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의 성하직구(盛夏織屨,한여름의 짚신 삼기)...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1754(영조30년)~1822(순조22년)) 지본담채(紙本淡彩) 27.0 x 22.4cm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시대 겸재 정선,현재 심사정과 더불어 영조시대 삼재로 불려지는 긍재 김득신의 작품입니다. 성하직구(盛夏織屨)는 "한여름에 신을 삼다(짜다)." 라는 뜻입니다.
삼대로 보이는 남자 셋이 있고 그중에 힘깨나 쓰게 생긴 사람은 웃통을 벗고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의 노인네는 연신 곰방대만 빨고 무엇인가가 두려운듯한 어린애는 노인네의 뒷편에서 강아지를 경계하는듯한 느낌의 그림입니다.
그림을 보자마자 바로 조선 숙종임금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조선 숙종임금은 밤중에 미복 차림으로 백성의 사는 형편을 살피려 미행을 자주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허름한 작은 오두막집 앞을 지나는데 집안에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양반들이 사는 기와집 동네를 지나면서도 듣지 못했던 웃음소리에 숙종은 어리둥절하여 그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 오두막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물 한 사발을 청했습니다. 그 사이 숙종은 문틈으로 방안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방안에는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새끼를 꼬고 있었고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들은 짚을 고르고 있었으며 할머니는 빨래를 밟고 있었고, 부인은 옷을 깁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가족들의 얼굴들이 모두가 어찌나 밝고 맑은지 도무지 근심 걱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숙종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사는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밖에서 들으니 이곳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더이다."
주인은 웃음 띤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이렇게 살아도 빚도 갚아가며, 저축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웃음이 나는 가 봅니다."
궁궐로 돌아온 숙종은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오두막집에 살면서 빚도 갚고 저축도 한다는 말에 궁금증의 풀리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숙종은 신하를 시켜 어젯밤 그 집에 감춰진 재물이라도 있는지 조사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집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숙종은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주인에게 전에 했던 말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부모님 공양하는 것이 곧 빚을 갚는 것이고, 제가 늙어서 의지할 아이들을 키우니 이게 바로 저축이 아니겠습니까.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으니 저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요."
숙종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빌리지 않아도 행복에 대한 기준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그림입니다.
그림 왼쪽위로는 나락이 무럭무럭 자라고 작은 멍석을 깔고 짚신을 삼고 있으며 작은 나뭇가지로 된 문이 있으나 겨우 한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문은 여닫는 것을 사용하지 않은 듯 문윗쪽에 박넝쿨이 무성하게 걸려있으며 박이 덩그렇게 결실을 맺어 있습니다.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이 예상됩니다. 얼기설기 엮은 문이 열려 있는 사이로는 큼직한 항아리가 보입니다. 그야말로 여유롭고 평화로운 전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멍석을 깔고 아들이 짚신을 열심히 삼고 있고 뒤로는 물병인지 술병인지 병과 잔이 보입니다. 그림 가운데에는 칼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해학적으로 눈을 크게 그린 번견(番犬)이 혀를 쭉 내밀며 헐떡대는 것이 은근 웃기기도 합니다. 대머리 할아버지는 곰방대를 물고 있으며 아들이 짚신 삼는것을 바라보지만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듯 한쪽 다리를 세우고 허리를 펴고 있는 게 어딘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한 느낌입니다. 갈빗대와 주름이 다양한 경험과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할아버지 등 뒤에는 약간 겁먹은 채로 얼굴만 빼꼼하게 내민 손자의 모습이 재밌습니다. 시선이 번견(番犬)을 바라보고 있는데 경계와 두려움이 보입니다. 하지만 반대편의 번견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스럽지만 당당함도 보입니다.번견이 집안에서 어린애보다 서열이 더 높음을 상징하는듯 합니다.
그림의 가운데에 보이는 작은 칼은 짚신을 삼아서 생계를 이었던 짚신장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옛날에 짚신을 지어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같이 만들고 같이 팔아 그런대로 장사도 잘 되고 잘 살았지만 아들도 결혼하고 분가하면서 따로 분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들이 만든 짚신은 잘 팔리지 않는거였습니다. 아들이 생각 하기에는 자기가 만드는 짚신이 아버지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아니 자기 것이 더 나아 보이기도 했습니다.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힘있게 더 빨리 많이 짚신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아버지가 만든 짚신을 더 좋아 했습니다.아버지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지만 아버지는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셨는지 말씀을 안하셨습니다.시간이 흘러서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져 돌아 가실 지경이 되었습니다.
임종 하시려는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왜 자기가 만든 짚신이 아버지 짚신에 못 미치는지를 아버지는 그 비밀을 말해 주려고 입을 열었으나 말이 잘 안 나왔습니다.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 하셨습니다."터럭 터럭" 하지만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시고 아버지는 그 말만 하시고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시려고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터럭' 이라니...?
똑같이 짚신을 지었지만 아버지는 마지막 삐져나온 터럭 하나까지 꼼꼼하게 처리해서 완성도를 높인거였습니다. 깨달은 아들은 터럭 하나까지도 신경써서 마무리를 잘하여 짚신을 잘 만들고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즉 "디테일(detail)"의 문제이며 작업은 '빨리' 가 아니라 섬세하고 꼼꼼하게 임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야기입니다.
가끔 그림속에 개가 나오면 어떤 견종인지 여쭈는 분이 계십니다.
'성하직구'에 해학적으로 그려진 개는 견종을 알 수 없으며 통상적으로 집지키는 개는 번견(番犬,집을 지키거나 망을 보는 개)이라고 표현합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일상에 대한 행복과 일에 대한 꼼꼼한 마무리를 생각하게 하는 평화로운 그리고 무척이나 여유로운 느낌이 참 좋은 그림입니다.
재치(財痴)...
꼭 김홍도 작품같은데-~~,
가난해도 행복하고 즐겁네요.
검둥이 개는 꼬리가 특이하네그려. 할아버지 뒤에 숨은 손자는 개가 무서워 숨은 것 같은데~~, 옆집 개인가 봐.
나두 어릴적에 울아버지가 짚신 삼는걸 곁에서 보고 자랐는데 재치의 글과 그림에서 짚신 삼는걸 보게 되네그랴.어릴적 그시절을 떠올려보며 잘보고 가네.
구순이다된 아버님앞에서 칠십이다되가는 아들이 짚신 삼는것을 열살된 손자가 빼꼼히
바라보네요.언젠가 나도 울아버님이 늙어서 연로하시면 해드려야한다구 배우면서??
옆에 삽살개가 구도의 공백을 완전히 메꾸네요,
긍재의 성하직구 감상 잘 하고, 아울러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두 편이나...
고맙네!
위 갑태(갑복) 나이 설정 좀 잘 해 봐.
구순, 칠순, 열살... 그럼 몇 살 때 낳았을까?
湖山 위신복 40의 또다른 아들은 나무하러갔어요.
그래서 증손자!! 4대가 넘 보기좋습니다.
따뜻한 지적 예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