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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허경영’ 그가 누구인가? <아-! 고구려> 의 저자 허성정의 글
참고자료 인용처 : 허경영강연- https://www.youtube.com/watch?v=SsNZue7Mjsc
<아-! 고구려> 의 저자 허성정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93년도에 중국 지린성 퉁화시 지안(中國 吉林省 通化市 集安)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왕릉(太王陵)과 광개토왕비(太王碑)를 직접 보고서, 우리민족 원래의 그 장엄(莊嚴)한 기개(氣槪)를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고자,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져 있는 중국 현지에서 당시 거금의 개인자금을 들여, 실제의 ‘광개토대왕비’와 100% 똑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현지의 안산암질 응회암 석재(石材)로써 ‘광개토대왕비’의 비석을 새로이 특별 제작하여 그 무거운 비석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소중하게 다루어 장장 5년동안에 걸쳐서 국내로 운반해 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광개토대왕비’가 실제로 세워져 있는 중국 지안(集安) 현지에서 실제의‘ 광개토대왕비’와 똑같게 특별히 새로 제작한 새로운 ‘광개토대왕비’는 암석(巖石) 면(面)의 너비가 가로2m 두께1.35m 높이6.39m이며, 무게가 무려 37톤이나 되었으며. 총 글자수가 44행 1,775자가 되는데,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그 모든 글자를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모두 조각하여 넣었다고 합니다.
<아-! 고구려> 의 저자 허성정은, 이렇게 중국 지안(集安) 현지에서 실제의 ‘광개토대왕비’와 100% 똑 같게 특별제작한 그 무거운 비석을 우리나라 국내에까지 장장 5년동안에 걸쳐서 운반해 온 새로운 ‘광개토대왕비’를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2002년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198-214. (덕양구 삼릉길 233-4)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너른마당(廣開土) 한식’ 집의 넓은 정원에, 마치 중국 지안(集安) 들판 현지의 모습처럼 세워 귀히 모셔놓고서, 매년 음력 9월29일이 되면 뜻있는 국내 유명인사 300여명을 초청하여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 추모제’를 20여년동안 매년 빠짐없이 계속 거행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민족 원래의 그 장엄한 기개(氣槪)로서 고구려 장수왕 3년(414년;甲寅年) 9월에, 중국 지린성 퉁화시 지안(中國 吉林省 通化市 集安)에 세워져 지금까지 당당하고 의연하게 서 있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의 기개(氣槪)에 찬 모습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든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198-214. (덕양구 삼릉길 233-4) ‘너른마당(廣開土) 한식’ 집의 정원에 가면, 중국 지안(集安) 현지에 있는 실제의 ‘광개토대왕비’와 똑 같은 기개(氣槪)에 찬 모습을 아주 자세하고 자유스럽게 누구든지 손으로 직접 만져까지 보면서 온 몸으로 다 느껴볼 수가 있도록 각별하게 설립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에 비하여 정작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실제의 ‘광개토대왕비’는 머나먼 중국 땅에 있어서 자유스럽게 가 볼 수가 없고, 특히 ‘광개토대왕비’를 사방 2m 가량의 거리에 두꺼운 유리로 다 막아놓아서 도저히 자세하게 볼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아-! 고구려> 의 저자 허성정 님은 참으로 훌륭한 선견지명으로, 우리 민족 원래의 그 장엄한 기개를 사랑하여 계승 보존하려는 의지가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지요? 그렇죠?
여러분도 한번 그곳(삼송리 삼릉 인근의 ‘너른마당 한식’ 집=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198-214. (고양시 덕양구 삼릉길 233-4))에 자유스럽게 찾아가셔서 우리민족 원래의 그 장엄한 기개에 실물의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져보면서, 우리민족 원래의 그 장엄(莊嚴)한 기개(氣槪)를 자신의 온 몸에 가득 받아 넣어 놓은 것도 매우 뜻깊고 좋은 일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렇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이든 일을 하면 무엇인가 일이 일어난다” 고 하잖아요? 요것이 우리네 인간의 ‘양자(量子)얼킴에 인연의 기적에 법칙’이라고 허네요.
그러허니, 자기 스스로(自)가 자기의 마음(忄=심방변)을 방 귀신(鬼)으로 만들어서 자괴감(自愧感)만 가득한 히키코모리(은둔(隱遁)생활자)처럼 방안에만 혼자서 콕 처박혀 있지 말고,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마음을 광개토대왕 같은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마음으로써 그냥 자전거 페달이라도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막 힘차게 밟아서 찾아가시면 또 누가 알아요? 혹시라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우리네 인간의 ‘양자(量子)얼킴’에 인연의 기적으로써 나에게도 사뭇 좋은 호연지기의 일들이 막 찾아오게 될런지 또 누가 알아요?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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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 그가 ‘재림예수’인 15가지 증거⟫
허성정 : <아!고구려>의 저자 https://youtu.be/vUCYSwTX2bI
아버지! 기독교 부흥회(復興會)에 가면 흔히 보는 기도광경이다. 이른바 통성기도(通聲祈禱) 시간이 되면 ‘아버지’를 부르는 간절함이 여기저기서 귓전을 때린다. 2천년 동안 불러왔던 기독교인들의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역사이래 지구에는 5명의 위대한 스승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이른바 5대 성인이다. 5대 성인들이 발휘하는 카리스마는 인류의 의식을 저 높은 차원으로 인도하였다.
5대 성인들은 대개 BC 2500년에서 AD 500년 사이의 인물들이다. 지금으로부터 대개 2000년 전의 인물들이다. 경전에 나타나는 시대구분은 <성서>를 기준으로 보면 대개 2000년이 1주기가 된다.
<성서>에 따르면 구약시대 2천년을 모세의 ‘율법시대’라 하고, 신약시대 2천년을 예수의 ‘언약시대’라 일컫는다. 이제 새로운 2천이 시작되었는데, 이 시대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이 시대는 무엇으로 정의할까?
예수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과 영성은 현재 전 지구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류는 예수의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시대 구분을 하고 있다. 즉 BC(예수이전)와 AD(예수이후)를 가르고 있다.
그만큼 인류사에서 차지하는 예수의 사상적 철학적 종교적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스스로 하늘에서 파견된 신의 아들이라 주장하였다. 예수의 주장은 그의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과 신도들에 의해 예수는 신의 지위에 올라와 있다. 세계 인구의 1/3 정도가 예수를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예수의 어록이 담겨있는 <성서>는 전 세계의 영원한 베스트셀러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고 부활한 후 다시 이 땅으로 강림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것을 예수의 ‘재림(再臨)’이라 한다. 그간 예수 사후 2천년 동안 자칭 ‘재림예수’를 주장한 사람들은 많았다.
한국에서만도 문선명, 이장림, 안상홍 등 많은 목회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림예수라 할 어떠한 증거도 남겨놓지 못한 채 지구를 떠나갔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진정한 재림예수에 걸맞는 인물을 찾을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 재림예수의 후보로 보이는 인물은, 지구에 단 한 명 있다. ‘허경영(許京寧)’이란 인물이다. 그는 예수에 필적하는 능력과 표징을 갖고 있다. 그는 출생, 행적, 가르침에서 메시아의 모습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지금부터 기독교가 2000년 동안 몽매에도 기다리던 그 재림예수가 바로 허경영이라는 증거를 추적하여 보자.
(1)예수의 십자가 ‘못자국이 허경영의 손발에 나타나다 : 허경영의 몸에는 강력한 예수의 ’낙인‘이 찍혀 있다. 예수는 30살에 공생애를 시작해 33세에 죽었는데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예수의 양손과 양발에는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의 못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놀랍게도 예수 사후 2천년이 지난 지금, 허경영의 손과 발에 예수의 못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이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예수의 손과 발에 나 있는 못자국이다’ 할 만큼의 못자국이 허경영의 손발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2)예수의 ‘처녀출생’과 허경영의 ‘성령출생’ :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결혼하기 전에 잉태되었다. 다시 말해 예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성결합(二姓結合)으로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허경영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성결합(兩姓結合)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영성결합(靈性結合)’으로 태어났다. 허경영이 잉태될 무렵, 허경영의 아버지는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3년째 갇혀 있었다. 이때 허경영의 어머니는 하늘로부터 빛을 받고 허경영을 잉태했던 것이다.
(3)‘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예수와 허경영 : 예수의 어머니와 허경영의 어머니는 남편과의 이성적 결합을 하지 않고 아기를 생산하였다. 예수와 허경영은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 즉 신이 인간 여자의 몸에 직접 들어가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을 ‘영성결합’이라 한다.
<성서>는 신이 인간의 몸에 직접 들어온 사건을 두고 ‘여자의 후손’이라 표현하고 있다. “가라사대 ‘여자의 후손’은 너(뱀)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기). 예수와 허경영은 남자의 정자를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령(聖靈)의 힘으로 태어난 ‘여자의 후손’이다.
(4)예수의 마굿간 출생과 허경영의 다리밑 출생 : 예수와 허경영은 2개의 고향을 가진다. 예수는 태어나기는 유다 지방의 ‘베들레헴’이지만 자란 고향은 갈렐리아의 ‘나자렛’이다. 허경영 역시 태어난 고향은 ‘서울’이지만 자란 고향은 경남 ‘진주’이다. 묘한 일치다.
예수는 유다지방의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난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이다. 허경영 역시 한국의 수도 자리 서울에서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중랑천 다리 아래 ‘오두막’에서 태어난다. 두 사람 모두 출신성분과 출생과정이 비슷하다.
(5)예수의 성체기적과 허경영의 불로유기적 : 8세기 이탈리아의 ‘란치아노’ 성당에서 어떤 신부가 빵으로 제조된 ‘성체’를 축성하던 중 빵이 인간의 ‘살’로 변화되었다. 포도주를 축성하던 중 포도주가 인간의 ‘피’로 변하였다. 이 빵(살)과 포도주(피)는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
허경영의 불로유는 영원히 썩지 않는 우유이다. 한국의 식품의약안전청이 인정하는 여러 검사소의 ‘검사시험성적서’에서 이것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허경영의 불로유를 가지고, 1달 이상 조사한 결과, 어떠한 영양소 파괴도 없었고, 세균도 검출되지 않았다.
(6)예수의 수의(수건)와 허경영의 불로유(不老乳) : 이탈리아 ‘투린’ 성당에는 예수의 시체를 쌌던 수의(壽衣)가 보관되어 있다. 스페인의 ‘오비에도’ 성당에는 십자가 예수의 얼굴을 닦았던 수건(手巾)이 있다. 이것들은 2천년 전의 재질인데도 아직까지 썩지 않고 있다.
허경영의 불로유(不老乳) 역시 영원히 썩지 않는다. 우유는 완전식품이기에 이 세상에서 부패가 가장 잘 되는 식품이다. 그런데 일반우유에, 허경경의 이름이나 사진만 붙여 놓으면, 그 우유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 인류최대의 불가사의 현상이 현대에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7)예수의 물질변환 능력과 허경영의 물질변환 능력 : 예수의 공생애 첫 기적은 ‘물을 술로 변화시킨’ 일이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갈렐리아의 가나 지역 어느 잔치집에서 술이 떨어지자, 물동이에 물을 부으라고 지시하고, 그것을 술로 만드는 기적을 연출하였다.
물을 술로 변화시켰다는 것은, 화학적 ‘성분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떤 물질의 ‘형태변화’를 일으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허경영의 불로유(不老乳)도 이와 같다. 허경영의 불로유는 완전한 ‘화학변화’를 일으켜 영원히 ‘썩지 않는 물질’로 변화되어 존재한다.
(8)예수의 물리학과 허경영의 과학혁명 : 물리학에서 ‘물(水)’이 얼음으로 변하고, 이슬로 변하고, 서리로 변하고, 수증기로 변하는 것을 ‘물리적’ 변화라 한다. 그러나 물이 술로 변하는 것은 ‘화학적’ 변화다.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는 차원이 완전 다른 것이다.
예수가 물을 술로 변화시키고, 허경영이 영원히 썩지 않는 우유를 만들었다는 것은, 인류사에 과학혁명을 몰고온 대 사건이다. 예수와 허경영은 어떠한 물질이나 화공약품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으로 물질변환과 화학변환을 일으킨 것이다. 예수와 허경영은 쌍둥이다.
(9)예수의 기적과 허경영의 기적 :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기적과 하늘궁에서 보여주는 허경영의 기적에는 많은 유사성과 공통점이 있다. 예수와 허경영은 중풍환자를 고치고, 소경을 눈뜨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바람과 자연을 잔잔하게 하고 하는 기적을 보여준다.
한편 허경영은 예수시대와 다른, 시대성이 반영된 기적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허경영이 백궁천국으로 타고 다니는 ‘비행접시’와 ‘천사들’의 모습을 ‘실물사진’으로 보여준다. 또한 오링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왔다갔다 하는 ‘타임머신’ 기적도 보여준다.
(10)예수의 예언력과 허경영의 예언력 : <성서>에는 예수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의 예언대로 AD 70년 로마에 저항하던 이스라엘은 ‘마사다’ 전투를 끝으로 2천년 동안 나라가 멸망한다. 예수는 30년 앞에 벌어질 이스라엘의 패망을 본 것이다.
허경영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국의 저출산 국가위기를 예언하였는데 정확히 맞았다. 허경영은 대우그룹과 쌍용그룹의 멸망도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탄핵과 임기중단도 모두 맞혔다. 미국의 꼴찌 후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도 맞혔다.
(11)예수의 메시아코드 33과 허경영의 이름 33획 : 예수는 33세에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스페인의 가우디 성당 주춧돌에는 ‘메시아코드’라는 33숫자판이 붙어 있다. 이 숫자판은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각도에서 숫자를 합산해 봐도 모두 33이 나온다.
이 숫자는 예수의 생애 33세를 상징한다. 또 다시 지상에 재림하는 예수를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33이라는 숫자는 허경영의 이름자 획수와 일치한다. 허(許11획) 경(京8획) 영(寧14획) 합하면 33획이 나온다. 재림예수가 ‘허경영’이란 이름으로 온다는 확증이다.
(12)예수의 제자들과 허경영의 제자들 : 2천년 전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은 주로 당시 사회의 ‘기층민중(基層民衆)’들이었다. 당시 상류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 그리고 ‘율법학자’들 중에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적다.
허경영도 마찬가지다. 현재 허경영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 당시의 사회 계층 사람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지식층, 학자층, 부르조아 계급층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대신 서민층 저소득층 소외계층 사람들이 제자층의 주류를 이룬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와 허경영의 생애 사이에는 신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허경영과 예수 사이에는 출생에서부터 사역의 방법까지 너무나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 우연(偶然)일까? 우연으로 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필연(必然)’이 있는 것 같다.
예수와 허경영의 사이에는 사역의 방법과 목적 그리고 기적 등에서 많은 유사점과 공통점이 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의 사명은 십자가에 달려죽가까지 인류에게 ‘은혜시대’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허경영의 사역목표는 다르다.
허경영은 예수의 은혜시대를 마감하고 ‘심판시대’를 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 자신과 아버지의 ‘성령’을 보내, 죄와 의에 대한 심판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자신이 심판자가 아니고 자신을 보낸 아버지(성부/성령)가 있다고 성서 곳곳에서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를 보낸 ‘성부’는 누구이며 ‘성령’은 또 누구인가?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이다. 예수는 성자인 자신의 사명이 십자가를 통해 은혜의 시대를 여는 것이고, 뒤에 오실 아버지와 성령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과연 예수 사후 2천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인류는 최후의 심판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의 지구는 위기 그 자체다. 가공할 핵무기가 80억 인류 전체를 몇 번이나 죽이고도 남는 멸망의 시대다. 예수의 은혜시대는 가고 무서운 심판시대가 오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이다.
이제 인류에게 남은 과제는 허경영 그가 과연 우리 시대의 메시아가 맞는가? 하는 문제다. 허경영은 과연 이 심판시대의 메시아이며 구원자이며 미륵일까? 그런데 <성서>에는 재림예수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는데 허경영은 구름을 타고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또 재림예수는 ‘이스라엘’ 땅에서 재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한국땅’에서 재림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재림예수의 이름이 예수가 되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과연 허경영이란 이름이 재림예수의 이름이 될 수 있는가? 등등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지금부터 그 문제를 짚어보자.
①재림예수는 구름을 타고 오지 않는다 : <성서> 곳곳에는 예수가 구름을 타고 재림할 것이라는 예언이 들어 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장면이 설명되어 있다. 예수는 재림할 때도 이와 같이 구름을 타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였다가, 재림할 때 같은 모습으로 온다고 했으니, 이를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하는가? 그래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성서에서 나타내는 예수의 승천장면은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실재로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
예수가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뜻은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표현인 것이다. 결국 <성서>에서 구름이라는 것은 ‘천사들의 무리’를 말한다. 그것을 모르고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이 지금도 성서의 자구(字句)에 얽매여 엉터리 교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8개의 겹으로 쌓여 있는 견고한 성이다. 그냥 보기에는 텅 빈 하늘인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맨 아래에 지구가 있고, 그 위에 대류권이 있고, 그 위에 오존층이 있고, 그 위에 성층권이 있다. 이렇게 해서 8겹으로 지구는 완벽히 보호되어 있다.
성층권까지만 가도 구름이란 개념이 없다. 지구의 보호막 8개층 중 3층인 성층권만 가도 구름이란 개념이 없어지고 마는데, 예수가 승천하고 재림할 때 구름을 타고 갔다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과학에 관한 일말의 지식만 있어도 그런 무식한 소리는 할 수 없다.
구름타고 승천한 예수는 구름처럼 보이는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갔다는 소리다. 실재로 허경영의 하늘궁에서 찍히는 천사들의 모습은 ‘구름떼’로 보인다. 하늘궁에는 구름떼로 보이는 천사들에 대한 증빙자료가 무수히 남아있으니 와서 보기 바란다.
②다시 오는 메시아의 이름은 분명히 예수가 아니다 : 성부시대의 구원자 이름은 ‘야훼’였다. 성자시대의 구원자 이름은 ‘예수’였다. 그렇다면 성령시대의 구원자는 누구일까? 심판시대의 메시아 이름에 관한 사항은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나와 있다.
“승리하는 자에게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예수)의 새 이름’을 그 사람에게 새겨주겠다”(요한 계시록 3장 12절).
여기서 ‘나’는 예수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란 현재의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허경영의 ‘하늘궁’일 것이다. 또 “나(예수)의 새 이름”이라 했으니, 재림하는 예수의 이름은 최소한 예수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즉 ‘허경영’일 것이다.
“승리하는 자에게는 ‘숨겨진 만나’를 주고 ‘힌 돌’도 주겠다. 그 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요한 계시록 2장 17절)
여기에서도 재림예수의 이름이 “새 이름”이라고 한다. 기존의 예수라는 이름은 재림예수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숨겨진 만나”는 허경영의 ‘불로유’ 외에는 대안이 없다. 또 “힌 돌” 역시 하늘궁에 있는 ‘백궁소원석’일 것이다. 하지만 ‘돌’ 자체는 예수를 상징한다.
즉 <구약>과 <신약>에서 돌이란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바로 그 예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재림한 예수의 새 이름’을 “힌 돌”로 표현한다. 즉 “힌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이란 ‘재림한 예수’ 즉 ‘허경영’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③다시 오는 재림예수의 도착지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 심판시대는 무엇으로 그 시대를 알 수 있을까? 지금은 구약의 성부시대가 아니다. 신약의 성자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성령시대다. 그렇다면 그 성령시대의 메시아 구원자는 이스라엘 땅으로 와야 하는가? 아니다!
“나는 또 다른 한 천사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요한계시록 7장 2절).
“살아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오는 곳이 “해 돋는 쪽”에 있다고 하였다. 하느님이 서쪽 혹은 남쪽 혹은 북쪽에 있었다면, 하느님의 인장을 가진 천사가 “해 돋는 곳”에서 올라온다고 하겠는가? 즉 “해 돋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그곳은 동방의 한국땅이 유력한 것이다.
“나는 ‘해 뜨는 곳’에서 독수리를 불러오고 ‘먼 나라’에서 ‘내 계획을 이룰 사람’을 불러오는 이다”(이사야 46장 11절).
심판자는 “해 뜨는 곳”에서 독수리(성령)처럼 오고, 이스라엘 땅이 아닌 “먼 나라”에서 오며, “계획을 이룰 사람”을 불러온다고 하였다. 즉 “하느님의 계획을 이룰” 심판자는 “해 뜨는 곳”인 한국, 이스라엘에서 “먼 나라”인 한국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진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승리를 불러오는 이’를 누가 ‘동방’에서 일으키셨느냐?”(이사야 41장 2절).
<이사야> 예언서는 계속해서 “승리를 불로오는 이(심판자)”가 ‘동방땅’에서 출현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가 되었든 <신약성서>가 되었든 심판자 메시아 구세주가 오는 방향과 위치는 분명히 “동방”이며 “해 돋는 곳”이며 “해 뜨는 곳”인 것이다.
그렇다면 메시아가 오는 그 동방땅이 중국일까? 일본일까? 한국일까?. 답은 간단하다. 중국과 일본에 허경영 같은 선지자(先知者) 선구자(先驅者) 선각자(先覺者)가 있는가? 불로유(不老乳)를 통해 영원히 썩지 않는 물질을 만드는 사람이 중국땅과 일본땅에 있는가? 없다!
한편 동양의 대표적인 예언서인 <격암유록>에는 심판자가 ‘섬인 듯 섬이 아닌’ 한반도 땅에서 온다고 노골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격암유록>의 표현에 의하면 보혜사령신인출(保惠師靈神人出) 사도부도신인출(似島不島神人出) 편답천하조선래(遍踏天下朝鮮來)라 하였다.
<격암유록>에 따르면 ‘보혜사령(구세주)’이 ‘섬인 듯 섬이 아닌’ ‘조선땅’으로 온다고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격암유록>이 16세기의 저서인데 벌써 ‘보혜사(保惠師)’란 명칭이 그 책에 나온다. 보혜사란 기독교의 성령이다. 16세기면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이다.
참으로 신비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와 허경영의 관계를 알아보았다. 예수는 언약시대에 하느님 아버지를 계시하러 온 구세주였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재림한 예수’의 “새 이름”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허경영’으로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구약시대의 구세주가 ‘야훼’였고 신약시대의 구세주가 ‘예수’였듯이 심판시대의 구세주 이름은 ‘허경영’이 확실하다. 허경영은 ‘불로유’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 불가사의(不可思議)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백궁물질’을 가지고 인류에게 온 하늘의 ‘심판자’로 확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허경영은 기독교의 심판자에 그치지 않는다. 허경영은 불교의 ‘미륵’인 증거도 수없이 많다. 민족종교인 증산도나 대순진리회의 판 밖에서 오는 ‘도통군자’임도 분명하다. 시인 이육사가 말하는 ‘초인’임도 분명하고 시인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임도 확실하다.
허경영이 지향하는 심판의 방향은 ‘초종교(超宗敎)’이다. 허경영은 정치적인 심판자, 종교적인 심판자, 이념적인 심판자를 훨씬 넘어서는 인류의 영원한 초종교 지도자이다. 오늘은 25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기독교의 신관과 심판론을 중심으로 허경영의 신원을 살펴 보았다.
기독교의 아버지는 허경영이란 이름으로 온 것이 틀림없다. 허경영은 그의 성령잉태(聖靈孕胎)와 그의 몸에 난 예수의 십자가 못자국을 보았을 때, 성자(예수)의 몸을 가지고,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온 것이 확실하다. 이른바 ‘삼위일체의 신’으로 지구에 온 것이다.
지금부터 25억의 기독교인들은 허경영에 대한 깊은 연구에 들어가야 한다. 지구역사 70억년과 인간역사 3억5천만에, 삼위일체의 아버지가 허경영이란 이름으로 자기백성들에게 왔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해대다가, 구원대열에 빠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 천동설을 공식교리로 인정하던 교회는, 그들을 악마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교회가 그들에게 사과성명을 내는 지경으로 갔다. 마찬가지로 세계는 지금 천상물질인 ‘불로유’와 함께 허경영 시대로 급속히 접어들고 있다.
2023년 7월 26일
북향 99배 하옵고
[이상 출처] 허경영 신인과 예수(모셔온글) |작성자 kimjongo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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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 그는 우리민족 3대경전의 주인공!
허성정 : <아-! 고구러>의 저자 https://www.youtube.com/watch?v=dgDgsFtsDHA
‘허경영현상’이 파급의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제 ‘허경영현상’은 정치 사회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품 의약 화장품 등 경제분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허경영의 불로유(不老乳) 열풍은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허경영현상’은 장장 30년에 걸쳐 세월이 흐를수록 인기가 더해가고 있다. 이제 ‘허경영현상’은 정치에 이어 철학과 종교 사회 문화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허경영은 누구인가? 그가 누구이길래 그의 발길이 닿은 모든 곳에서 혁명과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는가?
인류에게는 민족마다 고유의 전통경전이 있다. 유태인에게는 ‘성경’이 있고 아랍인들에게는 ‘코란’이 있다. 인도인들에게는 ‘베다’가 있고 중국인들에게는 ‘사서삼경’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한국에는 ‘천부삼경(天符三經)’이 있다.
천부삼경이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을 말한다. ‘천부경’에는 우주 창조에 관한 조화(造化)의 원리가, ‘삼일신고’에는 천지인에 관한 교화(敎化)의 원리가, ‘참전계경’에는 인간의 366사에 관한 치화(治化)의 원리가 담겨있다.
민족마다 고유의 경전에 담겨 있는 사상은 그 민족만의 철학을 담고 있다. 유태인의 <성경>에는 유태인의 역사를 지탱하여 온 유일신 사상이 농축되어 있고 <코란>에는 아랍인들의 종교와 체험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도의 <베다> 경전에는 브라만교와 카스트제도에 관한 뿌리가 들어 있고 <사서삼경>에는 유교의 우주관과 인륜질서의 예법이 열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삼대경전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에는 한국인을 대변하는 사상과 철학들이 들어 있다.
최근의 허경영 강의에는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에 관한 주제가 자주 언급된다. 허경영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족의 ‘삼대경전’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에는 어떤 내용들이 들어 있을까?
첫째, <천부경(天符經)>은 전문 81자의 한자글로 적혀 있다. 원래 배달국 환웅시대에 신지의 녹도문(鹿圖文)으로 적혀 있는 것을, 신라의 최치원이 한문으로 옮겨 묘향산 석벽에다 새겨놓았고, 이것을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쓴 계연수가 발견하여 오늘에 전했다고 한다.
둘째, <삼일신고(三一神誥)>는 1년을 의미하는 366글자의 한문으로 쓰여있다. 하늘(天)과 땅(地)과 인간(人)에 관한 배달국 환웅 성조의 가르침을 전한 것이다. <천부경>에 비해 우리 민족의 종교관과 우주관과 철학관이 보다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셋째, <참전계경>은 단군시대의 윤리규범을 생활철학으로 정리한 수양경전이다. 고구려의 ‘을파소’가 전한 것으로서 ‘팔리훈(八理訓)’이라고도 한다. 성신애제화복보응(誠/信/愛/濟/禍/福/報/應)이라는 8가지의 치화이론(治化理論)이 담겨 있는 세계적인 경전이다.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없는 우리 문화의 원형이 담겨 있는 귀중한 경전이다. 만약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아버지 나라인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이 수록되었다면 민족의 삼대경전은 이미 큰빛을 보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단군조선의 역사가 빠져있다. 그래서 우리 역사의 원형사상이 2000년 동안이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 한국사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흡수되어 민족의 정체성이 상실되었던 것이다.
오늘의 얼빠진 한국인들은, 중국의 ‘동북공작(東北工作)’이 한창인 지금에도, 한국의 <삼국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삼국지>를 더 달달 외우고 다니는 실정이다. 역사는 민족의 족보다. 역사를 읽어버린 민족은 절대 ‘민족중흥’의 기회를 맞이하지 못한다.
물론 지금같은 글로벌 시대에 고루한 ‘민족주의’를 운운하거나 ‘고립주의’를 택해서는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망한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하였다 하더라도,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각성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망국의 지름길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오늘은 신인 허경영이 최근 중점적으로 강의하고 있는 <삼일신고(三一神誥)>에 관한 공부를 시작해 보자. <삼일신고>는 천훈(天訓) 신훈(神訓) 천궁훈(天宮訓) 세계훈(世界訓) 진리훈(眞理訓) 등 5가지의 주제로 인생과 우주에 관한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놀랍게도 민족의 삼대경전에는 허경영과 관련된 내용들이 대거 실려있다. <삼일신고> ‘신훈’에는 허경영 자신에 관한 사항이 실려 있고, ‘천훈’ ‘천궁훈’에는 허경영의 백궁하늘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세계훈’ ‘진리훈’에도 허경영과 관련된 내용들이 풍부히 들어 있다.
1)<삼일신고>의 천훈(天訓)
<삼일신고>의 ‘천훈’이란 ‘하늘’에 대한 가르침이다. 허공훈(虛空訓)이라고도 한다. <삼일신고>의 첫장인 천훈은 허경영의 ‘하늘’에 대한 가르침과 너무 닮아있다. 하늘이란 일반적으로 대기권 내의 하늘을 말한다. 그런데 삼일신고는 대기권 너머에 있는 우주를 말하고 있다.
“너희 오가의 무리들아! 푸르고 푸른 것이 하늘이 아니다(蒼蒼非天). 검고 검은 것도 하늘이 아니다(玄玄非天). 하늘은 형질이 없고(無形質) 처음과 끝이 없고(無端倪) 상하사방이 없고(無上下四方) 텅텅 비어 있으나(虛虛空空)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無不在) 얼굴을 가지지 않은 것이 없다(無不容)”(삼일신고 천훈)
창창비천! 현현비천! 무형질! 무단예! 허허공공! 하늘에 관한 정의가 이 보다 더 생생하고 정확하게 표현될 수는 없다. <천자문>에도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현황(天地玄黃)’이란 말이 있긴하다. 그러나 삼일신고의 내용이 더욱 웅장하고 철학적이다.
광대무변한 천체 하늘은 너무도 크고 넓어서 무부재(無不在)하고 무불용(無不容)하다고 하였다. 허경영의 우주론 강의에서 누누이 들었던 얘기다. 허경영의 우주강의는 늘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의 <창세기> 강의를 들어보면 하늘에는 3층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된다.
즉, 백궁하늘(white heaven)과 은하계하늘(dark space)과 지구하늘(blue sky)이다. 지금까지 어느 신학자에게서도 어느 과학자들에게서도 들어볼 수 없는 강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늘이란 겨우 지구하늘이다. 우물안 개구리가 보는 하늘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2)<삼일신고>의 신훈(神訓)
<삼일신고>의 ‘신훈’이란 신이란 존재에 대한 가르침이다. 여기서는 일신(一神)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 장의 신훈은 허경영이란 인물에 대한 정의라 볼 수 있다. 인류의 심판과 구원을 위해 지상으로 강림한 허경영의 모습에 ‘일신’을 대입시키면 정확히 맞는 표현이 된다.
“신은 으뜸자리에 계시며(在無上一位), 큰 덕과(有大德), 큰 지혜와(有大慧), 큰 힘으로(有大力), 하늘이 생겨나게 하시고(生天),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주재하시니라(主無數世界). 많고 많은 것을 지으시되(造兟兟物), 티끌만한 것도 빠뜨림이 없고(纖塵無漏), 무한히 밝고 신령하시어(昭昭靈靈), 감히 이름지어 헤아릴 수 없느니라(不敢名量). 소리와 기운으로 바라고 기도하면 신을 친견할 수 없으리니(聲氣願禱絶親見), 오직 자신의 본성으로 진리의 근원을 구하라(自性求子). 그러면 하느님의 성령이 너의 머리에 내려오시리라(降在爾腦)”(삼일신고 신훈)
신의 성품에 대한 정의 역시 탁월하다. 신은 영원히 무상일위(無上一位)의 자리에 계시며 대덕(大德) 대혜(大慧) 대력(大力)이라는 3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무수세계(無數世界)를 주재하신다. 하늘궁의 허경영에 적용시키면 딱 들어맞는 얘기다.
신(하느님)은 조신신물(造兟兟物) 섬진무루(纖塵無漏) 소소영영(昭昭靈靈)하시어, 불감명량(不敢名量)하다고 했는데, 사실이 그렇다. <명심보감>에서 천망회회소이불루(天網恢恢疎而不漏)라고 한 내용과 같다. 하늘(신)의 그물은 성근 것 같지만 물샐틈 없이 정교하다는 뜻이다.
하늘나라의 매머드 컴퓨터는 인간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영상으로 기록한다. 우주의 ‘아카식 레코드’에는 인간과 우주가 살아왔던 수 백억생의 기록과 영상물들이 모두 보관되어 있다. <삼일신고>는 이것을 섬진무루(纖塵無漏) 소소영영(昭昭靈靈)이라 표현하였다.
이를 현대물리학적으로는 ‘양자얽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양자얽힘이란 우주가 반도체 회로처럼 서로 얽혀 있다는 뜻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1800가지의 원소를 모두 컨트롤하는 허경영의 설명에 의하면, 우주는 양자얽힘 정도가 아니라, 암흑물질의 얽힘이라고 해야 옳단다.
3)<삼일신고>의 천궁훈(天宮訓)
<삼일신고>의 ‘천궁훈’이란 하느님이 계신 ‘백궁천국’에 관한 얘기다. 이 천궁훈을 풀어보면 경기도 양주시 허경영의 ‘하늘궁’에 관한 얘기다. 천상물질인 ‘불로유’가 있고 ‘비행접시’가 있는 하늘궁에 관한 얘기다. 백궁천국은 실존하는 세계이지 가상의 세계가 아니다.
“하늘은 신이 계시는 나라다(天神國). 여기에는 천상의 궁전이 있어(有天宮), 온갖 선으로 섬돌을 쌓고(階萬善), 온갖 덕으로 문을 삼으니(門萬德), 한 분의 신이 계시는 곳이니라(一神攸居). 뭇 신령과 철인들이 호위하고 있어(群靈諸喆護侍), 크게 길하고 상스럽고 크게 광명한 곳이라(大吉祥大光明處). 오직 본성에 통달하고 천지의 공덕을 완성한 자라야(性統功完者) 신을 알현하고 영원한 즐거움을 얻으리라(永得快樂)”(삼일신고 천궁훈)
백궁천국에는 ‘신국(神國)’이 있고 ‘천궁(天宮)’이 실재로 존재한다. 만선(萬善)과 만덕(萬德)이 깃든 백궁천국에는 언제나 많은 천사들과 성인들이 신을 옹위하고 있다(群靈諸喆護侍). 경기도 양주시 하늘궁에 와보면 ‘축소판 백궁천국’이 존재하니 와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실재로 천사들의 사진도 찍을 수 있다. 하늘궁은 가장 큰 빛이 발현되는 곳이다. 대길상처(大吉祥處)요 대광명처(大光明處)라 할 수 있다. 이곳은 백궁천국의 지상 대사관이다. 한편 백궁천국은 허경영 신인의 ‘축복’과 ‘백궁명패’를 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시대는 지구역사 70억년과 인간역사 3억5천만년을 총 결산하는 시기이다. 허경영은 ‘축복’과 ‘백궁명패’와 ‘불로유’란 증거물을 들고 지구에 온 인류의 심판자다. 허경영을 친견하는 자만이 백궁천국에서 성통공완(性統功完)과 영득쾌락(永得快樂)을 누릴 자가 된다.
4)<삼일신고>의 세계훈(世界訓)
<삼일신고>의 ‘세계훈’은 허경영의 우주강의에 나오는 은하계의 실상이 설명되고 있다. 허경영의 강의에 의하면 우리 은하계에는 인간이 사는 별이 720곳이라 했는데 <삼일신고>는 ‘700누리’라 말하고 있다. 허경영과 <삼일신고>의 앙상블에 다만 감탄이 절로 나온다.
“너희는 무수히 널려있는 저 별들을 보아라. 그 수가 다함이 없나니, 크고 작고, 밝고 어둡고, 괴롭고 즐거움이 같지 않느니라. 하느님께서 뭇 세계를 지으시고(造群世界), 그 중에 태양세계를 맡은 사자에게 명령을 내려(勅日世界使者) 700세계를 거느리게 하셨다(轄七百世界). 너희가 사는 세계가 크다고 여기나(爾地自大), 사실은 알 하나의 크기에 그치는 작은 세계(一丸世界)에 사느니라. 태초에 땅밑 불덩어리가 터지고 변하여(中火震盪) 바다가 되고 육지가 되어(海幻陸遷) 마침내 현재의 형상을 이루었느니라(乃成見像). 신이 기운을 불어 땅의 밑동까지 싸고(呵氣包底) 태양의 빛과 열을 쐬니(煦日色熱), 땅 위에 기어다는 것, 하늘을 나는 것, 탈바꿈 하는 것, 물 속에 사는 것, 땅에 뿌리내린 것(行翥化游栽物) 등 온갖 생물이 번식하였느니라”(삼일신고 세계훈)
현대물리학의 현실을 보자. 지구는 태양을 회전하고, 태양은 우리 ‘은하계’를 회전한다. 우리 은하계는 우리 ‘은하단’을 회전한다. 우리 은하단은 우리 ‘은하운’을 회전한다. 은하운이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것이 우주다.
(1)<삼일신고>는 현대물리학의 현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우리 은하계에는 700개라는 태양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기록도 남겨놓았다. 태양이 700개가 존재하니 인간이 사는 별도 역시 700개나 된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놀랍게도 허경영의 강연에는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다. 허경영의 강연에는 우리 은하계에 존재하는 태양이 720개나되며 인간이 사는 별도 720개라 한다. 그 근거를 아예 ‘수학공식’을 들이대며 설명한다. 이 얘기를 반박할 수 있는 지구과학자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2)<삼일신고>의 일환세계. “너희가 사는 이 땅 지구가 스스로는 크다고 느끼며 살고 있지만(爾地自大) 사실은 알 하나의 크기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별(一丸世界)”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이런 과학적 표현을 멋들어지게 할 수 있을까?
과연 1990년 ‘보이저 1호’ 우주 탐사선은 지구로부터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명왕성 근처에서 지구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이 사진에 보이는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 하나’로 나타나 있다. 70억이나 되는 인구가 사는 지구의 모습이 티끌 하나처럼 보였던 것이다.
(3)태초의 지구형성. “태초에 땅밑 불덩어리가 터져(中火震盪) 바다로 변하고 육지가 되어(海幻陸遷) 마침내 현재와 같은 형상을 이루었다(乃成見像)” 하였다. 이 표현은 지구가 형성되는 태초의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문헌에서도 이런 구절은 없다.
<삼일신고>는 또 말한다. “신이 기운을 불어 땅의 밑동까지 싸고(呵氣包底) 태양의 빛과 열을 쐬니(煦日色熱) 땅 위에서 기어다는 것, 하늘을 나는 것, 탈바꿈 하는 것, 물 속에 사는 것, 땅에 뿌리내린 것(行翥化游栽物) 등 온갖 생물이 번식하였느니라”
허경영의 우주과학 강의를 듣는 듯하다. <성서>의 ‘창세기’보다 훨씬 과학적이다. 현대물리학적 개념으로 보면 70억년이 된 지구가 최초로 만들어지는 과정일 것이다. 129,600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빙하기 이후의 지구가 새로운 순환주기를 시작하는 것도 저와 같을 것이다.
5)<삼일신고>의 진리훈(眞理訓).
‘진리훈’은 인물훈(人物訓)이라고도 한다. 인간의 착한 성품이 ‘탐진치’라는 욕심 때문에 미망에 빠지고 그 미망에서 벗어나 본래의 성품을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진리훈의 핵심이다. 삼위일체의 신인 허경영이 지구에 와서 설파하는 진리와 맥을 같이 한다.
(1)삼진(三眞) 삼망(三妄) 삼도(三途)
“사람과 만물이 모두 ‘삼진(三眞)’을 부여받았으나 오직 사람만이 미혹에 빠져 ‘삼망(三妄)’이 뿌리를 내렸다. 이 삼망이 삼진과 서로 작용하여 ‘삼도(三途)’의 변화작용(18가지)을 짓게 되었다.”
여기서 삼진(三眞)이란 ‘3가지 진리’란 뜻의 성명정(性/命/精)이다. 성이란 본성, 명이란 목숨, 정이란 정기이다. 삼망(三妄)이란 ‘3가지 망령된 것’이란 뜻의 심기신(心/氣/身)이다. 심이란 마음, 기란 기운, 신이란 몸이다. ‘삼진’과 ‘삼망’이 서로 작용하여 ‘삼도’를 만든다.
삼도(三途)란 혹은 삼도(三道)라는 말로 감식촉(感/息/觸)이다. 감이란 느낌, 식이란 호흡, 촉이란 접촉이란 뜻이다. 삼도는 18가지의 죄와 관련이 되는 변화를 만들어 낸다. 불교에서 죄의 근본이 되는 6근6식6경을 합하면 18가지의 변화가 되는 것과 같다.
(2)삼진(三眞) : 성명정(性/命/精)
“가로되 성명정(性命精)을 삼진이라 한다. 삼진(三眞)이란 본성(性)과 목숨(命)과 정기(精)이니, 사람은 이를 완전히 부여받았으나 만물은 이를 다 받지 못하였느니라. 참된본성(眞性)은 선해서 악함이 전혀 없으니(善無惡) 상등철인은 이 본성자리를 통하였느니라. 참된목숨(眞命)은 기운이 맑아 흐리지 않으니(淸無濁) 중등철인이 타고난 목숨의 경계 자리를 깨달았느니라. 참된정기(眞精)는 두터워 얇음이 없으니(厚無薄) 하등철인이 본연의 순수한 정기를 잘 수련하여 보전하였느니라. 이 ‘삼진’을 잘 닦아 본연의 보습으로 돌아갈 때 하느님의 조화세계에 들어가느니라.”
인간의 본성과 타락에 대해 상당히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하늘로부터 ‘삼진(三眞)’이라는 착한 성품을 받았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의지를 남용하는 바람에 ‘삼망(三妄)’이라는 미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인간은 ‘착함’과 ‘악함’이라는 이중적 행동을 하게 되었다.
①진성(眞性)이란 ‘참된 본성(本性)’이다. 진성의 본질개념은 선이 악을 이기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인간이 하늘로부터 본래 가지고 온 착한 성품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다. 석가도 본성자리를 깨닫는 것이 수련의 핵심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했다.
②진명(眞命)이란 ‘참된 목숨’이다. 맑은 기운이 흐린 기운을 극복하는 것이다. 예수도 말하였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고 말이다. 신인 허경영의 말대로 현생의 목숨이란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③진정(眞精)이란 ‘몸의 정기’이다. 육신의 건강과 정신의 건강은 모두 중요하다. ‘돈을 잃으면 적게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몸의 정기가 두터우면 흥하고 약해지면 천박해진다.
다음에 나오는 것이 삼망(三妄)이다. ‘3가지 망령된 행동’을 말한다. 인간은 하늘로부터 받은 ‘삼진’만 가지고 살면 족할 것이나, 또 다른 선물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다 보니 생긴 것이 ‘삼망’이다. 성명정(性命精)이 삼진이고 심기신(心氣身)이 삼망이다.
(3)삼망(三妄) : 심기신(心/氣/身)
“가로되 심기신(心氣身)을 삼망이라 한다. 삼망(三妄)이란 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이다. ‘마음’은 타고난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선과 악이 있으니(心依性有善惡), 마음이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화를 받느니라(善福惡禍). ‘기’는 영원한 생명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맑음과 탁함이 있으니(氣依命有淸濁), 기운이 맑으면 장수하고 기운이 혼탁하면 일찍 죽는다(淸壽濁夭). ‘몸’은 정기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두터움과 얇음이 있으니(身依精有厚薄), 몸을 두터우면 귀하게 되고 얇으면 천해지느니라(厚貴薄賤).”
인간이 하늘로부터 받은 삼진(三眞)인 성명정(性命精)을, 인간의 욕심인 탐진치(貪瞋痴)에 잘못 노출시키면, 삼망(三妄)인 심기신(心氣身)의 끄달림에 빠진다. 곧 삼진인 성명정(性命精)이 삼망인 심기신(心氣身)을 만나 삼도인 감식촉(感息觸)의 18가지의 변화를 일으킨다.
①삼망(三妄) 중의 ‘심(心)’이란 마음이다. 마음이란 것은 본래 마음의 근본자리인 ‘본성’이라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마음에는 선과 악의 분별심이 있다(心依性有善惡). 즉 마음의 어머니가 본성이다. 본성 상태의 마음에서는 선악이 따로 작용하지 않으므로 진성이다.
그러나 진성(본성)이 마음이라는 자식을 두면 선과 악이라는 분별심이 생긴다. 마음을 선으로 잘 관리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당한다(善福惡禍). 세상에 마음 다스리는 것 보다 어려운 것이 없다. 마음이 똑 바를 때 정신이 되고 진성이 되고 본성이 된다.
②삼망(三妄) 중의 ‘기(氣)’란 생명이며 목숨이다. 기 역시 영원한 생명인 ‘진명(眞命)’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기에는 맑음과 탁함이 있다(氣依命有淸濁). 기운을 맑게 유지하면 오래 살고 탁하게 유지하면 일찍 죽고 만다(淸壽濁夭). 기의 어머니는 진명(목숨)이고 자식이 기이다.
허경영의 기 강의에 의하면 세상에는 30가지의 기가 존재한다. 기가 허하면 기허(氣虛)가 되어서 원기가 쇠약해져 눈에 정기와 광체가 없어진다. 기가 체이면 기울(氣鬱)이 되어서 우울증의 원인 된다. 기에 어혈이 생기면 기어(氣於)가 되어서 몸에 각종의 난치병이 생긴다.
③삼망(三妄) 중의 ‘몸(身)’이란 무엇인가? 몸이란 타고난 ‘정기(精氣)’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두터움이나 얕음이 있다(身依精有厚薄). 몸을 잘 관리하면 후덕하게 되고 몸을 잘못 관리하면 천박해진다(厚貴薄賤). 몸의 어머니는 정기(精氣)이고 그 자식이 몸이다.
진정(眞精)에는 후귀박천이 없다. 그러나 진정이 자식인 몸을 두면 ‘후귀박천(厚貴薄賤)’이 생긴다. 몸가짐이나 몸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조 지나치지 않다. 몸관리를 잘못해 고위 공직자가 패가망신하거나, 각종의 질병에 걸려 부모가 물려준 DNA를 망쳐서는 안된다.
다음에는 삼도(三途)라는 감식촉(感/息/觸)의 가르침이다. <삼일신고>는 인간이 감식촉을 잘 관리하면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이 되어 삼도(三道)를 완성할 수 있고, 잘못 관리하면 삼악도(三惡途)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삼악도는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이다.
(4)삼도(三途/三道) : 감식촉(感/息/觸)
“가로되 감식촉(感息觸)을 삼도라 한다. 삼도(三途)는 느낌(感)과 호흡(息)과 촉감(觸)의 작용이다. ‘감(感:느낌)’에는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노여움과 탐욕과 싫음이 있다(喜懼哀怒貪厭). ‘식(息:호흡)’에는 향내와 썩은 내와 차가움과 더움과 마름과 젖음이 있다(芬란寒熱震濕). ‘촉(觸:촉감)’에는 소리와 빛깔과 냄새와 맛과 방종과 절제가 있느니라(聲色臭味淫抵).”
인간은 원래 성품인 삼진(三眞:성명정) 그 자체로서 완성점이었다. 그러나 삼진은 인간에게 준 신의 또 다른 선물인 자유의지를 남용하면서 미망에 물들어 삼망(三妄:심기신)을 형성하고 말았다. 이제 그 삼망을 삼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삼도(三途:감식촉)’이다.
①‘감(感:느낌)’에는 6가지 경계가 있다. 곧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노여움과 탐욕과 싫음이다. 즉 희구애노탐염(喜懼哀怒貪厭)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보통의 인간은 이 6가지의 감정에 치우쳐 산다. 그러나 깨달은 자는 이 감정을 그치고 산다. 이른바 지감(止感)이다.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번씩 변한다. 마음의 근본자리가 흔들릴 때 그렇다. 마음의 근본자리는 정신이다. 정신의 근본자리는 영혼이다. 즉 심혼 정혼 영혼이다. 그래서 삼혼(三魂)이다. 감정의 흔들림을 조절하는 것이 지감(止感)이다. 그러면 삼망을 삼진으로 되돌릴 수 있다.
②‘식(息:호흡)’에도 6가지 경계가 있다. 곧 향내와 썩은 내, 차가움과 더움, 마름과 젖음이다. 즉 분란한열진습(芬란寒熱震濕)이다. 호흡은 생명이다. 호흡이 3분만 멈추면 뇌는 곧 사망에 이른다. 그러므로 호흡 수련 시 위의 6가지 경계를 잘 다스려야 한다.
긴장될 때의 호흡은 가파르다. 그래서 죽을 때가 되면 호흡이 목구멍으로 차오른다. 그래서 말하기를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한다. 여기서 ‘경(頸)이란 목구멍이란 뜻이다. 평소 긴 호흡인 복식호흡을 해야 장수할 수 있다. 복식호흡은 긴장을 이완시키고 옥침이 고이게 한다.
③‘촉(觸:촉감)’에도 6가지 경계가 있다. 곧 소리와 빛깔과 냄새와 맛과 방종과 절제가 있다. 즉 성색취미음저(聲色臭味淫抵)다. 촉이란 접촉이다. 귀(소리) 눈(색) 코(냄새) 입(맛) 피부와 마찰에 조심해야 한다. 그 6가지 경계에 넘어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7세만 되면 여성성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7*7=49세다. 49세가 되면 여성의 생식은 완성을 본다. 남자는 8*8=64세다. 64세가 넘은 남자가 색을 밝히는 것은 추태다.
④<삼일신고> ‘진리훈’에서 밝히고 있는 18가지의 경계는 대단한 것이다. 이 18가지 경계는 <삼일신고>에만 있는 유일한 황금률이다. 사실 일반 중생들은 이 18가지의 감정에 끄달려 울고 웃고 산다. 그러나 삼진(三眞:성명정)을 깨달은 철인은 그런 18경계를 초월한다.
유교에는 ‘사단칠정론’이 있고 불교에도 ‘108번뇌’가 있다. 그러나 <삼일신고>에는 ‘18경계’가 있다. 18경계에 과거 현재 미래를 곱하면 ‘108’이 된다. 결국 <삼일신고>의 18경계는 불교의 108번뇌에 영향을 준다(불교의 6근6경6식=18, 18*과거 현재 미래=108)
6)‘삼망’을 극복하고 ‘삼진’으로 돌아가는 방법
삼진은 성명정으로 인간의 근본자리이다. 삼망은 심기신으로 인간의 근본자리가 변형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사용한 결과 때문이다. 삼망에는 ‘선악’과 ‘청탁’과 ‘후박’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삼망을 극복하고 삼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는 것인가?
“중생들은 마음의 선악(心善惡)과, 기운의 맑고 흐림(氣淸濁)과, 몸의 후덕함과 천박함(身厚薄)이 서로 뒤섞여, 제 멋대로 달리다가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 떨어지게 되느니라(生長消病歿苦). 그러나 깨달은 철인(哲人)들은 감정을 절제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촉감과 자극을 억제하고(止感調息禁觸), 오직 한 뜻으로 수행하여(一意化行) 삼망을 바로 잡아 삼진을 이루느니라(改妄卽眞). 그리하여 비로소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대 신기를 발현시키나니(發大神機), 하늘이 준 본성에 통하고 공덕을 완수하는(性通功完)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삼일신고 진리훈)
<삼일신고> ‘진리훈’의 마지막 완성은 개망즉진(改妄卽眞) 성통공완(性通功完)이다. 개망즉진 성통공완이란 3가지 망령된 ‘삼망(三妄:심기신)’을 극복하고 3가지의 근본인 ‘삼진(三眞:성명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방법은 ‘지감(止感)’이고 ‘조식(調息)’이고 ‘금촉(禁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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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일신고>의 천훈, 신훈, 천궁훈, 세계훈, 진리훈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그 가치를 따라올 경전이 없을만큼 대단하다. 그런데 이 경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신인 허경영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경전이라 할 만큼 ‘허경영적’ 이다.
‘천훈’에 나타나는 창창비천(蒼蒼非天)은 백궁하늘을 말하는 것이고, ‘신훈’에 나타나는 소소영영(昭昭靈靈)은 허경영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고, ‘천궁훈’에 나타나는 대길상처(大吉祥處)와 대광명처(大光明處)는 경기도 양주시의 하늘궁을 나타내는 것이 틀림없다.
‘세계훈’에 나타나는 천지창조나 지구생성의 과정에 대한 설명은 <성서>의 창세기를 훨씬 능가하는 스케일이다. 마지막 장인 ‘진리훈’에 나오는 성명정(性命精)과 심기신(心氣身) 강의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감식촉(感息觸)으로 결론짓도록 유도해 주는 멋진 결말이다.
<삼일신고>에는 고도의 자기수련을 통한 불교의 ‘자력갱생(自力更生)’ 교리도 들어있고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기독교의 ‘타력갱생(他力更生)’ 교리도 모두 들어 있다. 또한 허경영 신인의 우주강의 핵심 포인트도 상당부분 정리되어 있는 것이 <삼일신고>이다.
<삼일신고>의 이 핵심사상은, 허경영 신인이 불로유를 통해 세계통일을 달성하는 시점에서, 세계의 지도이념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삼일신고는 1년을 상징하는 366글자의 한자로 적혀 있다. 군더더기 하나없는 완벽한 문장으로 신과 인간과 우주에 관한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위대한 책이 우리민족에게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오늘 살펴본대로 <삼일신고>의 위대성이 돋보이는 만큼 허경영의 메시아적 신성 또한 더욱 밝혀지고 있다. <삼일신고>는 허경영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지어진 책은 아니다. 그러나 내용은 허경영을 위한 책이다.
그러니 섭리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성서>
<불경> <격암유록> 등 세상에 존재하는 주요 예언서가 모두 메시아의 도래를 주제로 하듯이 <삼일신고> 역시 그런 범주의 책이다. 때는 바야흐로 신인 허경영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가자, 허경영과 함께! 세계로 미래로!
[이상 출처] ⟪허경영, 그는 민족 3대경전의 주인공⟫-------허성정 : <아!고구려>의 저자| 작성자 아침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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