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노동자를 힘들게 했던 인물들
정현철(시흥안산지역지회 지회장)
새해에 자주 주고 받는 덕담 중 내자가추(來者可追)라는 말이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찌할 수 없으나 미래의 일은 조심하여 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경에 나오는 시구다. 하지만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난 일을 잘 ‘반추’해야 한다.
2019년은 ‘희망고문’에 시달린 한 해였다. 화려하게 타올랐던 촛불항쟁은 문재인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야심찬 개혁조치들이 노동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해 수많은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임기의 반환점을 지나면서 개혁은 후퇴하고,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로 한 해를 보냈다. 문재인정부의 개혁후퇴 조치는 현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2019년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았다. 올 한해를 돌아보며 노동자를 힘들게 했던 인물 다섯명을 선정해보았다. 순전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전)사장이다. 이강래 사장은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문재인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강래 사장은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 노동자 300여명이 대법원 확정 판결을 기다리는 와중에, 요금수납 전담 자회사(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자회사로 전환을 거부한 1500여명을 모두 해고했다. 이후 대법원에서 300여명의 직접고용이 확정됐는데도 ‘요금수납 업무를 하고 싶으면 자회사로 가라’면서 대법원 판결을 무시했다. 한국도로공사 노동자들은 이러한 조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톨게이트 고공농성,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 청와대 앞 천막농성 등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했다. 하지만 이강래사장은 꼼짝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이강래사장인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자회사라는 또다른 비정규직을 만들어 비정규직 돌려막기 하고, 이를 비정규직 제로정책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대법원은 물론 하급심의 잇단 정규직화 판결도 무시하고, 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 고소, 고발조치를 하면서 문재인정부가 말하는 노동존중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면서 해고노동자들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임기 1년을 남긴고 한국도로공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참으로 후안무치의 전형이다.
다음으로 꼽은 인물은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주) 대표이사다.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 노동자들 이야기는 시화노동정책연구 뉴스레터의 지난 9월 칼럼으로 전한바 있다. (http://cafe.daum.net/shlpi/JnHT/98 일본자본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는 한국의 노동조합을 파괴하려 하는가). 2019년 12월 말 현재 금속노조 한국히타치화성분회 조합원들은 133일째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다. 회사는 여전히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정부의 개혁의지가 후퇴하고, 노동조합 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자본과 대표이사의 악질적인 행태가 빚어낸 참극이다. 4개월이 넘게 길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 노동자들은 언제쯤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와 비슷한 상황의 ‘일진다이아몬드(주)’ 대표이사가 올해 노동자를 힘들게 한 세 번째 인물이다. 공업용 합성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이 6월 26일부터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다. 6개월이 넘었다.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은 2018년 12월 말 노조를 설립했다. 임금동결, 상여금의 기본급화 등 사측의 임금인상 억제정책과 군대식 현장통제, 위험한 작업환경이 노조설립의 계기였다. ‘현대판 연금술사’라 불리는 이들은 노예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일을 했다. 설립 일주일만에 현장의 대다수가 노조에 가입한 것은 그동안의 쌓인 분노의 표출이었다. 파업이 시작되자 일진자본은 대체인력투입, 직장폐쇄 등 노조파괴에 몰두했다. 결국 일진다이아몬드 파업도 해를 넘기게 됐다.
네 번째 인물은 ‘서울반도체’ 대표이사다.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네트워크(네트워크) 결성에 부쳐(http://cafe.daum.net/shlpi/JnHT/94),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건에 사과 대신 염장을 지르는 사장님(http://cafe.daum.net/shlpi/JnHT/102)라는 칼럼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바로 그분이다. 서울반도체에서는 올해 두 건의 대형사고가 있었다. 두 건의 사고는 각각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원인은 하나였다. 노동자의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회사(대표이사)의 태도가 그것이다. 네트워크에서는 서울반도체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방사선장비 폐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종이를 구겨넣어서 안전장치를 해제할 수 있는 장비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으므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수거해서 폐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서명운동과 함께 원안위, 노동부, 서울반도체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2월초 서울반도체 1인시위를 하러 갔는데, 정문에 걸려있는 회사 현수막 문구가 이상했다. '남은시간 30일, 생존이 우선이다'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다. 앞의 문구 ‘남은시간 30일’은 올해까지 남은 시간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생존이 우선이다’는 무슨 뜻일까. 이가영님 사망사건이 발생한게 4월이고 방사선 피폭사고가 발생한게 7월말이니까 안전문제에 대한 문구는 아닌거 같았다. 보통은 '안전이 우선이다' 이렇게 쓰는데, '생존이 우선이다'면, ‘서울반도체(바이오시스)에서 일하려면 목숨을 걸고 하라는 것인가?’ 서울반도체 노조위원장에게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 “회사의 경영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란다. ‘회사 망하지 않게 더 허리띠를 졸라 매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내가 서울반도체를 너무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직원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회사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반도체는 그런 회사가 아니었다. 직원들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고들이 연달아 터지는 것이다.
마지막 인물은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다. 15년을 기다려왔던 주52시간 상한제 시행을 보름정도 앞두고, ‘주 52시간 상한제 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함으로써 또 1년을 유예시켰다. 처벌은 사실상 1년 6개월이 유예됐다. 정부는 52시간제를 누더기로 만들었다. 법률로 정한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을 정부 시행령으로 연장하는 것은 위헌적이다. 더구나 특별연장근로의 포괄적 사유를 허용한 것은 제도의 취지를 후퇴시킨 조치이며, 노동부 장관의 심각한 직권남용이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 힘들게 만들어 놓은 노동시간 단축제도를 무력화시킨 이재갑 장관을 2019년 노동자들을 힘들게 한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