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스페인 리그 최대 관심사는 레알 소시에다드의 돌풍이 시즌 막판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와 레알 마드리드가 과연 어느 시점에서 추월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시즌 개막 전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이슈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3년 만에 프리메라 리가에 얼굴을 내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예전의 명성에 걸맞는 면모를 선보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프리메라 리가를 오랫동안 지켜본 팬들이나 이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이라면 이들의 복귀를 고대했었을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이들의 합류로 인해 리그를 지켜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해졌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반대로 과거 정상권의 성적을 거두던 팀이 부진을 거듭, 하위 리그로 강등되거나 피오렌티나의 예와 같이 하루 아침에 몰락한다면 이는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크나큰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이탈리아 축구의 강자로 군림했던 나폴리(SSC Napoli)와 삼프도리아(UC Sampdoria)의 근황은 이들이 아직도 세리에 B의 기나긴 터널에서 허우적대고 있을망정 그들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여전한 관심거리라 말할 수 있다.
먼저 나폴리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대로 수퍼스타 마라도나(Diego Maradona)가 뛰었던 팀이다. 유벤투스, AC 밀란, 인터 밀란 등 북부의 빅3가 주도하는 이탈리아 축구판에서 소외되고 빈곤했던 남부 나폴리를 연고로 했던 나폴리는 84년 스페인 명문 FC 바르셀로나로부터 500만 파운드라는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이적료에 축구 신동 마라도나를 영입했다. 그전까지 중위권에서 엎치락 뒤치락하던 나폴리는 마라도나와 함께 변모하기 시작했다. 마라도나는 7시즌을 활약하는 동안 나폴리에 감격적인 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을 안긴 것을 비롯 총 두차례의 리그 우승과 각각 한차례씩의 코파 이탈리아, UEFA 컵 우승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90/91 시즌을 끝으로 마라도나는 나폴리와 작별했다. 비록 영웅이 떠난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우기 힘들었지만 영광을 함께 나눈 카레카, 졸라, 페라라, 폰세카, 디 카니오, 파도바노, 파비오 칸나바로 등 동료들의 선전 덕분에 나폴리 가문의 몰락은 90년대 중반까지 지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알곡을 다 내주고만 클럽은 97/98 시즌 세리에 B로의 추락이 불가피했다.
사정은 삼프도리아 역시 비슷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성공을 거두었던 삼프도리아에 있어서의 영웅은 지안루카 비알리(Gianluca Vialli)였다. 전통적으로 왜소한 체격 조건에 기교가 많았던 전형적인 이탈리아 식 스트라이커와 달리 터프하고 강한 면모를 지닌 잉글랜드 식 스트라이커에 가까왔던 비알리는 세리에 A 무대에 본격 적응한 86/87 시즌부터 삼프도리아의 가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89/90 시즌 컵위너스 컵 석권을 이끌며 삼프도리아의 존재를 전유럽에 확인시킨 비알리는 90/91 시즌 마침내 지능적인 포워드 만치니와 호흡을 맞춰 ‘밀란 제네레이션’의 가공할 위협을 뿌리치고 삼프도리아에 여태 전무후무한 스쿠데토의 영광으로 이끈다. 비알리의 삼프도리아는 이듬해 유럽 최고 클럽을 가리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도 진출, 112분 동안 FC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양쪽 모두에 최초가 될 유럽 크라운의 감격을 위해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로날드 코에만의 프리킥 한방으로 삼프도리아의 욱일승천했던 기세는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비알리를 필두로 클럽을 일으켰던 주역들도 하나둘 팀을 떠났다. 비에르코우드와 롬바르도가 그랬고 팔리우카가 그랬다. 97년 여름엔 만치니 역시 더 이상 정상에의 꿈을 꾸지 않는 팀과의 이별을 선언했다. 굴리트, 플랫, 유고비치 등의 대스타들은 물론 베론, 오르테가, 세도르프 등 미래의 재능이 잠시 머물렀지만 비전을 상실한 삼프도리아를 구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삼프도리아는 98/99 시즌을 끝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나폴리는 2000/01 시즌 세리에 A에 잠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팀의 체질로는 세리에 A를 견뎌낼 수 없었다. 한편 삼프도리아는 99/00 시즌과 00/01 시즌 각각 5위, 01/02 시즌 6위로 아쉽게 승격 문턱에서 번번히 턱걸이에 실패했다.
이탈리아 축구가 세계 축구계의 중심에 서 있었던 90년대 그 한축을 담당했던 축구명가 나폴리와 삼프도리아. 이탈리아 축구팬 모두가 진정 그들과의 재회를 고대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