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에게는 공백 부분이 있다.
산악인으로서 언제나 채우고 메워 나가야 하는 빈 데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마치 지구 위의 공백지대가 겁 모르는 진취적인 등산가와 탐험가들의 도전을 받고,
그곳에 지도가 새로 그려진 것처럼 산악인의 공백도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줄어들기 마련이다.
오늘날 5대륙 6대주에 걸쳐 고산군에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졌지만,
이것은 바로 고도 지향성을 지닌 알피니즘의 공이다.
그런데 이렇게 공백지대가 사라지면서 산악인들에게 새로운 공백지대가 생겼다.
모던 알피니즘은 이제 갈 데까지 간 느낌이다.
세계 최고봉에 70세 노인이 오르고 15세 소녀가 그 극점에 서며,
10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산록에서 정상까지 주파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산과 사람의 특수한 만남인 등산에는
이러한 외면의 세계를 넘어서 진입하고 도달하는 깊은 내면의 세계가 있다.
등산가만이 체험하는 정신적 고양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등산가의 고양된 정신적 세계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점차 체험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것은 등산 세계의 속화에 따른 알피니즘의 변질에서 오며,
이로 인해 등산가의 정신적 공동화(空洞化)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때 산악인은 알피니즘 초창기 내지는 개척기에 미지의 세계에서 공포와 위험과 싸우던
선구자들의 행위와 의식의 궤적을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그들이 체험한 세계를 추적하는 일은 중요하다.
과거와 현재는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공백이 있다.
등산 세계도 이러한 과거와 현재를 가지고 있으며, 오늘의 산악인들은 바로 그와 같은 공백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백에 대처하며 자기 세계를 개척해야하는 과제를 스스로 안고 있다.
그러한 등산가의 공배근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알아보기는 어렵다.
'평지에 살며 이따금 알프스에 오는 사람에게는
등산가로서 마터호른을 오르지 않았다면 불완전한 것으로 보이는 것 같다.'고 토닌 히벨러(1930~1984)가
그의 책 <마터호른> 첫머리에 썼다.
산악인의 공백을 이 이상 단적으로 명확히 표현한 글은 없다.
등산가들 가운데는 자기의 산행 리스트를 작성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이를테면 이러한 자기의 공백을 인식하고 이에 대처해 나가려는 구체적 자세로 보인다.
그러나 산악인의 공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하다.
그것은 크게 세계 5대륙의 최고봉 미등이거나 8000미터급 14좌 미완성일 수 있으며,
작게는 아직 해내지 못한 백두대간 종주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의 산행에서 빈 부분을
우선 덕유산이나 지리산 종주부터 시작해 차차 메워나갈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산악인의 빈자리는 이러한 산행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산사람들의 사고와 행위 속에는 더 근본적인 공백이 있기 쉽다.
그것은 알피니즘의 역사와 그 역사를 기록해 나간 선구적 인물들에 대한 관심의 빈곤이다.
등산가가 자기 인생을 오직 등산 세계에 투입하다시피 하면서
등산의 어제와 오늘을 모른다면 그는 불행한 등산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겉보기에 연면히 이어지고 있는 듯 하나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엄연한 단절이 있다.
이러한 단절은 의식하지 않을 때 시간과 더불어 그대로 넘어간다.
등산 세계에도 이와 같은 단절이 있는데,
그것은 세계의 고산군이 아직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을 때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진 지금과 사이에 벌어진 공간이다.
산악인이 이 공간을 의식하지 않고 이 단절을 극복하지 않는 한 그들의 알피니즘은 필경 허구나 다름없으며,
한낱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유산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등산 세계의 단절과 공백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히말라야가 알려지기 전,
표고 4000미터 안팎인 알프스를 무대로 하던 시대의 알피니스트에게 등산 사상과 행위에 공백이 없었다.
당시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미지의 세계를 보고 그저 전진할 따름이었다.
머메리즘은 그러한 이념이고 게오르그 빈클러(1869~1888)의 <알라인강>(단독행) 역시 그것의 표상이었다.
앞서 간 흔적이 없는 곳에 새삼 채워야할 공백이 있을 리 없고,
자기가 처음 이루면 그것이 바로 성취였다.
예컨대 에드워드 윔퍼나 헤르만 불 그리고 모리스 에르족 등은 모두 전인미답의 세계를 헤쳐나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간을 채운 것이 아니라 오직 큰 일 하나를 이루었을 뿐이다.
여기 산악인의 공백이란 단지 빈 곳을 말하지 않고 산악인으로서의 미숙함 미완성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백 부분이 없다시피 한 산악인들이 있다.
크리스 보닝턴과 라인홀트 메스너가 그런 사람이라고 본다.
보닝턴은 메스너처럼 8000미터급 14좌를 이루지 않았고 극지나 사막 탐험의 기록도 없다.
하지만 그가 세계 등산계에 남긴 족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광범하고 다채롭다.
사실 이 두 사람은 알피니스트로서 누구가 목표로 삼았을 일들을 골고루 해본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산행 뒤에는 반드시 산행기가 따랐으며,
그들처럼 자기의 체험을 철저히 관리하고 기록으로 보존한 사람은 등산계에서 보기 힘들다.
등산가가 자기 산행기를 남기거나 등반사를 펴내는 일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으나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흔치 않은 일은 선구자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해낸 점에서 메스너가 돋보이는데,
그는 1989년에서 1990년에 걸친 남극대륙 도보 횡단을 끝으로 알피니스트로서의 그의 일대 역정을 마무리 한 뒤,
헤르만 불(1924~1957)과 오이겐 기도 람머(1863~1945)의 궤적을 추적하고 두 권의 책을 썼다.
메스너가 세계 등반 사상 불세출의 거인들에게
유달리 관심을 쏟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메스너는 일찍이 그들의 이념과 행위와 저서에 감동했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특히 바위와 얼음으로 된 죽음의 지대에 홀로 도전했던 그들에게 강하게 마음이 끌렸다.
메스너가 훗날 낭가 파르바트를 혼자 오른 것은 역시 헤르만 불의 영향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며,
이때의 단독행은 당시 세계 등산계에서 명실 공히 선두주자였던 메스너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메꾸려 했던 공백 부분이었으리라.
헤르만 불은 30여 년의 짧은 생애에 낭가 파르바트를 단독 초등하는 경이적인 불후의 기록을 남겼지만,
이에 못지 않는 그의 업적은 <8000미터 위와 아래>라는 등반기이다.
불이라는 희대의 영웅이 남긴 오직 한 권의 이 등반기는 그로부터 반세기를 살아온 오늘날,
우리 등산가들 사이에 현대 등산의 메카 알프스의 눈과 얼음과 바위의 세계를 체험한 사람이
별로 없다시피 한 사실을 생각할 때,
불과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단절과 공백을 새삼 실감한다.
올해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은 뜻밖의 진기록의 속출로 싱겁게 막을 내렸는데,
이것으로 산악인의 신세가 초라해지거나 설 땅을 잃은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옛날과 같은 모험의 대상이나 넘겨다 볼 미지의 공간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기만이 아는 빈 공간들이 있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 불안과 초조함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인식이 있는 한 우리는 산악인이라는 긍지를 가져도 좋으리라.
물론 그 공간을 채우려는 정진을 전제로 할 때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