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정을 마치고 호치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부산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아직도 신부의 모습이 눈에 선한 것 같습니다....ㅠㅠ
이제 결혼식과 아쉬운 이별이 담긴 마지막 실전글을 올립니다.
(참고로 저의 결혼식은 제가 일곱그루님과 동서지간이 되는 바람에 좀 특별하고 성대하게
진행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앞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저는 호치민에서 약 500km 떨어진 “박리우”라고 하는 처가댁을 방문 하고 다음날(3월 21일 화요일) 신부의 부모님 및 가까운 친척 몇 분과 함께 호치민으로 돌아왔습니다.
처가댁이 일곱그루님형님 부인(처형)과 친척이시라 모두들 일곱그루님 댁에서 머무르게 되신 거지요.
(일곱그루님 댁은 사이공 강가에 자리잡은 호치민의 명사들이 주로 모여 사는 리조트 마을에 위치하여 있고, 서양식 풍의 3층짜리 고급 주택입니다.)
3월 22일 수요일, 신부는 드레스를 맞추기 위해 의상실로 가고, 장인어른과 몇분들은 호치민 시내에 사시는 친척분들에게 청첩장을 돌리시느라 바쁘신 것 같았습니다.
원래 정식적인 결혼식은 한달전에 미리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신랑신부가 일일이 친척댁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청첩장을 드리는게 예의인데 국제결혼의 특성상 저 대신 장인어른께서 고생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꾸벅..!)
수요일 저녁엔 결혼식 전야제로, 신부의 가족들과 일곱그루님 댁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 및 맥주를 간단히 하게 되었고, 늦게까지 계속된 만찬 후에 다음날 결혼식을 위해 저는 일곱그루님의 오피스텔로 혼자 돌아왔습니다.
(신부는 일곱그루님댁에 가족들과.....ㅠㅠ)
베트남에서의 결혼식은 하루종일 진행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선 오전 8시경 결혼식이 있음을 알리는 꽃단장으로 장식된 신부댁(일곱그루 형님댁)에 가서 간단한 사진 촬영과 패물 교환, 신랑 신부 부모님 인사등의 의식을 치루었습니다.
약 30분간의 오전 결혼식을 마치고는 전체 가족이 야외 촬영을 하러 “쑤이 띤”이라고 하는 놀이공원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저는 야외 촬영에 왜 이 많은 가족들이 다 가시나 하고 의아해 했는데, 이 친척분들이 시골에서 올라오신 터라 호치민 구경삼아 일곱그루형님의 배려로 놀러가시는 것이라 하더군요.
세 명의 사진 및 비디오 촬영기사를 대동하여 저와 신부는 땀 뻘뻘 흘리며 오전 내내 촬영을 하는 동안, 제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은 공원 구경을 다니시고.....ㅠㅠ
사진 촬영은 한국에서의 사진 촬영과 거의 다를바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멋진 조형물 앞에서 포즈잡고, 또 걸어가는 모습도 촬영하고...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의 날씨가 평균 30도를 넘는지라 촬영과 싸우나를 동시에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선배님들은 담생 공원에서 촬영을 하셨을 것인데 저는 쑤이띤 공원에서 하게 되었고, 이 공원도 담생과 비슷하다고 하며 놀이 시설과 악어공원,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 하천과 여러 가지 조각상등으로 잘 꾸며진 놀이 공원이었습니다.
오전 12시까지 진행된 촬영을 마치고 한시반경 다시 일곱그루님 댁으로 돌아와서는 저녁 6시로 예정된 결혼 피로연을 위해 휴식을 취하다가 5시 30분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피로연장은 호치민 시내에 위치한 리사 호텔이란 곳으로 일곱그루형님께서 “빽”을 동원하여 특별히 마련해 주신 장소였습니다.
결혼 피로연의 순서는 신랑신부 입장과 양가 부모님 입장, 사회자의 소개 및 인사, 샴페인 터트려 잔에 붓기와 케잌 절단, 초대 가수들의 노래 등 순서는 다른분들의 과정과 다를바 없을 것이나, 제 처갓집의 경우 호치민에 친척이 많으셔서 아마 봉사방 역사상 최대인원(?)인 총 8테이블(한 테이블당 10명씩)의 좌석이 꽉 찼었습니다.
더군다나 교포 사업가이신 정사장님께서 잡채도 손수 만들어 주시고 김치와 무지개떡도 별도로 주문하여 하객들에게 대접하였으니, 손아래 동서를 위해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해주신 일곱그루 형님에게 제가 큰 신세를 진 것 같습니다.
가수들의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저는 처와 함께 8개의 테이블을 두 번씩 돌며 베트남식 건배인(뫁, 하이, 바, 요~!)를 셀수 없이 외치며 넘치는 맥주잔을 비워나갔습니다.
약 2시간에 걸친 결혼 피로연 행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난후 다시 신부댁(일곱그루 형님댁)으로 가서 맥주 한잔 더...
신혼 첫날밤은 뫁, 하이, 바, 요~!의 외침과 함께 그렇게 저물어 갔습니다.
마지막 날인 금요일엔 신부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그동안 못했던 쇼핑도 하고 반탄시장(사이공마켓) 구경도 하고, 또 오후엔 어머니와 저의 귀국을 배웅하시고 고향으로 돌아가시겠다며 굳이 남으신 장인장모님, 처형 부부와 함께 전쟁박물관 구경도 하며 보내었습니다.
밤이 깊어지고 점점 귀국해야할 시간이 다가오자 왜 그리도 시계바늘은 빨리 흘러가는지...
신부와 꼭 맞잡은 손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제 처도 그 아쉬움을 느끼는지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한없이 길 것만 같던 6일간의 여정이 왜 이리도 빨리 흘러갔는지, 6일 동안의 일들이 다시한번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낯선 나라에 낯선 경험을 하기 위해 베트남에 첫 발을 디딘 순간부터 힘겨웠던 선택과 결정의 순간, 그리고 지금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 행복감...
미소짓는 아내의 얼굴과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뒤로하면서 공항에 들어오면서도 그렇게 절망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역시나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한 선택과 도전을 시도한 보람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글을 읽고 베트남결혼을 준비하실 또 다른 회원님들,
베트남 결혼은 절대 한국에서 하다하다 안 되서 할 수 없이 한다는 생각만은 버려주시기 바랍니다.
언어의 장벽만 극복한다면 상대적으로 비교해 볼 때 베트남 여인들이 어른을 공경하고 모시는 점, 남편과 자녀에게 헌신하는 점, 진정으로 가족과 사람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 점등 한국여인들 보다 훨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들이 비록 한국말과 인터넷을 모르고, 화장법과 가전제품 사용법을 모른다는 것은 조금씩 배우면 되는 사항이지만, 한국여인들이 시부모 공경할 줄 모르고, 시댁에 가기전 3일전부터 배가 아프고 몸살이 나기 시작하며, 시부모 모시려면 이혼도 불사하겠다고 말하는 그런 사고방식은 아무리 가르쳐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첫댓글 벳남은 내리사랑밖에 모르는것 같아요~윗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게아니라 지대여 산다는것이 벳남에서는 맞을 겁니다!ㅎㅎㅎㅎ
축하 드립니다.. 서류를 빨리해 한국에 기한내 오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자원봉사방에서 추구하는 베트남결혼입니다 베트남결혼은 좋은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이 돼는데... 좋은 맞남 .. 세상사람 사람들의 근본인 보람됀 결혼생활 확신하면서 축하 드립니다.. 고생 많이 하솄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 좋와보입니다
축하만땅입네다요..ㅎㅎ
요근래 일곱 그루님이 맞서서 하는 중에 하객이 제일 많았습니다. 전에 몇백명 하객오신분 많습니다..ㅎㅎㅎ
축하 드림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사세요 올리신글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형님 축하드려요^^
축하.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