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휴가를 얻은 4촌 동생의 제안으로 최근 용평을 다녀올 기회를 가졌다.
다른 4촌 동생과 더불어 세 부부가 작년에도 가평 휴양지를 다녀온 바 있어서 이번이
두 번째 단체여행인 셈이다. 용평은 전에 다른 친구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갔었는데, 의외로 신선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기에 간단히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용평리조트에 도착해보니 아직 스키 시즌이 아니어서인지 손님들이 북적이지 않고
시즌오픈을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뜨일 뿐 한적한 모습이었다. 이달 하순에
시즌오픈 예정인 모양인데, 그때쯤엔 우리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 될 게 뻔하다.
어쨌거나 동생이 알고 온 정보에 따라 볼거리가 있다는 발왕산 정상에 올라갈 요량으로
케이블카를 타려 했으나, 어찌 알았으리오! 시즌오픈을 위해 점검하느라 당분간 폐쇄
중이라고.
크게 낙담하고 벽에 붙여진 아래 홍보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발왕산에서 퇴짜를 맞고 삼양목장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멀리서부터 풍력 발전용
바람개비들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전에 다른 친구들과 단체여행으로 왔을 때는 대관령
양떼목장을 구경했었으나 안개가 극심해서 울타리 근방에 뭔가 얻어먹으려 모여든
양들의 털을 만지는 것으로 만족했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날씨는 그보다 훨씬 낫다.
튼튼한 SUV 자동차로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태백산맥의 정상에 다다르니
여기저기 목초지가 눈에 뜨이는데, 소 떼는 축사에 가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이 목장의
넓이가 600만 평이라고 하는데 실제 눈으로 보아도 그 규모는 가히 놀랄만하다. 일찍이
앞날을 내다보고 목장을 일궈낸 목장주의 안목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맑은 날에는 동해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자욱한 운무 때문에 동해가
어슴푸레 아득하게 보일 뿐이라서 또 한 번 실망이었다.
여기가 태백준령의 분수령이니 여기서 서쪽에 떨어진 빗방울은 서해안으로, 동쪽에
떨어진 빗방울은 동해 쪽으로 흐르기 마련일 텐데, 동해안 쪽은 급경사라 목초지 개발이
안 되었지만, 서쪽 구릉은 더 완만해 목초지 개발이 쉬웠을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능선마다 거대한 풍력발전 바람개비들이 얼른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돌고 있었는데,
그 메이커들 이름이 서로 다른 외국 회사들임을 알 수 있었다. 또 고장이 나서 돌지 않는
바람개비를 수리하기 위해 올라온 사다리 트럭의 크기도 대단해 보였다.
삼양목장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숙소 근처의 고랭지 배추로 유명한 안반데기를
향하다가 이미 배추가 다 수확됐을 것 같고 또 전에 가본 적이 있어서 포기하고 근처
도암댐을 잠시 구경하였다. 해가 져 어두워진 상황에서 바로 옆에 있는 발왕산을
올려다보니 산 정상에 마치 탱크가 전시된 것처럼 보이는 게 있었는데, 바로 위에서
사진으로 본 스카이워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인 모나파크 콘도에 입실한 후 준비해 온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밥상 테이블이 꽉 찰 정도로 맛있는 반찬들이 많아서 입이 엄청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짐작건대, 세 동서분이 사전 협조하고 경쟁적으로 준비한 게
아닌가 싶었다.
식후에는 내가 준비해 간 루미큐브(Rummikub ※kub는 cube의 변형)게임을 두
동생에게 소개했는데, 몇 번 게임을 해 갈수록 빠르게 게임 요령을 터득하고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 좋았다.
참고로, 이 게임은 이스라엘 사람이 창안해 현재 세계적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으며,
특히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마트 같은 매장의 장난감 부문에서
살 수 있고 상자 안에 게임 규칙이 들어 있어 활용에 문제가 없다. 다만 그 규칙 중에
숫자 13 뒤에 숫자 1을 연결해 쓸 수 없게 하고 있는데, 그 금지 조항을 풀고 연결을
허용하면 훨씬 더 재미있는 게임이 된다는 것을 꼭 강조하고 싶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2~4명이 할 수 있어서 어린 손자·손녀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내 친구 한
사람은 명절 같은 때 손자·손녀들과 만나 이 게임을 즐기고 있고, 어린 우승자에게 줄
상품을 미리 준비해둔다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동생 한 사람이 바깥 온도가 영상 2°C라고 일러주었다.
아침 식사도 엊저녁처럼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특히 식후에 나온 커피가 기막힌
것이었다. 계수씨 한 분이 어렵게 구한 Hazel Nut 향이 들어있는 커피 봉지를 넣어
끓인 것인데, 전에 많이 마셔본 터라 오랜만에 산뜻하게 느껴졌다.
상원사를 탐방하기로 하고 그쪽으로 가다가 바로 근방에 알펜시아 타운을 보게
되었고,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이 바로 여기였음을 상기하고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동계올림픽이라고 하면 내 의식 속에서 그 장소로
평창읍이나 영동고속도로 평창휴게소 근방 어디쯤일 것이라고 상정해 놨었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먼 이곳 평창군의 횡계 지역임을 알게 되었으니 놀랄 수밖에.
주관적 인식의 오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인식의 오류를 벗어날 수
있도록 늘 자신의 인지에 대해 성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알펜시아 올림픽 시설들을 그냥 지나치고 말 수는 없지.
아래는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얼핏 둘러본 알펜시아 타운 모습들이다.
다시 상원사 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대산 계곡을 차로 달리게 되었다.
가는 길에 월정사를 지나친 이유는 월정사는 너무 유명해서 나도 그동안 다른 친구들과
여러 번 가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원사는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불행히도
가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가 안성맞춤인 셈이었다.
상원사 가는 길에 새삼 놀란 것은 오대산 계곡의 깊이였다. 월정사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거리일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차로 30분 가까이 달린 것 같았다. 물론 자갈길이긴
하지만 예상외로 계곡이 깊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또한 내 인식의 오류!
오대천을 따라 난 도로는 상원사 부근에 가서야 오르막길로 변했다.
오대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부연해보자.
한강의 발원지를 검룡소(儉龍沼)라고 하는데, 태백시와 고한읍 중간쯤에 있다고 한다.
여기서 시작된 물줄기가 정선 아우라지 장터 쪽으로 흐른다. 아우라지 장터는 옛날에
뗏목이나 배가 올라가는 최상위 지점이고 여기에서 소금과 일상 용품들이 현지인들에게
팔리고 재목, 숯, 등이 한양 쪽으로 실려 내려가던 곳이다. 이 물줄기가 조금 더 내려
가다가 오대산에서 내려온 오대천을 만난 후 동강이라고 불리고, 동강이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어 충주호에 담겼다가 흘러서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되는 것이다.
배가 드나들 정도로 수량이 많은 물줄기라서 검룡소를 발원지라고 했을지 모르나, 실제
지도상으로 가장 먼 발원지는 오대산에서 발원된 오대천이 아닐까 싶다.
다시 상원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자동차로 상원사 바로 밑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물론 다리 힘이 좋은 사람들을
위한 도보 길도 오대천을 따라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름하여 선재길이라고 하는
명상의 숲길.
상원사에 들어서니 맑은 오대천 물을 표주박으로 맛볼 수 있도록 샘이 있는 게 우선
좋았다. 몇 걸음을 옮겨 멋들어진 초서체로 上院寺라 적힌 입구를 지나면서 천정에
그려진 불화를 보게 되는데, 그것을 가슴 높이의 반상에 반사해 올려다보지 않아도
되게 만든 것이 특이 했다. 절 마당에 설치된 탑도 옛것이 아니라 새 돌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물 마시는 샘, 불화, 탑,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절의 건물들도 현대적
감각으로 깔끔하게 단장된 것으로 보아 절의 재정 상태가 넉넉함을 짐작게 했다.
그 규모가 월정사보다야 작지만, 더 아늑하고 산뜻한 게 좋았고 더 번잡하지 않은 점도
맘에 들었다.
이렇게 상원사 탐방을 마친 후 점심을 여주에서 먹기로 하고 여주까지 일로직행(一路
直行). 여주를 택한 것은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 늦은 점심이 좋을 듯한 데다 우리 형제들
작별 지점으로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가는 도중에 적당한 식당을 탐색해서 목표지로
정했었는데, 막상 열심히 달려 그 식당에 가서 보니 정기 휴일이라는 게시문! 인터넷
평가 점수가 좋고 손님들 반응도 좋은 것에 혹해서 미리 전화해보지 않고 무작정 덤빈
게 화근이었다. 살아가면서 배우는 거지. 영어로는 Live and learn.
가까운 곳에 보리밥 식당이 있어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
비록 친형제가 아니고 또 나이 차이도 상당한 편이지만 동생들의 우애심이 깊은데다
계수씨들도 다 착한 심성이라서 모두가 서로 진심으로 배려하고 아껴주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짧은 여정이었지만 내내 즐거울 수밖에 없었으니 우리 모두를 위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2022. 11. 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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