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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1일 11시는 나와 아내 박정혜의 결혼 35주년 기념일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이날을 빼빼로 데이라며 참 잘도 갖다 부쳤더군요.
11자를 빼빼로와 결부시켜 마치 이날이 빼빼로를 사서 연인에게 선물하면
없던 사랑도 저절로 생기는것처럼 선전하는 상술이 어느새 자리를 잡은듯하답니다.
1976년 11월 11일 오전11시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 여자의 일생을 책임 져야할 가장이 되었습니다.
35 년전 그날 결혼식 주례사님의 주례사를 나는 그동안 매년 결혼 기념일이 되면
당시의 그 말을 떠 올려 보며 지금도 지키고 있는가 반성해 본답니다.
아내와 내가 만난지 46년째.
그리고 결혼한지 35년동안 용케도 우린 두 레일을 잘 지켜온것 같으나
돌이켜 보면 많이 부족하기만 했고 삐걱거리기도 했습니다.
11자는 마치 기차의 레일처럼 나란히 평행선을 유지하는것,
너무 가까워져도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가 탈선이 되고 너무 멀어져도 탈선이 되며
끝까지 두줄이 나란히 가야만 하는것이 레일입니다.
한줄만 앞서거나 조금만 벌어져도 기차는 그위를 달릴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혼 당시에 철도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부산기관차 사무소의 기관사로 재직하고 있었던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었고 평생 그렇게 지켜 나가기로 결심했었답니다.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 기차의 두 레일이 되어 가정이라는 기차가 탈선하지않고
안정되게 잘 달릴수있도록 가깝지도, 멀지도,혼자만 앞서지도 않고 뒤서지도 않으며
언제나 나란히 서로를 지켜주며 서로를 의지하며
그렇게 삽십오년을 살아왔습니다.
결혼 33주년 기념일에...
삽십오년전의 나의 신부는 꼭 입는 드레스를 입어보지도 못했답니다.
연분홍 한복에 짧은 면사포만 쓰고 결혼했지요.
결혼 전에 모두가 꿈꾸는 눈부신 하얀 드레스에 길게 느려진 면사포
선녀처럼 하늘나라 공주처럼 그날 만은 그런 주인공이 되는것을 얼마나
가슴 설레며 기다렸었을까 생각해 보니 미안할 따름입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면서 여름성경학교 보조교사였을때
박정혜라는 어린이는 교회학교 어린이 중에서 가장 예쁘고 똑똑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됩니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11살의 외손녀까지 있는 고운 할머니로 변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 그리고 학생회장이었을때 당신은 중학교 1학년의
학생부 회원으로 당시 가장 말 순종 잘하던 학생으로 내 눈에 들었었지요.
나를 부르는 호칭이 선생님으로 1년.
회장님으로 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운의 큰 꿈을 안고 시골에서 서울로 간 이후
당신은 내게 오빠라는 호칭으로 8년을 부르며
수백통의 편지를 서로 주고 받으며 지냈었지요.
지금도 보관해온 색 바랜 수백 통의 주고 받은 편지들을 보면
그때는 사랑 때문이 잠시 시인이 되었던것 같아서 스스로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답니다.
월남참전 용사로,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로 고통속에서 살아 온 40년 만에
지난 10월 1일부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어 주민등록증 같은 증서 한장 받고
그간의 고통과 괴로운 심정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울분의 치유가 조금은 된것 같구려.
결혼 35주년을 맞이하는 사랑하는 나의 영원한 애니 박정혜씨 !
여보! 당신을 내 생명 만큼이나 사랑해요!
당신과 나의 만남이 벌써 46년째가 되었구려.
당신은 초등학교 6학년생. 나는 고등학교 1학년생
우리는 한 교회에 다니며 학생회 회장과 회원으로.
그리고 청년회 회장으로 , 회원으로
, 함께 성가대 회원으로. ,교회학교 교사로, 참으로 열심히 섬겼지요.
그때 우리가 다니던 교회가 건축을 하게 되었고 재정부족으로 이층 예배당은
지붕을 덮지못하고 공사가 중단이 되었을때.
우리는 두 사람이 똑같이 한 마음이 되어 결단을 했지요,
우리의 결혼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그동안 모았던 적금 통장을 털어 건축 헌금으로 바쳤었지요.
결혼을 앞둔 청년회장 커플의 이러한 헌신에 모든 성도들이 감동을 받아
서로 헌신하여 교회 건축이 훌륭하게 완성이 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떠올리면 참으로 감동적이고 성령 하나님의 감동주심이라 생각하며 감사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 함께 살수있도록
우리가 계획한것보다 훨씬 풍족하고 넘치는 축복으로 결혼을 시켜주셨지요.
당신이 근무하던 직장의 이사장님이시고 당시 부산 라이온즈 회장이셨던
장로님의 주선으로 우리를 위해 합동결혼식을 올려 주셨고
우리를 그 결혼식의 일원으로 초대해주신것은 참으로
감사하면서도 당신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 뿐이요..
그래도 드레스를 입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분들의 사랑의 선물들이
우리 신혼살림에 거의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장만해 주셨고.
당시 담임 목사님께서는
시집갈 처녀가 하나님앞에 몽땅 다 바치고 빈손으로 갈 수 는
없지않겠느냐며 결혼 살림 밑천인 장롱을 사주신 일은 역사에 기록할 만한 일이라 생각해요.
지금은 목사님이 해주신 그 장롱은 없어졌지만
교회 담임 목사님이 해주신 장롱을 가지고 시집간 처녀는 우리나라에
당신 말고 또 몇이나 있을까요?
철도 기관사였던 나와 함께 철길 가에 신혼집을 얻어 놓고
기적이 울리면 뛰어 나와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퇴근길에는 언제나 철길가에 피어있는 온갖 꽃들을 한줌씩 꺽어서
뒤에 감춰들고 와서 당신에게 안겨주며 당신을 을 기쁘게 해 줄려고 했던
소박한 당시의 나날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오.
고등학생때 이미 소명을 받고 여러가지 가정의 장벽들로 인해 늦게서야
순종의 길로 들어서서 철도청 기관사의 직을 사표내고
서른네살 늦깍이에 신학대학에 들어간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단독 목회 24년 동안 아나 되었오!
안양성실교회, 군포성실교회, 그리고 지금의 미산성실교회 세번의 교회 개척을 하는 동안.
당신에게 너무나 많은 고생을 안겨줘서 정말 미안. 미해. 미안해요.
10년전 당신과 나의 결혼 25주년 은혼식 기념일 날이 지금도 생각해 보면 감격적이었오.
35년전 결혼식 때도 입어 보지 못했던 흰 드레스를 입었던 10년전의 당신은 참으로 예뻣었어요.
멋지고 큰 액자에 결혼 25주년 사진을 녛어서 친히 가지고 왔던 그 사랑많던 집사님
앨범까지 제작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도 은혼식으로 지냈전 그날이 다시 그리워집니다.
사진을 보면서 곱디곱고 예뻣던 당신이 이젠 많이 주름이 패였구나 생각하니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렀음을 실감한다오.
칼라 사진속의 우리 부부의 결혼 25주년의 모습은 삶의 무게와 연륜이 묻어 나오는
한층 더 멋스러운 모습이어서 한없이 값져 보였다오.
10년전 나나 당신이 이렇게 젊었었든가?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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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들이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을 챙겨 주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요.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은 우리 가정이 탄생된 생일이기때문에
우리 가족이 챙겨야할 가장 소중한 기념일 이라며 찾아오는
사랑스런 딸 내외 그리고 아들이 대견 스럽지 않소?
금년에는 1000년만에 찾아오는 빼빼로 데이 날인 11월 11일에
당신과 나의 결혼 35주년 기념 이벤트를 아들과 딸 내외 그리고 손녀딸이 해 준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 롯데월드에 가서 아들, 사위, 딸. 그리고 외손녀딸과 함께 결혼 35주년을 맘껏 즐기며 누립시다.
이제 당신과 나는 지난 35년 . 아니 만난지 46년이 되는 지금
여전히 가정이라는 기차가 안정되게 달리 수 있도록
영원한 평행선의 레일이 되어 삽십 오주년을 맞이할 뿐더러
결혼 50주년 금혼식이 되는 앞으로의 15년 후의 11월 11일을 더욱 기대하며 살아갑시다.
당신을 영원토록 사랑하오리다. 부디 건강히 살아가시릴 기도하겠오!
2011년 11월 10일 결혼 3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미 산 성 실 교 회 남 승 복 목사가
사랑하는 아내 박 정 혜 씨께.....
11월11일 결혼35주년기념일 자녀들이 행복한시간을 만들어주겠다고해서
새벽기도후 새벽 열차를타고 서울로 가면서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정말 감동했다.
아마도 남편은 지난 사진들을 하나씩 옮겨실으면서
구구절절이 지난날을 쓰면서 밤을 지새웠을것이다.
생각해보니 35년전에도 결혼전날 남편은 밤새 기차를 운행하느라
꼬박새우고 결혼식장에 나타났었다.
35년동안 참 성실하게 살아온 남편 조용히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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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긴사연을보며
가슴이 찡하구나
당신들의 사랑이 영원하길...
건강은 어떤지???
연륜이 싸일수록 사랑이 영글어가야하는데 이젠 사랑보단 정으로 사는세월이랄까?
눈작은 동혁이와 은하를 보는것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