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 로드킬 (벽암록 공부하러 가는 길 5)
금호터널을 지나면 곧 다부동에 이른다. 봉화 가는 길은 여기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부동 전적 기념관이 보인다. 차들이 속도를 낸다. 생생 지나치며 만드는 굉음이 엄청나다. 다부동은 다부원(多富院)이었다. 조선시대 출장 관원을 위한 숙박 시설과 마구간이 있는 곳이었다. 다부원은 칠곡 고평역, 선산 연향역, 그리고 인동 양원역으로 이어졌다. 다부동은 대구-안동, 대구-상주 국도가 지나가고, 왜관-다부 지방도로가 이어지는 차량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이곳은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다부동 방어선이 돌파되면 국군은 10㎞ 남쪽 도덕산(道德山) 일대까지 후퇴해야 하며, 대구가 북한군 포 사정권에 들어간다. 국군 제1사단은 다부동 일대에 설정된 주저항선을 지키며 대구를 공략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혈전을 벌였다. 낙동강 방어 작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유학산 고지는 아홉 번, 328고지는 무려 열다섯 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55일간이나 계속된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 2만 4천여 명과 국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8월 21일 야간부터 ‘전차전’이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최초의 전차 전쟁이었다. 북한군은 전차와 자주포를 앞세워 야간역습을 감행하였다. 미 제27연대는 포 공격을 통해 북한군 전차와 보병을 분리시켰고 그 틈에 국군이 전차를 돌진시켰다. 다부동 계곡에 쌍방의 전차가 어지럽게 내달리고 전차포에서 발사된 철갑탄이 어둠을 뚫고 좁은 계곡의 도로를 따라 메아리치며 상대방 전차를 향해 날아갔다. 그 모양은 볼링공이 맞은편 핀을 향하여 재빠르게 미끄러져 가는 모양과 비슷해, 볼링장(Bowling Alley)전투라고도 불렀다.
다부동 지날 때마다 안타깝고 처참한 그날이 떠오른다. 전차들이 그렇게도 재빨리 달릴 수 있었다니. 굉음과 포염이 혼을 앗아간다. 여기저기 시신들이 피를 흘리고 널브러져 있다. 인생의 너무 이른 시기에 목숨을 빼앗긴 영령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의 명복을 언제나 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금호터널 나서자마자 앞차들이 굉음을 내며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맞은편 차들도 나를 향해 돌진해온다. 다부동 전투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중생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팔공산 넓은 자락에 깃든 수많은 중생들 잠시 읍내 일보러 나왔다 저렇게 참변 당했나. 차라리 로드킬(Road Kill)이라 부르며 좀 초연한 척 하고 싶지만 뜻대로 잘 안 된다. 아, 300회 이상 이 길을 달려가고 오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중생들을 죽여서 나뒹굴게 했을까. 그 죄업을 어떻게 참회할 수 있을 것인가. 부처님은 땅 위의 미물조차 밟아 죽이지 않도록 하안거에 드셨다 했는데. 나는 그 길을 시작하면서 내가 죽인 중생들과 남이 죽인 중생들에게 참회하고 그들을 위해 마음의 장례를 치른다.
그러면서 <강도몽유록 (江都夢遊錄)>의 청허선사를 떠올린다.
적멸사(寂滅寺)에는 청허(淸虛)라 하는 한 이름 높은 선사(禪師)가 살고 있었다. 그는 추운 사람을 만나면 입었던 옷을 벗어주었다. 배고픈 사람을 보면 먹던 밥도 몽땅 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일러 ‘추운 겨울의 봄바람’, ‘어두운 밤의 태양’이라 부르며 우러러 받들었다. 국운은 나날이 쇠퇴하였고 호적(胡賊)이 침입하여 팔도강산을 짓밟았다. 상감은 난을 피하여 고성(孤城)에 갇혔고, 불쌍한 백성들은 태반이 적의 칼에 원혼(怨魂)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저 강화도의 참상은 더욱 처절했다. 시신에서 나온 피는 냇물처럼 흘렀고, 백골(白骨)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까마귀가 사정없이 달라붙어 시신을 파먹었으나 장사지낼 사람이 없었다. 오직 청허선사(淸虛禪師)만이 이를 슬프게 여겼다. 선사는 몸소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려고 했다. 손으로 버들가지를 잡아 도술을 부렸다. 넓은 물을 날아 건넜다. 강 건너의 집들은 모두 쓰러져 어디 몸을 의탁할 만한 곳이 없었다. 선사는 연미정 남쪽 기슭에다 풀을 베어 움막을 엮었다. 그는 이 움막에서 거처하며 법사(法事)를 베풀었다.
청허선사는 병자호란에서 희생된 시신을 이렇게 거두어주었다. 수행하는 사람은 꼭 그렇게 해야 하리라. 병자호란이나 한국전쟁 같은 전쟁 시기는 물론 지금 이 순간에조차 도로는 으레 살육의 현장이 된다. 힘없는 중생이 먼저 죽어 쓰러지는 것은 언제나 똑같다.
청허 선사시여, 저에게도 추운 겨울의 봄바람 같은 마음과 차도 배도 필요 없는 도술을 베풀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