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로부터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해상 불법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주민과 활동가들이 카누를 타고 공사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함께 해주십시요.' 라는 문자가 들어온다.
지리산 반야봉 천왕봉에서 '해군기지결사반대' 시위 계획을 미루고 급히 첫 비행기를 탔다.
누구 말처럼 지리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테니....
강정포구.
감옥에서 낸 송경동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에 이런 글이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제 더 이상 김진숙이 아니다.
그 아래에서 이름없이 벗을 함게 지키던 박성호와 박영제와 정홍형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 함께하며 받았던 가슴 아픈 질문 중 하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수천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한진이 세운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에서 일하는 2만 2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그들 정리해고자가 정규직일 때, 힘 있는 노조를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게 해왔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한진으로 향하는 희망버스를 타지않겠다고 한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김진숙이 우리 곁으로 돌아온 오늘 우리가 떠올려야 할 것은,
지금도 처음의 김진숙이 그랬듯 고립된 채로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들이고,
5년째 투쟁 중인 콜트_콜텍의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이고,
다시 잘려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고,
한진교섭이 급물살을 탈 때 다시 열여덟 번 째 희생자가 나온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이고,
그들보다 잘 안 알려진 채 싸우는 무수한 이 땅 민중의 고단한 얼굴들이다. "
강정포구 올레7길 동쪽방파제 쪽 너른 땅을 해군들이 모조리 차지했다.
작년 10월 10일, 여기 이 자리에서, 서울교구 박동호신부님은,
“연대는 동정과 피상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 항구적인 결의이다.
타인을 착취하는 대신 이웃의 선의에 투신하고, 남을 위해 자기를 잃는 각오로 임하는 것이다.
강정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만 동정심, 근심, 무관심과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태도는
불신앙과 부도덕일 수 있다.
평화는 무기와 군사력으로 깨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나즈막히 말씀하셨다.
지금, 여기, 해군과 경찰 삼발이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철조망도 전진배치 되었다.
그 앞 뒤로 서귀포해경과 전경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동안 오탁방지막 배수로와 침사지를 만들지 않고 진행되는 공사가 불법임을 누누히 지적했고 많은 주민 활동가들이
그 불법공사를 저지하다 '업무방해'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되거나 불구속기소되어 재판이 진행중이다.
해군이 '구럼비발파'에 대한 허가요청을 보내자
뒤늦게 제주도정이 이를 지적하며 오탁방지막 배수로와 침사지를 제대로 만들고
공사재개에 대한 허락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해군은 침사지를 만든다는 이유로 구럼비해안 공유수면에 까지 포크레인을 들이밀어 파괴하고 있다.
참말로 지랄들을 하신다.
정말 가관이다. 이런 슬픈코메디가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
모든게 지들 마음대로다. 어떻게 국책사업이 이렇게 허술하게 그때그때 임기웅변식으로 진행될 수 있나?
탈법 불법 아닌 것이 어디있나, 한마디로 무소불위다.
'들꽃'이 따라다니며 그들의 귀에 대고 괭과리를 친다.
"시끄럽다"
고 소리치는 걸 보면 귀는 뚫려있는 것 같은데....말이다.
작년 4월 4일 흰눈으로 덮인 한라산을 구럼비에서 처음 보았다.
똑같은 모습을 오늘 포구에서 다시 본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여기까지 밀려났다.
할망궁 주방장 김종환.
할망궁을 잃어버린 그래서 긴 침묵으로 말하는 주방장.
침묵의 끝은 어디일까.
주민들의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들린다.
바쁜 계절 탓이라지만 ...길고 긴 싸움 탓이리라.
이런 지난한 싸움엔 계속되는 연대가 중요하다.
지치면 쉬고 힘들면 빠지고 그 사이 누군가 와주고 또 나가고...
부산 북구강서을에 출마하는 문성근캠프에서 일하는 후배로부터 난데없는 전화가 왔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27일 대구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해군기지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싶은데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늬들 지금 장난치냐? 국회에서 해군기지 예산 전액 삭감시켰잖아?
누가 시킨거야..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함께 한 거잖아?
이 해군기지공사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삭감시킨거 아냐...
그래서 많은 외부사람들은 올핸 공사가 중지되는 걸로 알고 있구...
근데 공사는 더 지랄맞게 밀어부치고 있고....주민과 활동가들은 연행되어가고..
문제가 있어 예산을 삭감시켰으면 당연히 문제있는 공사도 중지시켜야 할 거 아냐....
중지 안하면 내려와서 싸워야 할 거 아냐...이 좃같은 새끼들하고.
그러다 잡혀가도 국회의원들이 잡혀가야 할 것 아니냐고...왜 여기 사람들이 잡혀가야만 하지.
쫌 확실히 해라고 그래... 시늉만 하지 말고. "
한마디 더 붙였다.
"해군기지문제에 관심 더 가지시고 꼭 당선되시길 바란다" 라고...
페이스북에 올려져 있는 임윤수의 글을 맘대루 옮긴다.
"성규삼촌이 처음부터 희망은 없었다고 했다.
희망이 보여서가 아니라 없는 희망을 만들어가면서 와야했다고.
웃으면서 얘기하시는데 눈이 울고 있었다.
극렬 미량 언니가 교도소에서 나와 한번 들어갈 볼 만하다고
뻥뻥 큰 소리를 치면서도 한 동안 퀭한 눈빛으로 마을을 둘러볼때가 있었다.
엄마한테 혼나니까 술 취하면 집에 안들어간다고.
휘청휘청 의례회관으로 들어가서 돌고래 옆에 눕고는 아이처럼 흐느끼다가
잠이 들었었다.
친구가 이유없이 연행되었을 때도 늘 그렇듯 하루지나면
풀려나겠지 생각했었다. 위액까지 게우고 집에 들어오는
친구의 핏기없는 흑색 얼굴을 봤을 때
마음이 무너져서 다리에 힘이 빠졌었다.
부엌에 들어온 오후 햇볓이 아이들의 실같은 머리에 반짝였고
작은 손으로 루미큐브 숫자판을 맞추면서 태나와 윤미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를 흥얼거렸다.
사이렌이 불고, 경찰이 에워싸고
햇빛은 예쁘고, 사거리에서는 물고기 좌판이 벌어진다.
석회같이 세포에 번지는 암조직처럼
기지공사 강행과 마을의 일상이 뒤엉키는
이 이상한 공기속에 유영하듯 헛헛하게 혼자 돌담길을 걸을 때
문득, 내가 강정에 오래 있었다라고 새삼 생각했다.
슬픈 건 배고픈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내가 슬퍼 "할" 자격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활동가들은 등대쪽 방파제 삼발이를 기어올라 공사현장으로 접근한다.
이미 26일 오두희 이종화 유가일 김동원 박도현, 27일 오전에 송강호 도라가 연행되었다.
다시 오전의 그 길을 따라 현장으로 다가갔다.
"더이상 못 들어옵니다"
"왜?"
"모릅니다. 시키는대로 할 뿐입니다."
"말이 되냐? 오전엔 들어갔는데 오후엔 왜 안된다는 거지"
"모릅니다. 저도."
"염병할 짜슥들... 그래 내가 늬들하고 입씨름 하고 있으면 뭐하냐... 그래 그래 내가 알아서 할께"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런 ...잘 났다 잘 났어.."
이런 상황에선 '둥글이'라면 당근 한판 붙을 것이다.
하지만 난, 돌아선다.
그래 오늘은 멀찍이서 바라보자. 내 스스로 정리해 버린다.
마늘밭을 돌아 언덕 위로 오른다.
촬영하기 적당한 한눈에 보이는 장소를 고른다.
여긴 이미 봄의 색깔을 지녔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배 까지 합쳐 해경 배만 딱 12척이다.
백척간두에 선 조선이 기댈 곳이라곤 이순신장군과 배 12척이었던 그 때가 있었다.
어쩌다가 해군이 해경에게 ... 이 지경까지. 불쌍타.
오전에 연행된 송박사와 도라를 이어 또 나아간다.
오전에 이전 해상활동으로 업무방해'재판을 받고 온 활동가들이 또다시 '업무방해'를 위해 합류했다.
저들은 업무방해라 부르고 우리는 불법공사저지라 부른다.
경찰은 업무방해의 관점에서만 우리를 대한다.
불법공사 문제는 자기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란다.
해군과 공사업체 측에서 업무방해 행위를 막아달라고 하니 막는 것 뿐이란다.
정말 그런 이유일 뿐일까. 반성 쫌 하시라!
노랗게 핀 유채꽃을 바라보다 문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날 잃어버린다.
자주 사람들은 말한다.
이 싸움을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또는 '이미 우리는 이겼다' 고 말한다.
지금 이기고 지는 문제 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문제는, 핵심적인 것은 싸우는 것이다.
질 수 밖에 없어도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도청에서 계엄군을 죽음으로 맞이했기에 살아남은 부끄러웠던 자들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광주는 역사가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오는 대한민국.
이 잘난 대한민국에 여전히 난 살아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내 발길 마다 부끄러움이고 내 손길 마다 미안함이다.
그 저녁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 할 저녁이 있다
맑은 물 한 대야 그 발 밑에 놓아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 할 저녁이 있다
흰 발과 떨리는 손의 물살 울림에 실어
나지막히 무언가 고백해야 할 저녁이 있다
무릎 꿇고 누군가의 눈물 닦아줘야 할 저녁이 있다
언 두볼과 떨리는 두눈에 맺힌 눈물길 따라
나지막히 무언가 고백해야 할 저녁이 있다
그러나 그 저녁이 다 가도록
나는 첫 한마디를 시작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다
/이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