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벌써 녹음이 짙어진 6월입니다. 어제는 1년간 정간되었던 <녹색평론>이 복간되어 집에 배달되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첫장을 넘겼습니다. 김종철 선생의 따님이기도 한 편집장 김정현님이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증언하기를 멈추지 않고 삶의 근본을 다시 짚으며, 생태적 전환을 호소하고 있는 절절한 목소리가 가슴을 저며옵니다. 읽다가 다음의 한 구절에 눈길이 멈춥니다.
“산업자본주의가 인류문명을 인질로 삼아 지구 위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 – 천지자연, 제3세계, 민중, 여성, 약자에 대한 가차 없는 공격에 맞서기 위한 전략으로도 비폭력 불복종 노선을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산업문명에 대한 불복종 저항은 구체적으로 내 삶에서 시장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나가는 일이다. 인류학자들 덕분에 이제 우리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경제조차도 자급적 노동(그림자노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능부전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시야에서 감춰져 있는 자급경제를 (임금경제로 전환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전체 경제에서 더 큰 부분이 되도록 키워야 한다.
임금노동에 매이지 않고 생계를 도모할 길을 찾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가능한 대로 텃밭농사를 짓고, 생협에 가입해서 단 하나의 농가라도 시장에 종속되지 않도록 돕고, 가공식품을 사 먹는 대신에 손수 요리를 하고, 이웃과 함께 아이들, 몸이 불편한 이들을 보살피고, 그 밖에도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배움이든 돌봄이든 필요한 서비스를 도와서 해소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급은 고립된 채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호부조는 자급, 자립과 떼어놓을 수 없는, 건강한 공동체의 견고한 원리이다.” - 김정현,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지금 한반도에는 시대의 암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시장주의에 눈멀고, 성장과 개발광풍으로 자연파괴가 멈추지 않고, 적대와 혐오와 불신과 거짓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고, 2050년이면 거주불능의 지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능력주의와 경쟁교육으로 아이들의 영혼이 병들고 있음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자연과 멀어지고 패스트푸드와 스마트폰에 중독된 삶의 방식은 아이들의 심신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말합니다. “저항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성취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되느냐에 의해 평가되는 것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해야 할까요? 이 천박한 물신의 시대를 어떻게 모심과 환대의 거룩한 땅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삶의 방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생각의 방향과 마음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세상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급적인 삶,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구름달 공동체’를 하는 이유도, ‘잔물결숲밭’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 삶이 먼저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작은 부분이라도 시장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산업문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생태문명, 도덕문명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목표도 세상의 기준인 경쟁에서 이겨 좋은 대학가는 것에 둘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지금 여기’에서 당장 행복할 수 있는 교육, 자신만의 재능과 씨앗을 발견하여 온전히 꽃피울 수 있는 자아실현의 교육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갈 길은 멀지만, 우리 ‘구름달’은 이 불의한 시대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수운 선생님의 ‘다시개벽’의 열망이자, 해월 선생님의 ‘삼경(三敬)’의 구체적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2023년 6월 9일 김용휘 모심
첫댓글 이런 의미에서 방한울 어린이들은 축복된 어린시절을 보내고 있는거죠
건강한 먹거리, 자연의 품에서 신명나게 놀이하며 하루를 보내는 행복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