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3,26-33, 요한 14,1-6):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요한복음 14장 1절의 주님 말씀이 뭉클하도록 영혼에 머무는 아침입니다.
삶의 무게를 지니고서 저마다의 갈등 속에 번민하는 이들을 만나며 깊은 면담을 통해 치유의 문을 열어드리고자 맘을 다할 때마다, 때로는 깊은 묵상에 잠깁니다. 여러 이야기들은 결국 저의 삶 또한 반추하게 되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한발 물러서서 삶이란 과연 어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하고 영혼의 흐름을 짚고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고요함 가운데, 인생이란 여러 물줄기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 저마다의 다른 환경과 상처의 향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고 이해하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하는 색채를 지니고서 만남을 이루는 과정에서 성숙을 깨우쳐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바라보게 되지요.
서로가 지닌 모습을 탓하거나 이유를 묻기보다, ‘그럴 수 있거나 그럴 수밖에 없게 된’ 저 너머 속 깊은 곳에 저마다 지닌 눈물과 슬픔의 역사를 읽어내려 마음을 기울이다 보면, 사실 눈앞의 문제는 커다란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안아주어 치유하며 나가야 할 방향을 일깨워주는 문과 같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서로 안에 깃들어 있는 선함을 일깨우고, 더 사랑하지 못하여 안타까운 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도록, 서로에게 발걸음 내디뎌야 가 닿을 수 있는 길이 되어주고, 서로의 약함 가운데 놓쳐버린 진실이 없는지를 일깨워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숨과 생명을 지닌 존재라는 일깨워줄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렇게 서로에게 우리는 은총으로 초대된 사람이라는 것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께서는 이어지는 복음 6절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 그대로 우리는 주님 당신을 만남으로써 헤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라고 하시며 주님을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가운데 계신 분이라고 일러줍니다.
주님 없이 이 세상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경험과 때로는 깊은 아집에 잠겨 있는 줄도 모르는 채, 끊임없이 자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이해의 방법보다 도피의 방법을 택하는 것을 대할 때도, 안타까움과 슬픔이 젖어 들기도 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그분의 말씀에 우리 삶을 비추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큰 행복인지를 깨닫게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결국 우리 영혼을 충만케 하는 참 기쁨과 진리는 크고 복잡한 곳이 아니라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데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뵙고 그분 말씀에 발걸음 닿는 곳을 짚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이정표를 보며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고, 저 하늘을 바라보며 이 땅 위의 무거웠던 맘과 영혼을 들어 높일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요?! 하늘을 향해 목말라하는 이 땅 위에서의 영적 갈망이 오히려 이 땅 위를 걸어도 우리를 자유롭고 당당하게 이끌 테니까요.
내딛는 그곳에서 길을 찾기를, 그 길 위에서 진리를 만나기를, 그 진리가 영혼의 숨결과 순환을 북돋우는 생명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것은 먼곳이 아니라, 우리가 가슴을 여는 이곳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아멘.
이 미사를 통하여, 혼란스러운 세상 가운데서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추어주시고, 영혼이 중심을 잃지 않도록 중심이 되어주시며, 지치지 않도록 영적 양식이 되어주시는 주님을 붙들며 삶을 꿋꿋하고 향기롭게 엮어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Homily - ㅌ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요한복음 14장 1절의 주님 말씀이 뭉클하도록 영혼에 머무는 아침입니다.
삶의 무게를 지니고서 저마다의 갈등 속에 번민하는 이들을 만나며 깊은 면담을 통해 치유의 문을 열어드리고자 맘을 다할 때마다, 때로는 깊은 묵상에 잠깁니다. 여러 이야기들은 결국 저의 삶 또한 반추하게 되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한발 물러서서 삶이란 과연 어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하고 영혼의 흐름을 짚고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고요함 가운데, 인생이란 여러 물줄기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 저마다의 다른 환경과 상처의 향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고 이해하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하는 색채를 지니고서 만남을 이루는 과정에서 성숙을 깨우쳐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바라보게 되지요.
서로가 지닌 모습을 탓하거나 이유를 묻기보다, ‘그럴 수 있거나 그럴 수밖에 없게 된’ 저 너머 속 깊은 곳에 저마다 지닌 눈물과 슬픔의 역사를 읽어내려 마음을 기울이다 보면, 사실 눈앞의 문제는 커다란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안아주어 치유하며 나가야 할 방향을 일깨워주는 문과 같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서로 안에 깃들어 있는 선함을 일깨우고, 더 사랑하지 못하여 안타까운 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도록, 서로에게 발걸음 내디뎌야 가 닿을 수 있는 길이 되어주고, 서로의 약함 가운데 놓쳐버린 진실이 없는지를 일깨워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숨과 생명을 지닌 존재라는 일깨워줄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렇게 서로에게 우리는 은총으로 초대된 사람이라는 것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께서는 이어지는 복음 6절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 그대로 우리는 주님 당신을 만남으로써 헤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라고 하시며 주님을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가운데 계신 분이라고 일러줍니다.
주님 없이 이 세상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경험과 때로는 깊은 아집에 잠겨 있는 줄도 모르는 채, 끊임없이 자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이해의 방법보다 도피의 방법을 택하는 것을 대할 때도, 안타까움과 슬픔이 젖어 들기도 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그분의 말씀에 우리 삶을 비추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큰 행복인지를 깨닫게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결국 우리 영혼을 충만케 하는 참 기쁨과 진리는 크고 복잡한 곳이 아니라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데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뵙고 그분 말씀에 발걸음 닿는 곳을 짚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이정표를 보며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고, 저 하늘을 바라보며 이 땅 위의 무거웠던 맘과 영혼을 들어 높일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요?! 하늘을 향해 목말라하는 이 땅 위에서의 영적 갈망이 오히려 이 땅 위를 걸어도 우리를 자유롭고 당당하게 이끌 테니까요.
내딛는 그곳에서 길을 찾기를, 그 길 위에서 진리를 만나기를, 그 진리가 영혼의 숨결과 순환을 북돋우는 생명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것은 먼곳이 아니라, 우리가 가슴을 여는 이곳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벌써 5월이네요.
쉼이 필요할때 힘들고 지칠때 쉼터가 되어주시고 갈증을 채워주시니 고맙습니다.
따뜻하면서도 감기 오기 쉬운 날씨이니 건강 조심 하세요~~^^
시간이 흘러도 깊어가는 사랑이 물들이는 아름다운 계절, 성모님 품 안에서 쉬어가요.