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시집 이종암 『꽃과 별과 총』 | 신작시
길 위의 길 외 1편
사월 어느 날 시집 원고 묶음 들고서
문인수 선생님 댁 찾아가는 길이었다
대구-포항 고속도로 길 건너 산비탈
키 큰 산벚나무 네댓 그루
흰 두루마기 입고 배움의 길 떠나던
옛사람들처럼 꽃 피어 빛나는 산벚나무들
진지하게 말없이 입술 깨문 채
핫둘핫둘 길 위의 길로
냅다 옹골차게 뛰어가고 있었다
선생은 이제 먼 길 떠나고 없다
서둘러 제 몫의 노래 다 불러놓고는
해봉사 목백일홍
-권선희에게
떠날 때 포구 바닷가 풍경 몇 점
가슴 속 호주머니 깊숙이 담고 간
그 구룡포, 지금도 어떤가
카페 <그래島> 바람벽에 찰방거리고 있는가
구룡포의 숨은 진주라고 늘 자랑하던
해봉사 목백일홍,
너는 아프고 또 먼 데로 가 있어
해봉사 대웅전 앞 목백일홍 너 보듯 왔다
대갓집 커다란 집채만 한 크기인데
꽃 소식이 올해는 많이도 더디구나
올 여름 불볕더위가 너무 심해서였나
자랑 자랑이던 네가 여기 없어서였나
초록 잎들 사이로 숯불이 작기도 하다
네가 오면 그때 잉걸불로 피어나려나?
당도하지 않을 사랑*이라 넌 노래하지만
악다구니로 여기저기 얽히고설킨 싸움에
전신에 번져나간 종양이 불타는 것만 같다
겨우, 지금 타오르는 한 개의 향로만 같네
*권선희,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해봉사 목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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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시집 이종암 『꽃과 별과 총』 | 시작노트
사월의 봄숲에서 만나는 연두에는 명록, 암록에 이르는 다양한 빛깔들의 나무들이 꽃만큼이나 곱다. 아니 그 이상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사람들 모두, 저마다 꽃이다. 사람이 꽃이고 별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봄밤, 영천 기룡산 기슭 십만 평 영일 정씨 문중 묘역의 무덤들이 밤하늘의 별과 상응을 이루는 모습은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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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암
*1965년 경북 청도 출생
*2000년 시집 『물이 살다 간 자리』로 등단
*시집 『물이 살다 간 자리』, 『저, 쉼표들』, 『몸꽃』, 『꽃과 별과 총』
*나비詩會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