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12. 1.08
누 가 : 대동산악회 회원 9명
산행 장소 : 경남 거창,합천 비계산
산행 코스 : 도리-2.05km-비계산-0.8km-1095봉-0.7km-돌타봉-0.7km-1095봉-2km-
마장재-1.6km-고견사 주차장
산행 거리 : 7.85km
산행 시간 : 약 7시간 20분
차가운 계절을 내린 투명한 햇살이 너무나 눈이 부셔 나는 콩을 씻는다.
초가의 추녀를 잡고 달려있는 고드름이 뚝뚝 따스한 햇살에 눈물이라도
흘려주면 더욱 좋을 텐데......
내 어린 날의 겨울은 늘 낙타 등처럼 고단한 할머니의 손끝으로 온다.
이렇게 햇살 좋은 날이면, 디딜방아 소리 콩닥콩닥 먼 그리움이 날을 세우고
나는 뒷마당 양은솥에 불을 지핀다.
할머니의 디딜방아를 대신한 내 육중한 몸무게에 무참히 밟혀져 가는 콩들이
매끈한 메주로 환골탈태하여 거실 한 켠 을 차지하고 누웠다.
오랫동안 차일피일 미뤄왔던 거사를 치루고 가뿐한 마음으로 산행을 기다린다.
임진년 새날을 열었던 한산도의 바다 속에서 살을 올린 향긋한 굴을 노릇노릇 튀기고,
추봉도의 산자락 뒤척이며 토실토실 해풍 맞고 자란 시금치는 살짝 데치고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거실바닥 신세 지며 말렸던 무말랭이는
미리 통에 넣어두며 내일 아침 첫 새벽을 열고 가야할 시간을 벌어본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며 준비 단단히 해 오라는 회장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눈 산행, 겨울산행 완전 무장하여 커다란 배낭을 빵빵하게 채워 집을 나선다.
신청인원이 저조한 이번 산행은 버스를 취소하고, 각산역팀은 회장님이,
두류해물탕팀은 새로 선출된 최상원 총무님이 기사가 되어 2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타고
거창을 향하여 출발한다.(08:20)
9명의 자유로운 영혼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원하는 곳 어디든 갈수 있다는 알 수 없는 해방감에 들떠
예정된 적상산은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더 높은 곳으로 눈을 돌린다.
거창 휴게소!
차가운 주차장 바닥 대신 따뜻한 실내의 테이블 앞에 모여 앉아
옹기종기 눈을 맞추며 얼큰한 짬뽕우동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식도를 타고
미끄러져 내린다.
이 색다른 분위기에 한껏 고조되어, 이런 기회를 준 오늘 참석 못하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어머 죄송! ㅎㅎ)
향긋한 커피 한잔이 들려져 있고, 휴게소 뒤쪽으로 하늘에 맞닿아 있는 비계산 능선은
우리를 빤히 내려다보며 손짓을 보낸다.
그래!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라!
하산코스로 잡은 고견사 주차장으로 이동 차량 한 대를 두고, 회장님의 8인승 자동차에
9명이 끼어 타고 다시 돌아 나와 도리마을(비계산 2.05km)에서 산행시작! (10:35)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능선!
그 능선의 정상으로 사이좋게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암봉 사이로 가느다란 구름 다리가
실처럼 걸려 있다.
세상을 발 아래로 무릎 꿇일려면 그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겠지!
텅 빈 등산로는 오롯이 우리 차지다.
잔설이 남아 있는 응달에 재빨리 몸을 날려 포즈를 취하는 순애와 윤자는
아마 오늘 참석치 못한 윤례와 은숙이에게 눈꽃산행의 증거로 약 올리고 싶어서 이겠지.
경사가 심한 오르막, 앞선 순애의 등산화가 내 눈높이에 맞춰있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등산양말이 자꾸 미끄러져 내린다.
재잘거리던 뒤 팀의 소리는 점점 멀어져 들리지 않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참꽃나무들은 시린 겨울 햇살로 몸을 내밀어 온기를 가둔다.
나목 사이로 맞은편 오도산 중계소가 하얗게 보이는 곳에 잠시 숨을 돌려 뒤 팀과 합류
능선삼거리에 도착한다.(12:30)
이정표 아래로 하얗게 쌓인 눈밭에 엎드려 눈꽃산행의 아쉬움을 달래며 포즈를 취하고
삼각점이 있는 첫 봉우리에 오르면 일제히 터지는 감탄의 함성!
발아래 까마득히 거창 휴게소가 보이고, 가조의 너른 들판과
유방봉과 미녀봉이 6월의 어느 날처럼 변함없이 요염한 자세로
누워있는 문재산, 한 발짝 물러난 오도산이 한 눈으로 들어온다.
멀리 지리산 방향은 안개에 쌓여 섬처럼 떠 있는 산들이 파도처럼 넘실대고
홀연히 수평선을 긋는 붉은 기운이 신비스럽게 하늘을 물들인다.
몸을 뒤로 돌리면, 2006년 송년 산행의 발자취를 남긴 매화산이 그날의 감동을
다시 부르고, 그 너머로 백발의 가야산 상왕봉이 봉긋 머리를 내밀며
우리들의 2009년 겨울을 상기시킨다.
비계산!(飛鷄山) 닭이 날개를 펼칠 수밖에 없었을 이유를 너무나 공감하며,
저 일망무제의 신비로운 세계로 끝없이 날아가고픈 마음을 꾹꾹 누르며
또 한 봉우리를 올라 비계산 정상에 선다.(합천 비계산 1,125.7m 12:55)
맑디맑은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정상석에 선 아리따운 낭자들,
인자, 순애, 윤자, 미향의 사이로, 그녀들이 못 챙겨온 윤례와 은숙이가 함께 웃고 있다.
언제나 함께인 그녀들이 한 없이 부러워진다.
거창군에서 세운 비계산 또 하나의 정상석 1,136봉을 지나, 도리마을에서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던 구름다리를 후덜후덜 건너 봉우리에 올라서면 멀리 은설에 잠긴 덕유산이 볼쏙 솟아있다.
밧줄이 걸린 내림길,
얼마 전, 함께 산행하던 벗을 멀리 보냈다며 은근히 겁을 주는 회장님의 말씀에
눈 쌓인 내림 길은 조심조심 발을 디뎌 내리고, 상원총무는 먼저 내려가 보초를 서고 있다.
양지바른 자리 찾아 풀어놓은 밥상 앞에 한자리로 둘러앉으면(13:35),딱따구리 윤자는
개근상으로 받은 도시락 자랑에 비계산이 들썩거린다.
올해의 개근상 후보는 총 9명, 그 중 2월 제주도 산행에 참석 못하는 후보를 빼면
유일하게 윤자만 남는다.(윤자야 올해도 꼭 개근상 받아래이! )
빨간 이슬이가 돌아가고, 햇살은 따뜻하여 바람을 잠재우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고요의 산정에, 이슬에 취하고 산에 취하고, 빨간 빵모자를 쓰고 딸래미 자랑에
여념 없는 윤자의 수다에 취한다.
시간이 훌쩍 넘어버려 우두봉은 다음기회로 아껴 두기로 하고 다시 돌아와야 할
1095봉을 지나 탑봉으로 향한다.
눈 쌓인 능선길은 급격한 경사로 내렸다가 또 오르기를 반복하고, 내공을 많이 쌓은
우리들의 정예의 용사들은 에베레스트라도 넘을 기세다.
탑봉에 서면 마주 보이는 봉긋한 유방봉은 그 수줍은 몸매를 안개 베일로 살짝 가려
신비로움을 더하고, 아직도 발아래에 머무는 휴게소에 자동차들이 개미처럼
꼬물거린다.(15:05)
누군가는 하늘에 이르고 싶었는지 돌탑을 쌓아 올렸고 그래서 탑봉으로 이름 지어지고 ,
그 돌덩이 하나하나에 담은 소망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탑봉을 뒤로 하고 오던길 뒤돌아 1095봉 삼거리에서 마장재 방향 좌회전,
앞선 18기 고광복 선배님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볍게 내리막을 향하고
좌회전을 못하고 지나쳐 버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밟지 못한 애닮은 우두,의상,장군의 봉우리들이 안타깝게 시야에 들어오고
좋은날 잡아 꼭 기어이 정복하고야 말 것이라 다짐한다.
광복 선배님과 옥희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뒤팀을 기다려 온화한 햇살 머무는곳에
자리 잡아 따끈한 커피를 나누어 마신다.
미끄러운 눈길을 내려오며 슬라이딩 했다는 미향이는 혹시 뒤에 상원총무님이 받아줄 줄 알고
그러지는 않았을까?ㅎㅎ
마장재로 향하는 내림길은 온통 눈길로 미끄럽기 그지없다.
발을 조금만 방심하면 미끄럼을 타게 되고, 아이젠 착용하지 않아 온 신경이
발아래 이른다.
억새밭 사이로 꼬불꼬불 하얀 길이 이어지고 그 사이에 홀로 푸른 낙락장송 앞에
소나무의 기를 받아야 한다며 포즈를 취하는 총무님,
에너지 많이 받아 대동산악회를 거뜬히 이끄는 힘이 되소서!
겨울의 짧은 해는 늬엇늬엇 산을 넘으려 한다.
마지막 붉은 빛을 푸른 소나무에 기댄 채 어둠을 향한 발걸음 재촉하고
마음이 바빠진 우리들의 발걸음도 재촉하여 고견사1.6km 지점을 내린다.(17:15)
텅 빈 고견사 주차장은 어둠에 잠겨가고(17:52), 회장님과 총무님은 도리마을로 떠나면
가로등 불빛 아래 남겨진 우리들의 수다는 빈 겨울밤을 울린다.
어쩌면 버려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슬며시 머리를 들 때 먼 곳으로부터 불빛이
들어온다.
임진년 첫 산행의 무사와 완주를 자축하며
홈플러스 뒷골목은 굴전에 굴 국밥에 대동산악회의 발전을 기원하는
건배소리 요란하다.
거창휴게소에서 늘 바라만 봤던, 그리고 꼭 오르고 싶었던 이름 모를 산이었는데
오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 남기려 그렇게 뜸을 들였구나!
이제 너를 올려다보며 우리의 발자취를, 벅찬 떨림을 기억하겠지!
언제까지나 거기에 머물러 많은 이의 가슴을 녹여 주어라! 안녕 비계산!
첫댓글 늘산행 후기를 올려주시어 꼭 제가 다녀온듯 심취해집니다 그곳에 더듬어보기도 하고요 본적은 없지만
감사합니다. 그날의 감회를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세월이 좀 흐른후에 읽어보면 또 새로운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