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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신약성서와 성전의 관점에서 본 성심 공경
A. 복음에 계시된 대로, 구원의 신비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
1. 구약성서를 넘어서는 신약성서의 우수성
32. 그러나 우리는 오직 복음서들에 의해서만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맺은 새로운 계약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모세가 이스라엘과 하느님 사이에 맺은 계약은 예레미아 예언자가 밀 예언해 놓은 계약과 징표이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 우리는 진실로 새 계약은 강생하신 말씀의 업적과 우리와 화해시키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설정되어 완성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계약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고상하고 더 굳건하게 이루어졌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계약은 처음처럼, 염소와 송아지들의 피로써가 아니라, 이성(理性)이 없는 평화의 봉헌물들이 미리 예고하여 준 강생하신 말씀의 거룩한 피로써 체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세상의 죄를 없애주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로다.
33. 왜냐하면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습니다.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라고 이르신 복음사가 요한 사도의 말씀에 따르면, 크리스찬 계약은 옛 계약보다 훨씬 더 명확히(aperte) 예속(servitudo) 공포에 의지하여 계약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그의 자녀들 간에 있어야 하는 그러한 우의(amicita)에 의하여 체결되었고, 또한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의 보다 풍부한 부르심으로 양육되어 굳건하게 되었음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4. 경애하는 형제 여러분, 본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또 최후 만찬 때에 그분의 가슴에 기대어 있던 그 제자의 말씀에 따라 강생하신 말씀의 무한한 사랑의 신비에로 인도되었기 때문에 그 신비가 복음에서 반사하여 그 신비를 밝혀주는 빛에 의해 밝혀진 이 지극히 달고도 단 신비 관상(觀想)에 잠시 머물며, 이방인들의 사도께서 에페소인들에게 편지를 쓰실 때에 말씀하시는 그 뜻을 따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의무이자 구원에 유익하다고 생각됩니다 : 그리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 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깊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구원의 신비에 나타난 이중의 사랑
하느님의 구속 신비는 일차적이고 본질적인 이유 때문에 사랑의 신비입니다: 이 신비는 사랑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봉헌된 십자가의 제사가 인류의 죄 때문에 응당 갚아야 하는 가장 풍요롭고 무한한 속죄를 드리게 된 천상 아버지께 대한 그리스도의 참 사랑의 신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과 순종으로 고난을 참아 받으심으로써 전 인류의 모든 죄의 보상이 요구하는 그 이상의 것을 (아버지) 하느님께 보여 드리셨습니다.
36. 그밖에도 (이 신비는) 인류에 대한 지엄하신 삼위일체와 구세주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인류는 어떠한 모양으로도 자신의 죄를 만족하게 속죄하는데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지극히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얻으신 측량할 수 없는 풍요로운 공로를 통하여, 처음에는 지상 낙원에서 아담의 가련한 뜻 때문에, 다음에는 선민의 헤아릴 수 없는 죄 때문에 침해를 받게 된 하느님과 인류간에 맺은 우의(友誼, amicitia)의 계약을 회복하여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37. 그러므로 적합하고 완전한 중재자이신 구세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향한 당신의 아주 뜨거운 사랑 때문에 인류의 의무와 채무(빚)를 하느님의 정의에 온전히 일치하게 하셨으므로, 모든 것을 온전히 초월하는 우리 구원의 신비를 이루어 주시는 하느님의 정의와 하느님의 자비 사이에 있는 기묘한 일치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확실한 주역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천사적 박사께서는 다음의 말로 지혜롭게 말씀하십니다: 인류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하여 구원되어야 했다는 것은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정의에 의당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으로 인간의 죄를 속죄하실 수 있었으므로 정의에 합당했다. 즉 인류는 그리스도의 정의를 통하여 구원되었다. 그러나 인류는 자기 스스로 인간 본성의 모든 죄를 위하여 속죄할 수 없었으므로 자비에 합당했으며,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당신의 아들을 속죄자(속량자)로 주셨다. 이것은 그가 속죄 없이 죄를 사하여 주는 것 보다 더 풍성한 자비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 ‘그러나 한없이 자비스러우신 하느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셨다.’
3.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성
38. 그러나 우리가 죽을 인류에게 가능한 데까지, 천상 아버지와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인류에 대한 강생하신 말씀의 놀라운 사랑의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모든 성인들과 더불어 가능한 데까지 실제로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는 그분의 사랑이 오직 영적인 것으로만 알아서는 안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우리 선조들과 히브리 백성을 사랑하신 사랑은 이러한 (영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시편과 예언서와 애가 안에서 우리가 읽고 있는 아주 인간적이고, 가정적이며, 자부적인 사랑의 표현들은 하느님께서 인류를 사랑해오신 가장 진정하고 온전히 영적인 사랑의 상징들이고 표지들이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의 사랑을 기술하고 있는 복음과 사도들의 서간과 묵시록의 제목들에 나타나있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뿐 아니라, 인간적인 사랑의 감정을 표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은 가톨릭 이름으로 입적되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아주 확실합니다.
39.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다음의 아주 엄격한 말로 사도 요한에 의해 단죄된 이미 초세기 크리스찬이란 이름을 가진 어떤 이교인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가시적이고 허황한 육체를 취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죽이는 자이고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말씀은 실로 지극히 깨끗한 동정녀 마리아의 품안에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신 개인적이고 순전하며, 완전한 인성(人性)을 당신의 신적 위격(神的 位格)에 일치시키셨습니다.
4.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 본성 위에 있습니다...
40.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은 자신에게 일치시킨 그 인간 본성(인성, 人性)에는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셨습니다. 실로 그분은 분명히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에 어떤 모양으로도 감소되지 않고 또 어떤 모양으로도 바꾸어지지 않은 인성(人性)을 취하셨던 것입니다. 즉 지성과 의지, 그밖에 내적이고 외적인 인식 관능들과 감각의 욕망과 자연적인 모든 충격을 갖춘 인간 본성을 취하셨던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 모든 것들을 로마 교황들과 세계 공의회에 의해서 준엄하게 결정되고 확고하게 된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신 안에 온전하시고 우리 안에 온전하신 분(Totus in suis, totus in nostris).신성으로도 완전하시고, 인성으로 완전하신 분(perfectus in Deutate et idem perfectus in humanitate). 완전히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시며, 완전히 사람이시고 하느님이신(totus Deus homo, et totus homo Deus).
5.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심장으로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에 고유한 모든 감관(affectio)들을 가지고 있고 다른 모든 감관들 중에 사랑이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진정한 육체를 취하셨다는 것은 어느 모양으로도 의심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그분은 우리와 같은 물리적 심장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도 전혀 의심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육체의 가장 탁월한 이 기관(지체) 없이는 이른 바 확실이 감정(애정)에 대하여 거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의 위격적으로 일치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의심없이 사랑 때문에 그리고 그밖에 다른 감정들의 충격 때문에 뛰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감정의 충격들은 신적 사랑으로 가득찬 인간적 의지를 지니고 있고, 또 아드님이 아버지와 성령과 상통하는 무한한 사랑을 지니고 있기도 하여, 이 세 사랑들 간에는 어떤 대당(對當) 혹은 불화(不和)가 결코 있을 수 없을 만큼 온전히 일치 화합하였던 것입니다.
사실상 본인이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참되고 완전한 인성(인간본성)을 취하시어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게 수난 당하여 관통될 수 있었다는 것, 만일 그것이 위격적이고 본체적인 일치의 관점에서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치의 보충(complementum)이라는 관점에서 인류 고통 속에서 발생하는 빛으로 제기되어 고찰되지 아니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유다인과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처럼, 어떤 이들에게는 과연 악한 표양이 되고 어리석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43. 왜냐하면 가톨릭 신앙에 대한 권위 있는 문헌들은 성서와 온전히 일치하여, 하느님의 독생 성자께서 고통을 당하여 죽을 수 있는 인간 본성(인성)을 취하시어 그로 말미암아 인류구원 사업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는 최상의 제사를 봉헌하시기를 원하셨다고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이방인들의 사도께서는 다음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거리낌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당신을 찬미하겠습니다.’ 또 ‘나는 그분을 신뢰하겠습니다’하고 말씀하셨고, 또 다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이 나와 함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은 다 같이 피와 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께서도 그들과 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오셨다가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악마를 멸망 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점에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아져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롭고 진실한 대사제로서 하느님을 섬길 수가 있었고 따라서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 주실 수 있으십니다.”
B. 교회 교부들의 가르침
1. 사랑의 신비는 강생과 구원의 기반이며 정점이다.
44. 또한 거룩한 교부들은 천상으로부터 계시된 교리의 진실한 증인들로서, 사도 바오로께서 강생과 구속의 신비들은 하느님의 사랑의 시작이자 정점이고 아주 명확히 주장하신 것을 아주 분명하게 확인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교부들의 기록 안에는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보살피시고 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감각적인 사랑도 우리에게 명확히 나타내어 전하시고자 완전한 인간 본성(인성)과 유한하고 깨지기 쉬운 우리(인간) 육체를 취하셨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5. 성 유스띠노는 이방인들의 사도의 음성에 반향이나 하듯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낳음을 받지 않으신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말씀을 공경하고 사랑한다. 이미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시고, 우리 고통의 참여자가 되셔서, 그 고통을 치유하는 약을 만들어 주셨다.”
46. 또한 세 명의 가파도치아의 교부들 중에 첫째인 성 바실리오는 그리스도 안에는 참되고 거룩한 감정(sensuum affectus)들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 “주께서 참되고 상상이 아닌 강생의 증거를 위하여 자연적인 감성(affectus naturales)들을 취하셨음이 확실하다. 반대로 (그분은) 더럽히지 않는 천주성에 합당하지 않는 것들을 배척하시고, 또 우리 생애의 깨끗함을 더럽히는 그릇된 감정들을 취하지 않으셨다는 것도 확실하다.”
47. 마찬가지로, 안티오키아 교회의 빛이신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구세주 하느님께 관련되어 있는 감각들의 움직임들은 분명히 그분이 온전히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는 것을 명백히 입증하는 것이었음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 “만일 그분이 우리의 본성에 속하지 아니했더라면, 그분은 거듭 근심에 사로잡히지 않으셨을 것이다.”
48. 라틴 교부들 안에서는 오늘날 교회가 위대한 학자로 받들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하느님의 강생하신 말씀께서 지니고 계셨던 감각적 움직임과 감정들은 본성적 원리인 위격적 일치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렇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 “그분은 영혼을 취하셨으므로 영혼의 고통도 취하셨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이셨다는 그 사실로 인하여, 동요되거나 죽으실 수도 없으셨기 때문이다.”
49. 성 예로니모는 이러한 애정에서부터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는 그의 중요한 논증을 이끌어 냈습니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이) 취하신 인간 본성의 진리를 입증하시기 위하여 참으로 슬퍼하셨다.
50. 성 아우구스티노도 강생하신 말씀의 애정과 인류 구속의 목적 사이에 있는 이유들을 특별히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인간 연약성의 육체와 인간 육체의 죽음과 같은 이러한 인간 연약성의 감정들을 필연적 조건(necessitas conditionis)으로가 아니라, 자비로운 의지로 받아들이시어, 자신 안에 자신의 몸인 교회가 이루어지게 하셨으므로, 그 몸의 머리가 되시기에 합당하시다. 그분의 지체들은 당신의 거룩하고 성실한 이들에 속한다. 그 몸에 속한 지체들이 인간적인 시련 중에 슬픔을 받고 고통을 당하게 되면, 자신들이 주의 은총에서 떠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은 죄가 아니고 지체의 표지로서, 마치 합창대가 소리를 내게 하는 악보와 조화를 이루듯이, 그분의 몸은 그분의 머리에서 배워야 했다.”
51. 보다 간결하면서도 덜 효과적이지 않게 말하는 다음의 말씀들은 성 요한 다마세노의 교회에 대한 교리를 분명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온전하신 분이 나를 온전한 자로 취하셨고, 온전하신 분이 온전한 자에게 일치되어, 모두에 구원을 가져오게 하셨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지 않다면, 취하지 않은 것은 치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취하셨다.”
52. 그러나 성서와 교부들의 인용구들과 또 본인이 인용하지 않고 있는 이와 비슷한 적지 않은 구절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정과 애정을 부여받으셨고, 따라서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완성하기 위하여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지만, 그분의 물리적 심장을 그분의 무한한 상징으로 지시하기 위하여 그분의 물리적 심장에 이러한 감정들을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분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하여
인간본성 위에 있다.
53. 그러나 복음사가들과 그밖에 거룩한 저술가들이 우리 구세주의 마음은 생생하고 또 우리의 마음과 같은 감각 관능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그분의 영혼의 여러 가지 움직임과 감정들과 그분의 (인간적이고 신적인) 두 가지 의지의 아주 뜨거운 사랑으로 두근대고 박동하고 있다고 명확히 기술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가끔 구세주의 신적 사랑과 그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감정들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입과 말과 행동 안에 나타나 있는 대로 기쁨, 즐거움, 근심, 두려움과 노여움 등입니다. 흠숭(欽崇)하올 우리 구세주의 얼굴은 마치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들처럼 그분의 마음을 실어와 부딪히고 자극시켜서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 주는 감정들의 아주 확실한 표지(index)이자 거울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심리학과 그 심리학의 결과가 참되다는 것은 여기서도 유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천사적 박사께서 일반적 경험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분노의 동요는 외적 지체에까지 미치게 되어, 주로 마음의 자취를 더 분명히 반사하는 눈, 얼굴, 혀와 같은 지체에까지 미치게 된다.”
C. 강생하신 말씀의 심장은 그분의 삼중 사랑의 상징이다.
54. 그러므로 강생하신 말씀(그리스도)의 마음은 의당 구세주 하느님께서 영원하신 아버지와 항구하게 전(全) 인류를 사랑하시는 삼중의 사랑의 중요한 표징이자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55. 즉 그분의 마음은 그분이 아버지와 성령과 상통하고 있는 신적 사랑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취하신(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그분 자신 안에서만, 잠시 지나가는 깨지기 쉬운 인간 육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난 그 사랑의 상징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는 하느님의 모든 완전성이 육적으로(corporaliter)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6. 그밖에도 그분의 마음은 그분의 마음 안에 주입(注入, infusa)되어 그리스도의 인간적 의지(意志)를 부요하게 하고 또 그분의 행위가 가장 완전한 두 가지 인식, 즉 지복직관(至福直觀, Scientia beata et indita) 혹은 주부적 인식 (注賦的 認識, scientia infusa)에 의해서 밝혀지고 지도되는 지극히 뜨거운 사랑의 상징인 것입니다.
57. 끝으로 그분의 마음은-보다 자연적이고 직접적으로-감각적 사랑의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진정 다른 모든 사람들의 육체들보다 훨씬 더 아주 완전한 느낌과 감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D. 결론
1. 우리가 우리 구원자의 마음을 공경할 수 있는 방법들
58. 그러므로 성서와 가톨릭 신앙의 가르침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 안에는 최상의 화목과 일치가 있고, 또 그분은 우리 구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당신의 삼중의 사랑을 분명히 지시하셨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으므로, 우리가 구세주 하느님의 마음(cor)을 가리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는 반영(imago)이자 우리 구속의 증거(testis)이고 또 우리가 우리 “구세주 하느님의 품(amplexus)에 까지 올라가는 신비로운 사다리로 관상하며 공경할 수 있음이 아주 명확합니다.
2. 그가 행한 모든 것은 삼중의 사랑의 증거였다.
59.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과 행적, 가르침, 기적, 특히 성체성사의 설정, 십자가의 참혹한 수난과 죽음, 당신의 거룩하신 어머니를 우리에게 주심,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세우심, 사도들과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심과 같은 우리를 위한 그분의 사랑을 명확히 입증해 주는 일, 이 모든 것들은 그분의 삼중적 사랑의 증거들로 생각해야 한다.
3. 우리는 그분의 심장 박동을 묵상해야 한다.
60. 그분 자신은 복음사가들께서 “예수께서” “마쳤다”하고 큰소리를 지르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숨을 거두셨다고 증언하고 있는 그 최후 순간까지 그분이 지상적 여정(통치)의 때를 헤아리고 계셨던 것처럼 생각되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심장의 박동을 지극한 애정으로 묵상해야 한다고 본인은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때에 그분의 심장 박동은 멈추었고, 그분의 감각적 사랑은 그분이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까지 중단되었습니다.
4. 그분의 심장은 삼중 사랑을 상징하기 위해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육체가 영원한 영광의 상태를 입어 죽음의 승리자이신 구세주 하느님의 영혼과 다시 결합된 후에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마음이 침착하고 안온한 충격으로 움직여지는 것을 결코 그치지도 또 멈추지도 않으실 것이며, 또 역시 하느님의 아들의 사랑이 당신의 천상 아버지와 일치되고 또 완전한 권리로 자신이 신비적 머리가 되시는 전 인류 공동체와 일치되게 하는 그분의 삼중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결코 중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III
구속적 임무에 나타난 예수 마음의 심오한 영향
A. 성서에 나타난 신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의 증거들
62. 경애하는 형제 여러분, 이제 본인은 다음의 신심적 고찰로 풍성하고 유익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기 위하여, 그분의 마음이 죽을 생애 과정을 지나며 (죽음에) 참여하여 주심으로 나타내 주셨고, 지금도 나타내 주시며, 또 장차 영구히 계속 나타내 주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이고 인간적 여러 가지 애정(愛情, affectiones)들을 잠시 간단히 묵상하며 관상해 보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빛은 특히 복음서에서 우리에게 비추어 줍니다. (우리는) 그 빛에 비추임을 받아 굳건해져, 하느님의 마음의 지성소(至聖所, Sacrarium)로 들어갈 수 있고, 이방인들의 사도와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인자하심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풍요로운 은총”을 탄복하고 있습니다.
1. 그의 숨겨진 삶 안에서
63. 동정녀 마리아께서 “예”(Fiat)란 숭엄한 말씀을 드러내신 후, 예수 그리스도의 흠숭하올 마음은 인간적이고 신적인 사랑으로 기다려졌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을 이렇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의 제물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단 한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64. 같은 모양으로 그분은 나자렛 집에서 당신의 사랑스런 어머니와 천상적 대화를 나누고, 어려운 목수 일을 거들며 순종하는 가운데, 양부(養父, putativus pater)요셉과 천상적 대화를 나눌 때에, 자신의 인간적 의지의 애정들과 신적 사랑에 온전히 일치된 사랑에 의해 작용을 받으셨습니다.
2. . . . 그분의 공생활에서
65. 그분은 당신의 오랜 전교 여행 동안 죽은 사람들을 무덤에서 불러내거나 혹은 온갖 종류의 병자들에게 건강을 회복시키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적을 행하실 때에, 힘겨운 노동을 하실 때에, 땀을 흘리고, 배고픔과 목마름을 견디어 내고, 지극한 애정으로 천상 아버지께 밤샘 기도를 드리실 때에, 또한 설교 때와 비유를 내놓고 설명하실 때에는 본인이 (앞서) 언급한 삼중의 사랑에 의해 움직여지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잃어버린 은전이나,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아들과 같은 자비에 대한 비유 말씀입니다. 대(大) 그레고리오 교황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러한 사건들과 말씀들 안에는 하느님의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 “그대는 하느님의 말씀들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배워, 더 열렬히 영원한 사물에 희망을 두도록 하라!”
66. 그러나 그분의 입에서 아주 뜨거운 사랑을 열망하는 말씀들이 발설될 때에 그리스도의 마음은 더 위대한 사랑에 의해서 움직여졌습니다. 이렇게 본인이 예를 들고 있는 대로, 그분은 지치고 굶주린 군중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백성들에게 측은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당신의 지극한 사랑스러운 예루살렘 도읍이 죄에 눈이 어두워져 있음을 바라보시고 완전히 폐허가 되리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예언자들을 죽인 너 예루살렘아! 너는 너에게 파견된 이들을 돌로 치고 있다. 암탉이 날갯죽지에 자기 병아리들을 모으듯이, 내가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 할 때마다, 너는 (항상) 거절하였구나.” 그분은 성전에서 불경스런 매매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시고, 당신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거룩한 분노 때문에, 그분의 마음은 뛰었으며,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 “내 집은 기도한 집이라고 불리리라고 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3. . . . 그분의 수난과 죽음에서
67. 그러나 (그분이) 참혹한 고통의 시간이 이미 당도하였음을 미리 알게 되었을 때에, 그분의 마음은 특별한 사랑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당신에게) 닥쳐오는 고통과 죽음에 자연적인 감정으로 사우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그분은 배반자로부터 친구(親口)를 받았을 때, 요지부동하는 사랑과 깊은 염려로 불의하고 불성실하고 딱딱한 마음으로 그분을 음모자들에게 넘겨주려 했던 그 친구에게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그 친구에게 베푸신 당신의 지극히 자비로우신 마음의 마지막 초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유다야 입을 맞추어 사람의 아들을 잡아 넘기려느냐?” 그러나 그분은 당신이 십자가의 부당한 형벌을 받게 될 자신을 위하여 울고 있는 열심한 여인들에게 말씀하실 때엔 자비와 지극히 큰사랑으로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의 자손들을 위하여 울어라!… 왜냐하면 만일 생나무가 이런 일을 당하거든 마른 나무야 오죽하겠느냐?”
68. 마침내 우리 구세주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당신의 마음이 여러 가지 뜨거운 애정에 불타고 있음을 느끼셨습니다. 뜨거운 사랑과 두려움과 자비와 지극히 뜨거운 열정과 맑고 고요한 애정을 느끼셨습니다. 다음의 말씀들이 뜻하는 것은 이러한 감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목마르다 “아버지, 나의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B. 인간에게 주신 예수성심의 선물들
69. 그러나 그분이 당신의 가장 큰 선물, 즉 성체성사 안에서 당신 자신과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 그리고 우리와 함께 나누는 사제적 상통성의 직무를 주시던 그 때에, 그분이 나타내 보이신 당신의 무한한 사랑의 징표인 하느님의 마음의 박동(뜀)을 그 누구인들 합당하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1. 성체성사와 사제직
70. 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을 잡수시기 전에, 자신이 당신의 「몸의 성사」이고, 또 피를 흘리심으로써 새 계약을 맺으신 당신「피의 성사」를 세우실 것을 미리 아시고, 당신의 마음은 아주 뜨거운 애정에 사로잡혀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이 과월절 음식을 함께 나누려고 얼마나 원하였는지 모른다.” 또, 빵을 손에 들어 감사 기도를 올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 음식을 나눈 뒤에 또 그와 같이 잔을 들어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라고 말씀하실 때에도 의심 없이 같은 뜨거운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71. 그러므로 분명히 「천상의 성체」(Divina Eucharistia)는 성사(聖事)이자 제사(祭司)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분은 인류에게 「성사」와 「제사」를 베푸셨고, 또 한편으로는 당신 친히 영구히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봉헌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제직은 분명히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마음의 선물임이 확실합니다.
2. 그분 어머니의 선물
72. 실로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마음의 가장 귀한 선물은 본인이 이미 말한 대로, 우리 인류의 가장 사랑하올 어머니이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Maria Dei Mater Alma)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육체를 따라서는 우리 구세주의 모친이셨고, 또한 하와의 자손들을 천상적 은총의 생명으로 다시 초대함에 있어서는 그분의 동반자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땅히 전 인류의 「영적 어머니」(Mater Spiritualis)로 추대되셨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녀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녀는 구세주의 지체들의 어머니이시다. 그 지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머리의 지체로 탄생되도록 사랑으로 협력하셨기 때문이다.”
73. 또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친밀하고 무한한 사랑의 귀한 증거로 십자가의 피 흐르는 제사를 빵과 술의 형상 하에 당신 자신의 피 흘림이 없는 선물에 일치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진정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그분은 다음 말씀으로 당신 제자들에게 사랑의 최상 척도를 내놓으시어, 지극히 탁월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74. 그러므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골고타의 제사를 통하여 하느님 자신의 사랑을 분명하고 의미 있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실로 우리 구세주 하느님께서는 박해자들의 힘보다 더 큰 사랑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분의 「의도적 희생」(volunlarium holocaustum)은 사도 (바울로)의 간결한 말씀을 따르건대 각 사람들에게 내려주신 (당신의) 최상의 선물입니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다.”
C. 창에 찔린 예수성심의 상징
75. 그러므로 예수의 지극히 거룩하신 마음은 가장 친밀하게 강생하신 말씀의 생애에 참여하고 있고, 또 신성(天主性, Divinitas)의 도구로 취해졌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전능의 사업을 완성함에 있어, 의심 없이 인성(人性)의 다른 지체들보다 못하지 않은 합법적인 무한한 사랑의 표지(상징)입니다.
1. 교회와 그분의 신비적인 결혼
76. 이러한 사랑의 영향력 하에, 우리 구세주께서 당신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교회와 신비로운 혼인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분은 사랑을 통하여 당신의 신부(新婦)로 당신과 일치되어야 했던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세주의 상처 입은 마음에서 구세주의 피의 분여자(administra)로서 탄생되었고, 같은 마음에서 성사의 은총이 풍요롭게 흘러나왔으며, 그 은총의 샘에서 교회의 자녀들은 초자연 생명을 긷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전례 안에서 이렇게 봉독하고 있습니다. : “상처업은 마음에서 그리스도께 일치된 교회가 탄생되었나이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으로 은총을 부어주시나이다.”
2.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모상
77. 옛 교부들과 교회의 작가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러한 상징의 의미에 대하여, 천사적 박사(Doctor Communis vel Angelicus)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대변이나 하듯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우리를) 씻어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늑방에서 물이 흘러 나왔고,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피를 흘리셨다. 그러므로 피는 성체성사에 맞고, 물은 세례성사에 맞는다. 그러나 이 후자는 그리스도 의 힘에 의해 씻는 힘을 가지고 있다.”
78. 한 군사에 의해 찔려 열리게 된 그리스도의 늑방에 대하여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역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확실히 확인하기 위하여 한 군사가 창을 던졌다는 점에서, 그 찌름에 의해 창이 도달하게 된 그분의 심장(Cor)의 상처는 세기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주시고, 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갈바리아에서 봉헌하실 만큼 그토록 뜨겁게 사랑하신 그 자발적인 사랑의 생생한 모상(imago)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이 도셨습니다.”
D. 하늘에서 예수성심은 그분의 교회를 계속 사랑하신다
79. 우리 구세주께서는 영원한 영광의 광채로 꾸며지신 육신을 지니시고 하늘에 올라가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신 후에도 그분은 당신의 마음을 박동 시키는 지극히 뜨거운 사랑으로 당신의 신부(新婦)인 교회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계십니다. 실로 그분은 손과 발과 늑방에 마귀와 죄와 죽음을 쳐 이기고 얻으신 영광의 승리를 나타내는 세 가지 상처를 가지고 계십니다.
80. 마찬가지로 그분은 이른바 가장 고귀한 성전과 같은 당신의 성심(聖心) 안에 그분이 구원된 인류를 위하여 너그러이 베풀어주시는 당신의 세 가지 승리의 열매인 무한한 공로의 보화들을 간직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바로 이교인들의 사도(바울로)께서 다음의 말씀으로 역설하고 계신 위로로 충만한 진리입니다: “그가 높은 곳에서 올라가면서 사로잡은 자들을 데리고 가셨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셨다… 그리로 내려가셨던 바로 그분이 모든 것을 완성하시려고 하늘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1. 성령의 은총
81. 제자들에게 파견되신 성령의 은총은 아버지의 오른 편으로 올라가신 후, 당신의 너그러운 사랑의 최초의 중요한 증거입니다. 실제로 열흘이 지나자 그분이 최후만찬 때에 약속하신 그 약속에 따라 다락방(만찬방)에 모여있는 그들 위에 천상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신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다른 빠라끌리도를 너희에게 보내어, 너희와 함께 영원히 머물게 하리라.” 빠라끌리또이신 성령께서는 「상호 위격적 사랑」(Mutuus Amor Personalis) 즉 아들에 대한 아버지와 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사랑이시므로 양위(兩位)로부터 파견되시어, 불 혀 모양을 취하신 성령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과 천상의 풍성한 은사(charisma)를 부어주십니다.
2. 예수성심의 선물인 하느님의 사랑
82. 하느님의 사랑의 이러한 부음(infusio, 注賦)은 “모든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구세주의 성심에서부터 기인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은 예수 성심과 그분의 영(靈)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성령)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십니다. 그분으로부터 교회가 탄생되고 놀랍게 전파되어, 우상숭배와 형제에 대한 증오, 풍속들의 부패와 침해로 더럽혀진 모든 이방 민족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3. 모든 은총의 근원인 하느님의 사랑
83. 하느님의 이러한 사랑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분의 성령의 고귀한 은총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사도들과 순교자들에게 굳어져, 언제나 영웅적으로 죽기까지 싸워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고 피를 흘려 증거하는 그러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 사랑은 학자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밝혀주어(이 신앙을) 보호하기 위한 아주 뜨거운 열망을 주었습니다. 또 사랑은 동정녀들에게 권고하여 자발적이고 기쁘게 관능의 정욕을 부정(否定)하게 하여(abstinere), 자신을 온전히 천상 신랑의 사랑에 봉헌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84. 강생하신 말씀의 마음에서 흘러나와 성령의 작용으로 모든 신자들의 영혼 안에서 부어지고 있는 (infunditur, 주부(注賦)되다) 하느님의 이러한 사랑을 찬미함에 있어, 이방인들의 사도께서는 인류 안에 하느님의 사랑의 통치를 회복하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극복하신 신비체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지체들의 승리에 대한 유명한 찬미가를 남기셨습니다. :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E. 결론
1. 우리는 사랑의 상징이며 근원으로서
예수성심을 흠숭할 것이다
85. 그러므로 아무 것도 우리 구세주 하느님께서 아직도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불을 지르시는 이 불멸의 사랑에 참여시켜 자연적이면서도 가장 의미 깊은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을 우리가 공경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은 이 죽을 목숨(생명)의 걱정(근심)에는 더 이상 사로잡혀 있지 않고, 살아서 박동하고 계시며, 또 하느님의 말씀의 위격과 그 위격 안에서, 그 위격을 통하여 그분의 신적 의지와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으로 흘러 넘치고 있고, 또한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고통과 당신의 죽으심으로 얻어주신 모든 은총의 보물을 넘치게 간직하고 계신 부자이시므로, 당신 신비체의 모든 지체들에게 성령의 사랑을 부으시는 그 영원한 사랑의 원천이심이 확실합니다.
2. 성심은 구원의 신비의 요약이다
86. 그러므로 우리 구세주의 마음은 어떻게 보면 말씀의 신적 위격(神的位格)의 모상(imago)을 말하고, 두 가지 본성(本性) 즉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모상(imago)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모상 안에서 상징뿐 아니라 또한 그 상징을 우리 구원의 전(全) 신비의 총체로 관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마음을 공경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의 창조되지 않은 사랑과 그분의 인간적 사랑과 그밖에 애정과 덕행을 공경합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사랑은 사도(바울로)의 견해를 따르면, 우리와 당신의 신부(新婦)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으로 봉헌하도록 우리 구세주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물로 씻는 예식과 말씀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바치셨습니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티나 주름이나 그밖에 어떤 추한 점도 없이 거룩하고 흠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 예수성심은 아버지와 함께 권위있는 변호자이다
87. 그리스도께서는 (과거) 당신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앞서 본인이 말한 세 가지 사랑으로, 여전히 계속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또한 이 사랑은 그분을 “항상 살아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중개자의 일을 하고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은총과 자비를 아버지께 얻어주시는 우리의 변호자(Advocatus)로서 촉구하십니다. 그분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에서 나와 아버지께 간청하는 기도는 결코 그치지 않습니다. 그분은 “인간으로 세상에 계실 때처럼” 지금도 천상에 개선하시어, 천상 아버지께 효과의 부족함 없이 간청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버지)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실” 만큼 이토록 세상을 사랑하신 그분께(아버지) 당신의 마음을 생생하게 보여드리고 계시고, 그분이(아버지) 죽은 후에 로마 군사의 창으로 찔림으로 받았을 때 보다 더 뜨거운 사랑으로 상처받아 불타고 계신 당신의 마음을 보여드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상처를 통하여 볼 수 없는 상처를 볼 수 있게 하시고자 상처를 입으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천상 아버지께서는 이렇듯 강력한 변호자에 의해서 아주 뜨거운 사랑으로 간청을 받게 될 때에는 언제나 그분을 통해서 (아들) 전 인류에게 풍성한 천상 은총을 내려주시리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