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시 : 2014. 6. 29. 07:30 - 19:20
0, 장소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0, 코스 : 해산령 - 해산마을 - 비수구미 - 삼거리 - 평화의땜
44년만에 화천 풍산리에 가보았습니다
실제는 관광버스를타고 풍산리를 그냥 지나만 가보는 것이지만
수십년간 화천 풍산리가 참으로 궁금 하였습니다
1970년 그해 7월도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6.25.후부터 전방 사단에서는 연대 전투단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그훈련은 연대장들이 별을 다는데 아주 중요한 훈련이기도 하였습니다
새벽에 비상이 걸리고
완전군장을 갖추고 연병장에서 중대장님과 대대장님의 군장검열을받고
보리밥과 된장국으로 아침을먹고 캄캄할때 연대정문을 통과 하였습니다
수밀리 - 사창리 - 신포리 - 화천어느곳 - 풍산리가 목표지점 이었습니다
우리 연대에서 풍산리까지는 40km가 조금넘는 다더니 거짓말 같았습니다
더웁고 발에 물집이 생기고 허기지고 중대마다 낙오자가 생기고
어두워 지면서 숙영지에 도착하여 텐트를치고 한소곰씩 잤습니다
3일째 되던날 공격부대에 포위되어서 보급로가 차단되어서 두끼를 굶었습니다
무전으로 중대장님(황정룡님)이 대대장님 (박노성님) 한테 항의 하던일
대대 취사반장 이중사 (사단 헌병대에서 전출) 한테 무전기에대고
군법회의에 넘기겠다고 욕을하면서 닥달 하던일이 떠올랐습니다
8년간의 군생활중 풍산리와 도마치고개의 고생은 죽을때까지 못잊을것 같습니다
신사역 5번출구앞
이곳에서 출발하는 안내 산악회들은 거의가 젊은편이고
회비도 아주 저렴하기에 언제나 만차입니다
지리산도 다른 산악회들은 회비를 45000원씩 받지만
이곳의 S,Y,H,등 산악회들은 25000 전후를 받고있습니다
내가 제일로 많이 따라다니는 산악회도 이곳입니다
오음리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입니다
월남파병 장병들을 교육하던 7보단이 있었던 곳이며
내가 1년간 근무했던 깊은정이든 아주 정다운 곳입니다
옛날에는 소양강땜 옆에서부터 꾸불 꾸불 아흔아홉
백치고개를 넘어서 왔는데 몇년전에 산속으로 긴터널이 개통되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정답게 지냈던 사람들은 모두다 어디서 살고있는지 궁금 합니다
버스속이라 이렇게 촬영 할수밖에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해산터널
풍산리 에서부터 아흔 아홉 구비를 꾸불 꾸불 돌아서
이곳에 도착 하였습니다
전방 지역에서 가장높고 가장긴터널 (1986m) 이라고쓰여 있었습니다
산악회 버스들은 모두 이곳에서 등산객들을 하차 시키는곳 입니다
비수구미 출입구
이곳에서 비수구미 까지는 4km 라고쓰여 있었습니다
비수구미 가는길
처음 약1km 정도는 주먹만한 돌덩이들이 울틍 불틍 갈려있는 조금험한
임도였지만 나머지 구간은 아주좋은 내리막길 이었습니다
호랑나비들
등산로 옆에서 여러마리의 나비들이 무슨행사를 하는것 같았습니다
나비들이 이렇게 모여있는것은 처음보는일 이었습니다
이곳에 오면서보니 울산에서 왔다는 40대의 두사람이 부드러운 모기장
으로만든 큰뜰채로 나비를잡고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상업적인 전문적인 나비 사냥꾼인지 배낭도 곤충을 넣을수있는
특이한 배낭을메고 있었습니다
토종 벌통
등산로옆 조금 험한곳에 있었습니다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곳같고 흐뭇 했습니다
요사이 뉴스메이커인 구원파교주 유병헌과
인천 중구 동구 옹진군의 국회의원 박상은 같은者들이
길가의 저벌통을 보았으면 좋았을것 같았습니다
하느님을 팔아서 3천몇억의 재산을 축재한 유병언과
경기가 좋지안다는 요사이에 아들집에다 미국돈과 일본돈
그리고 50000원 짜리등 6억원을 숨겨둔者 이들이 우리모두를
허탈 하게하고 슬프게 하고있습니다
좋은 등산로
얼마를 걸어도 좋을것같은 등산로 였습니다
지리산의 구벽소령에서 선비샘으로 가는길에도
이곳과 아주 비슷한 등산로가 있습니다
이장님댁
비수구미마을 이장님댁 입니다
6.25.이후에는 이곳 저곳 골자기에 2 - 3 가구씩 100 여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장씨 김씨 심씨 3가구에 7명만 살고있다고 했습니다
이장님댁 에서는 예약받은 산악회 에게는 10000 원짜리 산채비빔밥을
8000원씩 받고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아주 맛있다고들 하였습니다
비수구미 마을은 몇년전에 KBS 인간극장에도 방영 되었다고 했습니다
순돌이
구름다리옆 민박집 개인데 아주 순하고 아무에게나 잘따랐습니다
구름다리
파로호 1
가뭄으로 강물이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안양에서온 사진동호회 젊은 사진작가가 찍어 주었습니다
비수구미 구름다리에서 이곳까지오는 등산로는 참으로 좋았습니다
위험한 곳에는 방부목을 이용하여 목재 등산로를 만들어놨고 계단들도
잘보수 해놓은 아주좋은 등산로 였습니다
어떤곳은 어릴때 고향마을 제공앞에서 석장등 밭에가는길
같아서 한참동안 서서 둘러보며 그때의 회상에젖어 보았습니다
밭뚝에 앉아서 내가 갖고간 소다넣고 만든개떡을 잡수면서 사카리탄물을
맛있게도 마시던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나서 목이울컥 했습니다
파로호 2
파로호 3
강건너 계곡아래 평평한 밭에는 무엇을 심었는지
싱싱하게 잘자라고 있었습니다
그속에 집이있는지 이쪽에서 배를타고 다니면서
경작을 하는지도 궁금 하였습니다
파로호 4
우측에 보이는 젊은이 세사람은
안양에서온 사진 작가들 입니다
저 젊은이들은 좋은 카메라로 사진을 아주 잘찍었으며
내사진도 10 번넘게 찍어 주었습니다
사진찍는 품앗이도 여러번 하였습니다
파로호 5
비수구미 삼거리
비수구미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을 기다리는 산악회 버스들 입니다
좌측은 평회의땜 방향이고 우측은 평화의땜 선착장 방향입니다
집합 시간인 15:20분 까지는 2시간이나 남았기에
혼자서 선착장을 거쳐서 2km 거리인 평화의땜으로 갔습니다
가면서 생각하니 나는 좀무모 하기도하고 새로운곳 에대한
도전 정신이 많은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이점도 자제하는게 좋을것 같았습니다
산딸기
평화의땜 선착장가는 도로가에서 산딸기 군락지를 만났습니다
무슨 공사인지 도로를 폐쇄해 놨기에 사람이 다니지 않기에
산딸기가 저절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여러산에 다니면서 몇개씩은 따먹어 봤지만 오늘처럼 많은
산딸기들은 처음 만났습니다
시간을 봐가면서 기막히게 달고 향기로운 산딸기를 서너컵은
따먹은것 같았습니다
평화의땜 1
땜아래서 무슨 큰공사를 하는지 포크레인과
담프차들이 바쁘게 지나다녔 습니다
저땜의 가파른 중턱으로 힘들게 조심조심 걸어가다가
유격 훈련을하듯 로프를잡고 계속올라 갔더니 땜위의 도로가 나왔습니다
참 바보같은 고생을 한것이 사기당한것 같아서 혼자서 웃었습니다
땜아래 공사장
땜위에 오르다가 촬영 하였습니다
평화의땜 2
가뭄으로 물이 아주 적었습니다
평화의땜 3
평화의땜 표지석
세계 평화의 종
이렇게 큰종은 처음 보았습니다
평화의종 해설가의 지시에 따라서 모금함에 1000 원씩을내면
몇명이함께 타종을 할수있도록 자물쇠를 풀어 주었습니다
종소리가 참으로 은은하고 깊은산속 절에서 들려오는것 같았습니다
우연히 종소리와함께 소나기가 몰려와서 배낭메고 뛰어오는
등산객들의 진풍경을 구경 하였습니다
땜위로 죽어라고 뛰어오는사람
뛰다가 힘들어서 걸어오는사람
소나기를 맞으면서 그냥 걸어오는사람
우산을쓰고 오는사람
팔각정에 앉아서 미소지으며 그사람들을 구경하는게 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평화의 종 설명판
비목
TV 에서 여러번 보았던 비목 입니다
비목공원 설명판
평화의땜
평화의땜은 전두환 대통령 당시에 북한이 금강산에 200 억톤 규모의
땜을건설 하였습니다
북한에서 그많은량의 물을 방류해서 우리를 공격하면 서울의2/3 가
물속에 잠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국민의 성금 600 여 억원을 포함하여 1700 억원을 들여서
89년도에 평화의땜이 완공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2002년부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때 45m 를 더높혀서
현재의 높이는 125m 이고
길이는 601m 라고 하였습니다
평화의땜이 잘보이는 언덕에는 자귀나무의 곱고 수수한꽃이 만발하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수고많이 하셨어요...저두 화천 7사단 사령부 근무한지가 36년이나 되는군요..
대철님 반갑습니다
그때 7사단5연대와 RCT를 했는데 적군측 대대장은 우리27사단 사단장님
바로아래동생 이었는데도 밥을두끼굶게 보급로를차단 하였드랍니다
조만간에 그때 추억속의 풍산리를 꼭한번 가볼려고 합니다.
(27사단장 윤흥정 육사8기 후에중장 고인. 7사단 5연대 대대장 윤흥기 후에준장 생존)
감사합니다..기역을 다하시고 대단하시네요..
대철님 대단하기는요
윤흥정중장은 5.18때 광주에있던 전투병과 교육사령관 - 보사부장관을 지냈고
윤흥기준장은 12.12.때 9공수 여단장으로 전두환 보안사령관 측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정승화 참모총장측의 여단장 이었답니다
갑종장교 출신인 윤흥기준장은 12.12.성공후에 강제예편 되었드랍니다
저보다 8년선배인 9공수 참모장이던 신수호대령이 저의 고향마을 앞동내형 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