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3월 21일~2023년 4월 3일
한연주 집사님께서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간섭이라 하겠다. 선뜻 교회당에 나올만한 분이 아니다. 예전 나이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체면을 중시하던 분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속으로는 염려하고 떨면서도 겉으로는 강한 척한다. 허풍이 있는 남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동네 친구들에게 교회에 나간다고 말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체면을 차리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집사님의 경우 주변에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있어서 함께 믿음 생활을 하자고 보챈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강권하시니 온순한 양처럼 교회당에 나오시게 되었다.
한연주 집사님은 신앙의 시작과 더불어 변함이 없이 주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일관성 있게 믿음 생활을 하셨다. 특별하게 탁월한 신앙의 모습을 가지신 것은 아니지만, 변함없이 믿음의 길을 걸으셨다.
생업을 꾸리는 일에도 부지런하셨다. 보성에 농장을 경영하기도 했고, 생선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팔기도 하셨다. 장사 수완이 탁월한 것은 아니어도 시나브로 일을 쉬지 않았다.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만 아니라, 몸의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지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집사님은 매주 노인복지회관에 나가서 붓글씨를 배우셨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꾸준하게 배우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본디 글솜씨가 있던 터라 아마추어의 수준을 훌쩍 넘으셨다. 아호를 <죽천>를 받고 여러 작품을 발표하더니 마침내 전국 규모의 대회에 출품하여 입선까지 하므로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언젠가 나에게 목양일념(牧羊一念)이란 휘호를 써서 액자에 담아 선물해 주셨다. 천국 가시기 전 아까운 글솜씨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럴 수 있다면 내게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고, 기꺼이 주셨을 것만 같다.
나이가 적지 않으셨어도 생각하는 바가 트이신 분이다. 유식하기도 하고 성품도 참 좋으셨다. 농담도 잘 받아주시는 넉넉함까지 가지셨다. 말씀도 아주 조리 있게 잘하신다. 천국 가기 전 몇 달 동안 병구완을 해주는 아내의 수고에 대해서 매우 고마워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년에 천사를 내게 보내어 돌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도도 곧장 잘하신다. 주일 오후 예배 시에 기도를 부탁했더니 기꺼이 감당해 주셨다. 그때 기도가 참으로 감명 깊었다. 진심을 담은 간절한 기도였다. 집에서 요양 중일 때 기도를 해드리기도 했지만,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얼마나 진지하게 기도해 주시는지 큰 감동이 되었다. 기도 속에 믿음의 깊이와 넓이가 보였다. 이렇게까지 믿음의 성숙을 이루고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신음 중에서도 또렷한 음성으로 방문해 준 이들에게 감사함을 명료하게 표현할 줄 아는 분이다. 몸의 상태가 괜찮았을 때 집사님과 함께 구례 섬진강변에서 매운탕 먹던 때를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