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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삶을 부르는 3가지 원칙
출애굽기 13장 1~22절
성경에서 하나님을 신실하신 분
미쁘신 분으로 묘사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미쁘신 이유는
모두가 절만을 말하고 끝을 말할 때
우리에게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를 보면
발람선지자와 발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에 말씀을 드렸듯이 모압 왕 발락은
바산왕 옥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 보다 강한 왕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는 힘으로 능으로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발람 선지자를 데려다가 3번에 걸쳐서 저주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3번에 걸쳐서 이스라엘의 끝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땅히 저주할 모습을 3번에 걸쳐 보였지만
하나님은 발람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1) 하나님의 백성은 저주와 주술로 헤할 수 없다는 것이고
2)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타락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은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응답이 없어서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는
이것을 응답하지 못하는 밭의 문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5~8절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 동일하게 은혜가 부어지는데
그 밭이 사람에게 함부로 밟힐 때 길가가 됩니다.
2) 동일하게 은혜가 부어지는데
그 밭이 뿌리가 없음으로 믿다가 쉽게 약속을 잃어버릴 때
바위 위의 마른 밭이 됩니다.
3) 동일하게 은혜가 부어지는데
그 밭이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함으로
가시밭이 됩니다.
이처럼 같은 품종의 씨앗이라도 어느 밭에 뿌려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응답입니다.
결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변화된 삶을 부르는 3가지 원칙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장 ~2장 환경을 배열하시는 하나님
잊었던 하나님을 기억하여 부르짖게 하기위해서 환경을 배열합니다.
출애굽기 3장~11장 내려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부르짖을 때 약속을 기억하시고 내려오십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방법은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신앙의 출발점 유월절
신앙이 출발되기 위해서 정체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공급처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장~11장까지가 은혜라고 한다면
출애굽기 12장 이후는 응답, 결단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결단하고 응답한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출애굽기 13장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첫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초태생은 하나님 것이므로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장자 죽음의 재앙에서
이스라엘의 초태생은 안전하게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결단하고 응답하는 성도는
이제부터 자기의 원칙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원칙을 가지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첫 번째 원칙이 바로 첫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많은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으시고 왕과 같은 제사장 민족으로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첫 열매가 되었다는 것은
세상 중에서 믿음의 사람을 으뜸으로 삼으셨다는 것이고
장자로 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장자에게 3가지 특권을 주셨습니다.
1) 왕권 2) 제사장권 3) 2배의 몫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그 원칙을 지키지 않음으로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버린 원칙 중 하나가
첫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월절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었습니다.
이는 430년간 우상을 섬기며 살았던 이스라엘의 장자들도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이신 식양대로 그들이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므로
어린양의 생명이 대신하여 죽고 그들의 장자는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사건 이후의 이스라엘 모든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을 지난 백성과 하나님과의 첫 번째 계약이었습니다.
이 약속을 지킬 때
1)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후사로, 상속자로, 장자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지 않음으로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으뜸으로 드려지지 않음으로 으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첫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으뜸으로 모시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최고, 최상의 자리에 모시며 사는 삶을 Lordship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으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첫 결단은
구원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예배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상 2장 3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성경은 예배자의 삶에 대해서 으뜸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을 드릴 때
삶의 중심을 드리는 사람과 주변을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으뜸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일을 시작할 때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으뜸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일주일의 으뜸을 주일로 지키는 사람이 으뜸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일주일의 첫 시작이 주일이며 일주일의 중심이 주일입니다.
그 날을 구별되어 드리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으뜸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출발했는데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한주의 시작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
결코 삶의 으뜸을 드리는 삶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배자의 삶에 대해서 으뜸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물질을 드릴 때
1) 나의 첫 소산을 주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 실업가인 아더 마다스 장로는
미국 10대 재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다스 장로는 많은 재산을 선교 사업을 위하여 사용했는데
선교재단을 위하여 7천7백억 원을 헌금했고
한국 대학생 선교단체에 5억5천만 원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그에게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된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5가지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째는 주일 성수요,
둘 째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요,
셋 째는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이요
넷 째는 가정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시는 것이요,
다섯째는 시간과 돈을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알버트 하이드는
바르는 맨소래담을 발명하여 큰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YMCA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했고
87세로 죽을 때 150억 원이 넘는 돈을 선교 사업으로 헌금했습니다.
요즘 레위기를 읽고 다양한 책을 보기도하고 묵상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반기 설교를 레위기로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대 제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제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첫째 신분에 따라서 드려야 하는 예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지도자는 지도자의 신분에 맞게 드려야 합니다.
둘째 재물을 각각 다르지만 그 효력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소를 드렸든 양을 드렸든 비둘기를 드렸든
하나님께 그 신분과 형편에 맞게 재물을 드렸다면
하나님은 그 재물과 그 사람을 받으시고 동일한 효력을 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수주일과 온전한 시간과 물질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은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스피릿입니다.
첫 것을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무조건 첫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삶을 부르는 3가지 원칙
둘째 유교병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커밍아웃 했다는 것은
단지 믿는다는 고백 외에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선포입니다.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1) 공급원을 찾는 것입니다.
2) 나의 출발을 막는 생각과 삶의 방식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1) 멋진 플랜이 있고 로드맵이 있고
2) 신앙 속에서 은혜를 받았어도
공급원이 사라지면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노래하고 소고를 치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서 기대가 무너지니까?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은혜가 없어서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가 멈추고, 응답이 멈추는 이유는
공급처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3장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
누룩 = 죄를 말합니다. = 누룩을 보이지 말라 = 죄를 거절하는 삶을 살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공급을 받습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은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터진 웅덩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는데
1)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
2)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정의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무엇 합니까?
마음의 웅덩이가 터져서 진리를 담을 수 없는데
약속을 들으면 무엇 합니까?
약속을 담을 자세가 없는데
은혜를 받고 복을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를 거절 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출애굽기 1장에서 11장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백성이
출애굽기 12장을 통해서 결단하고 응답하기로 했다면
이제 첫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드려야 합니다.
둘째 죄를 거절 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삶을 부르는 3가지 원칙
셋째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13장 21~22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광야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얼마 전 엄홍길 대장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영화 히말라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에베레스트가 약 8848M인데
박무택 대원이 조난 당 한 곳이 8750M라고 합니다.
그리고 백준호(역할:김인권)씨가 450M아래 캠프에서 구조하러 갔다고 합니다.
450M를 밤새 올라갔는데 11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나운서가 엄홍길 대장에게 휴먼원정대를 통해서 박무택 대원을 찾고
데리고 내려오다가 끝내 못 데리고 오고 그곳에 무덤을 만들었는가 물었습니다.
그 때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이
해발 8천 미터 정도에서는 아무리 건장한 사람도
2~3걸음 걷고 20~30분 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출애굽 백성을 생각했습니다.
광야 낮에는 어떠한 식물도 자랄 수 없을 만큼 뜨겁게 태양이 내려 쬡니다.
밤에는 온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위가 몰아칩니다.
그때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그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구름 기둥만 좇았고
하나님이 아니라 불기둥만을 좇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르는 말은
현상을 따르고 은혜를 따르라는 말이 아닙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르라는 말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 경험을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의 지식을 의존하지 말고 내 말대로 따라오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8장 5~6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사망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상실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좇지만 말씀을 좇지 않고
구름기둥은 좇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지 않고
만나는 먹지만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사는 것 같지만 사망한 자이고
생명이 있는 것 같지만 죽은 것입니다.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현상과 눈에 보이는 은혜만 좇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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