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애기는 요즘 나오는 책 " [에베레스트의 미스터리] 라인홀트 매스너 저, 신혜원 옮김,삶과꿈(2003)) "을 참고로 하시면 될 듯...9,000원
현재까지는(?) 에드몬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1953년에 초등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는 힐러리이기는 하나, 실제는 그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가 30분 먼저 올라 갔다고 합니다. 히말라야의 남쪽 루트를 통해서 올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지 말로리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조리 말로리(1886 ~1924)는 세번에 거쳐 에베레스트에 도전을 했고, 그 세번째인 1924년의 원정에서 8220m의 6캠프에서 나가서 이후에 돌아오지 않았고, 그 이후 1933년에 영국원정대에 의해서 8400m지점에서 아이스피켈(영국산악회 박물관에 보관-말리리의 것으로 추정) 발견하여 세인의 관심이 되었습니다.
이후 1999년 미국의 콘라드 앵커는 8230m의 북동능선에서 조지 말로리의 시신을 발견하여 다시 산악계는 초등 논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1980년 세계최초로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매스너는 1924년 당시의 등산장비와 기술로는 말로리가 가려했던 루트는 아예 도전자체가 불가능하는 판단아래, 말로리와 어빈은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종되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말로리가 가려했던 북쪽에서 정상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치닫는 이루트의 최대의 난제는 "두 번째 스텝"에 있습니다. 비록 그 길이가 짧지만 고난도의 인공등반을 요하며 양옆으로는 도저히 크래버스가 불가능한 천길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어 진퇴양난의 크럭스로 평가된다. 이후에는 정상까지의 난이도가 낮아서 이루트를 통과 했다면,,,,, 틀림없이 정상등정에 성공하였을 것이다.
매스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로리는 두번째 스텝에서 실패하여 지치고 절망하여 밤이되어 하강을 하면서 발걸음이 느려졌을 것이고, "성공을 한 후에야 생길 에너지"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있을 것이다."
힐러리아 텐징이 갔었던 남쪽의 두번째 스텝(힐러리 스텝)은 말로리 스텝에 비해서 산책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말로리의 루트는 아예 정상 등정이 불가능한 코스인가 ?
대단히 어렵지만, 가능한 합니다. 1975년 중국에서 실제 성공하였습니다.(1960년에도 중국에서 성공했다고 발표하였으나 거짓으로 판명)
1975년의 원정대원만 400명이 넘고 두번째 스텝에서는 알리미늄 사다리들을 연달아 고정시키면서 통과 했다고 합니다. (정상 등정은 9명, 중국인은 1명 티벳인은 8명)
1975년 원정에 있어서 중국인 고소 포터 왕 코우포가 북쪽 상부에서 한구의 시체를 발견했고 이사실을 숨기고, 일본인 등반가 료텐 하세가와에세 개인적으로 그 사실을 말 했다고 하고, 이 왕 코우포는 1979년에 에베레스트 노스콜 아래서 눈사태에 휩쓸려 죽고 만다.
1999년에 콘라드 앤커(말로리의 시신을 발견했던 사람)에 의해서 자유등반이 해결이 됩니다. 단, 앵커는 아이스 스크류나 프렌드 같은 확보장비를 가지고 성공하였고, 중국인은 수백명의 홍위병을 세우고, 많은 참고자료를 가지고 성공을 하였고, 말로리가 가졌던 것은 오직 징이 박힌 구식 등산화와 뻣뻣한 마닐라삼 자일 그리고 당시 22살이었던 풋내 나는 자일파티 앤드류 어빈뿐이었다.
1921년과 1922년에 연이은 두 번의 대패 이후 3번째 도전에서 당대의 세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에베레스트에 오르려냐고 물었고, 훗날 말로리는 영원히 반복 인용되는 명답을 남깁니다.
"거기 그것(에베레스트)이 있으니까" "Because it is there"
오늘날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루트는 22개에 다랍니다. 이 "알려진 루트"를 따라서 정상에 오른 사람의 수효가 1천명이 넘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 엄청난 사람이 죽어 갔습니다.
말로리는 매스너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모든 등정과 죽음은 금방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역설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말로리는 정상에 이르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신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상과 행동이 하나였던 고전적 영웅의 화신이다. 에베레스트는 누구의 이름과 함께 기억될 것인가. 궁극적으로 한사람을 꼽으라면 에드문드 힐러리도 텐징 노르가이도 아니다. 바로 조지 말로리다. 메스너는 책을 맺으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 조지말로리는 예언자였다. 예언자가 정복자나 기록보유자보다 역사에 더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말로리는 매스너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말한다. "안정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은 지루하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살았다는 것이 진정으로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니 그저 긴 삶이 외로운 수직의 황야에서 이런 불멸의 죽음 보다 더 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테마가 있었고, 세계 최고봉에 얽힌 수수께끼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산 위에서 실종됨으로써 나의 죽음까지도 초월하여 살아있는 존재로 남아 있게 되었다"
**2004년 1월호 MOUNTAIN지 242P~ 245P 에 심산(시나리오 작가 simsan82@hanmail.net)의 글을 일부 인용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다시 타이핑하여 글을 옮겨 오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2004년 1월호 MOUNTAIN지 242P~ 245P 에 심산(시나리오 작가 simsan82@hanmail.net)의 글을 인용하여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