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에게는 최후의 목표가 있다. 즉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선이 있고 이를 지켜내고 목표를 이루지 위해 온갖 수단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겸양의 자세로, 또 때로는 당당한 모습도 잃지 말아야 한다. 잘 들어주고, 잘 설명하고, 잘 설득하고… 창검만 안들었지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인 것이다.
이덕형은 이 임무를 100% 완수했다. 더구나 그는 작은 나라의 관리로, 절대절명의 위기의 처한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구원병을 청하러 명나라를 찾았다. 그뿐이 아니다. 거들먹거리는 명나라 장수들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그들의 군대를 전선으로 보내는 임무는 실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임무였다.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이덕형이 그곳에서 겪었을 고초와 수모, 노고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이덕형은 항상 의연하고 유연했으며 품위를 잃지 않았다.
타고난 문장과 인품으로 오히려 명나라 조정과 장수들은 물론이고 왜장들을 마음으로 움직였고 궁극에는 그들이 이덕형에게 존경의 마음까지 생기게 한 ‘완성형 인물’인 것이다. 소통하고, 배려하고, 인자한 이덕형이지만 그는 원칙과 대의 앞에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살벌한 적진을 찾아 당당하게 조선의 입장을 설파했고 광해군에게 올린 상소에서는 광해군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글을 쓰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사형시키려 할 때 이덕형은 이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는 상소에서 “영창이 비록 왕자이지만 아직 어린아이인데 이를 죽이려는 것은 군왕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광해군의 급소를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인 것이다. 그것으로 이덕형은 재상으로서, 신하로서의 위치는 끝이 났지만 그는 후세에 따뜻한 품성과 곧은 절개를 남긴 것이다.
이덕형은 항상 당당하면서도 논리정연한 말로 상대의 호감을 사면서 상황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공정했고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한 인재였다. 야사에는 이덕형과 그의 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덕형이 임진왜란이 끝나고 국사를 돌보느라 밤낮으로 일을 할 때였다. 더운 어느 날, 퇴근해 집에 들어오니 첩이 미리 제호탕(칡뿌리, 오미자, 인삼, 맥문동 등을 달여 마시는 갈증 해소 음료)을 내왔다. 눈치 빠르고 영리한 첩이었다.
그러자 이덕형이 “오늘로 본가로 돌아가시오. 이제는 내 곁에 있을 수 없소”라고 첩을 내쳤다. 어안이 벙벙하고 억울한 첩은 이덕형과 절친한 이항복을 찾아 하소연을 했다. 이항복 역시 이덕형이 평소 그 첩을 아꼈던 것을 잘 알기에 속내가 궁금해 이덕형을 찾아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이덕형은 “그녀에게 무슨 죄가 있겠소. 오히려 미리 제호탕을 준비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 국사가 어지러울 때 재상인 내가 그녀에게 빠지기라도 한다면 혹시라도 큰 일을 그르칠 것이라 여겨 내가 내쫓은 것이요.” 한 여인에게는 나쁜 남자이겠지만 재상으로서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태도라 할 것이다.
평소에는 부드럽다가도 일에 있어서는 꼼꼼하고 원칙에 충실하며 책임감이 탁월했던 이덕형. 그가 재상으로서 보여준 리더십은 높은 직책, 이름을 떨치는 유명세, 남이 알아주기 바라는 공명심이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가 같이 해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리더였다. 그에게서 배운다. 리더는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부하들에게는 따뜻하고 신뢰의 얼굴을 보여야 하고 또 하나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너그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댓글 고려는 서희, 조선은 이덕형. 최고 외교관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