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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시: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2.참가인원: 전과동
3.코스: 간편 도시락 지참 후 백두산 서파로 이동(약 4시간)하여 도보로 천지 이동.
금강대협곡 거쳐 이도백하로(약 2시간)이동하여 백두산 천지 5D 감상 후, 온천겸 수영하고 저녁은 양꼬치 먹고 호텔 투숙및 휴식.
-출전 산악투어-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이해도 빠르고 우리가 다녔던 루트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심양, 통화, 이도백하, 천지, 서파, 북파, 장백폭포, 금강대협곡등이 아스라이 눈을 스치고 지나간다.
숙소 전경.
첫날은 '바람' 과의 동침이다. 똥침이 아니다.
액자 그림이 좋아 찍어본다.
오늘은 이동거리가 멀고 서파를 통해 1,442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 조식을 시간 절약상 간편 도시락으로 대신했다.
이동 전 호텔 입구에서...
이사 때문에 아무것도 준비 못한 '남인'은 결국 남방 한개를 얻어 입었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임신 4개월의 몸이라 아랫 단추가 잠기지 않는다. 아랫 배가 부풀어 딸이라고 한다.
서파 산문주차장에서 버스를 타려고 줄지어 들어간다. 사람이 없을 때는 지름길을 개방해야 하는데, 직선거리 5m도 안되는데 구불 구불 철 난간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중국인들의 질서 의식을 대변해 주는 장면이다. 이거라도 없으면 아마도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문명인이 이해해야 한다.
버스 안에서 한컷.
버스 안에서 찍은 동영상.
주차장에서 천지까지 1,442개의 계단을 올라야 천지다.
가이드 말로는 이런 날씨는 일년에 10번이 될까 말까한 날씨라고 한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인연으로 이렇게 장엄하고 웅장한 민족의 영산과 조우할 수 있었다.
1,442개의 계단을 오르기 전에 한컷.
'남인' 의 남방은 어디간 겨?
날씨가 만만혀?
아닌게 아니라 선선할 정도의 날씨라 오히려 바람막이 옷이 더울 지경이었다.
위에서 본 주차장.
백두산자락의 광활한 벌판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백두산(白頭山)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북한과 중국의 국경에 있는 화산으로 화산의 분류 체계에 따르면 성층화산, 활화산, 초화산에 속한다.
봉우리는 총 16개이고 최고봉은 해발 2,744m인 병사봉(兵使峰)으로 북한에 속해 있으며, 북한에서는 이를 장군봉으로 부른다(명칭 문단 참조). 따라서 중국을 통해 관광이 가능한 남한 사람은 정상에 오를 수는 없고 천지 너머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 각 봉우리 정상 사이에는 칼데라호수인 천지를 품었다. 백두산의 천지와 주변 수계는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풍수지리에서는 한반도의 '조종산(祖宗山)', 즉 모든 산맥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며, 특히 근대 이후에는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자리매김하여 남북한 양쪽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상징물이 되었다. 분단 이후에도 행정구역이나 교육등 공식적인 부문에서는 남북 모두 백두산을 자국의 산으로 간주한다.
-출전 나무 위키-
아직 갈 길이 먼데 벌써 쉬면 워쩌?
천지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의 행렬.
예전에는 중국인들은 이곳 서파로 천지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주로 북파를 거쳐 올랐다고 한다.
서파보다는 북파가 버스가 정상까지 진입할 수 있어 북파를 이용했다는데, 요즈음 건강이 만인의 화두가 되는 바람에 이곳 서파를 통해 운동겸 오른다고 한다.
벌써 지친 겨?
오름길 동영상.
가마를 타려면 200위안에서 400위안까지 체중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17년도에 그랬다니까 지금은 더 올랐을 것이다.
서파 산문 버스비 85위안, 산문 입장료 105위안, 산문내 셔틀비 24위안 해서, 총 214위안 한화로 거의 4만원돈이다.
내, 외국인할 것 없이 동일하다고 한다.
관광 수입이 장난이 아닐진데, 김정은이는 뭐하는 것일까?
북쪽 백두산을 개마고원과 연계하여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면 북한 주민들이 기아에서 해방될텐데 말이다.
수입을 다른 곳에 쓰려나?
아무튼 아쉽고 아쉬운 일이다.
우리도 빙돌아서 이곳 중국 땅을 통해 백두산을 오르지 않았는가 말이다.
진짜 오늘 하늘이 도왔다.
청명하고 청명하고 또 청명하다.
표지석의 의미는 '영원하다!' 라고 한다.
드디어 천지다.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별천지에 인간 세상이 아닐세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 이백(李白) 〈산중문답(山中問答)〉
'그윽한미소' 가 천지에서 북한 쪽에서 움직이는 배를 줌으로 당겨 찍은 것이다. 천지에서 물놀이를 할 정도면 혹시 김정은이가 우리를 영접하러 온 것은 아닐까?
드디어 천지에 고추가루가 끼기 시작한다.
고추가루 1
고추가루 2
고추가루 3
고추가루 4
고추가루 5
고추가루 6
고추가루 7
천지 동영상.
임신한 배불뚝이를 끌고 오느라 늦었더니만 지들끼리 천지 사진을 찍었다.
찍으려 했더니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깨갱 깨갱!
천지 대체 사진이다.
백두산의 이름은 먼 옛날부터 여러 가지로 불리어 왔다. 문헌에 의한 최초의 이름은 불함산으로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북경(大荒北經)〉에 “넓은 황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불함이라고 이름한다. 숙신 땅에 속한다(大荒之中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라고 기재되어 있다. ‘불함’에 대하여 최남선(崔南善)은 ‘ᄇᆞᆰᄋᆞᆫ’의 역음으로 보고 그 뜻을 천주(天主)인 신명(神明)으로 해석했다. 또한 중국에서는 몽고족의 ‘불이간(不爾干)’, 곧 신무(神巫)의 뜻으로 보아 백두산에 신이 있다는 데서 연원한 것으로 보았다. 양측의 해석이 모두 ‘신(神)’으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한대(漢代)에는 백두산을 ‘단단대령(單單大嶺)’이라고 부른 바 있으며 남북조의 위(魏)시대에는 ‘개마대산(蓋馬大山)’이라 하였고 또는 ‘도태산(徒太山) · 태백산(太白山)’이라 불렀다. 《북사(北史)》에 “말갈국 남쪽에 종태산이 있는데, 중국말로 태황이라 하며, 세상사람들은 이 산을 받들어 모셨다. 사람들은 산상에서 오줌을 누어 더럽힐 수 없다 하여, 산에 오르는 자는 용변을 본 뒤 그릇에 담아갔다. 산에는 곰 · 범 · 이리가 있는데 모두 사람을 해하지 않고, 사람 역시 감히 죽이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위서(魏書)》와 《수서(隋書)》에 모두 도태산(徒太山)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북사》의 종태산(從太山)은 도태산의 오자일 것이다. 당나라 때는 태백산이라 불렀고, 금(金)나라 때에 이르러 장백산(長白山) 또는 백산(白山)이라 불렀다.
우리 나라의 기록으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고조선조에 백두산을 ‘태백산(太伯山)’이라 칭하였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의 광종 10년조에 “압록강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 쪽에서 살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백두산’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백두산의 명칭은 불함산으로부터 시작하여, 단단대령 · 개마대산 · 도태산 · 태백산 · 백산 · 장백산 · 백두산 등으로 불리어왔으나, 한대 이후 불리어진 명칭의 공통점은 백(白), 즉 희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백(白)을 굳이 ‘ᄇᆞᆰ’의 차음(借音)으로 보고 있으나, 백두산의 모습으로 보아 그대로 백(白)자 자체의 뜻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백두산 산정은 거의 사계절 동안 백설로 덮여 있을 뿐 아니라, 산정부는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있어 눈〔雪〕이 아니더라도 희게 보이는 데서 그 이름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로, 또 개국(開國)의 터전으로 숭배되어 왔던 민족의 영산(靈山)이었다.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같이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천지(天池)를 비롯한 절경이 많은 데다가 독특한 생태적 환경과 풍부한 삼림자원이 있어 세계적인 관광의 명소로서 새로이 주목을 받고 있는 산이다.
-출전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明鏡止水
공자仲尼의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는 얼굴을 비춰볼 수 없고, 고요한 물에 얼굴을 비춰본다. 왕태王駘의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란 대답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직역하면 맑은(明) 거울(鏡)과 고요한(미동도 없는(止)) 물(水)을 가리키는 말로 마음에 흐림이나 혼탁함, 흔들림 없이 맑고 고요한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
‘맑은 거울’을 뜻하는 명경(明鏡)은 <장자>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온다.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는 정자산이라는 사람이 위세를 과시하려는 신도가를 나무라는 대목이다. “자네는 지위를 내세워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네. 듣건대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끼지 못하고, 먼지가 끼면 거울이 맑지 못하네. 어진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하네(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 則無過). 세상에는 잘못을 변명하는 사람은 많으나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받는 죄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네”라며 정자산을 꾸짖었다. 이처럼 명경지수는 본래 도가(道家)에서 주창하는 무위(無爲)의 경지를 가리켰으나 후일 그 뜻이 변하여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사람은 수시로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성찰은 고요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성숙은 세상의 풍파에 마음이 덜 요동치는 것을 뜻한다. 학창 시절은 학업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운 때가 많다. 그때마다 고요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고요한 마음은 공부는 물론 친구와의 관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출전 나무위키-
뭐여 고추가루가 또 나오네!
또 또 또
오늘날 천지(天池, 하늘의 호수)라 부르는 칼데라호를 두고 과거에는 여러 가지 표현이 병존하였다. 용비어천가에서는 단순히 '큰 호수'이라는 뜻인 대택(大澤), 대동여지전도에서는 달문(闥門)이라고 했다. 대동여지도에서는 '큰 못'이라는 뜻인 대지(大池)라고 표기했다. 대지나 대택은 보통명사라고 해야지 고유명사라고 하긴 어렵다. 한국의 고지도에는 대택(大澤), 대지(大池), 또는 단순하게 못이라는 뜻인 지(池)라고 표기된 경우가 흔하다. 특히 19세기부터는 '대지'가 가장 흔하다.
달문(闥門)은 만주어로 천지 호수를 부르는 타문(tamun)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달문이 천지가 아니라 천지 북쪽에 있는, 천지 물이 유일하게 빠져나가는 출수부, 외륜산 사이 협곡 부분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쓰인다.) 또한 백두산근처 산골의 중국인들이 용왕담(龍王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남선은 1946년 저술한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천지를 두고 "우리에게는 천지(天池), 달문담(闥門潭), 지나에서는 용왕담(龍王潭)이라고 일컬으니"라고 설명했다.
백두산인근에서는 타문 말고도 '하늘 호수'란 뜻으로 숭가리 노올(Sunggari noor), 압카이 노올(Abkai noor)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천지에서 발원하는 송화강을 만주어로 '숭가리 울라'라고 부르므로 서로 지명이 연결된다. 조선후기 이의철(李宜哲)은 영조 27년(1751) 백두산 여행을 다녀오고 집필한 <백두산기(白頭山記)>에서 천지를 두고 "일곱 봉우리가 둘러싼 가운데 큰 호수(大澤)가 있으니 이른바 천지(天池)이다(七峰環立四邊中藏大澤, 卽所謂天池也)."라고 했다. 또한 "이름하여 천상연(天上淵)이라 한다(名爲天上淵)." 하는 설명도 있다.
서명응(徐命膺)은 영조 42년(1766) 백두산을 유람한 뒤 <유백두산기(遊白頭山記)>를 집필했다. 이 책에서 서명응은 "백두산 근처 지명은 만주족이 사사로이 지은 것이니, 모두 새로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천지를 두고 태극(太極)과 천일(天一)을 합쳐서 태일택(太一澤)이란 명칭을 지었는데, 천지가 동북 산천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서명응이 지은 지명은 대중화되지 않았다.
천지(天池)란 명칭이 대중화된 것은 1908년 청나라 관리 유건봉(劉建封)이 쓴 <장백산강지략(長白山江志略)> 때문이다. 유건봉은 백두산을 근대적인 방법으로 측량하여 <장백산강지략>에 지도를 실었는데, 여기서 백두산천지를 두고 장백산 천지(長白山天池)라고 이름을 달았다.
-출전 나무위키-
서파 산문 버스 내부 모습.
안내 방송이 중국어로만 설명하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톤도 높아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소음 공해다.
금강 대협곡 입구.
협곡의 크기는 폭이 평균 120m, 깊이는 평균 80m이고 길이는 10km나 되어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린다.
1989년 7월 폭풍으로 원시림의 나무가 대규모로 넘어져 산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부에게 발견되었다.
백두산 서파로 더 유명한 금강대협곡은 용암이 분출되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계곡을 만들어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빚어낸 신비한 풍경이 지금은 희귀 동식물을 보호하는 생태 지역이 되었다.
백두산 원시림협곡의 물은 급하게 흐르는데,이 물을 급강이라하고그 아래에는 만강이라는 하천과 마을이 있어서 대조를 이룬다.
북금강이 계곡을 흐르고 있다.
협곡 주위 원시림에는 두 그루 나무가 한 뿌리를 두고 자라는 것과 뿌리를 드러내고 있는 고사목의 뿌리에서,
새로운 세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기 현상도 볼 수 있다.
개방된 대협곡 탐방로는 4km이다.
-출전 prezi-
데크로 된 탐방로를 따라 걸으니 좌우로 우리의 산하 생태와 거의 흡사하다.
박쥐취도 보이고 미역취도 보여 우리의 산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금강 대협곡 동영상.
저 아래에서 물이 급하게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도백하의 5D 영화관으로 이동중...
백두산의 사계와 중국 명승지를 5D로 보는 것인데,그런대로 볼만은 한데 가격 대비 상영 시간이 너무 짦아 아쉬웠다.
두당 40불이니 다소 비싸다. 거기에는 가이드 차지도 있을 것이고 나누어 먹어야 같이 살거 아닌가!
어떤 분들은 멀미가 나서 구토도 한다고 하니, 가상 세계도 몸에 충격을 주기 충분한가 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현상계(실상이 아니 현상)이니 충격을 받을 만 할 것이다.
온천과 수영을 할 수있는 호텔.
버스로 다시 되돌아가 수영모와 수경을 가지고 입장한다. 이곳은 입장할 때 새 수영복을 준다.
호텔 수영장
온천
배 넣고 인상 풀고.
온천물이라 물이 너무 낮아 수영을 할 수가 없다.
해서 1층에 있는 수영장으로 이동하여 수영했다. 나와 '바람' 만 빼고는 거의 맥주병 수준들이다.
임신중에도 수영은 할 수 있다.
노을지는 뒷배경이 아름답다.
양꼬치 무한 리필이다.
무한 리필이라고 너무 달리는 거 아니여 시방?
이날 이후로 '남인' 은 주량이 급속도로 하강했다.
이도백하 천정호텔이다.
오늘의 잠자리 파트너는 고브린너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첫댓글 별유천지비인간!!
명경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