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활주일에 상주교회에 갔었습니다.
상주는 구미에서 북쪽에 있고 차로 오십분 정도 걸립니다.
지난번에 갔을때가 추수감사절이었으니까 4개월만에 다시 갔습니다.
이번에 상주교회에는 새로운 신부님이 오셨는데 지지난주에 내려오셔서 부활주일이 두번째 맞이하는 주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임하자마자 성주간을 얼마나 분주하고 긴장되게 보내셨을까 싶어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밝고 반갑게 맞아주셔서 제 마음도 환해졌습니다.
서울교구에서 내려오신 조정기 어거스틴 신부님
제가 알기로 상주교회는 영국선교사 시절에 남쪽으로 전도해 내려오다가 마지막으로 세운 교회입니다.
대전교구의 충주교현교회와 대소원교회가 1924년에 세워졌고 상주교회는 이 두 교회로부터 각각 80km 남쪽으로 문경새재를 넘어서 내려와서 1934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니까 상주교회의 역사는 올해로 칠십구년이 되네요.
제가 성공회를 처음 접한 곳이 상주교회였습니다.
제 외가가 상주였는데 십대 때 사년여를 상주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성공회를 먼저 접한 언니가 어느날 저녁 저를 데리고 어디를 같이 좀 가자고 했습니다.
그 날이 언니가 세례를 받는 날이라는데 마당에는 화톳불이 피워져 있었고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두 마당에 나와서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알수 없는 긴장감과 설레임, 낮은 숨죽임 그리고 불 주위에 둘러서서 기도문을 외우고..성당으로 열을 지어 들어가고...
나중에 신자가 되고나서야 그날이 부활망일이었고 제가 얼떨결에 참석한 것이 부활밤 예식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이마에 물을 받고 미사보를 쓰고 불이 켜진 양초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 모든 광경을 숨죽인채 바라보았습니다.
집안에 교인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언니는 저라도 데리고 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그냥 구경꾼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날의 풍경이 스틸사진처럼 제 마음속에 콱 박혀버렸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저를 초대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번 부활절에는 유아세례가 있었습니다.
김도빈 프란시스
신부님이 유아세례의 역사적 의미를 간단히 설명해 주시며 세례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저 순진한 얼굴을 보라...
보통 유아세례식에서 이마에 물을 부으면 울음이 터지기 마련인데...
도빈이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알 수 없는 일들에 울음을 터트리려는 찰나
누군가가 잽싸게 사탕 한알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울음 뚝.. 예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마에 향유도 받고
초도 받고
도빈이는 프란시스로 새롭게 태어났고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부활감사성찬례는 계속되고
상주교회에는 아직도 미사보 쓰신 분들이 많이 있네요. 요즘 점점 사라지는 추세인데.. 확실히 연륜이 느껴집니다.
제 오른쪽에서 영성체후 기도를 드리던 분
미사가 끝난후 제대보를 덮으며.
왼쪽은 사제회장인 젬마, 저의 작은 이모 ^^. 그러고 보니 저랑 이름이 같네요.
미사를 마치고 나오며 어거스틴 신부님과 오애덕 신자회장님과 한 컷
그리고 아주 소문난 상주교회의 애찬
이날은 부활주일이라 어머니들이 엄청 많이 차려놓으셨습니다.
반찬 하나하나가 시골스러우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었습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고추를 밀가루 묻혀서 쪄서 말려서 튀겨서 양념장에 무친 반찬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아주 풍성하고 은혜로운 부활을 상주교회에서 맞이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수녀원이 지어질 일선리 마을에 들렀습니다.
여전히 멋있는 우리집 대문
아.. 수녀원은 언제쯤 지을 수 있으려나...
전국을 안 가본 곳이 없는 동행이 말하기를
마을의 풍경이 전국 최고라고 했습니다.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담위에 만개한 개나리꽃을 보며 이날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진제공: 박경화
첫댓글 말로만 들어왔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부산교구 상주교회,
글을 읽고나니 상주교회에 다녀온 것 같이 느껴집니다.
글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교회안의 분위기와 제대가 아주 인상적인 교회이네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방문해보고 싶습니다.
상주교회 너무 예뻐요. 고등학생 시절 제 베스트 프렌드가 상주촌놈이었는데, 문득 그 녀석이 보고 싶어집니다.^^
사랑과 정이 넘치는 멋진 교회입니다.
오랫만에 모교회 사진에 한참을 머물러 보았습니다. 젬마수녀님^^ 감사합니다!!
상주가 곶감으로도 유명하지요??
이곳에 곶감 장터를 만들어
상주 교회와 더 가깝게 지내면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암튼
젬마 수녀님의 훈훈한 사진과 해설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