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우연히 EBS에서 그 유명한 .페드라.를 봤다. 내 또래 한 해 두해 선배들이 극장에서 숨죽이며 봤다는 소문이 엄청났던 영화..거의 마지막.안소니 퍼킨스의 죽음의 드라이빙 장면이 길고 빠르게 미끄러지며 '라라라라,,' 바흐의 푸가(?)를 광기어린 음색으로 점점크게 흥얼거리다 "페드라아아...'하면서 절벽으로 떨어지던 그 장면만 영화프로파일같은데서 보곤했는데... 마침내 영화를 본 것이다. !
그래서 소감은 ?...생각보다 강렬했고 과장스럽고 60년대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이 고전적이라는 것이다. 영화사에서 말하는 고전이란 30~40년대 헐리웃 스타일을 말하는데 이는 단지 이영화가 흑백영화여서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연기며 플롯이며 카메라워크등이 총체적으로 고전스럽다는 거다.(그 당시의 누벨 바그랑 비교해보면...) 영화의 감독인 쥴스 데이신은 원래 히치콕의 조감독출신이고 한 때 네오 리얼리즘 영화도 했다는데 딱히 어떤 장르를 추구했던 것 같진 않다.(코미디로 영화제 상도 받았음)다만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메르나 메르쿠리(머큐리) 와 몇 번의 영화를 찍은 뒤 결혼을 했고 함께 사회주의 운동을 했으며 그리스에서 반정부 운동이 성공한 후 메르쿠리가 문화부 장관이 되기까지 열심히 외조했던 동반자라는 점이 더 인상적으로 외닿았다. 다작은 아니어도 영화사적 평가가 꽤 높은 까닭은 아마도 그 같은 배경도 있는 것 같다.
메르나 메르쿠리는 입만 안 열면 아누크 에메나 아나 마냐니보다 훨씬 잘생긴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의 여자인데 대사를 내뱉었다 하면 그 그르렁거리는 지독한 저음때문에 이미 마주한 순간 그 눈빛과 소리로 상대방남자를 저승사자처럼 휘감아서 끝장을 낼 거라는 걸 그냥 알려줬다. 몸종과 벌이는 아슬아슬한 동성애적 애착과 교감도 역시 파멸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카리스마... 그녀는 '신화' 속 인물을 정확히 구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캐릭터였다. 그녀를 위한 영화.. 안소니 퍼킨스의 병리적인심세한 캐릭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니 깔려죽었다고 해야 되려나 .대체 무슨 여자가 이리도 온통 화면을 점령한단 말인가...신화속에서는 복수를 위해 일부러 의붓아들을 유혹했다는데 재해석된 /페드라/는 모든 걸 버리고 망치고 가질 수 없는 그 사랑에 운명을 건다..옛날에는 그랬나보다..재벌여인도 심심풀이 장난질이 아닌 목숨을 내다버릴 광기의 사랑을 할 줄 알았나보다..주제나 방식이 참 옛스럽다. 같이 본 남편은 '참 미욱스럽긴,,쯧쯧..'하고 감당못할 메르쿠리를 슬쩍폄하는 걸로 끝냈지만 . 부박한 관계들이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 그리스 시대의 비극이 원래 인간의 비극이라는게 이렇게 알 수 없고 운명적이니라 하고 느끼게해줬다면 너무 거창한 거겠지만 고전 영화 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