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는 달리 오랜만에 해를 보았다.
오늘은 항주로 간다.
고속도로로 3시간이 넘어 걸리는 상해 남쪽의 곳으로 그래도 여기엔 낮으나마 산이 있다.
항주의 농촌은 매우 부유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3층집(1층은 습기가 차서 창고로 쓴다고)을 짓고 사는 데,
특이한 것은 반 이상의 집이 옥상에 원형, 혹은 정사각형의 옥탑방이 있었다.
꼭데기엔 뾰족한 철주를 장식으로 세웠기에 물어 보았더니,
조상의 산소를 쓰지 못하게 하는 관계로
옥탑 방에 선조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신이시여!!!
나이든 사람을 혐오하고, 무조견 과거를 작살낼려고 하는 정치한다는 녀석들에게
그 길고도 날카로운 철주로 똥침을 내리소서.........
물론 그곳에도 항주 전용 조선족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다.
영은사(靈隱寺)
오래된 커다란 절터에 웅대하게 새로 만든 관광객용 절 세트?이다.
불전통 옆의 스님도 엑스트라인 듯 어울리지 않는다. 중국인들도 많이 와서 향불을 피우고
소원 성취를 비는 모든 것의 크기가 대단한 절이지만, 나는 이 절 자체보다는 입구에 있는
비래봉(飛來峰)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약 천년전에,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돌산 곳곳을 깍아 만든, 서로 다른 석불
330여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역시 한글 설명이 같이 붙어 있다.
그중 하나인 아래의 사진은 관음상이라는데, 그 배를 公德배, 혹은 福배라고 부른단다.
그 미소와 아랫배....
누구와 닮았다.............
특히 배 부분이....
서호(西湖)
중국의 미녀 서시를 기려서 만든 호수로, 주변 경관도 너무 마음에 든다.
물과 흙의 경계가 없이 너무도 평화로운 정경이다.
그 누구도 달밝은 밤엔 소주 한잔 없이 견디지 못하리라..
산책로도 좋고 배를 타면 더욱 좋다.
배 앞의 갑판에 홀로 앉아, 혹은 눈높이를 낮추려고 엎드려서 그림을 본다. 수채화를 본다.
점심에 '거지닭과 동파육'이라는 전설속의 안주 덕에 과음한 탓인가?
내 좁은 마음도 너그러워지려고 애 써본다.
항주라는 대 도시의 바로 옆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게 참으로 부럽다.
수천년 역사의 선물이다.
육화탑(六和塔)
1,000년전의 13층 목탑으로 황룡사탑이 연상되었다.
입장료를 내면 탑 내부로 들어갈수 있으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중국 전국의 탑을 2-3m 모형으로 제작해 전시한 뒷산만 거닐었다.
4차 항주 차 쇼핑
우리 나라의 보성지역과 같은 차밭과 판매를 겸한다.
그들의 주택이나 생활 수준의 높음에 놀람.
5차 민물 진주 -- 관광 쇼핑에 짜증나기 시작
억지 쇼핑으로 5시가 넘어 출발해 상해로 달리는 그 대절 버스는
다시 타고 싶지 않고 기억도 하고 싶지 않다.
억지 쇼핑으로 늦은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3-4차선 고속도로의 갓길을 이용해 추월하고,
그런 버스 앞을 다른 차들이 들이 대고..
급가속. 급 정거, 급 회전, 급급급급...
차라리 눈을 감고 있었다.
저녁 8시 30분이 넘어서 상해 도착 후 한국관에서 식사 -- 불고기 집인데 엉망
길 건너편에 육감적인 아가씨들이 6-7명씩 북적이는 이발소들이 밀집해 있다.
이발 도구도 없이 머리만 감겨 주고, 얼러리 꼴러리 하는 집이란다.
왜 이런 곳에 한국인용 음식점이 있는지....
정부에서는 못 본척 눈감아 준다고.. 몇년 전만해도 자아비판 감 이었을텐데..
이곳도 여성의 지위와 이혼율이 동반 상승 중이다.
우리나라 성매매 여성들에게 갈 돈이 이리로도 흘러 나올테지?
관심을 갖는 나에게 마누라가 (흥!! 줘도 못 먹을텐데...?)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 제길할........
여러 사람 앞에서 쪽 팔리게...
외탄 야경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100년전의 유럽 조차지때의 석조건물들이,
강 건너는 상하이 최대, 최고의 건물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상해땅이 건물의 무게로 가라 앉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자부심과 긍지에 찬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대신 우리들의 목소리는 잦아든다.
전율과 공포까지 밀려온다.
강에는 커다란 화물선과 바지선이 줄을 짓고 오르내리고 있다.
강변이 온통 화물선용 크레인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김 정일이 방문해 경천동지할 상전벽해라는 말을 할 만도 하다.
지나간 2년, 아니 10년 간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민노총 달래는 사이에,
한 스님 눈치보는 사이에, 행정수도 어쩌고 하는 사이에,
과거사와 박 정희 흠집 찾는 사이에, 광화문 현판 놀이 하는 사이에.....
이젠 이미 상해가 서울을 앞지르고 점점 그 간격을 넓히는지 모른다.
사방 100km이내에 산도 없이 평탄한 공간, 무한한 노동력과 자원들.
제일 부러운 것은, 수양제가 고구려 침공을 위해 건설했다는 항주와 북경을 잇는
1,600km이상의 대운하로, 바둑판처럼 나누어진 크고 작은 수로와 연결되어,
도심까지 많은 량의 물류 이동을 가능케 한며, 또한 시내를 관통하는 고가
차도도 거침이 없다.
상해시 전체가 재개발 중이다.
비우고 있는 낡은 주택가. 철거중인 공장. 신축중인 고층 빌딩들.....
물론 사상누각과 같다는 상해의 허세나 기타 여러 문제도 없지 않겠으나
절대 무시 못할 저력이 느껴졌다.
밤 10시 넘어 호텔에 들어온 우리는, 중국의 마지막 밤을 이대로 있을 수
없다며 다시 탈출.
시간이 늦어 도보로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나 대부분의 업소는 문을 닫았고
철야 PC방 앞의 조그만 야식집에 불이 켜져 있다.
21살 된 수줍어하는 매우 예쁜 아가씨가 PC방 손님의 간식을 위해 밤을 세워
장사 한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밤을 세워주고 싶었으나.........
야채와 닭 날개등을 고르니(800원), 끓는 물에 익혀 1회용 그릇에 정성껏도 담아준다.
옆의 24시 슈퍼에서 4,000원짜리 고급 백알을(식당에서 나오는 것은 1,000원정도 판매)
사다가 호텔로 돌아가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랜다.
(50위안 짜리를 내니, 주인이 위폐 감정을 하는 양, 불빛에 비춰보고, 긁어보고 한다.)
중국의 팩키지 여행을 처음 경험하여 보니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중국 정부의 방침이라며 수도 없이 끌고 다니는 지긋지긋한 쇼핑 관광
가이드의 부수입에 직결되기 때문에 판매액에 따라 가이드의 행동이 차이가 나는 듯.
그래도 한국의 엄청난 관광객들 때문에, 조선족의 취업이나 생활 수준이 현지인보다
월등한 것은 사실이다. 모든 한국인 상대의 쇼핑센타나 식당, 숙박시설엔 거의 모두
조선족을 고용하고 있어, 매년 연변의 인구가 감소되고 있다고 한다.
둘째. 최소한의 자유 시간 -- 사고나 이탈에 대해 신경과민인 듯하다. 논산 훈련소보다
더 자유 시간이 없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나이어린 처녀 혼자 통제하려니 이해가
간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중국인들의 사기, 도둑, 시비, 기타 나쁜 경험들을 얘기하며,
최대한 중국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가이드가 모든 일을 준비, 처리해 주기때문에 신경 쓸일이 없다..
셋째. 먹거리의 한계 -- 혹시나 생길 식중독과, 생소한 음식을 선택시 불만인 사람들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보편 타당하고 무난한 음식만 먹게 된다. 덕분에 별도의 돈
쓸 일도 적다 .
넷째. 10명만 넘으면 여행 팀이 가능하고, 마음만 맞으면 맞춤 관광도 가능하다고.
다섯째. 관광지에선 한국돈이 더 편하나, 상해에선 통하지 않는다.
여섯째. 관광은 체력이다. 특히 걷기가 90% 이상이다. 따라서 즐거운 여행을 위해선
다리의 힘을 키워야 하고, 입산회에 열심히 다녀야 하겠다.
입산회에 영광을..............
첫댓글 나는 언제 이 곳에 가보려나. 누가 관음상의 배와 닮았는지...도봉산에 나와 좀 더 얘기 해주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