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John Knox)는
유럽 대륙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이 영국 교회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공헌을 했습니다. 녹스의 개혁 운동은 청교도 운동으로 이어졌고,
17세기 많은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미국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형성했습니다.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전도유망한 신학자였던 녹스는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을 위해서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세인트앤드루스(St. Andrews)의 개신교 반란에 동조했다는 죄목으로
프랑스 갤리선의 노예로 2년간 복역했을 뿐 아니라,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근거한 개혁 운동을 위해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기독교 사상가 C. S. 루이스는 용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기는 단순히 수많은 미덕(virtue)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시험의 순간, 즉 가장 첨예한 현실과 마주치는 순간에 모든 미덕이
하나같이 취하는 형태이다.” 하나님의 선하고 정의로운 뜻이
현실 사회에서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절름발이를 치유했다는 이유로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 앞으로 끌려왔습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는지
심문했을 때, 베드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다”고 답했습니다(행 4:10).
베드로가 담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대제사장은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종교 권력을 장악했던 공회였지만, 절름발이의 치유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소식이 퍼져나갈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는 권력자들과 달리,
아무런 권력이 없던 베드로는 매우 담대했습니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행 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