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 시인을 만나다|시집 속 대표시 - 장인수
아내를 바꿔 입었다 외 4편
샤워 후
후다닥 회색 반 팔 티를 입고 외출을 하는데
헐렁헐렁 보들보들 촉감이 좋구나
엥? 아뿔사! 아내 티를 입고 나왔네!
후다닥 집에 가서 벗을까?
아니야 그냥 입자
나이 오십 중반이 되니
겉궁합이 맞는지
아내 옷을 바꿔입어도
몸이 편한 나이가 되었구나
아내 옷이라는 속사람을 빌려 입었으니
옷 반려자가 되었구나
남편이라는 겉치레가 은근히
기분이 맑고 째진다
부부는 마음보다 몸을 자주 섞는 사이
몸을 서로 살피며 마음을 맞추는 사이
오늘은 아내를 바꿔 입고
젖 달린 듯 팔을 휘휘 흔들며
활보하는 하루가 되리라
------------------------------
낫날 커피
아기 다루듯 조심조심 다루어도
꼬투리가 벌어지면서 익은 참깨가 우수수 떨어진다
흔들림을 최소화하면서 살살 베느라
낫질을 하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털푸덕 주저앉아 쉰다
꼭두서니 빛 노을이 시뻘겋게 타오른다
한 생애를 사르듯,
우리의 생애를 언젠가 가져갈 별들이 뜨겠지
밭고랑에서 믹스커피를 탄다
콧등의 땀방울이 후두둑 커피에 섞인다
낫날로 커피를 휘젓는다
깻대 하단부를 싹둑 베던 쇠맛이
혀끝에 배어든다
핏빛 영혼 흘러나와
커피를 물들인다
---------------------------------
화부가 되어
불을 굽는 인생은
불쏘시개처럼 살다 가는 것
중년을 건너는 것은 장작의 속성을 닮아가는 것
마른 등걸도
제 육신을 점등하는 모닥불이 된다
정신도 일렁이는 화농이 되는 것
섹스도 모닥불처럼 일렁이는 것이지만
소멸의 따스함에 닿는 것
잉걸불을 뜨는 것
곁을 주고, 등을 쬐다가
불빛과 함께 글썽이는 것
잘 익은 술처럼
장작은 스스로 출렁이며 타는 것
모닥불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하지만
솔로 캠핑처럼
단 한 사람을 위해
씨앙씨앙 사르며 스러지는 것
------------------------------
해루질
드넓은 뻘밭에
랜턴을 비추며
손금의 애정선처럼 갯골에 패인 물길
낙지의 빨판을 닮으리라
먹물 빛으로 철썩이는 수평선
밀려갔다가 밀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당신과 평생을 함께하리라
서로의 유두에 점등을 하고
돌 틈에서 해삼을 발견하듯
옷고름을 더듬고
사랑의 뻘밭을 해루질하리라
멀리 비렁길 섬마을의
젖가슴 반달 긷는 집에 돌아가
밀려오는 밀물의
파도 소리처럼 끓어 넘치리라
------------------------------
까세권에 산다
사람들은 세력을 형성하며 살기를 좋아한다
숲이 세력을 형성하면 숲세권
전망 끝내주는 강이 있으면 강세권
초, 중, 고등학교 근처이면 학세권
이봐!
세력이 곧 가치!
나도 괜찮은 세력권에서 살고 있어
베란다 앞 은행나무에 까치들이 둥지를 세 개나 지었으니 까세권
근처에 전국 제일의 모란시장이 있으니 모세권
오! 모세의 기적이여!
백 년 노포 즐비한 참기름 골목이 곁에 있으니 백 년 참세권
더구나 내 입맛에 딱 맞는 할매토종순대국집이 근처에 있으니 할세권!
값싼 생필품을 파는 다이소가 곁에 있으니 다세권
쿠팡 새벽 배송이 가능한 쿠세권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는 스타벅스가 있으니 슬세권
순하고 고소하고 말랑말랑한 손두부 집이 곁에 있으니 두세권
부풀어 오르는 슬픔으로 빚는 빵집이 곁에 있는 슬빵세권
나는 다多세권 지역에 사는 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