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교수회관 - 호암회관앞에서
호암회관안에 있는 로고샵앞에서
호암회관 현관 바로 안에서
호암회관 마로니에 룸(강연장)바로 앞에서 동생과 함께
제가 시를 낭송하고 있는 모습
제가 시를 낭송하고 있음 - 오른쪽에 정운찬 교수님
식이 다 끝난 다음 전 정운찬 서울대 총장님과 악수를 나누다
카나다 온타리오에서 오신 스코필드박사 후원회 회장 김만홍 목사님과 악수하다
전 서울대 정운찬총장님을 호암교수회관에서 뵙다
한국에 15일 체류하는 동안 가장 뜻깊었던 일은 정운찬 전 총장님을 뵙고 호랑이스코필드 동우회 회장님이시기도 한 교수님께서 마침 제7회 스코필드박사 추모 및 장학금 수여식이2009. 4.10 (금요일)일에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은 일이였다.
그 전날 목요일 정 교수님을 연구실에서 만나뵙고 스코필드박사님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모두 드렸다. 그 중에서도 스코필드박사님의 친필 편지 여러통을 드렸는데 반세기가 다 된 오래된 아주 귀중한 자료들이라며 앞으로 서울대 수의과대학 스코필드 홀에 전시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특별한 날에 저의 자작시 “스코필드박사 흉상제막식에 부치는 글” 을 낭송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이었다. 나는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쾌히 승락을 하고 다음날 금요일 동생과 함께 추모 및 장학금 수여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수요일에 국립현충원에 있는 스코필드박사 묘역에 개인적으로 참배를 하고 왔기 때문에 참배식에는 가지않고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2층 마로니에룸에서 열린 남태욱 목사님의 특별강연 “Frank. W. Schofield의 영성과 생명존중 사상” 가 있었는데 이곳에 참석하여 강연후 나의 자작시를 낭송하게 되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오신 목사님들이 계셨는데 그 중에도 스코필드박사 추모위원장이신 김만홍 목사님을 마나 뵙고 내년에 캐나다 온타리오에 세워질 동상제막식에 초청을 받고 감격한 일이다. 각자 개인 자기 소개 시간에 이분이 일어나셔서 자기소개를 하는 도중에 저를 언급 하시면서 저의 영시를 웹 사이트에서 벌써 읽어 보셨는데 잘 썼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저는 깜짝 놀랐다. 서울대 동문 카페에만 영시를 올렸는데 이 카페에서 읽어 보셨느지 여간 궁굼하지가 않았다. 서울대 동문 카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지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정말 글을 잘써서 올려야 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나는 자작시를 읽기 전에 간단하게 스코필드박사님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나의 일생에 지대하게 영향을 끼치신 두분이 계신데 한분은 저의 스승이신 피천득교수님으로 저에게 문학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시고 또 한분은 저에게 신앙의 길을 열어주신 잊을수 없는 스코필드박사님이 십니다……..등 등” 이렇게 서두를 꺼내면서 스코필드박사님을 추모할때 눈물이 울컥 치밀어 참느라 진땀을 뺐다.
이 자리에는 수의대 학장 부학장 교수님을 비롯해서 스코필드박사 제자로서 각계각층에서 활동하시는 저명인사들이 많이 오셨고 장학금을 탄 재학생들도 참석하여 이채로웠다.
점심과 함께 식이 다 끝난다음 마로니에룸을 나오는데 캐나다에서 오신 어떤 목사님은 저의 영시를 달라고 하셔서 정운찬 전총장님이 갖고 계시니 복사요청을 하셔서 가지시라고 말씀드렸다.
기념으로 정운찬 전 총장님과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 정운찬 전총장님은 저의 작은 오빠와도 같은 경제학 분야에 석학들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시라 저를 예우해 주셔서 황송한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스코필드 동우회와 앞으로 계속 유대관계를 가질것을 다짐하면서 모교인 서울대캠퍼스를 한번 돌아 보면서 감회가 깊었다. 벗꽃이 한창 만발해 피어 있었고 개나리 철쭉꽃등 주위 교정과 동산을 아름답게 장식해 눈이 부셨다. 후배들이 이곳에서 청운의 꿈을 품고 향학열이 불타올라 앞으로 각계각층에서 대한미국을 짊어지고 나갈 훌륭한 역군들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