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맞은 편에 걸려 있는 액자에 눈길이 멎었다.
한 자 한 자 따라 읽어가다가,
나도 몰래 무릎을
치고 말았다.
아, 하고.
글도 글인 데다
글씨도 좋다.
방정한 해서로 써 놓았으면서도
꼭 매이지 않고 툭 트인 듯
고졸한 맛이 있다.
마치 사랑방에
깎은 밤처럼 단정히 앉아서
책 속의 글을 읽던 선비가
어느 순간 고개 돌려
뜨락에 핀 맨드라미며
눈앞을 날아다니는 노랑 나비며
닭 꼬리 깃털을 날리게 하는 바람이며
유유히 흐르는 새털구름이며
변함없이 앉아 있는 먼 산이며......
무수히 펼쳐진
세상 속의 글들을
지긋이 읽고 있는 모습이다.
밥상에 턱을 괴고
액자를 무연히 바라다보고 있자니
액자 속의 글자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다.
그리하여
평범하면서도
드물디드문
한 생애를
눈앞에 활극처럼
펼쳐 보이는 것만 같다.
외물에 끄달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한세상 건너며
빈부도 뛰어넘고
영욕도 뛰어넘고
생사마저 뛰어넘어,
이제는 그저
산수간을 거니는
어떤 이의 뒷모습......
누군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다섯 그루 버드나무를
심었던 사람인 듯도 하고
연꽃을 사랑했던
사람인 듯도 하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릴 적 보았던
그 사람인 듯도 싶다.
하얀 눈밭에
붉은 꽃 같던 팔 하나
떨구었던
사람,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여
도저한 경지에 이르렀던
그 사람,
마침내 모든 욕심 버리고
표표히 산으로 떠나가던,
결국엔 떠나가지만
제목에서는 언제나 돌아왔던,
바로 그 사람,
몇 번이나
어린 꿈속에 들어와
산 너머 산,
그 너머 산
이야기를
들려주던
바로 그 사람
돌아온 외팔이,
그 이름
왕우......
숟갈을 내려놓고
다시 글을 들여다본다.
글자들은
좀 전에 자기들이 부려놓은 요술을
알지 못하는 양
시치미 뚝 떼고
액자 속에 얌전히 앉아 있다.
그들은 맨 처음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居之平安爲福
萬事分定必知足......
마음 편히 사는 것이 복이요
모든 일은 분수가 정해진 것
족함을 알아야 할지니......
................
인용한 글은 심주(沈周:1427~1509)의 안거가(安居歌)임.
(2006. 3. 1.) |
첫댓글 퀴즈를 낸 것 같은데, 무식해서 누구 얘긴지 모르겠소이다. 힌트를 쪼매만 더 주시우.
국민학교 5학년 때 돌아온 외팔이라는 영화를 오스카 극장에서 봤다우. 그때 배우가 대만의 왕우인데, 이소룡 선배뻘이 되지요. 그 영화 보고서리 왕우한테 뿅 간 이야기ㅡㄹ 귀신 씨나락 까먹듯이 한 거라우.~~~(다섯 그루 버드나무는 도연명이 오류선생전을 지어서 그랬고 연꽃은 주렴계가 애련설을 지어서 슬쩍 버무려 봤던 것이라우. 에구.....전체적으로는 책만 책이 아니라 세상 만물이 다 책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는데 잘난 척만 하다 만 것 같구랴. 에겅. ㅋ 다 들통났네구랴~)
'돌아온 외팔이'라! 그게 영화제목이었단 말씀이구랴. 정말 종횡무진 안 건드리는 분야거 없네요. 그저께 라디오 들으니 '문화 유목민. 조영남'이란 말이 들려서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홍차님도 그 호칭이 어울리겠구려.
에궁......아는 것도 확실치 않구 모르는 건 하나도 모른다우.~
아하..왕우 몇십년만에 머리에 떠오릅니다. 왕우 이야길 옆 학우와 했었는데, 이제 왕우 얼굴은 어슴프레하나 학우의 얼굴은 없어졌네요.
국민학교 5학년 때 왕우 꿈 많이 꾸었지요. 한번은 꿈에 나타나서 악수까지 했는데 "저는 왕우입니다." 하고 자기 소개를 하던 왕우, 저를 아주 숙녀 대접해 주어서 기분이 좋았던 그 꿈이 지금도 생각나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