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1. 주일예배 설교
사도행전 7장 1-60절(사도행전 강해 12)
누구의 말이 사실인가?
■ 사기꾼조차도 사실(fact)을 가지고 말한다고 합니다. 진위(眞僞)를 가리는데 사실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과 사실로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데반의 사건에서 이것을 보게 되고, 이를 통해 주님의 교훈을 얻게 됩니다.
■ 거짓 증인들에 의해 잡혀온 스데반을 향해 대제사장이 질문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말이 사실인가?”(1절) 이 사람들, 즉 거짓 증인들은 대제사장에게 어떤 거짓을 한 것일까요?
리버디노 회당, 자유인의 회당에 속한 자들 중에 일부가 스데반과의 논쟁에서 그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당하지 못하자 이기기 위해 사람들을 매수했습니다. 물론 바리새인들과의 정치적 결탁에 의해 논쟁이 붙었던 것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재력가인 자유인들은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게 했습니다.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5장 11절)
자유인들은 두 가지를 조작시킨 것입니다. 하나는 ‘역사조작’이고, 다른 하나는 ‘신성모독조작’입니다. 이스라엘이 생명처럼 떠받드는 이 두 가지를 뒤집어씌움으로 끝장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도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는 친일파들에 의해 ‘역사조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 광복절과 건국절을 같이 하자’는 등 헌법을 부정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고 없습니다. 이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는 망국적 태도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교회도 ‘신성모독조작’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툭하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냐?’며 협박을 합니다. 특히 인류의 평화와 인권 논의를 위해 종교간 대화를 말하면 종교혼합주의니 종교다원주의니 라는 말을 들이대며 ‘신성모독’을 운운합니다.
스데반을 없애고, 한 살림 공동체를 없애고 싶어 하는 이들은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5장 12절) 스데반을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공회 앞에 세우고는 거짓 증인들을 세웠습니다.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5장 13-14절)
이 거짓 증인들은 주문 받은 대로,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헐 것이고, 모세의 율법을 고칠 것이라는 ‘신성모독조작’과 ‘역사조작’을 내 놓았습니다. 분명 이들은 전혀 없는 말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있는 말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왜곡시킨 것이었습니다. 조작(造作)한 것입니다.
분명 예수는 예수살렘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비유였습니다. 분명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거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복음으로 율법의 완성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증언은 조작(造作)이었습니다.
바로 이 조작된 증언 앞에 대제사장의 질문이 스데반에게 던져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말이 사실인가?”(6장 1절) 어쩌면 이 질문은 ‘네, 아니요’ 중에 하나를 원하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네’ 혹은 ‘아니오’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긴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역사(救贖歷史)’를 통해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 혹시 스데반의 이야기 중에 나온 인물이 모두 몇 명인지 세어 놓으셨나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바로, 모세, 아론, 다윗, 솔로몬, 모두 9명입니다. 이 중에 같은 나라가 아닌 사람은 누구일까요? 네, 바로입니다. 바로 맞추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바로가 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말씀을 나누는 중에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스데반은 9명의 인물 중 3명, 아브라함, 요셉, 그리고 모세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구속역사를 설명하였습니다. 구속역사란 일반적으로 ‘구속사’라 줄여서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구원의 백성으로 삼으신 일련의 과정 혹은 사건으로서의 역사’를 말합니다. 스데반이 3명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였지만,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모두를 사용하십니다. 특정인이 앞세워지기는 하겠지만, 모두가 구속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바로와 같이 비(非)구속대상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앞세워진다는 것은 힘든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존경과 명예 같은 것이 주어지기도 하겠지만, 앞세워진다는 것은 방패막이가 되는 것이니 힘든 인생입니다. 아브라함, 요셉, 그리고 모세, 얼마나 힘들고 모진 삶을 살았습니까? 앞세워진 사람의 운명입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민족의 조상으로 설명한 것이죠. 이는 이스라엘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스데반은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이스라엘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스데반은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고난 받던 이스라엘이 구출 받았다고 했습니다.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설명한 것이죠. 이 또한 이스라엘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스데반은 왕조의 시작인 다윗,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설명하였습니다. 이 또한 이스라엘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다윗과 솔로몬을 설명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 즉 거짓 증인들에 의해 제기된 두 조작,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헌다고 했다.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고칠 것이라고 했다.’는 것에 대해 결정적인 설명을 하였습니다. 46~53절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첫째, 성전 문제에 관한 답을 하였습니다. 다윗의 간곡함에 의해 솔로몬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졌지만 하나님이 거기만 고정적으로 계시지 않는다는 답을 열왕기상 8:27과 이사야 66:1을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늘 조상들이 하던 것처럼 왜 성전을 유일한 하나님의 거처로 여기느냐며 이사야 66:2을 들어 야단을 쳤습니다.
둘째, 율법 문제에 대해 답을 하였습니다. 53절을 <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율법, 율법, 그러니 너희들은 정작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율법만 중요하다고 한다며 일갈(一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성전 그 자체이시고,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했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52절)
■ 스데반은 천사의 얼굴로 이 증언을 하였습니다. 사악한 마음을 품은 이들 모두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54절) 스데반의 증언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혜가 죽이고 싶도록 얄미웠습니다.
그런데 그 때 스데반의 말 한마디가 스데반을 향해 공격할 빌미가 되게 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55~58절)
우리는 이 무지한 행동에서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그들이 스데반에게 달려들 때,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달려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스데반의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라는 것을 그들의 양심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소리를 안 듣기 위해 큰 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울’의 등장입니다. 나중에 ‘바울’이 된 사람입니다. 그가 스데반에 대한 난동에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58절) 사울은 복음의 박해자였습니다.
■ 돌에 맞으면서도 스데반은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의 평생귀감(平生龜鑑)입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59~60절)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는 스데반의 이 신앙고백 앞에 더 이상 토를 달 수도 달 필요도 없습니다. 글자 그대로 배우고, 살면 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나님은 스데반을 죽여서 데려가지 않으셨습니다. 잠재워 데려가셨습니다. “이 말을 하고 자니라.”(60절) 하나님은 악마들을 향해 천사의 얼굴을 남겨두셨습니다. 이 얼굴을 잊지 않는 한 그들은 평생 괴로웠을 것이고, 여럿의 경우 복음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앞세워진 사람은 늘 이렇게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영광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자, 우리의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누구의 말이 사실입니까?
이 땅에는 지금도 거짓 증인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거짓 증인들의 다수가 내부자들입니다. 성서를 좀 안다고 하는 이들에 의해 복음이 왜곡되어 증언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이단(異端)입니다.
복음(福音)만이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실입니다. 이 사실로부터 단 한걸음도 옆으로 옮기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스데반처럼 여러분을 안아주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