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기자였던 40여년 전엔 매일 출근하는 곳이 신문사 말고도 한군데 있었다. ‘설매’라는 회사 근처 다방이다. 내가 다방에 나타나면 ‘레지’ 겸 DJ가 잽싸게 비틀스의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틀어줬다. 이어서 동료가 좋아하는 앤디 윌리엄스의 ‘하와이언 웨딩 송’도 흘러나왔다. 담배꽁초를 달인 맛 같대서 ‘꽁피’로 불린 커피는 거의 손도 안 댔었다.
요즘은 매일 커피를 두세잔 마신다. 다방이 아닌 편집국이고, 꽁피가 아닌 브라질산 정품 원두커피다. ‘오블라디…’도 있다. 기분 좋아서 저절로 나오는 내 휘파람 소리다. 커피의 메카인 시애틀에선 커피 컵을 들고 길을 걷거나 운전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커피는 매년 전 세계에서 6,000억 잔이나 소비되는 가장 인기 있는 기호음료로 자리 잡았다.
엊그제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흥미 있는 정보를 발견했다. 커피를 마시면 문장의 실수가 눈에 잘 띈다는 얘기였다. 커피를 마신 학생들이 마시지 않은 학생들보다 문장에서 주어-술어의 불일치, 엉뚱한 동사 시제 등을 잘 잡아낸다는 사실이 연구결과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 일이 천직인 나에겐 커피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음료다.
그뿐 아니다. 커피를 하루에 4~5잔 마시면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다른 성분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백혈구 증식인자(GCSF)를 늘린다고 알츠하이머 전문 저널이 발표했다. GCSF는 생쥐실험에서 치매를 물리치는 성장인자로 판명됐다. 커피를 1~3잔 마시면 전립선 위험이 30%, 6잔 마시면 60% 낮아진다고도 했다. 장~노년층에겐 커피가 곧 약이다.
커피예찬은 끝이 없다. 커피를 많이 마실수록 당뇨병 걸릴 위험이 줄어든단다. 미국 내과의학 저널에 실린 논문은 45만여명을 조사한 18개 연구를 분석하고 커피를 한잔 더 마실 때마다 당뇨에 걸릴 위험이 7%씩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커피를 매일 4잔 이상 마시는 여성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을 20%까지 낮출 수 있다는 하버드의대 연구논문도 있다.
이들 연구가 기준으로 삼는 커피는 카페인이 100mg 함유된 8온스짜리 ‘블랙커피’다. 스타벅스의 그랜드 사이즈(16온스) 커피에는 카페인이 330mg 들어 있다. 크림까지 얹은 모카 ‘프래파치노’(24온스)를 한잔 마시면 500칼로리를 섭취한다. 하루 필요 열량인 2,000칼로리의 4분의1이다. 요즘 미국인들 가운데 뚱보들이 많아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예전엔 서울거리에 다방이 거의 한집 건너 하나 꼴로 많았다. 커피를 마시는 장소보다는 ‘거리의 응접실’로 더 활용됐다. 대부분의 가정이나 직장에 손님을 맞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춘남녀들에겐 데이트 장소로도 안성맞춤이었다. 꽁피 대신 홍차나 메추리알이 든 쌍화차를 마시기도 했고, 오렌지주스나 계란반숙을 주문하는 실속파도 있었다.
커피를 가장 먼저 맛본 한국인은 이조 말의 고종황제로 알려져 있다. 친일파를 따돌리기 위해 러시아제국 공관으로 심야에 어가를 옮긴 ‘아관파천’(1896년) 때이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후 한국의 커피시장 규모는 1조 4,000억원에 육박했다(2008년). 올 상반기 커피 전문점에서 쓰인 신용카드 액수는 2008년보다 292%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요즘 서울거리에선 옛날식 다방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전문 커피숍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 신도시와 지방 중소도시엔 지금도 다방이 한집 건너 하나 꼴이다. 화성 시 인근 한 동네(주민 1,000여명)엔 다방이 50여개나 몰려 있다. 놀랍게도 이들은 모두 ‘티켓다방’이다. 거리의 응접실이 아닌 매춘알선이 주업이다.
손님이 ‘티켓’(7,000~1만원)을 끊으면 아가씨가 커피 보온병을 들고 원하는 장소로 배달한다. 그 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뻔하다. 옛날처럼 다방에서 티켓(음악신청 쪽지)을 건네면 ‘오블라디…’가 나오지 않고 여자가 나온다니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다. 어쨌거나, 커피 맛이 한결 더 당기는 가을이다. 한잔 마신 후 칼럼 문장의 실수를 찾아볼 참이다.
10-27-12
첫댓글 커피가 한 때는 몸에 나쁘다고 했는데, 요즘은 좋은 점이 많다니까 커피 장사 신나겠네요.
스타박스 커피 주식 투자해야 겠습니다. 다방 이야기도 재미 있고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우리 문인협 카페엔 향기 졿고 품질 좋은 커피가 항상 넘쳐나지요. 모두 마담님 덕분!
커피를 마시면 그렇게 좋은 점이 많군요.
저는 하루에 한 잔 만 마시는데 오늘부터 두 잔으로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 가지고 가서 다른 곳에 올려도 되나요? 선생님.
미숙님, 읽어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한 곳 말고 여러 곳에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