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관광지
푸트라자야 / PUTRA JAYA |
1957년 11개 주가 통합한 말라야 연방이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쿠알라룸푸르를 수도로 정하고, 헌법 154조에 ‘의회가 다른 곳을 정할 때까지 쿠알라룸푸르가 연방의 수도다’라고 명시했다.
91년 들어 마하티르 수상은 ‘비전 2020’이라는 국가발전 30년 계획을 추진하며 입법부는 남겨 놓되 행정, 사법부의 기능을 담당할 신행정수도로의 이전 작업에 착수했다. 수도권 과밀해소와 균형발전, 전자정부 구현 등이 목적이었다.
1995년 각료회의에서 연방정부 이전계획을 확정 짓고 ‘푸트라자야 관리청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1999년 수상청 이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정수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곳이 바로 푸트라 자야이다. 말레이시아의 최대 도시개발 프로젝트이며 최초의 인텔리전트 도시로 알려진 푸트라자야는 21세기 말레이시아인들의 이상형의 도시가 되기 위해 현재도 건설중인 상태다.
1만1천3백20에이커의 면적의 푸트라자야시는 대략 6만7천개의 단위와 33만5천명의 인구를 수용하게 될 것이며 주민들은 초현대식 위락 편의시설이 완비된 도시 생활을 체험하게 된다.
1996년 정부청사, 공공위락시설, 사회기반시설, 주거지역, 습지대, 공원등의 설립으로 시작된 도시건설은 오는 2010년 최종적으로 완공될 계획. 친환경적 주택 건설에 역점을 두고 12개의 공원과 정원, 습지대가 조성되어 주거지역개발은 조화롭고 신선한 환경을 제공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푸트라자야의 라이프 스타일 또한 세계가 주목할 만한 수준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영재학교와 헬스 클리닉, 경찰서, 소방서, 주유소 등이 가장 친환경적이면서 인간 중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컨셉트로 세워졌다.
또한 푸트라자야는 버스, 경전철, 해상교통, 공원형의 여객 터미널 등을 갖춘 도시내?도시간 운송 시스템과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다. 푸트라자야 마스터 플랜은 커뮤니케이션, 엔터테인먼트, 안전관리, 에너지 관리 등에 관련된 지능형 쌍방향 개념에 주안점을 두었는데, ‘도시통제센터’를 건설해 도시를 관리하고 주민들에게 대중교통정보와 에너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부분의 혁신을 전담할 시스템을 따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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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거리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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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 MALACCA |
말레이시아의 최대 항구이자 관광도시인 말라카(Malacca)는 말라카 해협을 기점으로 지난 15∼16세기를 풍미했던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 거점이자, 19세기 서방 세력들이 동양으로 들어오던 시점까지 말레이 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로 자리해 왔다. 우리나라 경주(慶州)에 해당되는 고도(古都) 말라카는 오늘날 13개 주로 구성된 말레이시아 연방의 한 주로, 순수 말레이 토착 문화 이외에 과거 무역왕국 시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으로부터 유입된 중국 문화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세력의 지배를 통해 유입된 유럽 문화가 혼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13개 연방주 중에서 펠리스(Perlis) 주 다음으로 작은(국토 면적의 1.3%) 말라카 주의 인구는 60만이 조금 넘으며, 59%의 말레이계와 31%의 중국계, 7%의 인도계 이외에 약 3000명의 포르투갈계 유라시안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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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명나라 시대였던 15세기를 전후해서 뱃사람들과 주석 광산 노동자로 건너 온 많은 중국인들이 이 곳에 정착하기 시작 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주로 남자들이었고 말레이 여성과 결합하게 되면서 중국식 문화와 말레이 문화의 결합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결합은 중국 남성을 가르키는 ‘바바(Baba)’와 말레이 여성을 가리키는 ‘뇨냐(Nyonya)’가 결합하여 ‘페라나칸(Peranakan) ’으로도 일컬어지는 ‘바바뇨냐’ 문화로 거듭나게 되었다. 특히 말라카 강의 서쪽 툰탄쳉로크 거리(Jl. Tun Tan Cheng Lock)에는 말라카 지역에 들어온 중국인들의 고가(古家)가 좁은 도로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작고 좁은 입구와 달리,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레코-로만 양식의 특징을 지닌 신 고전 유럽풍 건물을 살펴 볼 수 있는 이 거리에 바바뇨냐 전통 박물관(Baba & Nyonya Heritage Museum)이 자리해 있다.
말라카에서 태어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만든 사설 박물관인 바바뇨냐 전통 박물관에는 100년이 넘는 중국인들의 말레이 반도 이주사가 보존되어 있다. 출입구에 도착하여 말라카에 처음 자리를 잡은 선조들의 사진이 전시된 응접실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박물관으로 꾸며진 집안 곳곳에서 이 지역 중국인들이 살아온 역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중국인들의 생활 양식을 말해 주는 가구에서부터 요강과 같은 작은 물품, 결혼식 때 사용한 결혼 예복과 함, 신혼부부들이 사용하는 침대, 생일에 먹는 음식, 생활의 즐거움을 중요시 하는 중국인들이 마작을 즐기기 위해 따로 만들어 놓은 방, 그리고 죽은 후 묻힐 관까지 보관 된 바바뇨냐 전통 박물관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의 모든 생사(生死)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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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관광의 중심은 네덜란드 통치시절 지어진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큰 스태더이스 (Stadthuys) 기념관이다. 스태더이스 기념관은 말라카 왕국 시절부터 외세통치 시절을 거쳐 최근까지의 역사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네덜란드 스타일의 빌딩으로 추정되는 연어 빛깔의 스태더이스는 1650년 네덜란드 총독과 관리들의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말라카의 중심부에 건축 되었으며 네덜란드식 석공예와 목공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건축 당시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전통 혼례복과 각종 유인물이 전시된 역사 및 인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외세의 역사적 건축물들은 대부분 스태더이스 인근에 있어 쉽게 도보로 둘러볼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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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더이스 옆에 위치한 네덜란드 건축 양식의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는 1753년에 건립되었다. 이 교회의 신도석과 대들보는 네덜란드의 건축기법을 도입해서 이음쇠 없이 만들어졌으며 놋쇠로 된 성경 받침대에는 요한 복음의 첫 구절이 새겨져 있다. 교회 내부 바닥에 있는 묘비에는 유광 타일을 이용하여 아르메니아체(Armenian Script)로 ‘최후의 만찬’이라는 글자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길이 약 25m, 폭 12m, 높이 약 13m인 크라이스트 처치의 외부에는 네덜란드풍의 시계탑이, 내부에는 200년 전에 만든 수공예 의자가 원형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교회의 바닥에는 이란의 서북부 지역인 알리나인 사람의 필체도 관찰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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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양식의 쌍둥이 탑 교회로서 1849년 프랑스 신부 파르베(Farve)가 ‘동방의 사도’로 알려진 성 프란시스 셰비에 (St. Francis Xavier’s Church)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성 프란시스 셰비에는 16세기에 가톨릭을 동남아시아에 포교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회 앞에는 프란시스코 셰비에를 기리기 위한 동상이 서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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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 처치 뒤 편 언덕 위의 벽채만 남아 있는 세인트 폴 교회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포르투갈 통치 시대인 1521년에 두아르떼 코엘료(Duarte Coelho)에 의해 완공된 세인트 폴 교회는 기도원으로 사용되면서 포르투갈의 그리스도 포교의 거점지로 유명했으나 가톨릭을 박해하던 네덜란드와 영국군의 공격에 의해 파괴돼 벽채만 남아 있다. 공격을 당하기 직전에는 포르투갈인들이 교회를 요새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붕에 포반 등을 위한 구멍을 설치한 흔적 등이 남아있다. 또한1553년 성 프란시스 셰비에가 죽은 뒤 이 성당에 6개월 동안 안치되었다가 인도의 고아(Goa) 지방로 이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인트 폴 교회가 위치한 세인트 폴 언덕은 말라카 해협을 배경으로 밤마다 나레이션 쇼가 진행된다. 1753년에는 세인트 폴 언덕을 네덜란드 귀족들이 매장지로 만들었으며 그들의 비석은 라틴어와 포르투갈어로 새겨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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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에게는 에이 파모사(A’ Famosa)로 불리우고 있는 산티아고 요새(Porta de - Santiago)는 파모사(Famosa) 라는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포르투갈의 수호성인 성 야곱을 가리키는 산티아고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511년에 만들어진 요새로서 예전에는 난공불락의 요지였으나 네덜란드군과 영국군의 말라카 침공시에 많이 부서진 것이 네덜란드인에 의해 1670년에 다시 복원되었으며, 그 후 관리가 되지 않아서 성의 정문만 남아있다.
에이 파모사 요새는 포르투갈이 점령한 직후였던 1511년에 말라카에 있는 이슬람 사원의 잔재로 지은 것으로 견고한 철옹성을 자랑했으나 1641년 또 다른 서방 강국인 네덜란드 군의 침공으로 5개월 동안의 치열한 전투와 무자비한 포격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7천명의 전사자만 낸 채 무너지고 말았다. 약 30년이 지난 후에 파괴의 장본인이자 정복자인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복원되었는데 이후 프랑스, 영국 등의 열강에 의한 지속적인 공격과 식민 통치로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날 자생력을 잃고 말았다.
360여 년이 지난 현재에는 이 요새의 흔적을 더 이상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때의 치열했던 전투와 말라카를 지배했던 포르투갈을 기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흔적이 바로 이 요새의 정문인 산티아고 문이다. 지금도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산티아고 문을 통해 세인트 폴 언덕과 언덕 위에 앙상한 뼈대로만 남아있는 세인트 폴 성당을 오르내린다. 에이 파모사 요새의 산티아고 문은 현재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로고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변에는 당시 사용했던 구형 포들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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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항 제밧 거리(Jalan Hang Jebet)’로 불리는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r)는 골동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존커 스트리트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골동품 수집상들에게 잘 알려진 곳으로 300년이나 오래된 진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 가게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흥미롭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깃든 여러가지 골동품을 저렴한 가격으로도 구입할 수 있어 앤티크 수집가들에게는 천국과 다름 없는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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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트라이쇼는 말라카 시내를 편안하게 관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트라이쇼에 앉아 좁은 거리와 골목들을 탐험하다 보면 보통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색적인 장소를 발견하는 것도 말라카 여행의 묘미가 된다. 보통 시간 또는 거리 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 트라이쇼는 스태더이스(The Stadthuys) 근방에 정차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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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항(Pahang)주 콴탄(Kuantan) |
말레이 반도의 가장 큰 주(州)인 파항(Pahang)주는 말레이 반도 중부에 위치해 있으며 약 3만6053㎢ 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길이 약 460km의 파항강이 흐르며, 남중국해와 맞닿아 있는 말레이시아 동쪽 해안과 산이 많은 내륙 지방, 그리고 주의 북동부에 있는 타만 네가라 (Taman Negara) 국립 공원을 보유하고 있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영화 ‘남태평양’을 촬영한 티오만(Tioman) 섬, 해발 1,800m의 산악 지대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최대 카지노이자 테마파크 겐팅 하일랜드(Genting Highland), 해발 1,400m에서 라운딩을 즐길 수 있는 부킷팅기(Bukit Tinggi) 리조트 등이 파항 주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들이다.
파항주의 주도인 콴탄(Kuantan)은 파항 강 하구의 제방에 위치한 활발한 도시로 현대적인 건물들과 고급 주거지 및 화려한 모스크 같은 다양한 건축물들로 특유의 매력을 발산한다.
말레이시아 동부의 중요한 항구 도시이기도 한 콴탄은 클럽메드로 유명한 체러팅(Cherating) 해변을 비롯하여 발록(Balok) 해변, 텔룩 쳄페닥(Teluk Chempedak) 해변, 베세라(Beserah) 해변 등 말레이시아 동부 해안을 상징하는 해변을 보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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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와 벨랏(Belat) 강 사이에 위치한 콴탄 강을 왕복 2시간에 걸쳐 항해하는 파항 리버 크루즈(Pahang River Cruise)는 콴탄에서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20명 남짓이 탈 수 있는 네모난 배를 타고 콴탄 강을 이동하다 보면, 양 옆으로 뻗어 있는 339헥타르의 초록 빛 무성한 맹그로브 수풀림(The Mangrove Reserve Forest)에서 간간히 이구아나와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다.
약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맹그로브 수풀림은 말레이시아가 보유한 독특한 열대 습지로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보안림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전략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크루즈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250미터에 달하는 판자 산책로를 거닐며 열대 정글을 탐험할 수 있는 타만 바카우(Taman Bakau) 공원에 들르는 것이다. 바닷물과 담수가 겹치는 이 곳에서는 리포조라과(Rhixophora) 맹그로브 등 총 3가지 종류의 맹그로브 나무들이 그 깊은 뿌리를 드러내며 서식하고 있다. 이 곳 갯벌에서는 조개, 게, 수달 같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독수리, 백로, 물총새들도 관찰 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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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항주의 통치자 술탄(Sultan) 왕궁이 위치한 로열 타운(Royal Town)인 페칸(Pekan)은 콴탄에서 남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로열 타운답게 페칸의 곳곳에는 ‘존경하는 국왕(다울랏 투안쿠-Daulat Tuanku)’이라는 표식이 왕과 왕비의 사진과 함께 세워져 있다.
페칸에 자리잡고 있는 왕궁과 주립 박물관 역시 파항주가 자랑스러워 하는 술탄에 대한 존경으로 가득하다. 아부 바카르 왕궁 (Istana Abu Bakar)에는 파항주의 5번째 술탄인 하지 아흐맏 샤 알 무스타인 빌라(Haji AHMAD SHAH AL-MUSTA’IN BILLAH) 가 현재 첫 번째 부인의 사망 이후 두번째로 맞은 부인과 함께 살고 있으며, 페칸 주립 박물관은 유리 공예품 및 도자기 등 말레이 연방의 부유한 가문이 소유했던 유물들을 소유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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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항주 콴탄에서 북서쪽으로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램빙 강(Sungai Lembing) 마을은 선사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주석 생산지로 매우 유명하다. 숭아이 램빙 박물관 (Sungai Lembing Museum)은 이러한 주석 생산의 역사를 포함하여 파항주 전체에 흩어져 있는 역사적인 정보와 증거들을 전시하고, 가장 풍요로운 주석 제조지역으로서의 영광 스러운 나날을 재현하고자 만들어졌다.
일찍이 이 지역은 영국 회사인 파항 연합 유한 회사(PCCL: Pahang Consolidated - Company Limited)에 의해 1906년부터 파산시기인 1986년까지 약 80년간 집중적으로 개발되었으며, ‘동양의 엘도라도(El-Dorado)’라는 별칭이 붙여질 정도로 당시 영국 관리들의 특별 관리 지역이었다. 2층으로 지어진 숭아이 램빙 박물관 내부는 당시의 광산 설비, 광부들의 작업복 및 광산 모형 등 지난 시절을 설명해 주는 유산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특히 당시의 주석 광산 터널 입구가 모형으로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것은 물론, 광산 개발 당시에 일하던 늙은 광부로부터 주석 광산 역사를 설명 받을 수 있다.
숭아이 램빙 박물관은 콴탄 시내에서 약 42킬로미터 떨어진 곳(1시간 10분 소요)에 위치해 있으며, 거대한 와상 부처가 있는 석회 동굴인 차라스 케이브(Charas Cave)를 지나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숭아이 램빙 박물관은 금요일을 제외한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 까지 개관하며, 이슬람 신도들의 전체 예배가 진행되는 금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정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개관한다. 매주 월요일과 이슬람 최대 명절인 하리 라야 아이딜 피트리 (Hari Raya Aidil Fitri)에는 휴관한다. 입장료는 1인당 1링깃(RM)으로 학생들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숭아이 램빙 박물관을 나서 램빙 강(Sungai Lembing) 마을로 통하는 행잉 브릿지(Hanging Bridge)를 건너면, 한 때 세계 주석 생산량의 33%를 보유하며 동남아시아 최대의 주석 광산으로서의 풍요를 누리게 한 주석 광산의 터널 입구를 관광할 수 있다. 광산의 아래쪽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매몰되어 버렸지만, 사람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한 터널 입구에서 느껴지는 그 차가운 기운만으로도 예전의 영광을 느낄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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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렝가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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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렝가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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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렝가누 / TERENGGANU |
말레이 반도 동쪽 연안, 남중국 해와 맞닿아 있는 트렝가누(Terengganu) 주는 신선한 자연이 주는 휴양지의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트렝가누의 북쪽은 클란탄(Kelantan) 주와, 남쪽은 파항(Pahang) 주와 경계를 이루며 주도는 쿠알라 트렝가누(Kuala Terengganu)이다.
트렝가누 주는 미지의 열대 정글, 이국적인 섬, 그리고 눈부신 폭포 등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트렝가누의 섬 중에서도 퍼헨티안 섬(Perhentian Island), 르당 섬(Redang Island), 카파스 섬(Kapas Island), 피낭 섬(Pinang Island)은 말레이시아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섬으로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트렝가누 주의 북쪽 베숫(Besut)에서부터 남쪽 케라만(Keraman)에 이르는 225km의 긴 해안선은 숨막히게 멋진 하얀 모래 사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뜻하면서도 투명한 바닷물 속은 신기한 물고기로 가득하다.
트렝가누의 매력은 친절하고 예의 바른 트렝가누의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129만 여명으로 추산되는 트렝가누 주의 인구는 90%의 말레이 족과 10%의 중국계 및 인도계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와 전통이 그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소박한 마을에서 온건한 삶을 영위한다. 서두르지도 않고, 꾸밈도 없는 트렝가누의 사람들은 전원 마을과 매력적인 연안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트렝가누 주는 연 날리기, 팽이 돌리기 같은 전통 놀이와 함께 바틱(Batik) 염색과 송켓(Song- ket) 직조 등 말레이 문화와 전통의 유산이 오늘날 까지도 매우 강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전통 기술을 이용한 고도의 조선술 등이 아직까지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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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렝가누 박물관(The Terengganu State Museum Complex)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 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트렝가누의 주도인 쿠알라 트렝가누의 부킷 로송(Bukit Losong) 지역의 27헥타르에 이르는 부지 위에 트렝가누의 옛 궁전의 디자인을 본 따 건축되었다.
트렝가누 박물관은 4개의 구역으로 나눠진 본관과 함께 해양 박물관, 어업 박물관 외에도 5개의 전통 목조 건물들과 다양한 수목과 허브가 가득한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정원 안에는 작은 폭포 및 연못과 함께 실제 크기의 전통 선박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전시 본관은 트렝가누의 전통 건축기술에 따라 16개의 기둥 위에 지어졌으며, 입구에는 말레이 반도에서 가장 먼저 이슬람이 유입된 증거인 ‘비석(바투 베수랏-Batu Bersurat)’이 세워져 있다. 본관 내 10개의 갤러리에서는 조물, 역사적 유물, 공예품, 왕족, 이슬람 삽화, 현대 예술품, 무기, 석유 개발에 대한 전시와 함께 현대 예술에 대해서도 전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문화와 경제, 종교에 대한 풍부한 역사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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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헨티안 섬은 트렝가누로부터 북동쪽으로 21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큰 섬(Palau Besar)과 작은 섬(Palau Kecil)의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 해양공원에 속해 있는 퍼헨티안 섬은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정글과 하얀 모래 사장, 사파이어 빛의 바다, 다양한 종류의 산호 정원 등 말레이시아의 해양 낙원으로 유명하다. 넓게 펼쳐진 만과 함께 투명하면서도 따뜻하고 잔잔한 바다는 퍼헨티안 섬이 스쿠버 다이빙과 스노클링 등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손꼽히는 이유가 된다. 퍼헨티안 섬을 감싸고 있는 잔잔한 바다 속에서는 유유히 헤엄치는 가오리를 목격하는 스릴 있는 경험이나 형형색색의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6월부터 9월까지의 해변 가까이에서는 해변의 후미진 곳에 알을 낳는 거북이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바다 낚시, 수영, 윈드 서핑 등을 즐길 수 있으며, 산들바람과 함께 일광욕을 즐길 수 있어 자연을 사랑하는 이에게 꼭 알맞은 곳이다. 이 신선한 이국적인 열대 섬까지는 쿠알라 베숫(Kuala Besut)에서 제트 보트로 삼사십분 정도 걸리며, 일반 보트로는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 |
클란탄 / KELANTAN |
‘빛의 땅’ 이라는 뜻을 가진 클란탄(Kelantan) 주는 말레이 반도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부터 파항(Pahang)주의 콴탄(Kuantan)까지 이어진 카락(Karak) 고속도로를 따라오다 조금 더 동쪽으로 이동해 도착할 수 있는 클란탄은 푸른 들판의 논과 순박한 어촌 마을로 구성된 주이다.
클란탄의 인구 150만명 중 대부분이 말레이 계이며, 타이계와 인도계, 그리고 중국계가 7%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클란탄은 커다란 팽이 돌리기와 화려하면서도 커다란 연 날리기, 큰 북 치기 등의 전통 놀이와 그림자 연극의 본 고장이기도 하며, 클란탄 사람들은 그들의 오래된 전통과 관습, 공예 기술을 매우 조심스럽게 보존해오고 있다.
말레이 문화의 요람이라고 일컬어지는 클란탄 주는 다양한 전통이 주는 매력과 아름답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으로 여행객들에게 풍부한 즐거움을 준다. 깨끗하게 보존된 클란탄의 매력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클란탄 주는 ‘달빛’이라는 뜻의 카하야 불란 해변(Pantai Cahaya Bulan), ‘일곱 개의 호수’라는 뜻의 세리 투주 해변(Pantai Seri Tujuh), ‘멜로디’라는 뜻의 이라마 해변(Pantai Irama), ‘속삭이는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비시칸 바유 해변(Pantai Bisikan Bayu)까지 말레이시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해변을 가진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쿠알라 크라이(Kuala Krai)부터 다봉(Dabong)까지 망그로브 열대 우림을 관찰할 수 있는 리버 크루즈가 유명하다.
태국과 경계를 이루는 클란탄 주는 시암 제국의 속국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으며, 그러한 클란탄의 문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클란탄의 주도인 코타 바루(Kota Bharu)이다. 말레이시아 최북단에 위치한 코타 바루는 지리적으로 태국과 가까워 태국과의 수많은 무역이 이루어져 ‘시장’이 발달해 있으며, 다양한 수공예품 외에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뉴 센트럴 마켓(New Central Market), 뱀부 포트 바자(Bamboo Fort Bazaar) 등의 시장에서는 클란탄의 느낌을 담은 수공예품과 태국으로 수출하는 상품, 그리고 바틱과 송켓 직조물 및 귀금속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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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란 마무드(Jalan Mamud)에 위치한 페르다나 호텔 가까이 위치한 클란탄 문화 센터에는 클란탄의 생활 문화 유산들이 실제와 가깝게 전시되어 있다. 문화 센터에서는 민속 공예 전시와 더불어 가싱(Gasing)이라고 불리우는 팽이 돌리기와 연날리기, 그리고 사람 몸만큼 큰 북을 연주하는 공연 등 전통 놀이를 재연하는 공연이 열린다. 특히 팽이 돌리기는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놀이로 팽이의 무게가 무려 5Kg까지 나가며 회전판 위에 그보다 더 큰 나무가 덧붙여져 있다. 이 팽이는 한번 돌리면 2시간도 넘게 돌아가며, 매년 클란탄의 축제 때에는 팽이 돌리기의 최고 승부를 가리는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이 문화 센터는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 월, 수, 토요일에 문을 열며,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9시에는 말레이 전통 음악이 곁들어진 그림자 인형극도 관람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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