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정체성』, 밀란 쿤데라, 민음사, 1998.
『정체성』은 세르반테스, 발자크, 프루스트, 카프카의 뒤를 잇는 소설의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찐하게 읽은 경험에서인지 읽는 내내 행복한 시간이었다. 쿤데라의 작품은 여성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작가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토리 전개 또한 흥미진진하다. 섬세함을 잃지 않고 그려내는 밀란 쿤데라.
샹탈은 아이를 잃는다. 그녀가 아이를 땅에 묻었을 때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잊지 못하는 샹탈에게 시누이는 “너무 슬퍼하네요. 아이를 하나 더 가져야만 해요.”라고 말하며 남편은 “당신이 우울증에 빠지는 걸 원치 않아. 빨리 다른 아이를 가져야만 해. 그러면 잊을 거야.”(p38) 라는 말을 뱉는다. 샹탈은 그 순간 이혼을 결심하고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샹탈과 가족은 서로 관계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샹탈은 가족을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난다. 정체성과 밀접한 타인의 관계가 아프게 남는다. 샹탈이 아이를 잃고 살아가는 모습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숙명이었지만 그 후는 자신이 멋지게 혼자 있고 싶은 무한한 욕망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샹탈은 4살 연하의 장마르크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된다. 어느 날 장마르크에게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p31)라고 푸념한다. 장마르크는 이런 샹탈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샹탈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내고 염탐을 시작한다. 편지의 주인공은 샹탈을 사랑하는 남자로 그려졌다. 빨간색이 잘 어울린다고 하자 샹탈은 하지 않던 빨간 진주목걸이를 하고 빨간색 잠옷을 사고 즐겁게 옷을 입고 더 쾌활해지지 시작한다. 이를 숨어 지켜보던 장마르크는 질투심을 느낀다. 그러나 샹탈은 편지의 글씨체를 의심하고 장마르크의 편지였음이 밝혀진다.
살면서 때론 경악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샹탈을 통해 우리는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남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샹탈의 감정은 속수무책인 솔직한 증거인 것이다. 본질이 타자를 통해 보게 된다는 아이러니다. 『정체성』은 언제나 이중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런 이중성이 애매한 결말을 남긴다. 꿈인지 어디까지가 현실이었던지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이 우리와 같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이 진실일까? 관계에서 보여 지는 자신도 또 다른 자아임을 샹탈을 통해 만나게 된다. 다시 장마르크를 보게 된 샹탈. 다시 꿈꿀 수 있을까?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냥 당신을 보기만 할 거야” 그러더니 다시 말했다.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 놓을 거야. 매일 밤마다.”(p183)
<서평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