩과 奇蹟의 어머니 朴正熙(박정희)가 발휘한 위대한 리더십의 산물입니다.
16. 李承晩은 순수 國産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朝鮮王朝 시대에 태어났지만 8.15解放(해방) 직후 70老軀로 還國할 때까지 그가 살았던 곳은 미국입니다. 근 40년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李承晩은 미국에서 博士학위를 받은 學者풍의 言論人 출신으로 그가 남긴 文筆의 足跡은 결코 범상하지 않습니다. 그는 대한제국 때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上海임시정부의 초대 大統領을 역임했습니다. 李承晩은 한반도에서 '소비에트 朝鮮공화국(a Soviet republic of Korea)'의 출현 가능성을 일찍이 1933년에 경고할 만큼 철저한 反共의 先覺者이었습니다.
건국 대통령 李承晩은--한국의 救援을 위해 神이 내린 구세주(deus ex machina)처럼--카리스마와 智慧를 발휘하여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공산주의자들의 南侵挑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냈습니다. 그의 탁월한 文士배경과 그의 투철한 反共思想과 그의 두터운 미국緣故야말로 한국의 出生과 生長을 위한 씨앗이었습니다. 한국의 始祖는 李承晩입니다.
17. 한편, 北韓에서는 '극동紅軍 독립특별 제88여단 제1대대장' 출신인 33세의 청년 金日成이 점령국 소련으로부터 권력을 순탄하게 讓與받았습니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에서 개최된 소련군 환영 군중대회에서 金日成은 '民族의 영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조선 공산주의자에게 낯설었던 金日成은 스탈린主義者답게 그의 과거를 베일에 감추어 조작했으므로 아직도 그의 身上의 많은 것이 불투명합니다. 中學 중퇴의 학력을 가졌던 그는 본명 ‘金成柱’를 버리고 傳說的 독립투사 ‘金日成’의 이름을 따 改名할 만큼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모스크바에서 특별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金日成의 武士배경과 그의 풋내기 年輪과 그의 소련緣故는 한반도에 流血이 낭자하고 북조선에 厄運이 닥칠 징조였습니다.
18. 한국의 기적을 탄생시킨 朴正熙도 李承晩처럼 순수 國産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식 敎育을 받고 日本軍 將校로 임관된 배경을 가진 朴正熙는 그 時代의 보통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最高經營者의 資質을 가진 엘리트였습니다. 朴正熙는 5.16革命을 주도하여 國家發展의 모델로 日本)을 벤치마킹했습니다. 그에게 익숙한 나라는 日本이었습니다. 그는 輸出立國을 향해 유교적 紀律로 日本式 경제모델과 美國式 기능주의를 접목시켜 개방형 開發獨裁(developmental dictatorship)를 强行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을 개발도상권의 優等生으로 만들었습니다.
초근목피로 허덕이던 판에 '잘 살아 보세'를 위해 소위 '低姿勢' 외교로 韓日國交를 正常化시켜 浦項제철과 京釜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資金을 확보했습니다. 越南戰에 투입한 韓國軍이 소위 '傭兵'이라는 지탄을 받는 가운데 戰場의 군인들이 송금해 온 月給과 軍需업체가 벌어들인 外貨로 工業韓國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밑천을 마련했습니다. 소위 ‘저자세’와 위험을 감수한 朴正熙의 勇氣와 리더십으로 기적의 한국이 탄생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 때나 될 수 없는 것을 해냈습니다.
민주국가에선 제도가 영웅이다
19. 超强大國 미국을 잘 아는 李承晩이 美國에 줄을 댔고 경제대국 일본 緣故를 가진 朴正熙가 日本 흉내를 낼 수 있었던 결과 오늘의 한국이 平和와 繁榮을 누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不世出의 두 英雄이 國民國家(nation-state)로서 한국의 國家建設을 해냈습니다. 절대로 그것을 예사로 여기면 안 됩니다.
20. 그러나 소위 ‘民主化’를 실현한 것처럼 자부하는 한국의 政治勢力은 저들이 잘나고 잘해서 한국이 이 만큼 된 줄로 착각하고 傲慢하기 짝이 없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와 기적의 어머니를 怨望하고 憎惡합니다. 悖倫兒처럼 행세합니다. 수천 년 동안의 굶주림과 가난으로부터 해방된 결과가 바로 그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美國의 恩惠를 反美로 갚고 日本과의 紐帶를 하찮게 여기는 반면 中國에는 부질없는 秋波를 던지고 北韓의 暴政을 부양하며 감쌉니다. 그러니깐 한국은 밥술께나 먹고사는 나라치고는 세계에서 가장 어지럽고 고립된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위 南南갈등이라는 파괴적 國論分裂을 惹起하는가 하면 ‘우리 민족끼리’라는 허망한 同族主義정치로 외교적 외톨이 신세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21. 우리가 왜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그 가장 큰 이유는 朴正熙의 暗殺과 그의 죽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國家經營 리더십이 限界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영웅이 탄생할 수 없는 대신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민주적 제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근대 민주주의의 본산인 英國에서는 350년이 더 걸렸습니다. 민주적 제도가 확립될 때까지는 민주주의에서도 영웅 비슷한 指導者가 필요합니다.
22. 朴正熙 이후에 배출된 다섯 명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순수 國産입니다. 純粹 國産에서는 지도자로서 미더운 인물이 아직까지 나오자 않았습니다. 권력형 腐敗로 본인이나 그 자식들이 이미 監獄에 갔거나 언젠가는 大逆罪로 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 못합니다. 그 중에서 처음 두 명은 직업군인 출신으로 ‘스스로의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는 爲人’들은 아니었습니다. 소위 ‘민주화시대’의 문을 열어주는 守門將에 불과했습니다. 그 중의 세 번째는 과도기의 職業政治人으로서 “民族은 同盟보다 낫다”고 바람기를 보이는 寸劇을 연출했습니다.
바보상자를 전파독재의 創劍으로 쓰는 盧
23. 한국이 처한 國難의 元兇은 朴正熙 이후 네 번째로 권력을 장악했던 金大中입니다. 소위 '햇볕 政策'의 元祖로서 북한의 世襲 독재자 金正日에게 막대한 現札과 뇌물을 제공하고 이른바 南北頂上 회담을 買收했습니다. 그것으로 反逆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金大中은 한국의 民度와 政治風土를 자신의 立身을 위해 최대로 악용한 政治鬼才로 한국이 앓고 있는 國家的 怪疾의 主犯입니다. 소위 ‘민주화시대’ 이후 다섯번째로 등극한 盧武鉉의 출신배경과 志向은 참으로 예사롭지 않습니다. 高卒인 金大中의 정치養子로서 같은 고졸인 그가 연출하는 정치는 거의 노략질에 가깝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에 대한 醜行을 감행하는데 廉恥가 없습니다. 性醜行만이 추행이 아니고 ‘政治醜行’도 추행의 범주에 넣어야 합니다.
24. 인간 盧武鉉의 대담한 성향과 유치한 資質은 反逆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출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利敵·반미·反民으로 홍색 反逆의 총대를 노골적으로 메는 것은 물론 平等의 阿片으로 투표지를 買集하는 權力게임에 대단히 능합니다. 개발독재시대에도 감히 貪할 수 없었던 獨斷·독선·獨走·독점·獨食을 주저하지 않으며 ‘바보箱子’ 텔레비전을 현대판 槍劍으로 씁니다. ‘電波獨裁’라고 할 만합니다.
盧武鉉 후보는 2002년 大選으로 가던 5월 28일 仁川 부평역 앞에서 “南北對話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 나머지는 대강해도 괜찮다”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經驗과 常識과 理性을 존중하고 法道를 중시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도저히 그런 쌍스러운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가 말한 “깽판”은 미리 권력의 反逆을 예보한 것이었습니다.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奇想天外의 해괴한 反逆 말입니다. 反逆은 보통 외교관과 같은 ‘公認間諜licensed spies)’이나 職業軍人·전문 情報要員 또는 反政府集團이 저지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政權차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하는 反逆이 감행되고 있습니다.
국가지도자가 迷信을 설파
25.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최고지도자 盧武鉉은 탄핵'被告'에서 풀린 지 열 사흘째 되던 2004년 5월 27일 “競選 후보 되기 전에 占치고 될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고 으스댔습니다. "四柱가 제법 괜찮다고 한다"고 자랑도 했습니다. 延世大學校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그의 人生觀과 意識의 基底를 숨김없이 털어놓을 만큼 발가벗는 데 부끄럼이 없었습니다.
국가의 首腦가 현대 科學文明을 등지고, 국가의 將來를 짊어질 잠재적 人材들에게 迷信의 ‘위력’을 說破했습니다. 學力경쟁의 목표와 意慾을 꺾은 셈입니다. 六甲으로 짚어내는 占卦 속에 富貴榮華가 보장되어 있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땀을 흘리든지 말든지 하라는 충고나 다름없었습니다.
修學의 功과 가치를 폄하하고 無學의 惡과 수치를 모르니깐 進步를 향한 逆境의 돌파와 格調의 上向에 모범을 보이기는 글렀다는 것이 盧武鉉의 ‘六甲발언’으로 明白해졌습니다. 그러니깐 事理의 優先順位를 제대로 판단할 리 없습니다. 이는 "歷史의 방향성(the directionality of history)"에 대한 認識의 결여로 試行錯誤와 浪費를 일삼고 感性에 자극되어 나라에 災殃의 危險을 초래할 赤信號이었습니다.
26. 세계에서 大學이 가장 많은 나라에서 연거푸 高卒이 권력의 꼭대기를 차지한 시대에 살다보니 국가의 최고지도자로부터 “깽판”치고 “占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단순히 學歷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최근에 3.1절 골프로 물러난 總理는 “인생에서 골프는 양보 못해… 그거라도 안 하면 숨 못 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한 사람의 私人이었다면 문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朝鮮時代의 領議政을 흉내 낸 無爲而化의 고무도장 벼슬이지만 그런 자리에 앉은 그가 公人의 倫理에 그렇게 無心할 수 없었습니다. 朴正熙의 죽음을 따라 '孔子'가 한국에서 同伴自殺했습니다. 지금 만연되고 있는 각종 쌍소리 및 常識과 法道를 일탈한 卑俗과 淺薄은 정치지도자의 低質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盧는 어린 民主主義를 협박
27. 권력의 승부사 盧武鉉은 걸핏하면 “大統領職을 못 해먹겠다”고 투덜대어 왔습니다. 취임 후 2년 半 동안 열두 번이나 그런 식으로 허튼소리를 했습니다. 진정 그만 둘 생각이 있었다면 일찍이 下野할 수 있었습니다. 국의 최고 權座에 앉은 사람이 감히 끄집어낼 수 없는 말이 그뿐이었습니까? 2003년 10월 國民投票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흐지부지 끝냈습니다.
2003년 12월에는 “大選 不法선거자금의 규모가 한나라黨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지켰다면 이미 물러났습니다. 2004년 6월에는 "新행정수도에 정권의 命運과 진퇴를 걸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헌법재판소의 遷都 違憲 판정이 나자 그것을 비켜가기 위한 便法으로 소위 ‘행정도시’라는 遁甲을 부리면서 엄청난 浪費를 일삼고 있습니다.
작년 7월에는 터무니없게 소위 大聯政을 위해 "권력을 한나라黨에 이양하겠다"고 선언하여 불법盜聽보도로 시작된 'X-파일' 政局에 끼어들더니 꼬리를 내려버렸습니다. 그러고는 결국 남긴 말이 “支持率 29퍼센트로는 國政運營이 곤란하니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고 하면 檢討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005년 8월 25일 KBS TV에 출연하여 그런 식으로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脅迫했습니다.
盧정권은 3大 불법으로 탄생
28. 경험과 상식과 이성 중에서 한 가지라도 제대로 있다면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특히 '행정도시'의 편법으로 司法府에 挑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지율 20퍼센트代의 정권이 가소롭게도 굉장한 역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권력의 正當性을 의심받는 不法政權이 홍색反逆을 감행하면서 電波獨裁로 권력을 再創出하려 합니다.
29. 지금 市中에는 野談의 하나로 ‘웃기는 사람 시리즈’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盧武鉉이 대통령이라고 우기는 자는 웃기는 사람’이라고 조롱하는 우스개 말입니다. 권력을 마음대로 빈정댈 수 있는 民主國家에서는 가능한 弄이지만 2002년 大選결과를 否認하는 民心의 동향과 무관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先進民主國家의 정치道義와 法의 관행으로는 오래 전에 盧武鉉이 대통령 자리를 내놓고 청와대를 下直했었어야 합니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명백한 불법으로 當選되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는 資金의 불법입니다. 盧武鉉캠프는 113억 8천700만 원의 불법자금을 수령했습니다. 국고보조로 받은 123억 원과 문제의 '삼성그룹' 채권 500억 원은 별도입니다. 한나라黨이 '車떼기'로 불법을 감행한 것과 盧武鉉캠프에 의한 불법의 免除 문제는 별개입니다.
- 다른 하나는 中傷謀略으로 감행한 犯法입니다. 李會昌 후보 아들의 兵役에 관련된 소위 '兵風'과-李 후보 夫人이 '기양건설'로부터 10억 원을 수령했다고 조작한 로비疑惑- 및 李 후보가 소위 '최규전게이트'의 주인공으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조작한 陰害 등 세 건의 중상모략 사건이 모두 大法院에 의해 有罪로 판결났습니다. 大法院은 2005년 5월 소위 ‘兵風’을 단죄하면서 그 영향이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黨에 불리하게 작용했음이 명백하다”고 인정했습니다.
- 세 번째는 대선 公約의 違憲입니다. 憲法裁判所는 2004년 10월 소위 ‘新행정수도법’을 違憲으로 判決했습니다. 따라서 盧武鉉 후보에 의한 수도移轉 공약의 違憲이 확인되었습니다.
30. 盧武鉉의 大選不法은 내년 2007년의 대선 結果와 결정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그의 캠프가 받은 만큼의 不法資金과 그의 캠프가 저지른 만큼의 中傷謀略 및 그의 캠프가 건 만큼의 違憲公約은 2007년 대선 결과의 수용과 無關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그 만큼의 不法大選이 내년의 大選에서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그런 불법은 소위 ‘민주화시대’가 그 恥部와 僞善과 虛像을 드러낸 적나라한 증거로서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絞殺하는 중대한 反逆罪입니다. 그런 不法大選 결과는 拒否해야 합니다. 다시는 그런 불법을 容認하지 않기 위한 國民行動이 필요합니다. 전국적으로 벌리는 國民的 캠페인이 火急합니다.
광화문에 촛불부대를 진주시켜 'TV 쿠데타' 감행
31. 盧武鉉은 취임 후 겨우 1년 남짓 만에 헌정사상 최초의 彈劾訴追를 받았습니다. 그의 救命을 위해 광화문에 촛불部隊를 進駐시켜 ‘TV쿠데타’를 감행한 것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에 대한 악랄한 醜行이었습니다. 盧武鉉 권력의 醜行은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국을 땅 投機場으로 만들며 江南의 아파트 값을 부채질합니다. 相對的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등 위에 올라타고 大權을 잡은 權力集團이 그런 가난한 사람들을 絶對的으로 가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그런 식으로 권력의 反민주주의 反逆에 의해 무엄하게 농락당하고 있습니다.
32. 기적의 한국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써만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美國의 出血과 後見과 안보雨傘 밑에서 오늘의 한국이 태어났고 자랐다는 것을 꿈에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한국의 탄생은 6,000만 명 이상의 살육을 가져 온 인류 최대의 비극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였습니다. 美軍의 死亡者만도 40만 명 이상에 달했습니다. 美國이 투하한 두 발의 원자폭탄에 帝國 일본이 항복했습니다. 결코 우리가 獨立運動을 잘 해서 解放된 것이 아닙니다.
33. 韓國은 美國의 후견 하에 건국되어 민주주의를 지향했습니다. 蘇聯이 급조한 北韓은 기본적으로 日帝 治下보다 나을 것이 없는 전체주의 獨裁國家로 태어났습니다. 한반도의 分斷은 제2차세계대전의 戰後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국제정치의 산물입니다. 분단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고 남한 單獨政府의 출범을 욕하는 것은 홍색反逆의 상투적 手法입니다. 망한 蘇聯에 붙지 않았던 것을 욕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 北韓처럼 되지 않은 것을 恨歎합니다.
解放 당시 文盲率이 근 80퍼센트이던 우리가 自決能力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하면 커다란 錯覺입니다. 문맹을 거의 퇴치한 지금의 우리가 완전한 自決能力을 갖추고 있는지를 自問해볼 만합니다. 이 땅에서 紅色反逆이 연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그런 能力을 의심케 하는 증거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美國의 後見 덕분에 그나마 反逆의 결정적 흉한 단계로 접어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是認할 줄 알아야만 最惡의 境遇를 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흘린 피로 탄생하고 구제된 나라
34. 한국은 美國이 한반도에서 흘린 피로 救濟된 나라입니다. 스탈린의 指令과 毛澤東의 諒承 하에 金日成이 감행한 6.25南侵전쟁으로 16만 여명의 美軍 死傷者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우리 한국 사람들의 救援만을 위해 美國이 出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美國이 치른 犧牲의 代價로 우리가 살아남았습니다. 홍색 反逆은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애통하게 여깁니다. 우리를 구해준 맥아더 장군을 욕합니다. 그를 戰犯으로 취급하여 그의 銅像을 헐려고 합니다.
35. 기적의 한국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써만 일궈진 것이 아닙니다. 美國의 安保雨傘 밑에서 미국의 食糧援助로 虛飢를 면하면서 살아남아 經題를 建設했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이 존재합니다.
해방 후 근 15년 동안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軍事援助와 經濟援助는 약 50억 달러에 달합니다. 그 당시의 미국 돈 가치로 볼 때 막대한 금액입니다. 특히 그런 원조 덕분에 國軍이 創設된 것은 해방 후 지난 60년 동안의 한국 역사에서 가장 偉大한 業績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홍색 反逆은 그런 美國을 怨讐로 여기는 北韓의 전체주의 독재를 편드는 일방 國軍의 正體를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韓美同盟이 결딴날 판입니다.
36. 反美반역에 담긴 敎旨의 뿌리말은 “反美면 어때?”입니다. 盧武鉉이 내뱉은 말입니다. 그는 2002년 대선으로 가면서 그렇게 일갈하더니 대권을 쥔 뒤에는 “對等한 韓美관계의 主導權”을 공언했습니다. 權座에 올라 1년 반 동안 治世실습을 거친 후에는 “이대로 한 5년에서 10년이 가면 韓國은 미국과 적어도 국제사회에서 대등한 自主國家로서의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갈수록 可觀이었습니다. 無知·無識·無恥가 '勇氣의 어머니라는 말을 想起시키는 대목입니다.
37. 과거는 과거니깐 모두 無視하고 미국과 訣別한 후 한국이 지향하는 國家目標를 홀로 추구할 수 있다면 反美도 해보고 소위 自主外交도 해볼만 합니다. 그러나 美國이 어떤 나라인지와 미국과 한국이 기본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알고서는 그렇게 못합니다. 蹴球경기나 野球경기에서 韓國이 美國에 이기는 것을 보고 美國과 對等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錯覺하는 것처럼 되지 않는 한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게 하다간 한국의 現在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將來를 포기하는 꼴이 됩니다.
美國은 한국을 抛棄해도 危險해질 가능성은 없지만 韓國이 美國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危殆로워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니깐 韓國에 '미국사람보다도 더 친미적인 사람이 많은 것'이 한국을 위해 나쁘지 않습니다. 허지만 反美의 使徒 盧武鉉은 2005년 4월 터키를 방문했을 때 “한국 국민들 중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 사람들이 있는 게 내게는 걱정스럽고 제일 힘들다”고 투덜댔습니다. 걱정할 일도 아니고 힘들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한국외교의 최고사령탑인 盧武鉉은 한국의 反美 정치市場을 겨냥하는 정신을 팔았습니다.
北核은 국군을 종이호랑이로 만들지도
38. 소위 大聯政을 포함하여 內治에 관련된 실없는 소리가 한둘이 아닌 만큼 外交에 관련된 허튼 소리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2005년 3월 동북아의 勢力版圖를 바꾼답시고 띄운 소위 ‘동북아 均衡者’ 역할론은 100일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外交學 세미나의 主題로도 삼지 못할 것을 국가의 정책차원으로 띄우다가 亡身당한 셈입니다. 그러나 盧武鉉의 臣下들은 亡身당하는 그치지 않고 危險을 甘受해야 거나 財物을 虛費하기 十常인 것들에 怯이 없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駐韓美軍의 性格과 價値를 제대로 모르고 추진하고 있는 作戰指揮權 환수의 後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상 최강의 ‘戰爭國家’ 미국을 함부로 상대하다가 狼狽를 당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美軍基地 移轉을 포함하여 소위 '自主國防'을 위해 國防費를 늘리는 것은-아이들의 兵丁놀이가 아니므로-어리석은 짓 같이 보입니다. 진짜세계에 숙달된 권력이라면 국가재원을 浪費하는 그렇게 無感할 수 없습니다.
39. 한국에 대한 美國의 존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韓國의 國家安保입니다. 특히 北韓의 核武裝은 한국군을 종이호랑이로 만드는 惡材 중의 惡材입니다. 그러니깐 한국이 국가적 自殺을 企圖하지 않는 한 미국의 安保雨傘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편, 한국에 대한 美國의 존재를 무시하고 추진하는 한국의 自主國防은 동북아의 力學構圖를 감안할 때 國家的 消耗를 자초하는 妄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中國이나 日本을 假想敵國으로 삼아 추진하는 한국의 自主國防은 한국의 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소위 自主國防은 虛風의 빈말에 불과합니다.
역적중의 역적 金大中이 통일을 방해
40. 한국에 대한 美國의 존재는 한국의 국가안보뿐만 아니라 韓半島의 統一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민족끼리’로는 우리가 원하는 통일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한반도의 統一을 위한 最善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內部崩壞로 유발되는 變亂에 즈음하여 美國과 中國이 한국에 의한 북한의 吸收를 인정하는 경우입니다. 그럴 가능성은 現在로서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지만, 韓國의 統一外交는 당연히 그것을 目標로 追求해야 니다.
中國의 諒承을 얻는 것도 至難한 과제이지만, 美國의 同意를 따 놓은 堂上으로 여기는 것은 착각 중의 착각입니다. 中國과 美國이 한국을 信賴할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로 認定하도록 韓國이 그 외교적 成熟을 발휘하지 않고는 우리의 所願인 統一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특히 美國의 不信을 증폭시키고 있는 한국의 反美는 한국의 안보와 한반도의 통일을 볼모로 잡는 꼴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41.反逆 중의 反逆은 희대의 逆賊 金大中이 시작한 利敵反逆입니다. 이른바 ‘퍼주기’로 망하는 共産王朝를 살리고 특히 그 核폭탄 개발을 도운 嫌疑를 면치 못합니다. 한반도의 통일을 妨害한 비난도 면치 못합니다. 공산주의의 사망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가장 덜 脆弱)할 때에 평화와 소위 民族共助를 빙자하여 세습독재자 金正日에게 현찰 근 5억 달러를 몰래 건넨 것이 탄로 났습니다.
소위 ‘金剛山 관광’의 명목 하에 집어준 돈도 4억 달러가 훨씬 넘습니다. 쌀과 肥料는 으레 줘야 는 것으로 거의 제도화되었습니다.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供與한 쌀값만도 2조 8292억 원의 巨金이었습니다. ‘現代그룹’의 황태자 故 鄭夢憲씨의 自殺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소위 남북정상회담 매수를 위한 對北 비밀 송금액이 15억 달러에 달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42. 검은 돈과 유치한 同族主義를 교배시킨 反逆의 드라마를 製作하는 들어간 정확한 金額과 幕後의 眞相은 아직 베일에 감춰져 있습니다. '주기’만 하고 그에 대한 최소한의 報答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북한의 처참한 人權 실태에 냉담합니다.
-북한은 間諜만을 돌려받고 북한에 억류된 우리의 國軍포로와 拉北者의 歸還조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퍼주기’만하고 200만 명 이상의 餓死者를 내고 20만 명 이상의 政治犯을 수용한 상태에서 공개 處刑을 예사로 일삼는 것에 속수무책입니다. 북한의 人權에 대해 유엔人權委員會에서 棄權 不參하는 나라가 유엔事務總長 배출의 욕심을 낼 만큼 鐵面皮합니다. -幾萬 명에 달하는 脫北者의 인권을 돌볼 생각이 없습니다.
43. 촛불정권이 감행하는 利敵反逆의 各論的 實像은 기절초풍할 만합니다. -間諜을 아무런 代償의 條件 없이 북한에 돌려보내더니 빨치산 출신을 백주에 ‘民主化’인사로 껴안습니다.
-2002년 6월 西海교전에서 희생된 我軍에게 ‘찬밥’을 먹이고 敵에 대한 敵愾心을 버리라고 軍人들에게 가르치더니 결국 國防白書에서 북한을 지칭하던 '主敵'이라는 말을 삭제했습니다.
- 소위 '境界人'으로 자처한 朝鮮勞動黨 정치국 후보위원이 KBS방송을 포함한 한국의 언론에 공공연히 뜨고 共産黨에 충성을 서약한 間諜이 國會議員으로 당선되는 세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 北韓의 核개발 지원과 그 軍隊의 부양을 맡아온 것도 모자라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200만Kw의 電氣를 북한에 공급한다는 위험한 酬酌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 電氣가 북한의 전투력 증강에 직결된다는 것은 몰라라 합니다.
-소위 ‘南北협력기금’이란 어벌쩡한 뭉치의 稅金을 兆 단위로 늘려 더욱 알뜰한 對北 救護에 나서고 있습니다. 2006년도의 정부 예산에 계상된 것만도 1조 2000억 원을 상회하며 2007년도에는 2조 4,000억 원으로 증액하려 합니다.
北核은 외교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44. 盧武鉉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仲裁’ 용의를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의 核보유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北核의 自主的·外交的 해결을 강조해왔습니다. 그의 그런 말은 언뜻 진지하게 들리지만 그 속에 담긴 反逆의 含意를 輕視할 수 없습니다.
北核은 외교적으로 해소될 事案이 아닙니다. 국제무대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지 근 17년이나 됩니다. 북핵은 그 당시에 비해 기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북한의 독재자 金正日은 ‘核의 밧줄을 놓치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 동안 北核을 다루어 온 美國은 1994년에 북한을 상대로 소위 ‘제네바 合意’란 것을 도출해냈지만 결국 북한에 속고 말았습니다. 소위 ‘輕水爐’의 對北 공급이 休紙化함에 따라 우리가 날린 돈만도 2조 원을 상회합니다.
反테러전쟁을 치르고 있는 美國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소위 ‘6者회담’이라는 ‘마당굿 외교’를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하기야 中國의 對北압박을 기대하며 中國과 責任을 分擔(분담)하려는 핑계의 價値는 없지 않습니다.
45. 盧武鉉은 北核을 가지고 미국과 북한을 의식한 兩手겸장의 混亂戰法을 통해 反美플레이를 연출합니다. 그는 2004년 11월 12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북한이 核武器를 抛棄하지 않을 때는 外部로부터의 扶養이 단절되어 生存조차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놓고 3週 남짓 후인 12월 4일 폴란드에서는 "북한이 崩壞되지 않도록 中國이 여러 도움을 주고 있고 韓國도 붕괴를 願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은 붕괴될 可能性이 없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습니다. 가만히 듣자하니 그의 말은 결국 北韓이 ‘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를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북핵은 ‘自衛用’이라는 취지로 북한을 代辯한 그의 LA 공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연방제의 들러리를 선 연합제
46. 홍색反逆의 敎理 중에서 최고의 敎旨는 ‘북한의 崩壞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분단을 노리는 국제陰謀 즉 소위 ‘軟着陸’ 프로퍼갠더와 상통합니다. 反통일주의 利敵反逆을 위한 指導綱領으로 채택된 슬로건입니다. 2000년 6월의 소위 ‘南北共同宣言’에 언급되어 있는 북측의 소위 "聯邦提案"은 북측의 崩壞를 막기 위한 實踐 道具가 될 모양입니다. 北韓은 냉전시대부터 對南 宣傳 프로퍼갠더로 '聯邦制'를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소위 남측의 "聯合提案"이란 것은 문제의 南北共同宣言 속에 들어 갈 수 있을 만큼 남한의 國論으로 채택된 바 없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國憲節次를 無視하고 국가의 기본에 관한 것을 권력자의 恣意로 變造하는 것은 현대판 逆謀에 해당합니다. 홍색反逆의 始祖 金大中은 그런 역모를 감행했습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고 말했지만 문제의 共同宣言 속에는 정작 평화에 대한 言及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 대신 북측의 ‘聯邦制’를 위한 들러리로 남측의 '聯合提案'이란 것을 끼어 넣었습니다. “낮은 段階”이고 높은 단계이고 간에 亡해가는 국가와 멀쩡한 국가 간의 聯邦制란 도대체 言語道斷입니다. 거기에다 두 개의 構成국가 즉 두 개의 支邦이 聯邦을 구성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두 개라면 완전히 합치거나 각기 따로 존재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47. 촛불 정권의 시계 바늘이 午後를 가르치면서 ‘聯邦制’를 띄워 올리는 숨 가쁜 소리가 심상찮게 들립니다. 그들은 막상 모든 “깽판”의 免罪符로 기대했던 ‘南北對話의 성공’이 可視化되지 않는 것을 焦燥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깐 홍색反逆의 물결 속에서 ‘聯邦制’는 颱風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金正日의 答訪이 실현되지 않는 상태에서 金剛山에서라도 ‘햇볕’드라마의 續編을 공연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盧武鉉-金正日 간의 소위 ‘남북정상회담’ 드라마 말입니다. 그 하이라이트로 ‘聯邦制’를 反逆의 깃발에 꽂으려는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脚本에 성공하면 홍색反逆이 클라이맥스로 올라갈 수 있는 중대한 轉機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48. 反逆의 颱風은 ‘聯邦制’로 가는 길에 놓인 한국의 國家保安法이라는 장애물을 때릴 것입니다. 홍색反逆의 물결에 退色된 나머지 그 實效性에는 흠이 없지 않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그 象徵的 價値가 여전한 것은 國家保安法입니다. 2004년 10월 4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집결한 30만 명의 人波는 대한민국의 愛國市民들이 지난 8년 동안 反逆의 시대에 항거한 決定版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反對하는 사람들의 절규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의 喊聲으로 紅色反逆의 氣를 꺾는 데 일단은 성공했습니다.
49. 그러나 다시 국가보안법의 폐지 政局이 再燃되고 '聯邦制' 政局이 야기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합니다. 愛國세력과 反逆세력간의 大會戰에서 촛불 부대를 앞세운 ‘TV쿠데타’의 위력이 再燃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그럴 경우에 愛國세력의 勝利를 결코 壯談할 수 없습니다. 홍색反逆이 斷末魔的 氣勝을 부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 結語
50. 한국은 그 민주주의가 충분히 자라기 전에 신종 獨裁勢力에 의해 醜行(추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執權勢力은 어린 민주주의를 깔보고 홍색反逆의 물결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權主'인 帝王的 대통령은 헌법상의 受任을 無視하고 권력의 無所不爲를 신봉합니다. 한국은 絶對者로부터 爭取한 국가권력을 민주적으로 分讓한 실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民主化는 겉치레의 選擧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데 불과합니다. 참(眞)민주주의에 불가결한 制度민주주의의 조건 즉 自由言論·司法의 독립·官僚의 中立을 아직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그 세 가지가 대단히 虛弱하고 不完全 합니다.
한국에서의 國論分裂은 민주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理念 또는 空理 논쟁 즉, 右派 對 左派 또는 保守 對 進步 간의 對立 또는 差異에서 비롯되는 것과 다릅니다. 分斷國家로서의 敵對關係를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주의와 全體主義가 서로 극한적으로 싸우는 樣相입니다. 한국의 소위 保守는 개발독재로 일궈낸 기적의 결과를 지키면서 先進世界를 지향하는 實用主義집단입니다.
반면 한국의 소위 進步는 북한의 共産王朝 편에서 민족의 偶像을 신봉하는 浪漫的 集團입니다. 선진세계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그런 집단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싸움의 결과는 결국 이 쪽인가 또는 저 쪽인가로 귀착되고 있습니다. 기적의 한국이 선진세계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멉니다. 짧은 30년의 한 世代만에 工場을 건설하여 經濟는 現代化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意識과 행태가 野蠻과 未開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한국이 선진세계의 멤버십을 따는 데 가장 중요한 條件을 갖추자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約束을 지키는 사람들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法治와 制度로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은 이미 선진사회로 가는 길에 올라섰습니다. 거기로 가는 長征의 基本條件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대한 장애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신종 독재세력)에 의한 홍색反逆의 紅疫을 치르고 있습니다. 紅色反逆은 개발독재보다 더 나쁩니다. 한국을 괴롭히는 萬病의 根源은 북한의 共産王朝입니다. 궁극의 處方은 그 消滅입니다.
● 李長春 대사 약력 1940년 경남馬山 출생 4.19革命유공자(건국포장 수령) 고등고시 행정과(外交) 합격 서울대 政治學科 졸업 서울대 대학원外交學科 수료 [독일 Bonn대학교 修學/ 미국 Harvard대학교 CFIA 펠로우/일본 慶應義塾大學 방문교수] 空軍중위 예편 독일/월남/英國/제네바/뉴욕(유엔) 주재공관 근무 大統領정무(外交안보)비서관 외무부國際機構조약국장/外交政策기획실장 駐싱가포르/오스트리아/IAEA/필리핀/팔라우大使 2000년 외교부 辭職 경희대학교/명지대학교 초빙교수(國際法/외교) (現)외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