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일제강점기 서울 어느 거리의 모습. 주변에 일본인 상점들이 즐비하고 일본 전통복장인 기모노를 차려입은 일본 여인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목포시내 어느거리 '1982년 12월'의 모습
'2006년 12월'의 달라진 모습
(자료:디시인사이드 추억갤러리)
63빌딩은 1980년 2월에 공사를 착공하여 5년에 걸쳐 시공, 1985년 5월에 완공이 되었다.
건물의 소유주는 신동아그룹의 대한생명보험. 총 공사비는 1800억원. 남산보다 1m정도가 낮다.
70년 당시 여름이면 길거리에서 냉차장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오수미의 매력
영화배우 오수미는 1950년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사진에서 보듯이 그녀의 20대는 화려했다. 1970년도 어느 소녀의 고백으로 영화계에 데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문희, 윤정희씨 등에 도전할만한 스타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는 동시대 여배우들에 비해 너무 서구적인 외모와 요염한 분위기 때문에 당시 주연으로는 크게 두각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름의 개성있는 연기와 외모로 코믹물, 하이틴물, 사극물 같은 영화에서나름의 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극의 시작은 신상옥 감독의 이별(1972년작)에 출연하면서 부터였다. 이 영화에서 신성일, 김지미씨 등과 함께 공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운명의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신상옥 감독 옆에는 당시 인기영화배우 출신 아내 최은희가 있었다. 당시 시대상으로 유부남과 사랑을 한다는 건 지금의 비난보다 휠씬 더 가혹했다. 아무튼 대중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둘은 동거에 들어간다. 이후 둘은 서로 영화 작업도 같이 하지만 대중들에게 오수미는 가정을 파괴한 더러운 여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모두 흥행에 참패하고 만다.
이후 오수미의 영화 활동은 위축되고 1978년 운명의 장난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바로 최은희, 신상옥 감독 북한납치 사건이 터지고 만다. 이미 신상옥 감독의 아이가 둘이나 있던 오수미는 엄청난 충격에 빠지게 된다.
오수미는 새로운 영화인생 출발을 위해 여러 B급 에로영화(주로 악녀나 요녀)에 출연하게 되고 사진작가 김중만씨와도 재혼하게 되는데 영화에서나 결혼 생활에서나 오수미의 결과는 참담했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84년도 마음속에 추억으로만 남았던 신상옥 감독이 탈북에 성공하게 되면서 오수미는 자신이 키우고 있던 두 자녀를 신상옥 감독에게 보내게 되고 남편인 김중만과도 헤어지게 된다. 그 후 그녀의 방황은 더 심해져 끝내 마약에까지 손대게 되는데 결국 그녀는 그 일로 인해서 거의 영화계에서 퇴출되다시피 한다.
또 다른 불행은 자신의 여동생에게도 이어져 당시 모델이었던 여동생도 의문의 실종이 되어 아직까지도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다.(유명 정치인들과의 스캔들 때문이라는 소문?) 끝내 잔인한 운명이 다가오고 1992년 타지땅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외롭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영화 '토요일은 밤이 없다'에 함께 출연한 김부선(사진 왼쪽)과 오수미(사진 가운데)
영화배우 김부선(43)이 고(故) 오수미(본명 윤영희)-신승리(29) 모녀와 모두 한 영화에 출연했던 인연이 밝혀졌다.
김부선은 12일 "영화 '너는 내 운명'을 촬영하러 갔을 당시 오수미 언니의 딸 승리와 우연히 만나 함께 출연했다"며 "수미 언니와도 '토요일은 밤이 없다'(1986)에서 출연한 인연이 있는데 모녀와 모두 영화 인연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신승리는 고 오수미와 고 신상옥 감독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1남 1녀중 둘째. 오는 14일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오빠 상균(31)씨는 지난 2004년 홍콩에서 결혼식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선은 "'너는 내 운명'에서 승리는 보건소 직원으로, 나는 황정민의 이웃에 사는 푸줏간 집 누나 역으로 출연했었다"며 "너무 반가워서 내 수중에 있는 돈을 만원만 남기고 다 주고, 5돈짜리 금반지까지 빼주었다"고 밝혔다.
이어 "승리가 역시 부모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지 '너무 영화가 하고 싶다'고 하더라"며 "동국대 연극영화학과를 나와 연극도 하고 카메라도 다뤄왔다"고 전했다.
김부선은 또 "아이들의 계부인 김중만 사진작가가 지금까지 두 남매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지난번 스크린쿼터 1인시위 도중에 만나게 돼 '존경한다, 훌륭하다'라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한편 김부선은 "오수미의 패션감각은 칸에 가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세계적이다. 음악, 시, 그림을 아는 예술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며 "나보다 11살이나 연상인데도 너무 몸매가 좋고 섹시해 질투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고했다. 또 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오수미의 장례식이 제주도에서 치러지던 때 수백명의 문상객이 참석했었다고 추억하고 "오수미의 팬들이 그녀를 오랫동안 기억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60년생인 고 오수미는 80년 영화 '나이프 장'으로 데뷔했으며, 섹시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로 한시대를 풍미한 뛰어난 여배우였다. (2006.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