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엄기원 동시집 [삼월의 기차 여행](아동문학세상. 2011.02.22)

[최재경]

   

▲시집 [삼월의 기차 여행]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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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의 기차 여행 ]

엄기원 동시집 / 아동문학세상(2011.02.22)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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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기차 여행

엄기원

서울서 부산가는 기차였지

옆자리 빈 채로 수원역에 닿았을 때

한 소년이 엄마랑 탔어

소년은 내 옆 자리에

젊은 엄마는 바로 뒷자리에 앉았어

― 어디까지 가니?

내가 먼저 말을 건넸지

― 부산요.

― 나도 부산 가는데……

― ……,

소년은 한마디 대답으로

말거래를 끝내려 했어

― 엄마하고 가나 봐?

― 네

― 방학도 아닌데?

― 할머니 회갑 잔치에 가요.

얼마쯤 있너니

소년이 말을 걸어오더군

― 할아버진 부산에 뭐하러 가세요?

― 응, 강의가 있어서.

― 그럼, 유명인사세요?

그 말에 나는 웃음으로 대답했지

햇병아리 중학생 소년은

‘강의’라는 말에

나를 유명인사 대접했어

그리 싫지 않더군

― 난 글 쓰는 사람이야.

― 내 친구 엄마도 글쓰는 소설간데………

― 난 동시 동화를 쓰지.

― 그럼 아동문학가세요?

― 그렇단다.

그러자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는 거야

― 엄마, 이 선생님이 아동문학가셔!

엄마랑 옆 사람들 눈길이

내 쪽으로 향했어

난 유명인사가 된 기분이었어

슬슬 우리의 대화는 계속되었지

동요 동시 이야기

동화 이야기

명작소설 이야기

교과서 이야기까지

― 내 동시가 6학년 1학기 국어책에 있는데.

― 어떤 동신데요?

― 응, ‘엄마의 장바구니’란 시지.

― 작년에 배웠는데, 재미있었어요!

― 외울 수 있니?

― 외우진 못해요.

좀 미안한 음성이었어

내가 교과서의 내 시를 읊었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차창 안으로 들어온 삼월의 봄볕이

내 시를 함께 감상해주었어

소년과 동행하는

삼월의 기차 여행

참 즐거웠지.

                           아기 눈

엄기원

아기는 

아름다운 것만 본다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 좀 봐!

아기는

즐거운 것만 본다

저 반짝이는

눈빛 좀 봐!

그래서 아기 눈은

이 세상

기쁨을 만든다

행복을 만든다.

비밀

엄기원

아빠 어렸을 적엔

나처럼 게으름뱅이였고

오줌싸개였다고

할머니가 그 비밀 알려주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감쪽같이 감추었다

아빠가 오줌싸개였다는 걸

알면서도…….

내탓

엄기원

우리 집에 들어서면

현관부터 난장판이다

거실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양말짝과 옷가지들

내 방에 흩어져 있는

오락기구들

닷새나 밀린 일기장

베란다에서는

목말라 아우성치다 축 늘어진

불쌍한 화초들

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두 애 탓이다

내 탓이고말고.

신문에게

엄기원

네 목숨은

하루살이인데

언제 그렇게 많은 걸 배웠니?

그 어려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르는 게 없잖아

온 세상 소식 모두 듣고

수많은 사람 이름까지

줄줄 외우다니!

더 놀랐어

하루살이가 어떻게

온 세계

내일 날씨까지 알다니……

거미줄

엄기원

산골마을 외진 곳에

빈 집 한 채

떠나버린 

이집 식구들은

어디서 살까?

텅 빈

방안에 마당에

차가운 고요 한 줌

처마 밑

낡은 거미줄에

늙은 거미 한 마리

죽은 듯 집을 지키고 있네.

고드름이 사라지고

엄기원

할아버지 어렸을 적엔

집집마다 추녀 끝에

말간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대

집집마다 가난해도

인정이 고드름처럼

주렁주렁 열렸대

우리 아파트 살기 편한 집

추녀가 사라지고

'고드름이 사라지고

집집마다 잘 살아도

인정이 사라졌네

이웃이 사라졌네.

개구리

엄기원

우습게 생긴

큰 입

큰 눈이

자랑스럽다

노래 소린지

울음소린지

알 수 없지만

시골은

개구리가 있어

정겹다

온 마을이 살아있다.

고양이 까미

엄기원

책상 위에 사뿐 올라와

내가 일기 쓰면

앞에 앉아

내 일기를 다 읽어보고

내가 신문을 펴면

그 한복판에 앉아

신문 볼 게 없다고

저랑 놀잔다

부르면

대답하고

꼬리 빳빳 세우며 좋아하는

고양이

까미!!

바람에게

엄기원

내 곁에

분명

있었는데

나뭇잎들

한바탕 간지럼 태우고

풀잎들

공손히 절을 시키고

넌 머물렀던

자리 하나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나버리다니!

언제나

뒤가 깔끔해서

좋겠다

바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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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동시집을 내면서

그 동안 동시집을 여러 권 냈지만, 동시집을 낼 때마다 마음이 기쁘고 설렙니다. 마치 객지 생활하던 사람이 정든 고향 땅, 고향 집을 찾아오는 그런 마음이라 할까요.

내가 쓴 동시는 어렵지 않아, 시를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알 것 같다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동시집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들 딸들은 어른이 되어 다 나가고 부부만 사는 우리 집에 지금 고양이 네 마리가 함께 삽니다. 그들에게도 까미, 보미, 새미, 미미란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가족처럼 지냅니다. 이 동시집에는 고양이 네 마리를 소재로 한 동시도 들어있답니다. 그 동시를 고양이들 앞에서 읽어주니 그것들도 좋아하는 눈빛이 역력했습니다. 참 우수운 일이지요?

나는 동시를 쓰면서 살아가는 게 참 즐겁습니다. 나무도 풀도 꽃도, 생명이 없는 신문, 책, 안경, 시계, 구두 같은 것도 동시 쓰는 나에겐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내 동시집을 읽는 어린이 여러분!

공부를 좀 못해도 괜찮아요. 나도 어렸을 때 그랬으니까요. 동무들과 히히덕거리며 노래 부르고 뜀박질하고 낙서도 하면서 심심할 때 동시를 한 편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미래의 꿈을 키워가야지요.

세상은 모두 어린이 여러분의 것임을 잊지 마세요.

이 동시집에 표지 그림, 본문 그림을 재미있게 그려주신 화가 김광배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11년 1월

엄 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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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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